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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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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필립 장로 (파라다이스 그룹 회장)
 글쓴이 : 관리자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
 
신앙생활을 언제부터 하셨나
모태신앙이다. 할아버님이 목사님이었다.(주: 조부 전주부 (田周富) 목사 (1908-1991)는 한국 기독교 초기의 유명한 목회자다. 전 목사의 2남 5녀 중 큰딸은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수필가 전숙희 여사, 둘째 아들이 전필립 장로의 선친 전낙원 (1927-2004) 파라다이스 그룹 창업주다) 평북 선천에 사셨는데 강계, 선천 등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던 통로였다. 할아버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을 들으신 뒤 집까지 팔아서 교회에 바치셨다. 할머님이 뒤늦게 알고 목사님에게 가서 ‘우리도 살아야 하니 먹고 살 건 돌려 달라.’고 사정하셨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선친의 존함 [樂園]도, 내 이름 [必立]도 할아버님이 지어 주셨다.

어릴 때부터 신앙이 독실했나
주일날 교회 가라고 하면 헌금 받아서 만화방 가고 떡볶이 사먹고 그런 적도있다. 어릴 때부터 성악설(性惡說)과 성선설(性善說)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인간에게 원죄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까 싶었다. 기독교는 사람을 선한 존재라고하는데, 나는 사람의 근본이 악하다고 생각했다. 장성해서도 선데이 크리스천에 머물렀다. 성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됐다. 집사람은 기독교 집안은 아니지만 카톨릭 학교를 다녀서 뿌리는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소망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둘 다 세례 교인이어야 해서 집사람이 세례를 받고 곽선희 목사님 주례로 결혼했다.

우리 교회는 어떻게 오게 됐나
사업하던 친구가 목사님이 돼서 교회를 개척했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 옮겼다. 그런데 너무 율법적인 면을 강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의문이 생겼고 결국은 교회에서 나오게 됐다. 그러던 중 집사람이 최경숙 권사님에게 요리를 배우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 ‘그럼 우리 교회 한번 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옥경 전도사님에게 성경공부를 하고 나한테 와서 성경 배운 얘기를 하는데 들어보니 다 맞는 얘기였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고 집사람이 나를 인도하게 된 것이다. 1998년경이다. 나도 성경공부를 했다. 처음 들어보는 얘기들이었고, 너무너무 좋은 말씀들이었다. 물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다. 교회 사람들도 좋았지만 한편에서는 사람에게 거는 기대만큼 채워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지금은 다 극복했다.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다는 체험이 있나
나는 꿈을 많이 꾼다. 우리 교회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하와이로 휴가를 갔다. 큰딸이 다섯 살쯤 됐을 때였다. 원로목사님이 꿈에 나타나셨다. 차를 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꿈이란 게 꾸고는 잊어버리지 않나. 새벽에 생생하게 꾸고는 다시 잠들었는데 아침에는 잊어버렸다. 나가서 차를 빌렸는데 그날 사고가 났다. 버스를 들이받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모두 안전했다. 사고가 나는 순간 꿈이 생각나더라.
그 후로도 인생의 진로와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꿈들을 많이 꿨다. 그리고 그대로 현실로 이뤄졌다. 꿈의 내용까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여기서 자세히 말 할 수는 없지만...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다. 보스턴 유학 시절엔 차가 구겨져 폐차될 정도로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다음날 멀쩡히 일어나서 나오면서 ‘내가 할 일이 있나 보다.’ 느꼈다. 체험들이 있고 꿈도 꾸니 믿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회 와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시작한 뒤 회사가 잘 되고 있는 것도 내게 주신 체험이다. 나는 대한민국에 나보다 더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범사에 감사 아닌가. 말씀 그대로 ‘복의 복’이다.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문제일 뿐이다.

원로목사님이 신앙의 스승인가
물론이다. 그런데 때로는 냉정하시다. 한번은 흐트러진 마음으로 찾아간 적이 있다. ‘너 누구냐’ 하는 태도이셨다. 막상 갔는데 얼굴도 못 뵙겠더라. 물 한 잔 주시길래 눈동자도 못 마주치고 물만 마시고 나왔다. 영적으로 깊은 분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스토리들이 많다.

할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 ‘필립’은 예수님 제자 빌립(Philip)을 뜻하는 건가
‘성경에 나오는 빌립의 모습이 어떤 것이냐’고 누가 나한테 묻더라. 빌립은 예수님이 이런 분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는, 어떻게 보면 ‘브로커’ 같은 역할 아닌가. 그렇게 얘기해 줬다. 한자로는 ‘반드시 서라 [必立]’ 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님이 그 시절부터 ‘변화’ (주: 고린도전서 15:51)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할아버님이 쓰신 책에도 나온다. 나도 어릴 때부터 부활과 변화를 할아버지에게 들었다.

전필립 장로는 대학 시절 김종진,전태관 (봄여름가을겨울), 김광민, 정원영 등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과 호흡을 맞췄던 음악인이다. 김종진은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친구가 어느 날 미국 유학을 간다며 대신 전태관을 데려와 소개해줬다. 유학 간 그 친구가 바로 전필립이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명문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전필립 장로의 예인(藝人) 기질과 재능은 지금도 여전하다. 미국 유학 중인 전 장로의 세 자녀도 그런 피를 물려받았다. 그들의 음악적 재능과 ‘무대 체질’은 우리 성도들도 이미 경험하신 바다.


자녀들에게 어떤 소망을 갖고 있나
몇 해 전 아들을 영훈초등학교에 입학시키려고 했다. 추첨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집사람이 “당신은 노력은 많이 안하는 것 같은데 운이 따르는 사람”이니 나한테 가서 추첨을 하라고 했다. 이상하게 공항 입국심사대에서도 내가 서는 줄은 잘 빠진다. 내가 식당에 가면 썰렁하던 곳이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집사람이 그런 걸 많이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집사람이 1주일 전부터 기도하라고 했는데 그렇게는 못하고 뽑으러 가기전에 기도를 했다. “아버지 하나님, 동혁이가 이런 일이 있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 학교를 가는 것이 잘 되는 길인지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는 말씀을 받지 않았습니까. 저희 자녀를 저희 자녀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위탁받은 자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신 말씀 안에서 잘 양육할 테니 아이들의 길을 잘 열어주십시오. 어디로 가든지...”라고. 가서 추첨을 했는데 당첨됐다. 경쟁률이 8.6대 1이었는데... 그렇게 입학을 했는데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내는 길을 열어 주셨다. 사연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화려한 미국 유학과는 거리가 있는 길이었다. 고민이 많았다. 공들여 들어간 학교를 제 발로 나오는 것도 그렇고... 처음에 직접 가보고는 미국 중에도 이런 시골까지 보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 순종이 엄청난 축복을 가져오더라. 지금은 그곳이 나에게도 늘 너무 가고 싶은 곳이 됐다.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벗어나 가나안으로 옮기시는 역사였다는 것을 믿게 됐다. 지금도 내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위탁받은 자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인도해 주시겠지.’ 한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에 벗어나지 않게 잘 키우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본인의 신앙상태를 어떻게 평가하나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도 금세 잊어버리고 불평하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얘기가... 그렇게 체험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당신만 따르겠노라’ 고 다짐을 하는데도 또 사람이 변한다. 인간의 뇌 구조에는 엄청난 망각의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장로’라는 계급장을 떼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것마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신앙의 중심은 있다고 생각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십일조 생활 꼭 하고 있고 주일날 골프 친적도 없다. 주일성수와 십일조는 철저해야 한다고 믿는다. 언약 아닌가. 지난 수요예배 때 탐욕, 음란, 교만이 우리의 적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탐욕과 음란 문제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은데 교만은 글쎄, 아직 좀 있는 것 같다(웃음). 소들이 싸우는 경기를 보면 끝까지 머리를 낮추고 인내할 때 기회가 오고 승리하게 된다. 고개를 쳐드는 순간 적에게 공격당하는 것이다. 2년 전 파라다이스 기업문화 선포식에서 서로 격려하는 메시지를 쓰는 보드 위에 '하심(下心)'이 승리한다고 쓴 적이 있다. 말씀도 자신을 낮추고 비울 때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로목사님께서 대통령이나 서울역 앞 노숙자나 인격은 다 똑같다고 말씀하신 의미를 사업과 생활 속에 되새기며 살려고 노력한다. 교만의 씨를 뿌리면 패망의 열매를 거둔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하나님의 족보가 있는 사람이다. 족보를 지킨다는 사명이 있다.

전필립 장로의 한 측근은 “그가 구속사 시리즈와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를 전하는 노력은 거의 선교사 수준”이라고 했다. 집무실에는 늘 책이 쌓여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냥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내용을 알린다는 것이다. ‘앞뒤 안 가리는 정도’라는 귀띔이다. 승용차 트렁크에는 ‘여주 물’을 싣고 다니면서 나눠주고,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는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 그에게는 또 다른 꿈도 있다. 자신이 전하는 책들의 내용을 다큐멘터리나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구상을 하고 있나
수메리안(주: 히브리어의 모태인 수메르어, 12쪽 평안인터뷰 참조)에 대한 것도 좋은 소재이고, 구속사 시리즈와 근현대사 시리즈도 영상화하고 싶다. 혼자서 어떤 감독과 하면 좋을지까지 생각해 본다. 요즘 우리 교회로 찾아오는 국내외 석학들을 보면 ‘때가 되면 증인들이 나타나고 길을 열어 주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어디로 출장을 가도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가 보면 너무나 다르다. 진지한 신앙의 분위기를 찾기 힘들다. 촛대가 옮겨지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아, 그리고 성경적인 건 아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재들은 왜 요절하나’라는 테마도 내가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은 소재다. (웃음)

호텔과 카지노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파라다이스 그룹은 기독교 신앙의 전통에 입각해 사회 공헌과 예술 후원에 많은 힘을 쏟아 온 기업이다. 고(故) 전주부 목사는 아들 전낙원 회장에게 “돈을 벌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당부했다고 한다. 복지재단은 특히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 사업을 오랜 세월 동안 소리 없이 펼쳐왔다. 우리 성도들에게 전필립 장로는 소탈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부인 최윤정 권사는 주일이면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봉사를 한다. 모르는 이들이 보면 대기업의 오너라고는 짐작도 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는 “추가 인터뷰가 필요하면 언제든 OK" 라고 했다. 얘기를 이끌어 내는 기자의 능력이 조금은 미심쩍은 눈치 같기도 했다. 실은 더 나올 얘기가 있을 것도 같았지만 시간 제약으로 추가 인터뷰는 끝내 하지 못했다. 언제일지 모르나 속편을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글_ 호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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