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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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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싸개 속에 있었던 너
 글쓴이 : 관리자
 

출생
1960년대 새벽 어느날… 고아원 대문 앞에 이불보에 싸여우는 갓난아기가 있었다. 아기의 주변에는 흔한 출생일이나 인적사항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버려졌다.

유소년기
같은 반 부잣집 여자애가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소동을 피우더니 종국에는 내게 의심의 시선이 꽂혔고 다짜고짜 어디다 우산을 숨겼냐고 내놓으라고 했다. 그 아이 엄마는 담임선생님께로, 선생님은 고아원 원장님까지 확대시켰다. 그날 집(고아원)에 들어가서는 우산대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그 우산을 찾았다고 했다. 내게 미안했다는 답변이 있을리 만무였다. 매양 이런 식이었다. 내가 ‘우산’보다못한 존재인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숨죽여 울었다. 내게도 부모가 계셨다면 이럴 때 나를 보호해 주셨을텐데…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형이 기타 연습을 하나 보다. ‘하나님은 너를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코드가 잘 안 잡히는가 보다. 똑같은 가사를 벌써 몇 번이나 하는지. ‘주가 너를 지키시리라…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예전 같으면 짜증이 났을 텐데 오늘같이 마음이 상한 날에 들으니 짠해져 온다. 눈물 자욱 난 얼굴 보이기 싫어서 이불속에서 그냥 눈물 콧물 다 해결하고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다.

청년기
고아원에서 5살 쯤 되면 원내에 있는 교회에 새벽예배를 드린다. 교회 성가대에서 지휘도 맡고 봉사활동도 많이 했는데 내안의 근원적인 결핍이 열등감과 조합하여 내는 공명은 해결되지 않았다.

결혼
결혼을 위해 기도를 저축했었다. 웬 은혜인지 웬 사랑인지 내게도 짝을 주시고 아들도 둘이나 주셨다. ‘사랑’…이란 거 정말 있기나 한 걸까. 난 만져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사랑’이라는 것을 가정이라는 조직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그 놈의 ‘결핍’증세가 내 속에서 꿈틀대며 아예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결핍을 가장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충족을 위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쓰디쓴 배신과 등 돌림뿐이었다.
어느 날 잘 다니고 있던 교회를 떠나 아내가 서울 평강제일교회로 간다고 했다. 여전히 혼돈 공허 흑암의 길을 걷고 있는 내게 아내가 애써 뭐라고 전하는 것 같은데 귀가 열리지 않았다. ‘교회’는 다녔지만 내게 하나님을 알기란 미로 찾기 같기도 하고 술래잡기 같기도 했다.

가까이 오신 하나님
장인 어르신이 입에 침이 마르시도록 자랑하시던 두꺼운 양반가문의 족보를 주셨는데 웬일로 아내는 집에 가져오자마자 쓰레기통으로 직행을 시키는 거였다. “당신은 이런 거 없는데 나만 있으면 뭐해.”하면서. 부모님 얼굴도 모르는‘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내 아이들은 어느새 내 키보다 훌쩍 커져 있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을 때마다 애굽, 바벨론, 앗수르 나라의 몽둥이로 치게 하셨던 것처럼 그 즈음 나도 주변을 통해 맞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은 어디랄 것 없이 다 젖어 있었다. 춥고, 힘들고, 또 위험했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든 어느 지점까지 가면 최후에 있는 건 ‘거울’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거울은 모든 일의 처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양심’은 하나님편이라고 거울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을 진동시키는 무엇이 있었다. 큰 아이가 박윤식 목사님의 구속사 시리즈 2권‘잊어버렸던 만남’을 읽고 있었다. 그 후 교회 남선교회 주최로 열린 구속사시리즈 2권 ‘잊어버렸던 만남’강의를 듣고 또 읽었다. 구구절절 내 이야기였다. 상하고 터진 마음에 평지에 서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내 깊은 골짜기를 평평하게 메꾸어 주시는 작업을 하시는 거였다. 하나님이 나 같은 놈 아시기나 하는걸까 불신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하나님은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신다고 (민수기 6:26-27) 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그렇게 잊어버렸던 만남을 회복해 주시고 계셨다(시편 50:22).
‘나’를 천하보다 귀히 여겨 주시고 영원한 언약을 주셔서 구속경륜을 성취시키시고자 노심초사 하신 하나님. 그런 ‘나’를 위해 요셉 사후 360년이나 지났지만 그 유언을 기억하여 40년 광야노정뿐 아니라 가나안 정복전쟁에서까지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때에 1톤급 무게의 요셉의 뼈를 메고 행진했고 아달랴의 악정 속에서 두근 반 세근 반하는 마음으로 어린 요아스를 숨겼다. 그 후로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휘감고 돌아 다시 십자가로써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시고, 결국엔 예수님의 족보 42대 속에 내 이름을 올려주시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혼돈 공허 흑암가운데 내 속이 시끄러울 때에 하나님을 아는 빛을 내 마음에 비춰 주셔서 (고린도후서 4:6) 하나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를 느껴보라고 내 심장을 두드리셨으니 그 해를 나의 믿음의‘원년’으로 인정하시지 않으셨을까. 힘들다고 불평했던 광야 노정 때에도 그나마 해변가에 진을 치게 해 주셔서 주리지 않게 해 주시고 이른비와 늦은비를 때마다 내려주신 은혜를 어떻게 말로 글로 표현할까.
구속사 시리즈 3권‘언약의 등불’에 보면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생명싸개’라고 했다. 다윗의 생명을 하나님이 보물처럼 귀하고 특별하게 싸매어 두었기 때문에 절대 그 생명이 결코 해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뜻이고 다윗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40여 년 전의 어느 날 고아원 대문 앞에 포대기에 싸여 있던 그 이불이 생명싸개로 이미 나를 감싸고 있었던 것인가.
태초의 말씀을 받고 있는 지금, 그 하나 님의 이름만 불러도 안구 주변에 모니터에 뿌옇게 안개가 끼고 두 번 부르면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만다. 주 안에서 느끼는 생화학적 변화다. 그 후로 세상적인 극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만물만 보아도 그저 좋았다. 은행나무 잎이 바람과 만나서 내는 솨아 하는 소리도 좋았고, 밤하늘에 전염된 건물들이 어깨동무하듯 팔을 걸치고 쉬는 듯한 광경도 안도의 일부일 정도로 전에 느끼던 세상과는 달랐다. 내가 이렇게 좋으신 목자와 구속사 시리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본다.
이제는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라는 시편 기자의 기도가 내 기도가 되게 두 손을 모아본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지명하여 부르셔서 너는 내 것이라 인 쳐 주신 하나님을 구속사 시리즈 책에서 마치 생중계를 보듯 입체적으로 풀어 주시니 엠마오로 내려가려고 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돌이켜 눈을 뜨게 하시는 역사를 진행 중이시다.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 그분은 능히 하실 수 있다.

글_이상국 성도(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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