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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개혁은 절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글쓴이 : 관리자
 

모든 개혁은 절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창 1:1, 요 1:1-5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업에 어떤 각오도 집중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가면 다 개혁입니다. 나쁜 마음 있는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다 뒤집어지고 선한 마음으로 개혁됩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만이 동력이 되었습니다. 당시 종교개혁의 세 가지 모토가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중세 암흑기의 종교개혁은 이러한 모토 아래 화산같이 폭발하며 성공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라는 종교개혁자들의 가슴 속에 불꽃처럼 타오르는 개혁의 함성은, 오늘날 천지를 진동시키고 신앙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힘찬 함성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는 변화산의 환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령한 몸으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시자, 베드로는 주를 위해 초막을 하나, 엘리야와 모세를 위해 각각 하나씩 초막을 짓겠노라 이야기합니다. 그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7:8을 볼 때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말씀만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1.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개혁 전에 먼저 바른 성경관의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결심은 잘해야 삼 일입니다. 그러나 연대가 다함이 없으신 하나님의(히 1:12) 말씀은 영원합니다. 성경의 영원함은 개혁주의 교회의 정통적 성경관입니다.


기록된 신구약 성경 66권만이 성경이며, 66권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입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 도합 66권만이 완성된 계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옛 선지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그 시대뿐 아니라 말세를 만난 후대의 우리의 경계로 주신 말씀입니다(고전 10:11). 우리가 구원받을 시기가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진 것입니다(롬 13:1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신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한 것입니다(롬 4:24-25).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서 예수를 믿으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혈통 이삭이 받는 복이 수천년 하나님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 복음을 듣고 예수 믿은 우리의 복과 동일한 복인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 역시 모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완전하고 무오하며 영원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한 표준이요, 심판의 절대 기준입니다. 오직 성경을 가지고 우주만물과 사람을 심판합니다. 창조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인간론 등 기독교의 교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정립되고 표준됩니다. 성경만이 우리의 모든 사고와 판단의 절대 기준입니다.


성경의 신적 권위는 오직 성경 자체에서 나옵니다. 성경의 신적 권위는 죄악 된 인간이 말하고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 자체가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스스로 증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열어 주실 때 우둔한 자가 그 말씀을 받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시 119:130).


2. 절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심판합니다.

모든 이단은 오직 성경만이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시비나 신자의 수로 이단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라는 거울을 비추어서 만이 이단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중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의 타락을 지적하고 종교개혁을 진행할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먼저,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의 잘못된 신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였습니다. 카톨릭은 마리아를 숭배하고 수많은 성자들을 신적 존재로 숭상합니다. 그러나 성자들은 물론, 마리아조차도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향해 ‘여자여!’라고 부르시지 않았습니까(요 19:26)?


둘째로,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의 잘못된 인간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였습니다. 카톨릭은 사람에게 본래적인 의가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완전히 타락하여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입니다. 예레미야 10:14-15에서는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로마서 3:10-12에서도 시편 14:1-3과 53:1-3을 인용하여 ‘의인은 하나도 없다’라고 단언했으며, 로마서 3:23, 5:12에서도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렘 17:9, 시 51:5, 144:8, 합 2:4, 롬 1:25, 6:6, 7:18, 엡 2:3, 4:22-24, 욥 15:14).


셋째로,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의 잘못된 기독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였습니다. 카톨릭은 죄 사함 받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월요성자, 화요성자, 수요성자... 등 잘못된 속죄론, 기독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월요일이고 화요일이고 그런 날짜와 죄 사함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죄 사함의 권세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니다. 기독교는 오직 예수 한 분입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로마서 1:17의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은 마틴 루터를 일으켜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의 의는 오직 믿음에서 난 의밖에 없습니다(롬 9:30). 카톨릭의 주장과 같이, 행위로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부인하는 죄가 됩니다.


넷째로,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의 잘못된 교회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였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지상 교회가 절대 무오하다고 주장합니다. 이 땅의 교회에 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흠이 없습니까? 교회는 신령한 목욕탕입니다. 죄인들이 와서 말씀을 깨닫고 믿고 더러운 죄악의 때를 다 씻어내고 가는 곳입니다. 죄인들이 와서 말씀을 깨닫고 믿고 모든 죄악의 때를 다 벗겨내는 신령한 목욕탕인 것입니다. 이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고전 6:15, 엡 1:22-23, 4:12, 5:23, 골 1:18).


다섯째로,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의 잘못된 내세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였습니다. 카톨릭은 사실상 지옥을 믿지 않고 만인구원설을 주장합니다. 믿지 않고 죽은 자들도 살아 있는 가족들이 선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갔다가 바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6:27, 로마서 2:7, 그 외에도 성경에 믿는 대로, 그 믿음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40군데나 있습니다. 그 말씀이 거짓말입니까? 살아 있는 가족들이 죽은 자를 위해 헌금 내면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것이 중세 카톨릭의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당 건축을 위해서 이런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아무리 은금보화 위에 지어졌어도 성경을 깔아 뭉개고 지어질 수 없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말씀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의 잘못된 성경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성경 66권만이 하나님 말씀이지만, 카톨릭은 외경도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외경은 단지 인간의 전통과 생활 양식, 들은 이야기를 쓴 것에 불과합니다. 카톨릭은 전통을 근거로 외경을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을 더 우선시합니다.


그러나 성경만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의 근거는 전통이 아니라, 나쁜 마음 있는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다 뒤집어지고 선한 마음으로 개혁됩니다. 오직 성경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무엇이든지 우리는 절대 하나님의 말씀, 오직 성경에서 나를 찾고, 성경에서 교회를 찾고, 성경에서 나의 부모와 조상을 찾아야 합니다.


3. 성경만이 절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오직 케리그마 운동만으로 그 의미를 새기라는 것입니다.

‘케리그마’는 ‘선포되는 설교, 말씀’을 의미합니다. ‘케리그마’라는 헬라어는 ‘전파, 전도, 설교’라는 전형적인 본질적 의미를 담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새겨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단 마귀 틈타지 못하게 성령의 불로 지켜주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방패요, 산성이고, 우리 방어자가 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 잃어버린 것 찾아오십시오. 다 되찾아서 여러분 믿음의 집에 다 모아두어야 합니다. 설교를 통한 전도 운동에 매진했던 사도 바울은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꺼리낌 없이 가르쳤습니다(행 20:20). 말씀을 전파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고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행 20:24). 그리고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도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엄히 명하였고, 또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지만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시고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롬 1:2-4). 우리는 육신으로 왔지만, 예수는 두 가지, 인성을 입으시고 성결의 영으로 오셔서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성으로 오셔서 사람의 입술로 사람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영생의 말씀, 영원히 죽지 않는 말씀입니다(요 6:63, 요일 2:25). 예수님 자신이 바로 살아 있는 말씀, 영원히 죽지 않는 말씀이십니다(요 1:1, 14). 우리는 2,000년 이라는 시간을 초월하여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날마다 보고 만나고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어찌 이 말씀을 사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구속사 시리즈 집필이 그랬습니다. 제가 지리산에서 기도할 때, 구름이 깊게 깔리고 천둥 벼락에 8개월은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들었습니다. 밤에는 기도하고, 낮에는 성경을 보는 가운데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성경 말씀에 감추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도 성경을 보면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 독학하였습니다. 성경에 감추인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칠 때마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혼자 춤을 추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 이 말씀은 기록된 말씀이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말씀에는 히브리서 4:12를 볼 때 활동력이 있어서 움직입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갓난아기도 계속 꼼지락거리며 움직입니다. 그 아이를 못 움직이게 묶어 놓으면 애가 자라지를 못합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으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는 것 입니다. 기록된 말씀은 움직입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말씀이요, 성령의 검이며, 목마를 때 시원한 생수가 됩니다. 성경을 읽는데 마음이 너무 기뻐 절로 춤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3:19를 볼 때 마음이 유쾌하게 되어 기쁘고 산뜻합니다. 영원히 목마름이 없습니다(요 4:14, 6:35). 그래서 성경은 성령 운동의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이며, 케리그마 운동의 지원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지금 와 있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 기록된 말씀으로 와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 하셨던 33년 행적을 구약, 신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지금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우리 중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맺겠습니다.

복음 운동의 대상은 전 세계 민족입니다(마 24:14). 아담 타락 이후 인간에게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가져가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믿든지, 아니 믿든지 가지고 가야 합니다. 복음 운동은 ‘믿음’을 요구합니다(행 16:31). 복음 운동은 ‘영생’을 약속합니다(요 3:16). 복음 운동은 ‘잃어버린 생명을 찾아오는 것’입니다(마 18:14). 복음 운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만 진행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아 움직이면서 우리를 통해 복음 운동을 진행해나가고, 어둠이 다 달아나며, 오직 밝은 빛으로 개혁되는 역사만이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2006년 7월 23일 주일 3부예배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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