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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목사님의 성경 지식과 이해는 세상 누구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 정원식 전 국무총리 (2)
 글쓴이 : 관리자
 
[이어서]

박윤식 목사님과는 어떤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나요.

교회 얘기를 많이 했죠. 나는 교회가 사회를 위해서 좀 더 공헌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꼭 교인들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고 사회 전체에 본이 될 만한 일을 해서 교회를 우러러보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박윤식 목사님 반응은요?

듣고 찬성을 많이 했죠. 그러나 목사님의 관심은 많은 성도들이 교회로 나오도록 하는 데 더 가 있었던 것 같아요.


박윤식 목사님께서 장로님에게 문교부 장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1988년에 느닷없이 저에게 문교부 장관이 될거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해 마지막 달에 가서 내가 문교부 장관이 되었죠.




그 말씀 들으셨을 때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믿거나 말거나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했죠. 장관 된다고 하니까 좋은 소식 아니겠어요. 사실 나는 평생 교수로 있을 생각이었거든요. 교육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교육학과에 들어갔고 다른 생각을 한 일이 없어요. 강의에 열의를 다했고. 한 시간 강의에 하루 종일 준비한적도 있었으니까. 강의를 듣는 학생들 눈만 쳐다봐도 신이 나고, 그래서 강의로 평생을 보낼 걸로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12월에 정말 갑자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나는 강의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것 생각 없습니다.”하고 반(半) 거절 비슷하게 했는데 다음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전화하셨더라고요. 그래서 1988년 12월에 문교부 장관이 되었지요. 교육을 관장하는 장관이니까 교육계를 떠나는 건 아니지 않느냐 하고 스스로 납득시켰죠. 장관으로 2년 남짓 있었어요.(주: 1988년 12월-1990년 12월 재임) 그 뒤 박윤식 목사님에게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장관이 됐는데, 열심히 하라고 그래서 열심히 장관 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얘기했지요.


임학영 권사 : 1988년이었는데 목사님께서 윤성태 장로님, 김경한 장로님 등 너덧 명을 모아놓고 이 사람을 오라고 하셔서 저녁을 같이 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셨어요. “앞으로 문교부 장관이 될 테니까 장로님들이 잘 도와드리세요.”. 두 분만 계실 때 하신 게 아니라 장로님들을 모아 놓고 그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너무 기쁘고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축복하시는구나’ 하고 너무 감사해 어쩔줄 모르겠더라고요. 하늘을 다 얻은 것 같았죠.


그 뒤 국무총리로 임명될 때도 박윤식 목사님이 미리 말씀하셨다면서요?

임학영 권사 : 이분이 장관에서 물러난 뒤 대통령 특사로 아프리카에 가게 됐어요. 출발하기 전에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죠. “아프리카에 다녀오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이번에 갔다 오면 총리 돼야지요.” 하시더라고요. 그러시니까 이 양반이 “제가 무슨 총리될 자격 있나요?” 그랬어요. 저는 이 양반에게 “믿는 마음으로 ‘아멘’하지 왜 그러세요?” 했죠. 그런데 아프리카로 출국한 뒤에 대통령 비서실에서 밤에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 갑자기 귀국하라는 거예요. “총리가 되나 봅니다.” 하면서 끊더라고요. 그리고는 어떻게 알았는지 조선일보, 동아일보 기자들이 다 찾아와서는 ‘총리가 되실 것 같은데 연락 받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못 받았다고 잡아뗐더니 기자들이 우리 집에서 기다리느라 밤을 새다시피 했어요. (주 :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1991년 5월 24일 정원식 장로를 총리에 지명했다. 정원식 장로는 5월 7일 유엔 가입 방안을 설명하기 위해 대통령 특사로 아프리카 순방을 시작했고 23일 총리 지명 연락을 받은 뒤 중도 귀국했다)


장로님은 ‘어떻게 목사님이 미리 다 아실까’ 하는 생각을 안 하셨습니까?

남다른 분이시니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예측을 하셨나보다 생각했지요. 그걸 높이 평가했지만 목사님한테 감사하다고 하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임학영 권사 : 놀랐죠. 장관도 예언해 주시고 총리도 예언해 주시고. 그 뒤 이분이 이북에 갔을 때(주: 1992년 남북 총리회담) 또 목사님한테 가서 ‘적지로 갔으니 기도 많이 해 달라’고 말씀 드렸어요. 이분이 그때 가서 김일성도 만나고 왔죠. 그 당시 사진에 처음으로 김일성의 큰 혹이 나와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그게 참 이상해요. 왜냐하면 김일성이 혹이 큰게 있는데 안 보이게 하려고 절대 오른쪽으로 사진 찍는 일이 없었다고. 전부 반대로만 찍어서 혹이 보이지 않게 했는데, 나하고 면담한 것만 이쪽으로 해서 찍은 거죠. 알고 한 건지, 사진사가 잘못 알고 그랬는지... 잘못 알고 했다면 크게 문책 당했을 가능성이 많고.


임학영 권사 : 그전에 문교부 장관 시절에는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 1,400명을 퇴시켰거든요. 매일 새벽이면 협박 전화가 걸려와서 가족들 다 죽이고 가정을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했어요. 그래서 목사님께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니까 “기도 많이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지혜를 주셔서 이걸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많이 했어요.




장로님은 박윤식 목사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누구도 따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성경을 박식하게 아시는 분이죠. 제 생각에는 모든 신학자를 통틀어도 박 목사님이 제일 많이 성경을 연구하신 분입니다. 성경을 한두 번 읽기도 참 어려운 건데 1800번 읽어보세요. 달달 외우지 않겠습니까. 성경 구석구석의 보통 목사님들이 알지 못하는 걸 많이 알고 계시고, 그것이 구속사 시리즈로 출간된 것이죠.


인품은 어떠셨습니까?

보통 사람하고도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면이 있었어요. 목사님이라고 해서 경건한 위치를 취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누구하고나 어울리셨고.


* 정원식 장로는 2010년 발간한 회고록 ‘변혁의 시대에서’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나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전환점을 마련해준 두 분의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중의 한분은 강원용 목사이다. 강 목사님을 통해 기독교의 사회구원적인 사명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는 개인적인 기복사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메시지를 구절이 아닌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성적 기반을 마련해 주셨다. 다른 한 분은 박윤식 목사님이다. 박 목사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우리 둘 사이는 삼동이월(三同二越)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삼동이란 동배·동향·동학을 말한다. 즉 둘은 나이와 고향이 같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학교를 다녔다. 이월은 나보다 두 가지 면에서 낫다는 뜻이다. 즉 그는 나보다 영성이 수월(秀越)하고 말씀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영적인 지도와 후견을 베풀었고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박 목사를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아내를 통해서였다. 화곡동 우리 집 근방에 김은정 집사가 살았는데 박 목사로부터 성경을 배우고 있었다. 그 공부에 매료된 김 집사가 아내에게 성경공부를 권유했다. 이런 인연으로 아내는 노량진에 있는 박 목사 교회에 가끔 출석했다. 얼마 후 아내는 나를그곳으로 인도했다. 그래서 우리는 노량진 대성교회의 등록교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박윤식 목사와 가까워졌고 그의 지도와 후견을 받았다. 이 후 장로의 기회가 주어졌다. 장로교회에서 집사가 된 지 10년이 훨씬 지났으므로 장로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박 목사님 주례로 장로장립을 했다. 장로의 중책을 받았으나 그 임무를 충실하게 감당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문교부 장관으로 기용됐기 때문이다. 더러는 교회 출석도 어려울 때가 있었다. 국무총리가 된 후에는 더욱 어려워져서 주일에 총리공관에서 부목사님을 초치하여 예배를 드리곤 했다. 내가 박 목사님으로부터 지도를 받게 된 것은 큰 은총이다. 박윤식 목사는 성경을 1천 700번 이상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다. 박 목사님의 말씀과 기도는 신앙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노량진에 있던 대성교회는 오류동으로 이전하면서 평강제일교회로 개명됐다. 지금의 평강제일교회가 있는 자리는 원래 공군정보부대가 위치했던 곳이다. 6.25전쟁 직후에는 후미진 교외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으나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군부대가 외곽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래서 군부대자리를 입찰공매하게 되었다. 그때 노량진의 대성교회는 늘어나는 교인을 수용하기에 너무나 비좁은 상태였다. 오류동의 군부대 자리를 경매한다는 소식을 접한 교회는 무리를 해서라도 응찰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세 후보자가 경쟁했으나 우리 교회에 낙찰됐다. 그래서 1990년 4월 14일 자로 국유재산 매매계약에 의해 평강제일교회가 국방부로부터 그곳을 인수했다. 진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였다. 오류동의 새 교회부지로 이사한 다음 교회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주일마다 백여 명의 새 교인이 등록을 했다. 모든 교인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으나 다행히 6만여 평이나 되는 부지에는 2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군부대의 막사가 있었다. 그 막사들을 개축하여 예배장소로 사용했다. 본당과 막사 사이를 전선으로 연결하여 TV를 통해 예배를 진행했다. 그렇게 하여 지금은 재적 교인 6만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나와 아내는 이곳 평강제일교회에서 즐겁고 보람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열심히 교회에 나가다 보니 많은 교인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아내는 부회장만 해도 10여 명이 넘는 큰 규모의 여선교회 총회장을 10여 년간이나 맡아보았기 때문에 교회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가깝게 지내는 장로들 중에는 신앙생활에서 배울 바가 많고 일상생활에서도 귀감이 되는 훌륭한 분들이 적지 않다. 일일이 모두 거명할 수는 없으나 그중에서 김경한, 윤성태, 안택수, 정동섭, 전필립, 윤봉혁, 권혁순, 한일상 장로 등과는 가까이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 교회 장로에 관해서 새로 언급하고 싶은 분은 파라다이스그룹의 전필립 회장이다. 나는 전필립 장로의 권유에 의해서 파라다이스 복지재단 이사장직을 6년간이나 맡았고 지금은 그룹의 고문으로서 그의 계속적인 후원을 받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받은 은혜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지금은 은퇴 장로가 되어서 그리 바쁘지는 않으나 시무할 때에는 봉사도 하고 일 년에 한두 차례 주일 설교도 담당한다. 교회에 가서 받은 은혜 중에서 우리 교회 성가대의 찬양을 빼 놓을 수가 없다. 특히 김헌경 장로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는 일주일 동안 쌓인 세속적인 앙금을 말끔히 씻어준다. 청량함을 넘어 영성의 경지에 빠져 들어가는 심오함을 느끼게 한다. 나는 우리나라 교회 중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음악을 접할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평강제일교회는 무엇보다 말씀이 풍성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주일 설교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그만큼 말씀 중심의 교회라고 할 것이다. 그러한 말씀이 있기에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소망이 있기에 영성의 깊이를 더해간다. 그것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삶이다.



권사님은 우리 교회 오신 뒤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어떠십니까?

임학영 권사 : 우리 교회 오기 전까지는 ‘내가 제일 잘 믿는다’고 난리 치며 다녔는데 정작 성경 말씀은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 와서 성경을 공부하니까 너무 너무 깨닫게 되고, ‘내가 너무 바보처럼 하나님을 믿었구나. 성경은 모르는 채 기도만 하면 되는 줄 알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정말 기뻤죠. 지금도 하나하나씩 모르는 게 나오면 같이 공부하고 “이런 게 있었네, 성경에.” 하지요. 우리 교회 와서 37년째인데 후회하거나 불평하거나 한 적이 없어요. 정말 신앙생활을 이렇게 즐겁게 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기쁘고. 박윤식 목사님이 후원을 잘 해주셨죠. 그래서 여선교회 부회장 1년에, 회장 8년을 했어요. 그 얘기하면 이 사람이 “자기가 했나? 내가 했지?” 그래요(웃음). 이 사람이 여선교회 교육 프로그램을 짜주고 그랬지요.




장로님이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셨는데 스스로는 말을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임학영 권사 : 잘 안 하죠.


목사님께서 교회 일을 부탁하면 장로님이 귀찮아하거나 난색을 표한 적은 없습니까?

임학영 권사 : 아뇨. 절대로 그런 법은 없었어요. 정말 순종파예요. 목사님이 안 되는 걸 하라고 그래도 하는 척이라도 하니까. 안 된 적도 없지만요. 정말 목사님 후원자로서 많이 후원해 드렸습니다. 대화로도 하고. 목사님 계실때는 자주 단에 세워서 강의도 하고 그랬지요. 두 분이 다 각각 월남했지만 목사님은 목사님대로 고생 많이 하셨고, 이 사람은 돈 없이 대학 다니느라 고생 많이 한 뒤에 만나셨잖아요. 이 사람에게는 목사님이 배경이고, 목사님은 이 사람이 배경이고, 그러니까 둘이 친하고 모든 것을 의논할 수밖에 없죠.


장로님이 목사님을 영적인 배경으로 생각하셨군요.

임학영 권사 : 그럼요. 절대적으로 생각했죠. 글로도 쓰셨잖아요. “가장 영적으로 존경하는 분이 가셔서 나도 뒤따라가려고 준비 중”이라고.


권사님은 박윤식 목사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세요?

임학영 권사 : 내가 영적으로 가장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 뭐라고 표현이 부족하네. 내 얘기라면 늘 도와주시고 내가 욕먹을 짓을 많이 해도 저를 영적인 제자로서 사랑하셨어요. 하나님 말씀을 잘 모르던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켜 놓으신 영적인 아버지나 마찬가지에요.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지 몰라요. 육신적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영적으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고.


장로님은 하늘나라에서 박윤식 목사님을 만나면 목사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까?

목사님이 그동안 나에게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해 달라는 얘기를 구체적으로 하신 적은 없지만, 늘 내 마음으로 느끼기에는 내가 교회의 그늘이 돼 줬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계셨다고 생각해요.


장로님은 목사님께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참 큰 일 하셨는데, 이 교회가 앞으로 이 나라와 세계의 교계를 위해서 큰일을 할 수 있도록 계속 많이 지도해 달라’고 말씀드려야죠.


대담/글_ 호준석 참평안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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