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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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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2010년 11월호)
 글쓴이 : 관리자
 



누군가 묻는다면, “너는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나는 ‘자유’와 ‘뜨거움’을 말하고 싶습니다.


좁디 좁은 나만의 우물에서 벗어나, 나를 다시 알고, 세상 그 어느 것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소망하며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냉랭한 세상에서 차디차게 식어가고 있는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시며 사랑을 알게 하시고, 냉정과 교만으로 주검처럼 식어버린 내 몸과 마음에 살아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뜨거움을 돌려주시고, 이웃과 함께 사랑하며, 뜨거움이 넘치기를 소망하며 사는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뜨거움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이, 말씀이 나에게 오시기까지 수풀을 헤치고 잔가지를 쳐가며 앞서 길을 내어주신 나의 어머니를 얘기하고자 “옛날을 기억하라”(신명기 32:7)는 말씀을 생각하며 ‘참평안’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올해로 여든 둘의 나이를 얻으셨습니다
1960년 11월 11일
당신이 교회에 첫발을 디딘 날을 평생 기억하고 사십니다.

그리고 1972년 2월 18일 새벽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신 날을 잊은 적 없으시고, 속죄의 은총에 늘 감사, 감격하며 눈시울이 젖어 사십니다.

1960년 32살 되던 해
시골 동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고 북치는 소리를 듣고 한번 가보자 마음먹고 교회를 가셨답니다. 아직 다 짓지도 못한 건물에서 호롱불 켜놓고 엄청 이쁜 처녀 전도사가 풍금도 없이 북을 치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답니다. 존귀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하나님을 모르고 살면 개,돼지 같은 짐승과 다름없다는, 난생 처음 듣는 설교 말씀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일장춘몽 인생, 나도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단숨에 결심하고 스스로 찾아가 “나도 교회 다니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날이 1960년 11월 11일 주일이었습니다. 올해로 만 50년이 됩니다.
그 발걸음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었고, 정한수 떠놓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 빌던 우리 집안에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조상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교회 가는 시간을 기다려 가면서 애들 등에 업고 걸리고 설교 말씀에 집중하셨고, 교회 나오다 안나 오는 사람 보면 나는 도중하차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그 기도대로 오늘까지 한번도 딴 마음먹게 안하셨습니다), 누가 보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성경을 1독 하시고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은 꼭 해야 되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되는구나 생각하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 설교를 들을 때마다 그대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정신대로 끌려갈 뻔한,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얼굴 한번 보지 못한채 시집 오셔서, 사는 게 고달픈, 거친 세월의 비바람을 오직 성경 보고 교회 가는 걸 낙으로 삼으시며 이겨내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요한일서 3:15)라는 말씀에 화들짝 놀라고, ‘죄’에 걸려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중심을 사로잡고 있는 미움을 없애 달라고 새벽기도 열심히 하면 선해진 것 같고 미운 마음이 없어진 것 같은데, 어느새 또 제자리고, 스스로 죄를 해결해 보려고 찾아다니며 용서를 빌어도 보셨답니다. 어머님의 청결한 양심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에 대해 바로 반응하신 것 같습니다. 당연한 반응이어야 되는데 무디어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죄와 씨름하며 기도하는 중에 생각나는 일이 있으셨대요.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때, 실내화가 귀하던 시절, 어렵게 얻은 실내화를 잃어버리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찾아보라고 하셔서, 똑같은 신발이라 어느 것인 줄
몰라 그 중 하나에 당신 이름을 쓰고 ‘찾았다’고 했는데, 수업이 끝나고 신발이 없다는 한 남자아이가 있었대요.
“호리(毫釐)라도 남김없이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함께 생각나며 두려워, 30년이 지나 40살이 넘은 나이에 운동화를 사가지고 수소문해 서너 시간 걸려 그 애 집을 찾아가 그때 내가 그랬다고,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자신을 쉴 새 없이 짓누르는 죄에서 벗어나고픈 어머니의 몸부림이 지금도 온 몸에 전율이 일 듯 가슴을 울립니다. 이렇게까지 하셨구나!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을 믿는데 나는 왜 이런 평안이 없습니까? 길을가며 눈에 보이는 나무, 꽃들이 부러워 속 깊은 곳에서 신음하며 “나는 참 평안도 못 누리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삶도 못 사는데, 너네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순종하고 누리고 사는구나.”하며 한숨짓고...
“오늘밤 잠들면 이대로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천국에 갈까?... 주님, 못 갑니다!” 그 뒤 이사를 하게 되셨고 교회를 못 정하고 계시면서 참 말씀을 바로 전하는 곳으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던 중에 지금도 꼭 한번 뵙고 싶어 하시는 조삼수 전도사님(당시)을 만나게 되셨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한일서 4: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불과 유황에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요한계시록 21:8) 이 설교 말씀을 들으며, 두려워 떠는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데 집회가 끝나고 단에서 내려오셔서 “속장(屬長)님, 죄사함 받으셨습니까?” 물으시더랍니다. ‘하필이면 왜 내게 물으시냐’고...
교회가 멀어 새벽기도를 못 나가시니까 허름하게 지어놓은 연탄광 옆에 담요를 두껍게 깔아놓고 새벽마다 기도하시는데 죄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몇날을 눈물로 기도하시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절망과 좌절, 낙심이 동반된 절대 고독의 순간에 울음을 토해내며 “남편, 자식, 물질도 다 포기합니다. 다만 주님만이!...”하는데 “예수님의 피가, 보혈의 능력이 네 죄를 사하느니라!”는 음성이 소리 없는 가운데, 빛으로 임하시는 음성을 들으셨답니다.
1972년 2월 18일 새벽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봇물 터지듯 감사의 눈물이 솟구쳤고, 하수구에 꽉 막혔던 오물이 한 순간에 확 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십니다. “마음이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救贖)한 주만 보이도다.”(찬송가 204장). 모든 찬송이 당신의 고백이 되셨고, 안개처럼 뿌옇게 의문투성이였던 성경 말씀들이 맑게 갠 하늘처럼 투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12년만이었고, 영혼의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신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았던 여인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혈루의 근원의 곧 마르고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아 알았듯이 체험적인 신앙인으로 거듭나셨습니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영혼에 무지개도 없다고, 죽음을 깨고 생명을 터뜨려내는 고독한 싸움에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속죄의 은총”, 이것이 어머니를 지탱케 하는 힘의 근원입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한 인생이었다고 입 모아 말씀하십니다.



그 후 28년이라는 긴 시간을, 또 다른 교회를 피난처 삼아 양육해 주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는 말씀과 씨름하시다가, 딸의 권유로 평강제일교회 고재분 전도사님과 만났고‘산 영과 살리는 영’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영혼이 깨끗하게 보존되셨다는 칭찬을 시작으로 전도사님에게 열 번을 공부하고2002년 1월 20일, 평강제일교회에 등록하셨습니다. 두고 오는 식구들이 아쉬워 뒤돌아 보시면서도,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듯 말씀을 좇아 또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더구나 아들을 뒤로 하고, 딸과 사위 집으로 거처마저 옮기실 땐 결단을 재촉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이끌리어 육정(肉情)을 끊는 거룩한 분리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사위 장로님(이상배 장로) 덕분에 그루터기 손자, 손녀와 함께 말씀 받은 언약의 자손 3대가 한 장막에서 산다고, 노년을 복되게 하셨다고 감사하십니다.
한숨 주무시고, 새벽 2, 3시면 일어나 불을 밝히십니다. 구속사 시리즈 서책을 권마다 모두 7번씩 읽으시고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읽을 때는 다 이해하겠는데 기억이 안된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민경배 박사님의 서평은 읽을 때마다 우십니다. 오늘도 구속사 시리즈 3권 예상 문제지에 답을 달아 오셔서 슬그머니 내밀며 답이 맞는지 좀 봐달라고 하십니다.
이번 주일에 기독 사관학교 시험이 있거든요. 말씀 앞에선 언제나 눈이 빛나고, 평생 듣지 못했던 새로운 말씀 앞에선 독수리 청춘이십니다. 구속사 시리즈 12권의 선물을 모두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십니다.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끄럽던 세상살이. 말씀의 키질로 다 날려 보내시고,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하나님과의 추억과 감사의 알갱이들로만 가득 남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어머니의 50년을 올해 추수감사절의 예물로 광주리 가득 담겠습니다.
어느 귀하신 분이 “안나 할머니”라는 귀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기도함으로 섬기고, 구속함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하나님을 전하며, 허락하신 남은 길, 믿음으로 완주하는 아름다운 걸음되게 해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자유인’이 되기엔 내 안에 걸리는 것이 많고, ‘뜨거움’이 식어져 이웃을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라.”(하박국서3:19)는 말씀이 다 이루어지는 날, 진정한 자유인으로 말씀의 날게 달고 자유의 행진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싶습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오늘 봅니다.

글_ 이재옥 권사


앞줄좌부터 사위 이상배 장로, 어머니 최숙희 집사, 딸 이재옥 권사
뒷줄좌부터 손자 이정훈, 손녀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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