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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물 탐구 - 나봇
 글쓴이 : 관리자
 

내 포도원을 누구에게 빼앗기랴!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왕상 21:3)


지금 우리 대성(大聲)의 성도(편집자 주: 대성교회는 평강제일교회의 옛 이름)들은 조상 전래의 유업과 율법을 사수하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대항한 한 성도를 만나보려고 방금 왕상 21장에 도착하였습니다. 나봇, 그 이름의 뜻은 열매입니다. 나봇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7) 한 십계명의 범법자 아합 왕에게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였다고(왕상 21:1-4), 나봇은 독부(毒婦) 이세벨의 반신적(反神的) 우상과 탐욕에 대항하기를 피 흘리기까지 하였다고(왕상 21:5-7, 11-16), 나봇은 동족의 위증(僞證)에 대항하기를 피 흘리기까지 하였다고(왕상 21:9-10)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나봇은 불행한 시대에 살던 자입니다. 아니, 극한 환란의 시대에 살던 자입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어두운 환란의 일면을 나타내는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나봇은 피 흘리기까지 이 어두움과 더불어 싸우며 살다 갔던 성도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 12:4) 했습니다.


1. 참 포도원(교회)을 사수하였다

나봇은 조상 전래의 유업을 사수하였습니다(왕상 21:3). 그 유업이란 바로 나봇이 소유하고 있던 포도원입니다. 나봇에게 있어서 이 포도원은 단순한 자기의 재산으로 계산되는 정도의 땅이 아닙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땅이요, 이 땅을 찾기 위해서 모세를 통하여 죽음의 애굽에서 탈출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분배받은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영원한 기업(基業)으로 확정하여, 거래하지 못할 것으로 규정하였습니다(민 36:8-9). 나봇의 포도원은 조상들의 것이요, 또한 후손들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께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희년을 통해서라도 언제든지 그 땅은 본주인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땅이 저들에게 소중한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그러므로 나봇은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왕상 21:3) 하면서 왕의 명령도 거절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백성이 증오하며 던진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 나봇의 포도원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또한 중생한 성도의 마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포도원을 교회로 상징한 예를 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사 5:7, 사 27:2-3, 렘 12:10).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도원의 비유를 드신 말씀도 있습니다(마 21:33-41). 나봇의 땅! 포도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유업으로 받았고 출애굽하여 얻은 땅이요, 유월절 양의 피를 발라 살아남은 자들이 얻은 땅이요, 쟁취하여 얻은 기업입니다.


대성교회 성도 여러분, 죄악 세상에서 주님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엡 1:23).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것입니다(행 20:28). 우리는 이렇게 피로 값 주고 산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피 흘리기까지 일사각오로써 사수해야 합니다. 그것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입니다(행 7:54-60). 그것이 바로 저 야고보의 순교입니다(행 12:1-2). 그것이 바로 아벨의 순교입니다(히 11:4, 창 4:8-10). 그것이 바로 사가랴의 순교입니다(대하 24:21). 그러므로 주께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마 23:35). 역대의 선지자! 사도들! 교부와 개혁자! 순교자들! 모두 하나님의 포도원을 사수하여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위해서 피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이 하나님의 교회를 저 무서운 20세기의 바알, 공산당 세력에서 사수합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왕상 21:3) 이 말씀은 레 25:23 말씀을 생명보다 더 중요시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민수기 36:6-7에는 “오직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46:18에는 “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하여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왕이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니라. 백성으로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봇은 하나님 말씀의 파수에 신실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포도원을 말씀에 의지하고 경영하고 관리하고 사수하였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이 교회를 어떻게, 말씀에 의지하여 받들고 섬겼습니까? 나봇은 왕의 명령만 따르면 상당한 대가가 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왕의 명령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명령인 그 말씀을 더 중요시한 것입니다. 그는 왕의 명령을 순종하고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죽느냐! 하는 기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살기 위하여 죽었습니다. 나봇은 세상의 영화와 부귀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피 흘리기까지 하는 사람의 처세입니다(히 12:4). 절대 계명 표준! 말씀 표준!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생활태도입니다. 요한계시록 6:9에는 “다섯 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대성교회 성도들이여! 우리는 성경 때문에 피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참이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나 주기철 목사님은 이 땅에 말씀을 전하고 지키다가 피를 흘리고 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키되 일점일획이라도 빠짐없이 모두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은혜로만 지켜집니다. 주일을 꼭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목사와 장로와 교회 직분자들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좀 추우면, 또 비만 와도 주일날 교회에 빠집니다. 우리는 곰이나 사자나 범, 어떤 다른 맹수를 두려워할 줄은 알면서, 나를 넘어뜨리는 작은 병균은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사도행전 12:23에 헤롯 임금은 충(蟲)이 먹어 넘어졌습니다. 작은 병균이 왕의 영광을 녹슬게 합니다. 미미하고 작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계교로 마음이 어두워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밝은 빛으로 내 영혼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가정과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나봇의 믿음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금하실 것이라”(왕상 21:3) 하였습니다. 즉 성경이 금하고 있다 함으로 거절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도 성경 절대주의, 성경 제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나봇은 성경에서 시작하고, 성경에서 진행하고, 성경에서 마쳤습니다. 나봇은 성경을 지키다가 처참하게 죽었습니다(왕상 21:13-16). 확실히 돌에 맞아 피 흘려가면서 순교하였습니다. 참,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억울한 죽음이 아닙니까? ①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죄로 ② 왕을 저주했다는 죄로 ③ 독부 이세벨 왕후의 책략에 의해 ④ 독종 인간의 위증(僞證)을 받고⑤ 독종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나봇은 하나님을 위하고, 왕을 위했던 충신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신성모독죄로, 또 왕에게 불충한 자로 누명을 쓰고 죽어갔으니! 이 땅에서 알아줄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영예로운 죽음이었습니다. 그 죽음이야말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통인 열조한(列祖恨)을 사수한 죽음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한 죽음이 아닙니까? 나봇은 분명히 아합과 이세벨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성도입니다. 나봇은 7천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닙니까?(롬 11:4, 왕상 19:18) 이 땅 위에서는 억울하고 분합니다(왕하 9:26). 나봇의 아들까지 죽임을 당한 것을 보십시오. 이세벨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아들들은 나봇의 상속자였기 때문에 죽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21:19에 “아합아,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엘리야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아닙니까. 금세에서 아합의 왕가를 심판하였고 (왕상 22:38, 왕하 9:26) 내세에서 그는 영원히 슬피울고 이를 가는 자가 되었습니다.성령의 축복을 받은 대성의 성도여, 진리를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는 피 흘리기까지 어둠의 비진리와 대항하다 가자!


3. 우리는 포도원(교회)을 사수하자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 포위망 속에서 사수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나봇의 포도원이 마귀와 적 그리스도를 상징한 아합의 궁에 가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왕상 21:2) 이 말씀에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무서운 무신론적, 우상적 반신 사상이 극성을 부리는 세상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과 교회 생활에서 부정적인 태도, 즉 나의 마음 가장 가까이 있는 세력을 주의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 생활에서 육신만 덕을 보려는 자가 있다면 “네 포도원을 내게 주어 나물밭을 삼게 하라”(왕상 21:2) 하는 아합 같은 자입니다. 탐욕의 전술을 조심하십시오. “어서 목사를 내쫓고(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라)”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받은 은혜를 감사할지언정 목사님께 수군수군하지 마십시오. 이것들은 마귀요 곧 포도원(교회)을 파괴하는 작전입니다.


㉡ 유도작전에서 사수해야 합니다.

“나봇이 포도원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아합 왕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왕상 21:4) 애굽의 바로 왕도 이런 고민을 하였고, 느부갓네살 왕도 그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빌라도도 이런 고민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3에 짐승이 죽은 듯하다가 다시 살아납니다. 이렇게 유화책을 쓰는 자 조심하십시오.


㉢ 왕권 지상주의의 도전에서 사수해야 합니다.

“그 아내 이세벨이 저(아합)에게 이르되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왕상 21:7).


㉣ 다수주의의 횡포에서 사수해야 합니다.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비류(匪類)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저에게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왕상 21:9-10). 오늘의 하나님의 교회인 포도원이 말씀을 믿지 않는 무지한 몇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음을 알아서 사수해야 합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아 2:15)들입니다. 열왕기상 21:16에 “아합이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했으니 참 기막힌 이리 같은 만행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의 성물을 탈취해 갔습니다. 말씀 받은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의심한 모세 당시의 고라 일당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오늘 날까지 받은 생령의 복, 죽지 않고 사는 복, 영적 자원을 이간과 의심의 말과 어두운 책동으로 탈취해 가는 자를 조심하고, 자기 자신을 건축하여 충만한 하나님의 보고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한 가지 순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죽는 일입니다(고전 9:27). 희생적으로 말씀을 받읍시다. 일사각오 순교정신 가지고 우리가 받은 기업의 땅, 한국과 한국 교회, 우리 교회를 이러한 여우새끼 운동에서 사수해야 합니다.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서 세워주신 교회의 유일한 좌표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합시다. 피 흘리기까지 사수해야 합니다(히 12:4). 아가서 1:6에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게달의 장막처럼’ 우리의 심령이 검어질 것입니다. 아가서 4:11-15을 보십시오.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노도초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받은 말씀 놓치지 말고, 생령의 축복이 이룩될 때까지 내 포도원, 교회를 지킵시다.


1981년 11월 29일 주일예배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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