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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운 절대 감사
 글쓴이 : 관리자
 


마음을 비운 절대 감사

욥 1:6-12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욥은 마음을 빈 깡통처럼 비운 사람입니다. 이권과 보답을 바라지 않고 마음을 완전히 비운 절대 감사의 인물이었습니다. 말은 쉽지만 우리가 욥같이 고난을 당하면 그저 앞이 캄캄할 것입니다. 하나님만 절대 의지하고 믿고 바라며 아무 조건 없이 뜨겁게 사랑했던 욥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아들, 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할까 봐 매일 제물을 바치며 눈물겹게 예배드리고 기도하던 욥의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우리의 절대 원수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너는 어디 갔다 오느냐” 물으셨습니다. 사탄은 답했습니다. “땅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세상일은 무엇이든 안 다는 식의 뻔뻔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한 사람의 이름을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욥 1:8 공동번역) 사탄이 대꾸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당신께서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의 소유를 울타리로 감싸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셨고 그의 가축을 땅 위에 번성하게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욥 1:9-11 공동번역)


그럴듯한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손에 욥의 생명을 뺀 모든 소유물을 붙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욥에게 비보가 연하여 들이닥쳤습니다. 이중삼중, 설상가상(雪上加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들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맏형 집에서 잔치를 하다가 돌풍에 기둥이 무너져 모두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때 욥은 어떻게 했을까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를 비롯한 여러분 중에 아들 일곱, 딸 셋은 고사하고 자식 하나만 불의의 사고로 죽어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성경 보면서 “욥 같은 인내의 신앙 주시옵소서”하고 쉽게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으로 나왔은즉 그대로 적신으로 돌아가리라.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분도 여호와시라.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라.” 하며 입으로 범죄하지 않고 원망치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가 두려운 마음으로 신앙생활했고, 십일조, 헌물 다 바쳤는데,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 하십니다.” 했을 텐데 욥은 “하나님의 이름은 영광을 받으실 뿐”이라 고백하며 어리석게 범죄치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바로 이처럼 마음을 완전히 비우신 분이었습니다(빌 2:5-6). 하나님과 동등(同等)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우리 죄 때문에 영광 다 내놓고 빈 깡통이 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하며 절대 순종하셨습니다. 마음에 검불(마른 나뭇잎) 하나만 한 것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내가 왜 십자가를 지고 죽습니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완전히 비우셨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빈 깡통처럼 완전히 비어 있어야 주인이 그 안에 마음대로 물건을 담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욥은 성경을 통해 읽기도, 설교하기도 죄송할 정도의 사람입니다. 전설 속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만큼 높이 평가하고 자랑하신 일은 신, 구약을 통틀어 없습니다. 욥은 최고의 순결한 인물, 티 하나 섞이지 않은 순전(純全), 최고의 정직, 성결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음과 생활에 흐트러짐이 없었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욥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순수하게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이 정도 주겠지’ 하는 기복(祈福)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기복 신앙은 일이 잘 되면 감사하고, 안 되면 외면하는 조건부 신앙, 상대적 감사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절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범사(凡事)에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의 감사는 시계추가 ‘똑딱’할 때마다 드리는 순간순간의 감사입니다. 일이 잘 돼도 감사, 안 돼도 감사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바로 그런 인물들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였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신상(神像)에 절하지 않으면 7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던진다고 위협할 때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그러지 않으셔도 왕의 우상에는 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마음을 비운 것입니다. 조건부가 아닌 절대 감사입니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 왕까지 회개시키고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믿게 만들었습니다(단 3장).


다니엘도 절대 감사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는 왕명이 내려진 것을 알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죽어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70,80세 살고 나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믿는대로 거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욥의 마음에 검불 하나 없으니 사탄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실상 그의 마음속 슬픔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아들,딸을 다 잃었으니 천하가 동원돼도 위로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엎드려 예배드린 것입니다. 저도 목사로서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우리 교회에 15년 이상 새벽예배에 나와 앞자리를 지키던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월남전 때 아들이 참전했다 전사했습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이 “하나님이 없다”며 원망했습니다. 제가 말씀으로 권사님을 책망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군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다 전사했는데, 남의 아들 죽었을 때는 하나님이 없다고 안 하더니, 자기 아들 전사했다고 하나님이 없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권사님이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내가 교회에 헌금 많이 했으니 복받겠지’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조건부가 아닌 절대적인 감사를 드려 보십시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내가 아낌없이 하나님께 다시 드립니다.”(대상 29:10-14) 하는 한마디 고백으로 다윗 왕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쏟아졌습니까?




아내에게 버림받고, 친구들이 조롱하고, 게다가 자기 몸마저 악창(惡瘡, 악질적 피부병)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도 욥은 마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건강하고 부유할 때와 똑같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들,딸 다 죽이고, 재산 다 가져가고, 내 몸마저 이렇게 됐습니다. 아내도, 가장 친하던 친구들도 나를 버립니다.’ 하며 원망치 않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손을 딱 붙잡고 있는 욥의 모습을 보십시오. 바로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욥의 절대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그분의 자손만대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과 땅의 원천(源泉)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완전히 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지만 욥의 마음만은 살아서 하나님의 손을 잡고 있는 그 모습을 눈으로 그려 보십시오. 마음속에 지도를 그려 보십시오. 여러분도 끝까지 견디고 참고 인내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은 욥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재정비하고 남은 생애는 욥의 신앙의 길을 걷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의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욥을 버렸습니다. 눈앞의 비참한 모습만 보고 하나님의 마음속 깊은 섭리를 헤아리지 못했던 어리석은 욥의 아내처럼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잔가지처럼 쉽게 타올라서는 안 됩니다. 쉽게 기뻐했다 쉽게 원망하며 감정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긍휼이 메말라서 우는 자와 함께 울지 못하고, 남이 어려움을 당할 때 ‘안됐다’ 말은 하지만 엎드려 그의 가정을 위해 기도도 해주지 않는 바보 같은 신앙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복 받는 것, 부자 되는 것에만 관심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재앙과 환난을 만났을 때 욥처럼, 다니엘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하나님께 더 깊이 빠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환난을 만났다고 도망치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재앙 가운데 더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굴을 지나갈 때는 깜깜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되면 굴을 빠져 나갑니다. 눈앞이 환하게 밝아옵니다. 욥이 바로 그런 신앙이었습니다. 그가 만난 환난의 굴 안에서는 어찌나 당황스럽고 참담했던지 세 친구가 찾아와서 그의 몰골을 보니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털썩 주저앉아 목을 껴안고 울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7일 밤낮을 함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위로해도 욥은 사람의 위로 대신 하나님의 섭리만 바라봤습니다. 친구들을 타이르고, 어리석은 아내에게도 손을 내밀며 욥은 마음속 오른손으로 하나님을 꽉 붙잡았습니다. 캄캄한 밤을 만났지만 열차들이 서로 연결되듯 하나님과 연결되는 손을 꼭 붙잡고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셨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자랑하실 만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자식이 속썩이고, 직장에서 윗사람, 아랫사람이 속썩여도 ‘제가 하나님 손 붙잡게 하시려고 이런 축복을 주신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하고 기도하십시오. 어떤 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하나님의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대로 감사하면 여러분의 자손에게 큰 부요(富饒)의 축복이 임합니다. 부모를 통해 자손에게 주시는 은혜가 천대까지 간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조건 붙이지 않아도 형통의 축복이 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저는 절대 하나님 손 안 놓습니다. 욥을 통해 배웠으니 고통과 환난과 괴로움으로 죽을 지경에 처해도 누가 놓으라고 해도 절대 못 놓습니다.”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놀라셔서 소원대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끝까지 견디고 참고 마음을 비운 욥에게 임한 축복을 보십시오. 모든 것에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딸들은 세계에 유명한 미인들이었습니다. 환난이 닥쳐올 때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십시오. 오히려 거센 바람을 이용해 유유히 높이 올라가는 독수리 같은 신앙을 가지십시오. 욥처럼 자기를 완전히 비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바라보며, 사랑하고 감사가 떠나지 않고 (골 4:2), 오른손으로 하나님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내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풀어 주십니다.


티가 섞이지 않은 깨끗한 감사, 정직한 감사,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사방 어디에서 보든지 충만한 감사가 우리 평강 성도들의 가슴속에, 가정마다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


2006년 7월 23일 주일 3부예배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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