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ㅣ SITEMAPㅣCONTACT US
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HOME > 인터뷰 People  
 
   
하나님이 보우하사 대한민국 만세
 글쓴이 : 관리자
 




“나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험난한 역정을 국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오늘날 사회 경제적 발전 등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국민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여기서 ‘우리나라’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李光耀)의 자서전 ‘싱가포르 이야기(The Singapore Story)’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싱가포르 건국 초기의 고난이 중첩하던 시기에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렸던 탓인지, 많은 국민들은 1959년 내가 총리가 되었을 당시의 싱가포르, 자원도 없고 자원 공급선조차 끊긴 채 살벌한 민족주의로 무장한 동남아 신생국들 틈에 끼여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쓰던 아주 작고 미약한 싱가포르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40년 만에 세계은행이 우리나라를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등급을 올려 매긴 것에 대해서도 그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자서전은 싱가포르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부와 번영이 그저, 당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 정치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 노(老) 정치인은 (한글 번역본으로) 700페이지가 넘는 자서전을 통해 불과 반세기전, 나라가 존속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던 때로부터 어떤 고난을 뚫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젊은 세대에게 알려주고자 애썼다.
싱가포르의 건국 초기는 여러모로 대한민국의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아주 작고 미약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노심초사해야 하던 때가 오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였고 그 무렵 공산주의와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일 등이 대표적이다.
공산주의와 관련,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리콴유는 “공산주의자를 상대로 하는 모든 협상과 담판은 반드시 공개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요약하고 있다. 말레이연방으로부터 탈퇴해 1965년 독립국가를 세우기까지, 독립 이후에도 그와 싱가포르를 가장 괴롭힌 것은 바로 공산주의자들의 배신과 변절, 보복이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옛날을 되새길 것을 호소하는 리콴유의 마음은, ‘옛날을 기억하라’는 신명기 32장 7절 말씀에 닿아 있다. ‘발전된 조국’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 이번 호 참평안 좌담회가 마련된 취지이기도 하다.


좌 담
사회: 이지운 장로
조요셉 목사
박철규 장로_한의사
허창식 장로_사업
김원호 장로_사업
정민섭 안수집사_증권회사 근무


사회: 해방 이후 줄곧 전기와 물을 공급하던 북한이 갑자기 전기와 물을 끊은 것이 1948년 5월이었습니다. 서울을 비롯해 남한 전체가 사실상 마비되는 대혼돈이 찾아왔지요. 1964년 제한 송전이 해제될 때까지 참으로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자서전을 보니 함흥비료공장이 대한민국 전체에서 사용되는 비료의 90%를 생산했는데 공급이 끊기면서 농사도 완전히 망가지는 상황이었다는 군요. 각 분야별로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어떠했을까. 당시 참으로 비참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개성공단 잠정 폐쇄 과정에서 전기 공급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잠시 생각해본 문제였습니다.





박철규:
저는 1935년생으로 6·25를 10대에 겪었지요. 고향이 충북 청주인데, 북한군이 갑자기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피란을 가려도 갈 수가 없더라구요. 길에 나간 애들은 인민군이 다 잡아갔죠.
산속에 숨어 들어가 막내 여동생이 갖다 주는 밥을 먹고 숨어 있었지요. 1·4 후퇴 때는 제일 먼저 짐을 싸서 피난을 떠났죠. 저는 이불하고 쌀을 지고, 어머니는 동생들을 데리고. 당시 청주 시내에서 약국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설사약 같은 비상약은 가져가야 한다.”며 약을 챙겨주더군요. 피란길 일주일이 지나니 먹을 게 떨어졌는데, 이리저리 다니면서 동네 아픈 사람들한테 약을 주고 고구마, 보리쌀 등을 얻으면서 지냈지요. 참 큰 도움이 됐어요. 나중에 집에 돌아왔더니 폭격 맞고 집이 없어졌더라구요. 그때 겪은 일은 가슴으로 느끼게 돼요. 강단에서 목사님이 6·25를 말씀하시면 몸에 와 닿지요.
고향에 돌아온 뒤로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은 청소년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군대에 자원해서 갔죠. 인민군과 공산주의자들의 행패 겪은 뒤여서 일 테지요. 전 독자였는데 어머니가 절대 안된다 해서 갈 수는 없었지요.


허창식: 저는 당시 평양에 있었어요 고향은더 북쪽 평안북도인데, 지주 집안이라 숙청을 당해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었대요. 3시간내에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라 몸만 빠져나왔다고 해요. 부자로 살다가 부끄러우니까 고향 근처에는 머무를 수 없었고, 평양 같은 큰 도시에서라면 사람에 묻혀 날품팔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했다고 해요. 결과적으로 평양에 살았기에 월남할 수 있었어요. 소도시, 농촌에서는 때맞춰 움직이기 쉽지 않았고, 대동강 등의 자연조건 등을 고려할 때 내려오기가 쉽지 않았다는 거예요. 6·25전쟁이 북침이니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그 당시 평양에 살던 사람들은 김일성이 남침한 거 다 압니다. 그런 얘기하면 오히려 이북사람들이 웃지요. 지금도 하나님 은혜라고 생각한 것은 월남하는 과정에 시체를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시체가 천지였던 때인데.
여섯 살 막내로 월남해서 저도 신문 팔고 구두를 닦았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파리는 많았는지, 나병 환자도 많았고. 어린애 간을 먹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소문에 흉흉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 영국기자가 그랬던가요. ‘한국의 회복은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는 걸 기대하는 것 같다.’고요. 지금의 발전은 첫째 하나님의 은혜고,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같은 지도자들의 덕택입니다.



김원호: 6·25전쟁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격전지 중의 하나였던 강원도 철원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전쟁의 참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는 산마다 온통 시체였어요. 식목일 행사하려고 땅을 파면 해골이 많이 나왔죠. 해골에 나무를 끼어 가지고 전쟁놀이를 할 정도였어요. 인민군 복장도, 한국군 복장도 많이 나왔죠. 아군이나 인민군이 쓰던 무전기나 총도 많이 주워 전쟁놀이 한다고 돌아다녔습니다. 곳곳은 포격을 당해 산에는 나무 하나도 없고 허허벌판이었습니다. 물론 짐승도 없죠. 산에 먹을 게 없어요. 일주일씩 굶어도 봤습니다. 학교 다녀오면 포대 하나씩 들고 포탄 파편을 주으러 다녀요. 불발탄 주우면 횡재한거죠. 포탄을 나선으로 싸는 놋이 있는데 그걸 떼어다 팔거든요. 그걸 두들기다가 터져가지고 친구들 참 많이 죽었어요. 저도 죽을 고비 많이 넘겼구요. 폭탄이나 수류탄, 소총 탄약 등을 주우면 나름대로 제조를 해서 물고기 잡는 데 쓰기도 하는데, 한 번은 105mm 포탄을 여러 개 모아다가 구덩이를 파고 불을 질렀는데, 얼마나 폭발이 컸던지…. 제일 두려운 게 배고픔이었던 것 같아요. 산에 가도 아무 것도 없을 정도니까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조요셉: 1960년대 서울을 기억해 보면 청계천과 양동에 온통 피란민 판자집 천지였지요. 청계천 위에 나무로 만든 집 위에 살면서 대변을 보면 강으로 떨어지던 시절이지요. 수도권이 재개발 되면서 봉천동, 정릉 이런 데로 사람들이 옮겨갈 때 저희는 정릉으로 갔어요.
판자집들이 서너 줄 연이은 판자촌이었는데, 많은 어린이들이 낮에는 탁아소에 맡겨져서 강냉이 죽을 먹고 지냈지요. 워낙 먹을 게 없으니 밀가루죽, 풀죽을 쑤어 먹었는데 반찬은 당연히 없고 조선간장을 떠주는데 간장에 하얀 게 있는 거예요. 구데기였는데, 죽을 그것에 찍어 먹으면서 할머니한테 이거 뭐냐고 물으니까 그냥 먹으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당시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시는데 새벽마다, 주일 저녁예배마다 부르짖으며 기도하시는 거예요.
먹을 것도 없고 너무 힘드니까 찾을 분은 하나님밖에 없는거죠. 우리 부모들이 산마다 골짜기마다 다니느라 기도 소리 없던 곳이 없었을 정도죠. 오늘날 민족의 부흥을 가져온 배경이 그것이었지요.
하나님 앞에 매달렸던 기도.
얼마 전 00사단의 사단장을 만났더니 우리 근·현대사에 3가지 기적이 있는데 첫 번째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이고 둘째가 6·25전쟁 터진 뒤 바로 유엔 16개국이 파병될 수 있었던 것이고 셋째가 전쟁의 참화를 이기고 이 짧은 기간에 발전한 것이라더군요.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우리 외교부 장관에게 “내 일생에 한국의 발전을 지켜본 것이 아주 감명적이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더라구요. 우리 민족이 하나님 앞에 매달렸던 그 간절함이 우리나라를 이런 위치로 성장시키게 했던 거지요.



정민섭: 저는 증권회사에서 주로 기업 자금조달 관련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40대이지만 6·25전쟁과 이후 공비 토벌 등에 관한 말씀은 할머니와 부모님, 장인어른한테 많이 들었지요. 그런데 전쟁의 무서움이나 공산주의의 실상을 직접 경험했던 분들로부터 전해들은 세대는 60~70년대생까지 아닌가 해요.
지금의 30대 밑으로 가면 그 부모가 간접 경험의 세대이다 보니 전달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지 않나 해요.
그러다 보니 전쟁에 관한 것도 알기 어렵고 북한이라는 존재를 주변의 보통 다른나라의 하나 정도로 생각하게 되고,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해요. 천안함 사건도 다 지어냈다고 믿는 것도 그런 데서 연유한 것 같습니다.

사회: 구속사 시리즈를 보면 야곱의 식구들이 애굽에 내려간 뒤 신앙과 선대의 일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한 것이 우선 애굽에서 출생한 2세대가 직접적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후로부터는 ‘옛날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0년대생만 해도 전후 가난을 체험했고, 60년대~70년대생들은 조부모와 부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이야기, ‘my story’가 되기는 어려웠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들의 이야기, 즉 ‘his story, her story’가 되다 보니 다음 세대로의 전수가 제대로 안 됐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전후 회복과 고속성장의 시대, 어렵고 힘들고 바쁘다 보니 1세대, 1.5세대들조차도 ‘전수’에 소홀했던 측면도 있을 테고요. 아무리 국가적으로 안보교육, 반공교육을 했다 하더라도 효력으로는 가정교육만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할 때마다 이스라엘의 애굽생활이 겹쳐 떠오르곤 합니다.

정민섭: 지금 국가·사회적으로는 관련 교육이 전무하다시피 하지요. 결국 교회가 그것을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가정 교육과 병행해서 국가·사회적으로 결핍된 교육을 담당해 주어야죠. 생각과 사상의 틀을 잡는 ‘예날이야기’에 대한 것은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합니다. 제가 고등부 교사를 맡고 있는데, 신앙과 국가관 같은 정신적 측면에서의 교육은 고등학생만 해도 교육의 여지가 많지 않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조요셉: 옛날에는 국사가 필수과목이었지요. 요즘에는 국사가 빠져버렸어요. 역사를 모르는데 과거를 어떻게 보겠으며 미래를 보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박윤식 원로목사님의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는 실로 어제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내다보게 하는 참 거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읽고 배우고 하는 곳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허창식: 긴박하고 절박한 심정에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돼요. 교육의 문제는 기성세대의 문제이지요. 현실이 그러할수록 기독교인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옛날을 기억하고 역사를 소중히 여기라는 성경 말씀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우리 교회의 사명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원호: 아까 폭탄을 줍다 죽는 애들이 많았다는 얘길했죠. 어렸을 때 교회 가면 과자나 사탕을 주곤 했는데, 당시 목사님이 이런 말씀하신 게 지금도 기억이 나요. “너희는 이런 경험을 했으니 공부 열심히 하고 하나님 열심히 믿어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나라를 끌고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 나라가 잘되어야 한다.”고 하셨죠. 사업이 어렵고 할 때면 그 목사님 생각이 나요.

박철규: 6·25를 애절하게 생각하는 거는 60년대생만 해도 잘 몰라요. 그러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울 거예요. 제 직업이 의사다 보니 지엽적일 수 있지만 당뇨병만 놓고 봐도 엄청난 변화를 알 수 있어요. 이게 발전과정하고 연관이 있거든요. 1970년대~1980년대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 비율이 인구대비 1%대였어요. 그때 미국은 5%쯤 했지요. 지금은 우리나라 9.9%이고 미국은 여태 5.5%예요. 당뇨병이 음식 등 생활수준과의 관련이 높은 병인데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만큼 빠르게 성장을 했다는 방증이에요. 유사 당뇨병까지 하면 1,000만명이라는 통계도 있어요.

정민섭: 그렇게 발전한 한국 경제가 2010년을 넘어서는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어요. 이미 80년대에 두 자릿수 성장률은 떠났고 아시다시피 예전 발전시기에는 듣도 보도 못한 2,3% 성장률에 금리도 2,3%대로 떨어지고 있죠. 성장이 변곡점에 와 있는 시점입니다. 성장이 없기 때문에 자산을 증식하기보다는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됐지요. 채권도 다른 나라 채권을 사고파는 시대가 됐구요. 한국 경제는 지금 패러다임의 변화기를 지나고 있다고들 합니다. 여기서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새로운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기본’을 수립해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사회: 지금의 60대 이상은 국가, 민족, 사회에 공헌을 해야겠다는 의식들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개인의 이런 의지들이 모여 발전에 큰 토대가 되었다는 데에도 이견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국가, 민족, 사회를 거론하는 일 자체가 전체주의나 국가주의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국가, 민족’은 ‘시민사회, 공동체’라는 표현들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역사성의 퇴색을 수반하는 것 같습니다.

조요셉: 과거 일제시대에는 기독교인이면 모두 애국자로 통했었지요. 3·1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을 보면 대부분 교회가 있던 곳입니다. 지도에 대칭해 보면 거의 일치해요. 또한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교회가면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했어요. 여름, 겨울 성경학교에다 일반 초등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크레용, 노트 등을 받을 수 있었죠. 교회가 사회를 주도해 나가던 시대랄수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부자가 되다 보니 부자병, 당뇨병이 생긴 것 같아요. 가난할 때는 진실되게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했는데 어느 순간 부자가 되면서 인간적인 세상, 인간적인 문화가 교회로 들어왔죠. 그러면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게 되었어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요. 교회가 진리로 돌아가야 하죠. 구속사의 말씀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이 시점에 반드시 먼저 이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박철규: 30년 전 미국에 처음 이민갔을 때만 해도 주일에 교회가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옷을 빼입고 잘 차려입고 왔지요. 지금은 그거 구경할 수가 없어요. 미국에는 엄청나게 큰 교회가 많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머리 센 노인들 열댓 명 남짓한 경우가 많아요. 관리비 때문에 운영을 감당 못하는 대형교회도 적지 않고요. 미국 교회가 이렇게 패퇴하리라 상상이나 했습니까. 그러나 그런 교회에서도 구속사 시리즈 세미나를 열면 많은 미국인들이 몰려와요. 구속사의 말씀을 한번 들은 사람은 또 오게 되더라고요. 부족한 말씀을 채우려 오는 것이죠. 구속사 시리즈는 쓰러져가는 미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말씀입니다.



허창식: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늘 채색옷을 입혔지요,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 같아요. 지금 세계적으로 대한민국같이 하나님 열심히 믿는 나라가 또 있습니까. 국교(國敎)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국교가 기독교인 서구 어느 나라보다 더 왕성하지요.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 지금의 발전은 정말 하나님의 절실한 은혜지요. 아무 자원도 없는 나라가 넓은 경제 영토를 갖고 여러 분야에서 ‘특별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국제 정세 측면이든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긴장을 풀때는 아니지요. 특히 북한이라는 ‘시한 폭탄’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말씀들 하셨지만, 다시 기본을 회복하고 앞을 보고 달려나가야 할 때입니다.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김원호: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여기까지 왔어요. 새로운 시작의 필요성에 공감이 이뤄졌다면 실천이 중요할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재현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 성경을 가장 성경답게 만들고 있는 구속사 시리즈를 주변에 소개하고 전달하는 데 다시 열심을 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리_ 장미양 기자

대한민국의 특별한 선교과정

식상한 표현이 될 수 있겠지만, 참으로 대한민국은 태생 자체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세계 선교 역사를 보면 어떤 나라에 선교사가 들어가고, 그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고, 해당국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이 되는 순서를 보이지요. 우리나라는 다 거꾸로예요.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만주에서, 일본에서 성경이 번역되어서 들어왔습니다. 이어 성경을 번역했던 사람들이 귀국하면서 우리 자체적으로 교회를 세웠지요. 우리 민족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진 거예요. 그 다음 선교사가 들어왔어요 .
또 아시아의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의 식민지가 되지만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나라지요. 유럽과 미국의 식민지였으면 당연히 기독교, 천주교인이 많은 게 당연하지만, 우리나라는 잡신의 왕국이랄 수 있는 일본의 식민국이었는데도 복음의 꽃이 핀 거예요. 온갖 귀신들이 득세하고 있는 나라의 식민지에서 복음의 꽃이 피어서 아시아에서는 사실상 한국만이 기독교 복음화가 성공한 셈이지요. 우리가 영적으로 축복받다 보니 짧은 시간에 경제성장도 뒤따른 것이라 생각합니다.(조요셉 목사)


 
   
 





 
 
사망을 호령하는 양심, 그가 이 나라…

여운초 목사의 신(新) 사도행전

2017년은 어떤 해가 될 것인가?

“구속사 말씀을 배우러 지구 반대편…

청년들의 멕시코 성경 구속사 세미나 …

아침이 오리니 밤도 오리라

“삶이 곧 기도가 되길” - ‘38년 대…

성경 인물 탐구 - 나봇

게이트(GATE)

사망을 호령하는 양심, 그가 이 나라…

창세기에 나타난 구속사와 세계사

침몰 직전에 놓인 이 나라, 뚫린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