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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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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도 믿고 간절히 부르짖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
 글쓴이 : 관리자
 

오한범 성도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 하다 느껴지는 2016년, 세계 질서와 평화를 뒤흔드는 수많은 사건들이 연속되는 가운데 대한민국 역시 대통령 하야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전무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현 시점... 어쩌면 성경을 통해 예언되어온 ‘대환난’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마지막 때 구속사 말씀이 울려 퍼지고 있는 평강제일교회 본 교회에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영적 문둥병을 앓듯이 모든 말세지말의 징조들을 매일같이 체험하면서도 지극히 무감각하게 위기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예배, 기도, 찬양생활을 점점 더 차선으로 미루어가며 지극히 세속적인 일들에만 열심을 쏟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저는 죽음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나귀가 입을 열어 말하기전까지 무뎌진 신앙적 감각으로 전혀 깨닫지 못하였던 발람처럼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길로 그럴싸한 핑계와 자기 합리화를 하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근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와 역사 속에서 죽음의 길로 향하던 저의 신앙의 발걸음을 극적으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부족한 제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국 문을 활짝 여는 참 회개와 일생일대의 대각성을 이룰 수 있게 이 글을 통하여 성도님들께 중보기도를 부탁드리고, 또한 혹시라도 저와 비슷한 처지에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부족하지만 제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귀한 참평안지에 처음으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맞이한 저의 대각성의 기회는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선물로 주신 아들들을 통해서 찾아 왔습니다. 저의 아들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잠시 제가 결혼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 가보면, 저는 2000년 11월 4일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원로목사님의 주례 말씀을 통해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주례 말씀 중 ‘믿음의 삼겹줄’의 축복이 있었는데 ① 하나님 ② 양가 부모님 그리고 ③ 부부가 믿음 안에서 삽겹줄을 이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은 ① 신앙적 ‘무림의 고수’ 모양의 양가 부모님 ② 땅 위에 살짝 떠있는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듯) 아내 ‘홀리 윤’ ③ 활짝 웃으시며 감싸 안으시는 아버지 하나님 ④ 그리고 그 사이에 곁눈질 하며 끼어 들어가 보려는 ‘찌질한 나’였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저의 신앙심을 잘 이끌어주고 채워줄 삽겹줄이라는 희망 속에 ‘아멘’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이 이제 어느덧 만 16년이 훌쩍 지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 상상치 못한 크고 또 수많은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시는 양가 부모님들과 늘 열심을 다하여 신앙생활을 하려는 아내 덕분에 저 역시 조금씩 신앙심을 키워가며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수요, 목요예배와 각종 기관 모임과 봉사활동에 힘써 동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셉선교회에서 찬양팀 활동을 하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자리를 갈망하고 중시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수년간 차곡차곡 쌓아왔던 신앙심과 예배에 대한 뜨거움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이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급이 올라가게 되자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중에 참석하던 예배를 몇 차례 빠졌었는데 이것이 그토록 무서운 신앙 몰락의 계기가 되었을 줄은 그때는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주중에 회사일이 바쁘고 퇴근 후 업무의 연장선으로 약속들이 잡히다 보니 수, 목 예배 중 하나만 드리는 것으로 합리화 하게 되다 아예 주중 예배는 바쁜 사회생활 속 감당하기 ‘불가능한’ 예배 일정으로 마음속에 못을 박게 되었습니다. 주중 예배를 드리지 않게 되자 각종 기관 활동과 봉사로 늘 교회에서 보내던 토요일이 어느 순간부터 교회와 상관없는 ‘주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보내던 주말이 함락되자 주일 역시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경우 예배드리는 장소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하였는데 모리아를 한숨에 뛰어오를 ‘건장한 청춘(?)’을 만끽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덜 걸어 올라가도 되는 예배장소를 찾아 여러 차례 장소를 옮기다 결국 가장 ‘편하다’ 느껴진 교회 내 식당에서 ‘비봉사자’의 신분으로 예배를 드리는 단계까지 내려가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바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턱걸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식당봉사나 몸이 불편하셔서 등 확실한 명분과 이유를 가지고 식당에서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려 불성실한 이유로 그 성스러운 장소를 턱걸이 예배 터로 만들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예배 장소가 흐트러지자 예배에 대한 애착심도 점점 떨어지게 되어 결국은 2부 예배만 간신히 드리는 단계까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횟수가 줄어들자 신앙심의 기본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곧 마음에 어두움이 들어오더니 결국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자체를 ‘경멸’하는 무서운 단계까지 하락하게 된다는 원치 않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모태신앙인으로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통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쌓아왔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세상의 잡다한 생각과 근심으로 급속도로 묻혀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아 이토록 망가지는 저의 모습에 안타깝게 권면하여 주신 양가 부모님의 말씀을 오히려 듣기 싫어하고, 매일같이 남편이 돌이키기를 기도하며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말씀을 보내주는 아내를 강퍅한 마음으로 귀찮게 여기게 만든 마음속의 어두움... 이 어두움은 저 하나만을 망가뜨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쏘는 것을 저의 가장 사랑하는 가 족들에게 겨냥하게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겨냥하게 된 대상은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 하는 아내였는데 열심을 다하는 아내를 도와주기 보다는 “제발 건강을 생각해서 좀 살살해라.”, “아이들 공부를 그렇게 좀 챙겨라.” 등의 잔소리를 하거나 “네가 교회 일을 좀 더 내려놓으면 더 많은 평강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일이 돌아갈 것이다.”라는 얼핏 들으면 그럴싸한, 하지만 사실상 말도 안 되는 망언들로 믿음 안에서 열심을 다하려는 아내의 다리를 걸고 넘어졌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의 은혜 가운데 매번 걸어 넘기려던 나의 다리를 무참히 그리고 우직하게 짓밟고 묵묵히 아내는 전진였습니다.


아내 태클에 실패한 마음속 어두움은 나아가서 아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나쁜 짓을 할 리가 절대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아이들에게 마음속 어두움이 다가가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는 부모의 신앙적 모습이 이를 바라보 는 자식들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은당연한 이치입니다.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라는 옛말이 있듯 자녀들 앞에서의 언행과 행실이 무척이나 중요하듯 부모의 신앙 자세는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신앙적 지표가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21세기 최첨단 기술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현 시점에서는 조금만 신경 쓰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데 쓰임 받는 도구들이 될 수 있는 컴퓨터, 핸드폰이 한 순간에 우상숭배의 제단으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저의 아내가 무선 키보드를 핸드폰에 연결하여 열심히 설교 말씀을 녹취하며 예배를 드릴 때, 저는 핸드폰에 깔려 있는 성경 어플을 띄우거나 말씀 녹취를 한답시고 노트 어플을 띄워 놓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일쑤였는데 참 이상하게도 꼭 예배시간만 되면 집중적으로 카톡이 날아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업무 관련된 거라 잠시 확인해 볼까?’, ‘오래간만에 온 연락이라 확인해야겠군.’, ‘중요한 분이 보낸 거라 바로 확인!’ 등 그때마다의 합리화를 통해 예배 도중에 카톡에 접속하게 되고, 그 순간 몸은 예배의 장소에 있지만 세속적인 카톡의 세계로 유체이탈 하게 되어 심한 경우 내친김에 뉴스, 주식 등 무한재미의 인터넷 바다로 순간이동 하게 되는데... 열심히 핸드폰으로 설교 녹취하는 엄마와 카톡하며 각종 오락 행위를 예배 도중 ‘멀티 플레이’ 하는 아빠 사이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안타깝고 후회가 됩니다. 예배에 집중하지 않는 아빠의 모습이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우상숭배의 제단을 쌓고 있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왜 그때는 깨닫지 못 했을까요...


‘오직 예수’ 문패와 십자가를 걸어 놓고 구속사 시리즈 책들을 비치하여 제법 거룩한 모습을 갖추고 틈틈이 구역예배, 가정예배를 드려온 아내 덕분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 집… 하지만 이곳에서도 너무나도 당연한 듯 버젓이 우상숭배의 단들이 공존하고 있고 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이들 앞에서 각종 우상숭배 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TV, 컴퓨터, 태블릿 PC, 핸드폰 등의 각종 기기들을 통해 ‘백해무익’한 게임, 영화, 드라마, 웹툰 등을 ‘삶의 행복과 기쁨’ 삼아 황금같이 소중한 수많은 시간들을 우상숭배 하듯 바쳐가는 삶을 매일같이 반복하여 왔던 저는 이러한 행위를 저에서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왔었기에 어느덧 게임과 게임 동영상 등의 우상숭배가 너무나 익숙하여진 아이들은 예배 말씀을 정리하고 있는 아내에게 게임을 하게 컴퓨터를 내 놓으라고 대드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지하철이나 차를 탔을 때나 식당에서 음식 나오기를 기다릴 때와 같이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어른들은 쉽게 핸드폰을 건네주고 아이들은 그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게임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어른들 역시 구속사 말씀을 상고 하기에도 모자란 하루 24시간을 인터넷을 서핑하며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검색하여 충동구매를 하거나 울리는 꽹과리 소리처럼 시끄럽기만 한 세상 소식과 가십에 귀 기울이며 수많은 시간들을 매일 같이 허비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목 놓아 권면하시고 “육천년아 더 못 간다!” 피 터지게 외치셨던 원로목사님의 모습을 회상할 때 참으로 하염없는 후회의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속사 시리즈를 통해 남과 북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의 행적에서 공통적으로 지적이 된 우상숭배...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들로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나의 삶 속 구석구석에 이미 수많은 우상숭배의 제단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제단 앞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믿음의 자녀’들 앞에서 보여 결국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믿음의 자녀들을 우상숭배의 제단 앞으로 이끌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일전에 성경을 읽다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우상숭배자들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미친놈들이 사랑하는 자식을 불로 태워 우상에게 바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가정, 그리고 교회에서 너무나도 쉽게 이러한 무서운 우상숭배를 반복하고 있었음을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과 함께 뒤늦게 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불구덩이 속으로 아이들을 집어던진 그 ‘미친놈’이 나였구나 하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되면서도 그토록 지혜로웠던 솔로몬과 그렇게 여러 차례 징벌받은 남, 북 이스라엘 왕들도 삶 속에서의 우상숭배와 그 제단들을 완전히 없애지 못한 것을 볼 때 이 부분은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강권적인 구속의 역사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즈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죽음의 길로 걷고 있던 저와 이로 인해 고통받던 저의 가족들을 생각하시어 지난 10월 24일 막내아들 민식이의 교통사고를 통하여 온 가족이 하나 되어 하나님께 믿고 부르짖을 수 있는 대각성의 기회를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민식이의 사고는 부족한 저 혼자만의 회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었다고 사료되는데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본 교회를 시작으로 진행된 ‘나라와 가정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특별 새벽예배’와 시기가 겹치게 되어 “믿고 간절히 부르짖기만 하면”이라는 너무나도 명쾌하고 시기적절한 단비와 같은 말씀으로 슬프거나 괴로울 틈도 없이 참된 ‘대각성’의 기회를 도리어 얻은 기쁨과 감사 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게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또한 하나님께서는 민식이의 사고를 통해 앞에서 말씀드렸던 잃어버렸던 예배를 부족한 제 삶 속에 다시금 회복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고 당일 호준석 장로님께서 저녁 늦은 시간 병원에 방문해 주셨는데 위경에 처해 있을 때 위로가 되고 평안을 가져다주는 것은 말씀밖에 없더라는 개인적인 간증을 해주시며 “마음을 쏟는 기도는 생명과 축복의 통로”라는 2006년 11월 26일 주일 2부 설교 말씀 파일을 보내 주셨습니다. 민식이가 사고를 당한 첫날이었기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 수 있었지만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민식이와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고 계시는 평강의 6만 성도님들의 기도가 제 마음 깊숙이 느껴지기 시작하며 마치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무거웠던 마음이 싹없어지고, 지난 수년간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민식이가 병원에 입원한 첫 2주동안 병원에 있으며 말씀 파일들을 듣고, 그간 읽지 못한 구속사 시리즈와 성경책도 집중하여 읽게 되었고, 병원에 있느라 주일 예배들과 수요, 목요예배도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다시 드리게 되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집중이 잘되어 그간 세속적인 즐거움을 위해 우상의 제단이 되었던 핸드폰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감당하는 도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또 감사드릴 것은 동생의 사고를 직접 목격한 형 경민이가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의 은혜로 사고 다음날부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극히 정상적으로 학교와 학원 생활을 밝게 하고 있고, 동생의 사고를 정확히 인지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사고 자체에서 오는 트라우마나 걱정, 근심, 슬픔이 전혀 없는 기적적인 심적 치유의 역사가 완벽하게, 그리고 ‘즉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부족한 아빠를 통해 쌓아왔던 우상숭배의 단을 은혜 가운데 다시 드리기 시작한 가정예배를 통해 경민이 스스로가 허물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경민이가 그토록 ‘사랑하였던’ 컴퓨터 게임과 핸드폰 게임을 민식이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하더니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금단현상으로 무척 괴로워하였지만 은혜 가운데 잘 이겨내더니 이제는 함께 게임을 하던 친구들과 게임 이외의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바라는 것은 민식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두 형제가 우상숭배의 제단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기에 부족한 저부터 본을 보이며 기도로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삶속에서 예배를 잃고 우상숭배로 자신과 가족들을 죽음 앞으로 몰고갔던 저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부족한 저를 기억하시고 저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부족한 제가 다시금 믿고 간절히 부르짖게 이끄셨음을 부족한 이 글을 통해 고백하고 간증합니다. 부디 마음속 어두움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형제자매님들이 행여나 있으시거든 절대 포기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간구 드리며, 고래 뱃속처럼 칠흑과 같은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믿고 간절히 부르짖는’ 믿음의 불씨는 하나님 아버지의 강한 손으로 절대 꺼지지 않게 지켜주시고 계시기에 반드시 다시 일어날 줄로 믿고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민식이를 간호한다고 붙어 있었던 지난 기간 중에 영적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었던 제가 오히려 더 치료받고 회복되는 것 같아 민식이에게 너무나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교차하며 눈물이 앞서지만 반드시 이 못난 아빠가 채워야 할 기도의 분량, 회개의 분량, 말씀 실천의 분량을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그리고 최대한 조속히 달성하여 이미 허락하신 민식이의 쾌차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평강의 성도님들의 지속적인 기도를 감히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원로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아픈 자녀 머리 위에 안수하며 읽어 주라 말씀하신 시편 107편 말씀을 부족한 제가 민식이가 사고를 당한 후 매일 같이 안수하며 읽어주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처음 접하는 말씀처럼 새롭고 믿음을 더해 주신다 생각되 어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107:28-29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 삼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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