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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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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맞이했던 안나처럼 기도하리 - 홍순분 전도사
 글쓴이 : 관리자
 


주님 맞이했던 안나처럼 기도하리


‘참평안’은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의 성역(聖役) 60주년과 구속사 시리즈 발간 10주년을 맞아 휘선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특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첫 인터뷰인 박윤식 목사의 사모 민갑식 여사 (2017년 1월호 게재), 두 번째인 정원식 장로(전 국무총리)와 부인 임학영 권사(2017년 3월호 게재)에 이어 세 번째 인터뷰는 구속사 운동의 산 증인 홍순분 전도사를 만났다. 5월 14일(주일) 교회 내 ‘안나 하우스’ 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따로 질문이 필요치 않을 정도였다. 홍 전도사의 격정적 회고가 2시간 넘게 숨 가쁘게 이어졌다. 홍 전도사 인터뷰를 6월호에 이어서 두번째로 싣는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 선교

박윤식 목사님께서 그러시더라고. “중국이 복음의 마지막 시장”이라고. 가장 인구가 많기 때문에 그런 거지. 노량진에 교회가 있던 시절부터 박 목사님이 중국 선교에 많이 투자를 하셨어. 그때 중국 동포들이 우리나라로 많이 넘어오기 시작한 때야. 중국에서 약을 가져와서 팔고 그럴 때인데 목사님이 가짜인 줄 알면서도 약을 다 사주셨어. 데려다 먹이고 키우시면서 중국인들을 많이 전도했지. 한 목사님한테 중국어를 배우게 하려고 중국 식당에 취직도 시키실 정도였어. 그렇게 한 20년을 중국 교회를 위해서 미리 투자하신 것을 내가 안다고. 나도 처음엔 갈 나라 많은데 그렇게 후진국에 뭐하러 가나 생각했었지. 그런데 이렇게 문이 열린 거야. 낡은 열차를 타고 이틀을 자면서 심천에 가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됐지. 중국에서 무용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그 언니가 교회를 20개 세웠다는 사람이었어. 마음 속에 이 사람 하나 잡으면 되겠구나 싶었지. 결국 그 사람을 통해서 선교사 여러 명을 전도하게 됐어. 그 분들이 우리 교회 와서 숙식을 하면서 말씀을 배웠지. 박 목사님께서 기분 좋으셔서 “야, 나도 엄청 센 사람인데 홍 전도사는 못 이기겠어. 이렇게 다 데리고 왔잖아?” 하시더라고. 이렇게 칭찬받은 때도 있지만 야단 맞은 적이 훨씬 더 많지. 박 목사님이 “전 세계 곳곳에 우리 교인들이 이민 가고 두세 사람씩 모여서 교회를 세웠는데 인도네시아와 중국만 우리 교인이 없는 데서 교회가 섰다.”고 하셨어.




안나와 안나하우스

1990년대 중반 박윤식 목사님이 해외 선교 하실 때 나도 미국 여러 도시를 다니며 성경공부를 가르쳤지. 그런데 갑자기 전화를 하셨어. “홍 전도사 본명 대신 안나라는 이름을 쓰라”는거야. 그래서 안나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하고 다녔지. 그런데 귀국하고 나서는 잊어버리고 말았어. 우리 교인들이 다 내 본명을 부르니까 안나라는 이름을 쓰게 되나. 그렇지만 내 기도는 늘 안나와 시므온처럼 교회를 지키고, 끝장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지. 안나가 예수님 만났을 때 과부 된 지 84년이었으니까 뭐 비슷하잖아. 안나처럼 교인들을 잘 살피고 지키고, 교회를 지켜야 하니까 밤이 되면 내가 성전마다 불 끄러 돌아다닌다고.


그런데 내가 올해 77세야. 대제사장이 77대까지 내려갔으니까 내가 올해 대제사장 나이지. 그런데 올해 하나님이 마지막 선물로 나한테 이 ‘안나 하우스’(주: 홍순분 전도사가 강의 및 연구실로 쓰는 교회 부속건물)를 주신 거야. 해외에서,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나한테 성경 공부를 하지. 오래 전부터 이게 내 꿈이었어. 아버지 뜻에 맞는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3월 12일에 개관예배를 드렸어. 개관 예배를 드리려면 이름이 있어야 하니까 이승현 담임목사님한테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목사님이 “안나라고 하세요. 안나가 예수님을 맞이했으니까 재림 예수님 맞이하셔야죠.” 하는 거야. 깜짝 놀랐지. 이승현 목사님이 1990년대에 박 목사님이 나한테 안나라는 이름을 주셨던 걸 알 리가 없거든. ‘어머나, 기도도 안 했는데 아버지가 역사하셨네’ 했지. 안나 하우스에 들어온 뒤 일이 많아졌어. 장로부터 남선교회, 여선교회, 신학생까지 와서 성경공부하겠다는 사람이 많아. 공부만 하자고 하면 내가 막 힘이 나는 거야.


박윤식 목사님을 떠나보낸 뒤

2014년 12월 17일 박윤식 목사님 별세하신 뒤 한 달은 멍해서 있었지. 의욕도 없고 살 맛도 없었어. ‘멘붕’에 빠져 있던 거지, 그러다가 다시 힘을 냈어. “아휴, 죽을 때 죽더라도 성경에 기록된 이 변화를 믿어야지” 싶더라고. 변화를 믿고 일을 시작하니까 그때부터 아버지가 역사하셨어. 그래서 박 목사님 가신 뒤에 내가 진짜 잘 믿어. 무슨 일만 있으면 아버지를 찾고 구한다고. 이제는 아버지께 그냥 ‘보고’만 할 뿐이야. ‘이렇게 해 달라’가 없어. 얼마 전 큰 수술을 했어. “오래 살게 고쳐 주세요” 하고 기도하지 않고 “오늘 데려가셔도 감사하고 내일 데려가셔도 감사하고, 살면 사는 동안 일하라고 살려 두시는 거고, 일 못하게 되면 아버지께 가는거고..” 하고 기도했어. 이걸 떼어 놓으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욕심이 없어지고 바라는게 없어지고…


“아버지, 나 이제 아버지 잘 믿는 것 아시죠? 제가 이제 뭐 달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냥 제 상황이 이러니까 보고드리러 온 거예요. 저는 뭐 달랄 게 없어요. 아버지가 너무 잘 주고 계시잖아요.” 하고 기도해. 나는 사람은 안 믿어.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롬 3:4) 하셨잖아. 사람을 안 믿으니까 아버지가 잘 믿어져.


요즘 내 기도는 민갑식 사모님(박윤식 목사님 사모), 여운초 목사님, 임학영 권사님은 100세까지 사시도록 기도해. 왜? 그냥 앉아만 계셔도 은혜스러운 분들이야. 우리 교회의 얼굴이고. 그분들이 없으면 우리는 앙꼬 없는 찐빵이야. 기도하러 가면 40분 내지 한 시간 동안 무릎 꿇고 우리 300여 교회 다 돌아가면서 좋은 얘기고 나쁜 얘기고 하고, 다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나라 위해서 기도하고. 그런데 다 내려놓고 근심이 없어서 그런지 그전처럼 막 간절한 건 없어. 다 잘 주고 계시니까 뭘 또 달래. 뭘 바라는 게 없고 달라고 할 게 없어.




대담/글_ 호준석 참평안 편집팀장 | 사진_ 하수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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