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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이별, 내게 남겨진 구속사
 글쓴이 : 관리자
 


친구와의 이별,

내게 남겨진 구속사

이승권 안수집사




지난 7월 22일 금요일 자정 무렵,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나는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교회 후배였다. “형! 항석이 형 얘기 들었어요?” 서늘한 느낌이 스쳐갔다. 후배는 말을 잇지 못했고, 캐묻는 나에게 이윽고 항석이의 소식을 알려왔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있던 내게 아내는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이내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고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1989년 헵시바 신입생으로 처음 만나 27년 넘게 함께 신앙생활하며 가족같이 지내온 친구, 고민을 서로 나누고 말씀을 같이 상고하며 새 힘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던 동역자, 세상 끝날까지 늘 함께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든든한 믿음의 동지! 그런데 이제 다시는 이 땅에서 볼 수가 없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상실감과 미칠 듯이 보고 싶은 그리움이 겹치며 울다 멍하니 있다 하며 비몽사몽간 긴긴 밤을 보냈다.


너무나 슬프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봐왔던 항석이는 누구보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다하던 친구였다. 헵시바, 그루터기, 요셉선교회, 남선교회, 고등부 교사 등을 거치면서 항상 하나님의 일에 앞장서는 것을 삶의 우선 가치로 여기며 지내왔던 친구였다. 그런데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창세기 족보를 통해 장수(長壽)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배웠던 나에게 이 상황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주말 내내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당연히 천국에 입성했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한편으론 ‘왜 이렇게 빨리 떠난 거지?’라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뜻을 알기 위해,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던 중 항석이가 섬기던 미국 올랜도 푸른동산교회 김바울 담임목사님과, 소식을 듣고 현지로 급히 가신 평강제일교회 유종훈 목사님의 설교 내용이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비로소 풀리지 않던 의문들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남북조 39명의 왕 가운데 하나님 뜻을 위해서 물불 안 가리고 가장 열심히 일했던 요시야 왕은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가 화액(禍厄)을 피하도록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미리 데려가셨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도 홍수 심판 5년 전, 당시 족장들의 평균 수명에 훨씬 못 미치는 777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역시 죽음이라는 방법을 통해 피할 길을 받은 특별한 경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라멕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격으로서 열매를 맺어 자신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환란 전에 미리 데려가셨던 것이고 완전수인 7이 세 번 겹친 777세는 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말씀을 들은 뒤 항석이를 아는 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항석이가 어떻게 믿어왔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식으로 치러진 천국환송 예배에서 보여진 항석이의 평소와 똑같은 온화하고 생기 있는 표정은 이를 더욱 확신하게 하였다. 그의 살아있는 자 같은 마지막 모습은 산 자의 하나님께서 불러 가신 분명한 표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흐른 뒤, 하나님께서 항석이를 부르신 연월일시가 777세를 향수한 라멕의 삶을 분명하게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선명해서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생각해 보니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는 법이 없고(마 10:29),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대상 29:11, 시 31:15) 사랑하는 아들을 데려가신 연월일시도 아버지의 빈틈없는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항석이를 보낸 뒤 가족,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의 모습들을 새삼 발견하게 됐다. 그 결과 내가 느낀 것은 항석이의 신앙적 성취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컸고, 특히 미국으로 떠난 뒤의 4년간은 그의 신앙의 급속한 성장기이자 절정으로 꽃 피운 시기였다는 것이다. 출근 전 늘 5분 이상 무릎 꿇고 기도, 식사 기도조차도 늘 정성스러운 모습, 출근하면 먼저 성경 읽고 기도한 뒤 일과를 시작, 취침 전 늘 무릎 꿇고 기도(여주 하계대성회 때마다 같은 숙소에 묵으면서 늘 목격했던 모습이기도 하다), 새벽예배 찬양 인도, 금요기도회 찬양 인도, 언제나 제일 먼저 도착해서 마지막 정리까지 마치고 가던 교회 봉사, 섬기던 교회의 목사님께서 “교역자급 집사”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교회를 자기 몸처럼 돌보던 정성, 세전(稅前) 기준으로 드리는 온전한 십일조, 자녀들에게 구속사 시리즈를 가르치는 가정예배 등 어릴 때부터 원로목사님을 통해 배워온 온전한 성도의 자세를 거의 그대로 실천해온 ‘성도 스탠다드(standard)’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라는 주위의 얘기, 누구에게 큰 소리 내는 걸 본 적이 없는 온유함, 교회가 어려울 때 누가 얘기를 하면 “왜 입으로 죄짓느냐”며 만류하던 모습, 함께 사는 부인에게까지 존경받던 항석이의 모습들을 들으며 친구 가 더욱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가 사랑했던 시간은 찬양 인도였다고 한다. 구속사 말씀에 맞춰 스스로 개사한 곡으로 힘차게 찬양을 인도하는 모습은 많은 성도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원로목사님 천국 환송 후 그는 금요 기도회 때 “지금까지는 차마 못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드릴 수 있게 된 기도의 제목이 있다”고 하면서 ‘십자가를질 수 있나’(찬송가 519장)를 찬송했다고 한다. 항석이의 가장 큰 달란트였던 구속사 영상 제작 과정을 보면 그의 경건함은 두드러진다. 며칠 동안은 일과가 끝나면 방에서 나오지 않은채 계속 방을 쓸고 닦으며 아버지의 일을 하는 장소에 정성을 다했고, 평소에 좋아했던 것을 일절 금한 상태로 말씀을 상고하며 영상 작업을 했다고 한다. 식사도 요기만 할 정도로 사식 넣어주듯 했고 언제나 이틀 이상의 밤샘 작업은 기본이었다고 한다. 왜 그가 만든 구속사 영상마다 시대와 때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절묘하게 담겨 있고 우리의 마음에 벅찬 감동을 주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항석이와 주고받았던 이메일들을 열어

보았다.


“나는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데 더 많은 생각과 시간을 쏟아 정작 돌이키는 오늘을 제대로 회복 못할 때가 많더라. 실상 아버지의 관심은 언제나 ‘지금’일텐데 말이야.” (2008년 9월)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구석구석 아버지께서 은혜로 앞장서 주시며 형통케 인도하실 테니 우리 함께 기도를 쉬지 말자.”(2009년 7월)


“이제 가서 출근하면서 본격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말씀대로 돌파하는 일이 시작되겠지. 중요한 건 우리에게 허락하신 환경 속에서 맡겨주신 달란트대로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끊어지지 않고 충만한 것이겠지. 앞으로 더욱 그 나라 갈 때까지 우리 굳건한 믿음의 동역자 되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2010년 12월, 轉職을 앞두고)


“사람의 생각으로는 막막한 상황이지만 아버지의 뚫어주시는 역사를 믿으며 기도하고 있어. 무엇 하나도 우리의 삶은 인간적인 방식으로는 해결도 진행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면서, 또 이곳에 보내주신 이상 순종해야 함을 체험하면서 오늘을 산다.”(2014년 2월)


“작년에 교회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쩌면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각자의 믿음을 굳건히 하시려는 날들인 줄 믿는다. 또한 믿음의 동역도 굳세게 하라시는. 오직 아버지 시간표대로 움직이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가운데도 뒷걸음은 없고 전진만 있는 것이겠지... 실감나진 않지만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세상의 모든 생활을 아버지께 의지, 의뢰할 수밖에 없게 만드시는구나. 사람의 생각으로는 안개와 같은 이 시기를 말이야. 아무튼 우리가 서로 어디에 있건 간에 믿음의 삼겹줄로 묶여 있는 줄 믿기에 마음이 편하다.”(2016년 3월)


고백컨대 그 동안의 신앙생활에서 내가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늘 함께 해준 항석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큰 복이었다. 항석이와의 동역을 통해 늘 나에게 깨달음을 주셨던 아버지이시기에 이별에도 분명히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노아에게 부친 라멕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른 죽음은 전례도 없었을 뿐더러 노아의 정신적 지주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아는 부친의 죽음을 통해 홍수 심판이 임박했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그런 뒤에는 더욱 방주 건축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아버지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애썼던 항석이를 먼저 데려가심으로써 이제는 내가 구속사 완성을 위해 더욱 충성스런 노력을 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예정하신 시간표 속에서 항석이는 자기의 사명을 다 마치고 아버지 곁으로 간 것이고, 이제 내가 그 믿음의 경주를 이어 받아야 하는 것이다. 비단 나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원로목사님이 육신적으로 우리 곁을 떠나가시며 남기신 “생명 바쳐 충성하라”는 명령을 뒤로 한 채 교회의 여러 사정을 핑계로 교회 일에 전보다 무관심해지고 나태해져버린 우리 모두에게 말이다.


항석이가 떠난 지 한 달째 되던 지난 8월 21일, 친한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구속사 시리즈 7독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제안이었다. 고민 없이 동참하기로 했다. 한 달째 되던 날에 주어진 제안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지금까지 나는 출근 전 기도, 출근 후 성경과 구속사 시리즈 읽기 및 기도, 취침 전 성경과 구속사 시리즈 읽기 및 기도, 일주일에 구속사 시리즈 한 권 읽기 등 항석이가 보여준 ‘성도 스탠다드’의 내용들을 조금씩 실천에 옮기고 있다. 물론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살면서 계속 확대해나갈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가 가르치신 대로 친구가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길의 끝에는 보고 싶은 친구가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자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항석이가 만든 구속사 동영상들을 다시 보다 발견한 한 대목이 있다. 지리산 기도처를 배경 으로 한 영상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리움보다 기다림 / 그 기다림의 끝에 마주해야 할 한마디 / “네가 아브라함같이 믿음으로 살았구나!” (2015년 성탄 전야 영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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