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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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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 “그 분이 우리를 도우셨다”
 글쓴이 : 관리자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 그 분이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전후 세대에게 ‘백선엽’이라는 이름은 그저 ‘옛날 군인’ 정도의 이미지였다. 그의 이름이 다시 조명된 것은 6·25 전쟁 60주년이었던 지난해 중앙일보에 14개월 동안 연재된 회고록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자도 눈에 띌 때마다 중앙일보에 나온 그 회고록을 읽었다. 그리고 연재가 끝난 뒤 나온 단행본 1, 2권을 하룻밤 사이에 모두 읽었다. 회고록이란 늘상 자기 미화와 합리화, 윤색(潤色)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독자들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다. 독자는 읽으면서 진실성을 느끼고 진실성을 가려낸다.
회고록 구술과 정리를 위해 백선엽 장군을 120번 만났다는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는 “그는 명장(名將)”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역사를 들출 때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몇몇 있다. 장수로서는 이순신 장군을 가장 만나고 싶다.(중략) 나는 역사 속에서 느끼는 그런 갈증을 요즘 조금씩 풀어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어떤 명장이었을까. 한반도가 낳은 명장은 도대체 어떤 풍모일까라는 궁금증을 백 장군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풀어가고 있는 중이다.”
1920년생. 우리 나이로 92세인 대한민국 예비역 대장 백선엽 장군을 2011년 5월 2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났다.



6·25 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은 30대 초반이었습니다. 회고록을 보면서 그 지혜와 용기, 담력이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했습니다.
참 죄송합니다. 저는 잘난 사람은 못 됩니다. 하나의 평범한 사람인데 그 시대에 봉착하니까 그런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뭐 독특한 건 없습니다. 그저 자기 나라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야 했고, 많은 장병들이 있으니 솔선해서 해나가야 했고, 그래서 봉사를 한 것입니다.

6·25 전쟁 전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남로당원들을 색출하는 숙군(肅軍)을 하실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을 구명(救命)해 주셨죠. 이유가 뭐냐고 나중에 누가 물으니 “별 거 없어. 내 이름에 착할 선(善)자가 들어있지 않나.”하고 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쟁을 치른 군인인데 ‘착함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일생을 살아오셨습니까.
어렸을 때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일제 시대라는 게 누구나 빈곤할 때이지요. 그때 태어나서 학교를 다녔고,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어려운 사람, 불쌍한 사람을 어떻게든 도와 주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게 어디서부터 비롯된 겁니까. 부모님이 가르쳐 주신 겁니까.
부모님이 가르쳐 준 것보다도 자연적으로 그렇게 됐어요.

그러나 장군께서는 전쟁을 치른 분입니다. 전쟁은 극단적인 양면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참혹하지요. 살상을 해야 되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했지만 전쟁을 치러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셨었는데요.
교전하고 그런 것은 뭐 어찌할 도리가 없었죠. 그러나 무고한 일반 백성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죠.

많은 부하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지키는 것을 지켜보시면서 명령을 내려야 하고, 수많은 선택과 결단의 순간들이었을 텐데 어떤 심경이셨습니까.
지휘관에게는 어떤 덕목이 있어야 합니다. 리더는 우선 솔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하와 생사를 같이 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부대를 이끌고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양을 해야 하고, 부하를 지도해야 하고, 부하들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그러면서 자기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노력을 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군대는 세계적 수준의 강군(强軍)"


회고록에 보니까 “병(兵)은 기본적으로 흉(凶)이다. 쥘 때는 제대로 쥐고 놓을 때는 제대로 놔야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서 장군께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군이 제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국민들의 안보의식은 어떻다고 보시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우리 국군이 훌륭하다고 봅니다. 6·25 때는 군인의 절반 이상이 글을 몰라서 자기 집에 편지를 못썼습니다. 지금 우리 국군은 60만 대군인데 모두 고졸 이상입니다. 세계에서도 드문 고학력의 군대입니다. 아주 자랑할 만한 군대입니다. 미군 부대에 배치되는 카투사 장병들은 미군들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는 성과를 내고 있어요. 우리 국군은 세계에도 자랑할 만한 군대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평화유지군(PKO)도 파병하고 있지요. 우리 군인들이 국위를 선양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은 세계적인 수준의 군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력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정신력은 약해진 것 아닐까요.
아닙니다. 난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옛날보다도 더 강합니다. 장교들도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육, 해, 공군사관학교, ROTC, 육군 3사관학교, 그런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군을 이끌고 있거든요.

저도 20년 전에 사병으로 전방에서 근무했습니다만 그 당시 저를 돌이켜봐도 6·25때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지켰던 선열들에 비하면 나약하고 국가의식도 부족했던 것 같거든요.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좀 부족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보통이 아니예요. 교육도 잘 받았고 국가의식도 아주 투철해요.

최근 김관진 국방장관이 “우리 군 장교들이 정신력은 훌륭하지만 전술 수행력은 좀 떨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그건 아마 국방부 장관이니까 겸양한 자세로 그렇게 말씀한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훌륭합니다.

우리 국민들의 안보 의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60년 가까이 전쟁억지력에 의해서 휴전상태가 계속됐죠. 다행히 그동안 비교적 평온했지만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의해서 북한의 도발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국민들의 의식이 많이 깨인 것 같습니다.

6·25 전쟁 때 장군께서는 미군과 중공군의 실체를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지켜보셨지요. 60년이 지났지만 미국과 중국은 세계의 G2로 여전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6·25 때 미군이 10개 사단을 보냈습니다. 유엔군 전체가 12개 사단이었는데 미군이 10개 사단을 보낸겁니다. 병력이 50만명, 교체돼서 왔다 간 연인원으로 하면 150만명 가량이 한국을 도운 것입니다. 국군은 개전 초기 보잘것없는 군대였지만 미군이 우리를 도와 지도하면서 점점 강해졌습니다. 미군 군사고문단을 통해 기술을 배웠고 미군 전투부대를 통해 군대의 결의를 배웠습니다. 군비의 80%를 미국이 지원했고요.
그 당시 소총 한 자루도 못 만들던 우리가 지금은 군함도 만들고 훈련기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엔의 깃발을 들고 우리 국토를 지켰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16개 나라가 우리를 도운 것입니다. 한 치의 땅도 거저 얻은 것이 아닙니다. 휴전 뒤에도 1954년 우리가 미국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것이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토대가 됐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해양국가로서 미국, 일본과 튼튼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러시아와도 평화적으로 좋은 외교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이후 중국의 태도를 보면서 중국의 실체를 달리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하고 적대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평화적으로 인접국가로서 계속해서 잘 사귀어 나가야죠.

우리 사회에 남남 갈등이 여전합니다.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세력도 존재합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리 민족은 일단 유사시가 되면 아주 단결하는 민족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 10월 하순에 평양에서 ‘우리는 뭉치면 살고 분열하면 우리는 다 죽는다’고 연설했어요. 공산당이 노리는 것이 남남 갈등입니다. 국민을 분열시켜서 쪼개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용당하지 말아야지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지키면서 국민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과 공헌을 하고 정부는 부국강병(富國强兵),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자세로 나아가면 됩니다. 6·25 때도 김일성이 박헌영을 데리고 모스크바에 가서 “우리가 남침만 하면 남한 국민들이 다 들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런 국민이 아닙니다. 위대한 국민입니다. 나는 우리 국민을 믿습니다. 우리 국민의 애국심이 단단합니다.

6·25 전쟁이 올해 61주년입니다. 6·25 전쟁이 한민족의 역사에 어떤 의미, 어떤 가치를 가진다고 보십니까.
6·25 전쟁은 우리 민족사에서 최대 전쟁입니다. 그리고 국제 전쟁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더욱 튼튼해지고, 국민이 더 단결해서 국가 발전에 매진해야죠. 지금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지금 세계 10위의 무역국이 됐어요. 상상도 못하던 겁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나라, 라면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던 민족이 이렇게 된 것을 보면 대단하거든요.



회고록에 보니 백장군 어머님께서 아들을 위해 늘 기도하셨다는 내용이 나오던데 장군께서도 신앙인입니까.
나는 기독교인이에요. 아주 충실한 신도는 못되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온 북한군을 막아낸 결정적인 전투인 다부동 전투 때 “이번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면 앞으로 충실하게, 열심히 믿겠다고 간절한 기도를 했다”고 쓰셨더군요.
네,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땐 하도 급해서 한 번만이라도 도와달라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됐어요.

그때까지는 신앙인은 아니셨던 모양이죠
아니, 그때도 교회를 다녔어요. 그 후에 제가 우리 군 초창기에 선교활동도 많이 했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게 확실하게 믿어지십니까?
예, 믿습니다.

하나님이 6·25 전쟁 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6·25전쟁 때 우릴 도왔어요.

어떤 순간에 그것이 느껴졌습니까?
낙동강에서도 그렇고, 이북에 갔을 때도 그렇고

이북에 갔을 때라는 건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북 압록강까지 진격해 올라갔잖아요? 그 때도 하나님이 도우셔서 많은 피난민들이 그 당시에 그래도 남쪽으로 이렇게 천만명이나 내려오지 않았어요?

흥남에서요.
네, 그것도 하나님이 돕지 않았으면 그렇게 못합니다.

그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이건 하나님이 도와 주신거구나’ 하고.
그럼요,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금 기도를 많이 못하고 교회 활동도 나이가 많아서 못하지만 하나님을 믿어요.

하나님이 이 나라에 역사하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을...
(다시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주인공이죠. 하나님이 돕지 않았으면 이 나라가 이정도 안 됩니다. 우리나라가 자유 민주주의 아닙니까.
편안히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 은총 아니고 무엇입니까

북한군이 개전 초기에 서울에서 이상하게도 사흘이나 머물며 패퇴하던 국군의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어줬고, 또 유엔이 전무후무하게 신속히 참전 결의를 했고, 38선 위로 북진할 때 유엔이 신속하게 결의하고, 이런 중요한 순간들을 보면서 ‘참 상식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게 하나님이 도와 주신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건 옳은 말이에요. 하나님이 돕지 않았으면 이 나라가 이렇게 안 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하나님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데 또 우리 자신이 사랑을 받게끔 노력을 해야죠.

어떻게 해야 사랑을 받겠습니까?
선량한 국민으로서 이 나라를 위해서 희생을 하고 공헌을 해야죠.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국민으로서 할 일을 다해야 한다.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공헌이 있어야겠다 이거죠. 나라에 감사하고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젊은 세대들, 특히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 2세들도 이 책을 볼 겁니다.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대한민국의 국민 된 것을 아주 흔쾌히 생각하시고 더욱 국위를 선양하는 데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국군 1사단이 평양으로 진격할 때 미 공군 연락장교 월리엄 매듀스 대위(후일 미 공군 참모차장 역임)와 작전을 논의하는 백선엽 1사단장

노장군(老將軍)은 92세 나이가 무색하게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 내내 꼿꼿하고 한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러나 다변(多辯)과는 거리가 멀었고 과시나 수사(修辭)도 없었다. 장군의 집무실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1952년 한국군 수도사단을 시찰하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요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도있고요. 장군께서는 직접 이승만 대통령을 겪어보신 분 아닙니까.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위대한 대통령이죠. 건국을 했고 반공을 해서 대한민국의 기초를 만든 분이죠. 또 6·25 전쟁을 그래도 그 정도 승리를 하게 한 위대한 공이 있죠.

장군께서는 공산군과 싸웠고 빨치산을 토벌했습니다. 공산주의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겪어본 결과 공산당과는 타협이 안됩니다. 그 사람들은 항상 선전을 하고 남을 기만하거든요. 오늘날의 북한 정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면 좋지만 북한은 지금 핵 개발을 하고 있고 거기에 120만의 재래 군비를 가지고 있고, 미사일 가지고 협박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생각이 변치 않았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렇죠. 그들의 공산당 규약이 아직도 변치 않았어요. 더 이상은 북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싫습니다.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회고록 집필을 도운 중앙일보 기자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했었는데 백선엽 장군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의 면모를 봤다”고 했더군요.
저는 그런 위대한 분이 못됩니다. 하나의 졸자(卒者)라고 생각해 주세요.



17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대통령부터 경찰서 형사계의 잡범들까지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백선엽 장군과의 만남은 그 가운데 가장 가슴 설레는 인터뷰 가운데 하나였다. 인터뷰를 주선한 본 교회 이웅희 장로(전쟁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예비역 육군준장)께 감사드린다.

글_호준석 기자(YTN 앵커)
기록_권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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