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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시리즈 저자를 말한다
 글쓴이 : 관리자
 


영어,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등 세계 수십 개국 언어로 번역돼 수십만 권이 팔려나간 세계적 베스트셀러 구속사 시리즈가 7권 발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 문명의 거대한 기념물로 기록될 저서”(민경배 연세대 신학과 명예교수) “유구한 역사 가운데 최초로 이룬 경이로운 업적”(앤드류 J. 테시아 미국 개혁신학연구소장) 등 수많은 국내외 석학들의 찬사와 감탄을 자아낸 대작. 86세의 저자 박윤식 원로목사가 이 책을 어떤 마음, 어떤 과정으로 집필하고 있는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도 커져 왔습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저자의 집필 실무를 돕고 있는 박남순 선교사는 “눈물 없이는 지켜볼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이 글은 박남순 선교사의 구술(口述)을 기록해 정리한 것입니다.

제가 박윤식 원로목사님의 구속사 시리즈 집필 준비를 도운 지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이런 증언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저는 심부름을 하는 사람일 뿐인데 자칫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오히려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저는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제가 목격한 저자의 참 모습을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많은 이들이 저자가 어떤 심정을 가지고 이 책을 쓰고 있는지 너무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다만, 제가 직접 본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또 저자의 오랜 목회를 함부로 말하기에는 너무 짧은 세월이라는 한계가 있기에 깊이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 더 많다는 사실을 말해 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저자는 목회 55년 동안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도를 뜨겁게 사랑한 훌륭한 목회자라는 사실입니다.

곱게 빻고 또 빻은 사랑의 가루
제가 지켜본 원로목사님의 책과 설교에는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저자가 하나님을 지극하게 사랑하는 마음, 성도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 목회자들이 찾아와서 저자가 수십 년 전 써놓은 빛바랜 초고 중 한 두 장만 보고도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저는 옆에서 지켜봅니다. 단 한 장만 읽어도 저자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로목사님이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은 마치 사랑으로 갈고 또 갈아서 목으로 술술 넘길 수 있도록 곱게 만든 가루 같습니다. 한 사람도 체하거나 상처받거나 시험 들지 않도록 하려는 사랑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쳐라’ 라는 설교를 하셨지요. 저는 설교 원고를 타이핑해서 드리면서 “이 설교를 부자들이 들으면 혹시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요.”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제 생각입니다. 원로목사님은 사랑의 불덩이 속에서 그 말씀을 증거하시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문장 하나를 봐도 성도 하나하나를 생각하고 쓰신 것이 역력합니다. 설교를 듣는 6만 명의 성도를 한 사람 한 사람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일부만이 아닌 어느 누구에게도 은혜가 되는 설교입니다.



원로목사님은 때로는 완성된 설교 원고를 스무 번 넘게 고치고 또 고치십니다. 고치다 고치다 나중에는 아예 저한테 노트북을 가지고 오라고 하셔서 여섯 시간 동안 구술하면서 타이핑을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설교는 한 시간만 하시더군요. 준비를 그렇게 많이 하시지만 압축하고 압축해서 진국만을 성도들에게 먹이시는겁니다. 너무 심하게 고치시는 날은 ‘왜 이렇게까지 하시지?’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원로목사님은 “내가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지?”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설교 준비를 10분만 해도 원로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나 은혜스럽습니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준비를 하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은혜 못 받는 사람, 상처받는 사람 없도록 기도하면서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물을 던지면 가장 작은 피라미 한 마리까지도 다 건져내겠다는 마음입니다. 저에게 ‘성도들이 교회 올 때 왜 오는 줄 아느냐’고, ‘힘들어서 위로받으려고 온다’고 하십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고 시험에 들게 하면 안 되고, 사랑으로 약을 먹여 보내야 된다. 용기와 힘과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오로지 사랑의 힘으로 영적 양식을 만들어서 공급하시는 겁니다. 제가 들은 그분의 설교는 오직 당신의 삶으로 승화된 것만 하십니다. 자기는 못하면서 남에게 하라는 설교는 위력적일 수 없으니까요.

“이 구절은 지울까요?”
원로목사님의 설교는 오직 성경만 가지고 하시는 설교입니다. 성경으로 뒷받침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상당히 싫어하십니다. 성경에 없는 말, 근거 없는 말은 없습니다. 설교에 관련 성경 구절을 다 동원해서 써놓으십니다. 설교 한 편에 신구약 성경 66권이 다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편의 설교 원고에 써놓으신 성경 구절을 제가 다 찾아보는 데만 6시간이 걸린 적도 있습니다. 때로는 제 머리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들도 적혀 있습니다. 수학으로 치면 ‘A=B’ 같은 등식 차원이 아니라 미분, 적분이 동원되는 것 입니다. 정말 이해가 안 돼서 “이 구절은 이 내용에 연결 안 되는 것 같은데 지울까요?” 하고 여쭤본 적도 자주 있습니다. 그랬더니 잔소리 말고 적어 놓으라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설교를 들으면서야 ‘아! 이 구절이 이런 뜻이었구나.’, ‘이걸 말씀하시는 것이었구나.’ 하면서 왜 그 구절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이런 경험이 여러 번 쌓이니까 이제는 토를 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원고를 준비하셔도 실제 강단에서는 원고에 없는 내용을 더 많이 선포하십니다. 설교가 현장에서 다시 다 바뀌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강단에서 하신 말씀이 진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의 준비된 마음과 기도에 화답하는 살아 있는 현장 설교인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준비한 만큼의 말씀의 무게를 성도들이 받아줄 준비가 안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 자 한 자 성심성의로 준비한 설교이지만 일부만 설교하십니다. 저자의 설교 원고들에는 실제로 설교하신 내용보다 설교하지 않은 내용이 훨씬 더 많습니다. 구속사 시리즈 책을 통해서는 그 내용이 다 공개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참 많이 우십니다
저자는 책을 쓰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참 많이 우십니다. 이분을 상대해 주는 것은 성경뿐이기 때문에 그러시는 게 아닐까 하고 저는 짐작합니다. 사람 중에는 저자의 지극한 성경 사랑을 이해해 주는 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설교할 때도 많이 우시지만 설교 준비를 하면서도 눈물을 많이 흘리십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저도 같이 웁니다. 왜 우시는지 모를 때도 있지만 같이 웁니다. 혼자서 나중에 그 구절을 찾아 읽다가 저도 또 웁니다.
저자는 성경을 읽으면서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다 혼자 피식 웃으시기도 하고 혼자 눈물을 닦기도 하십니다. 제가 TV를 볼 때 나타내는 반응들을 원로목사님은 성경을 읽으면서 보입니다. 원로목사님의 손에서는 늘 성경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책상에는 각종 번역 성경을 항상 곁에 두고 같이 읽으십니다. 오전에 찾아가면 내가 오늘 성경 몇 장 읽었는지 아느냐고, 창세기부터 에스라서까지 2시간 만에 읽었다고, 너는 그렇게 읽을 수 있냐고 하십니다. 하루에 보통 다섯 시간 이상은 성경을 읽으십니다. 성경에서만 위로를 받고 힘을 얻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많이 읽고 그 말씀으로 수없이 설교를 하셨을 텐데도 절대로 성경 말씀 앞에 자신을 높이시지 않습니다.
저자의 책과 설교에는 어려운 표현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치장이 없습니다. 원로목사님은 전문용어 쓰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가 안다고 자기만 아는 표현을 쓰는 것은 교만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초등학교 안 나온 성도도 있는데 다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국어사전을 비롯해 각종 사전들을 책상에 가져다 놓고 늘 풀어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문체는 쉽습니다. 빠른 속도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빨려 들어갑니다. 막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명한 신학자들이 구속사 시리즈를 읽고 ‘그 어려운 얘기를 어쩌면 이렇게 쉽게 썼느냐.’고 감탄합니다. ‘내가 이렇게 설교 잘하는 목사야’ 하고 과시하거나 당신의 수준을 나타내기 위해 쓰는 것이 하나도 없고 모두 독자의 수준에 맞추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좀 유치한 것 같은 예화도 꼭 넣으라고 하십니다. 성도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도들, 독자들이 어떻게 말씀을 깨닫게 할 것인가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설교하실 때 연극이나 모노드라마 같은 행동 설교도 곁들이십니다. 저자는 말씀은 복잡하지 않고 딱 하나라고 하십니다. 단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해 봐야 아무도 못 깨닫는다고, 하나만 깨닫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들어도 가방 싸고 돌아가면 다 잊어버리지만 한 가지는 가슴에 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말씀이 더 많습니다
저자에게는 이미 완성된 설교 원고가 1만 편이 넘습니다. 늘상 저자의 책상에 올라가 있는 설교 원고만도 2백편이 넘습니다. 모두 석 달, 넉 달, 길게는 1년 전부터 준비한 원고들입니다. 일반적인 교훈성 설교가 아니라 한 편 한 편이 논문과 마찬가지인 성경의 진수들입니다. 그리고 그 1만 편의 내용 중에는 강단에서 선포하신 것보다 아직 선포하지 않은 것이 열 배가 넘게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구속사 시리즈 8권 집필이 사실상 끝났고 9권 집필이 시작됐다고 하면 놀랍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미 12권까지 다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작업하신 원고 분량만 해도 책 20권, 30권이 족히 넘으니까요.
이번에 나오는 책의 주제가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이미 써놓은 1만 편의 원고에는 십계명에 대한 내용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뽑아내서 편집만 하면 바로 책 한 권입니다. 제가 ‘십계명’에 대한 작업을 하면서 놀라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한 것은 그동안 저자가 하셨던 모든 설교가 다 십계명이라는 주제로 귀착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이 아시는 대로 원로목사님은 교회 안에 있는 생활공간에서 숙식을 하십니다. 그 앞은 성도들이 매일 새벽예배 때부터 밤늦게까지 오가는 길이니 일거수 일투족이 성도들에게 다 드러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제가 지켜본 원로목사님은 새벽 1시 전에는 잠자리에 드는 일이 없습니다. 책이 나올 때쯤 되면 더 그렇습니다. 늘 숙면을 취하지 못합니다. 한 시간 만에 일어나서 또 원고를 쓰시고, 공사 지시를 위해 멀리 연수원에 계실 때는 전화를 걸어 지시를 합니다. 새벽이면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나 찬물로 샤워를 하고 무조건 서재에 앉으십니다. 저자의 주된 생활공간은 서재입니다. 항상 서재에 앉아 성경을 읽고 글을 쓰고 기도합니다. 잠시 쉬는 것도 계속 그 자리에 앉아서 하실 때가 많습니다. 원로목사님을 만나러 찾아오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 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서재에 들어갔다가 성경에 너무 집중하셔서 한참을 서서 기다리다가 그냥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구속사 시리즈가 빨리 완간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구속사 시리즈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옆에서 실제로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너무나 고된 작업입니다.

“이것은 배워서 아는 히브리어가 아니다”
저와 다른 교역자들이 구속사 시리즈 집필 과정에서 주로 도와드리는 일은 저자가 밝히고자 하는 구속사적 경륜에 대해 뒷받침이 될 만한 외국 주석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들입니다. 저자는 해외나 지방 선교를 가서도 쉴 틈 없이 전화를 해서 지시합니다. “무슨 주석 몇 페이지 몇째 줄에서 몇째 줄까지 다 읽어봐라. 거기에 내가 말하려는 것이 다 있다.” 하는 식의 구체적인 지시입니다. 그리고 다녀오면 바로 지시를 그대로 이행했는지 확인합니다. 새벽이고 한밤이고 가리지 않습니다. 신학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내용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여드리면 둘 다 틀렸고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고 하면서 성경 구절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성경으로 모든 논리를 이기는 것입니다. 성경 앞에서 모든 논쟁이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구속사 시리즈가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 헬라어를 너무나 정확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에도 감탄하는 신학자들이 많지요. 히브리어의 뿌리인 수메르어의 세계적 권위자인 강신택 박사님이 구속사 시리즈를 읽고, 또 원로목사님을 만나 여러 번 얘기를 나눈 뒤 그러시더군요. “원로목사님은 히브리어를 잘 알기 때문에 성경을 잘 해석하시는 게 아니라 성경을 너무나 정확하게 아시기 때문에 히브리어, 헬라어를 정확하게 푸시는 것”이라고요. 학자들이 구속사 시리즈에서 놀라는 것은 히브리어를 많이 써서가 아닙니다.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정확하게 히브리어로 뒷받침을 해서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아, 이런 뜻으로 반전이 되는구나.’ 하는 것을 히브리어 전문가들이 아는 것입니다. 곧 나올 구속사 시리즈 7권의 서평을 부탁하기 위해 한 히브리어, 헬라어 전문가에게 완성된 원고를 드렸습니다. 그분이 책을 읽더니 ‘이것은 배워서 아는 히브리어의 수준이 아니다. 언어를 배워서 안 사람은 이 정도가 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놀라더군요. 저자의 히브리어 성경은 너덜너덜할 정도입니다. 지금도 저자는 히브리어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발음도 놀랄 만큼 정확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저는 가끔 그분이 무섭기도 합니다. 못하는 척 하는데 알고 보면 그게 아니거든요. 영어도 잘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시는데 외국 손님들과 통역하는 목사님을 두고 얘기를 하시다가 중간에 그 얘기가 아니지 않느냐고, 틀렸다고 야단을 치십니다. 통역하는 목사님들도 그래서 무섭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떤 때는 간단한 기기 조작 같은 것도 못하시는 것처럼 누구를 불러서 부탁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다 혼자서 하십니다. 친구가 필요하고, 또 우리와 맞추시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는 순종의 달인이 필요합니다
가끔은 원로목사님의 원고가 제 의견과 달라 제 생각을 말씀 드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 생각이 옳지 않았고 저자가 말씀한 것이 진리였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던 경험이 너무 많습니다.
부족한 제가 어쩌다 원로목사님의 구속사 시리즈 집필과 설교 준비를 위해 심부름하는 역할을 맡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명감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구속사 시리즈의 편집을 맡은 사람이라고 하여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구속사 달인’이 다 됐겠다고 부러워 하기도 합니다. 턱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 유치원생들도 외우는 77대 대제사장 노래도 저는 맨 마지막에야 외웠습니다. 사실 성도들이 질문하면 답변 못할 때도 있고, 실력 면에서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원로목사님은 저를 쓰셔야 하기 때문에 늘 저에게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그렇지만 칭찬에는 무척 인색하십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칭찬하면 고래도 춤을 추고 개도 꼬리를 흔들고 좋아서 주인에게 열심히 충성할 텐데...’ 할 때도 있지만, 그나마 야단을 안 치시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저자 자신도 다른 사람이 그분을 칭찬한다고 해서 가서 고맙다고 인사 전하라! 라고 말씀하지 않고, 습관처럼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상대방이 후한 대접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할 때도 ‘당신이 받을 분복’이라며, 하나님 한 분만을 높이는 생활을 하십니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자주 들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눈이 흐려집니다. 저자가 때로 당장은 칭찬들을 상황이 아님에도 먼저 칭찬해 주는 일도 아주 가끔 있습니다. 또 당장은 야단맞을 일이 아닌데도 엄청나게 야단을 치실 때가 있습니다. 당장은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만일 그때 야단을 맞지 않았다면 한없이 죄를 짓고 교만해서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하고 신앙생활에 나태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칭찬을 기대할 필요가 없는 궁극적인 이유, 또 불필요한 칭찬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너무나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천국 가서 내가 받을 상급이 이 땅에서 받은 칭찬으로 하나둘씩 까먹어서 아무것도 없다면 그보다 더 황당한 일이 있을까요. 오직 성경 중심으로 실천하는 저자가 칭찬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쓰지 않으십니다. 때려 눕혀서라도 낮춰서 쓰십니다.
저자에게서도 저는 그런 마음을 느낍니다. 구속사에는 달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감히 구속사를 통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깨닫든 못 깨닫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하는 내용을 이뤄드릴 수 있도록 순종해 가는 것이 책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는 실력 있는 사람보다는 순종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글_ 박남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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