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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기도의 귀중성
 글쓴이 : 관리자
 

축사 기도의 귀중성

요 6:1-15

 

오늘 본문 요한복음 6장 11절-12절 말씀을 볼 때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행하신 후 후속 조치를 취하신 대목입니다. 우리 함께 이 말씀 속에 숨어 있는 진리의 내용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남은 떡 부스러기 조각들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숨어 있는 큰 뜻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축복하신 떡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4장 19절이나 마가복음 6장 41절, 누가복음 9장16절에서 모두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는 말씀이 기록됐습니다. ‘축사(祝謝)’라는 뜻은 ‘축복을 빌다’ 혹은 ‘축복하다’라는 말로서 감사의 기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의 손에서 주님의 손으로 옮겨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우리 주님의 축복 기도를 받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물을 마시든지 떡을 먹든지 식사를 하든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결과적으로 주께서 주시는 것은 우리한테 축복 기도를 하고 주신다는 것을 몇십 년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출 23:25) 공기를 코로 마실 때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공기라는 것을 깨닫고 범사에 감사 생활을 진실하게 했습니까?

 

제자들이 떡과 고기를 수많은 군중들에게 떼어 주어도 끝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조의 축복, 생명의 축복을 받은 떡과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군중들의 수효에도 계속적인 공급이 가능했다는 것, 바로 이러한 주님의 축복 기도는 일종의 창조 역사를 수반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 기도를 받은 모든 것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또 버려서는 안 됩니다. 아니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성도 가정 가정마다 하나님께서 다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 그래선 안됩니다. 사람으로부터 물질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 자신을 버리지 말라는 생명의 진리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똑똑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여기 나오는 ‘축사(祝謝)’는 ‘감사하다’는 뜻으로 ‘선재(先在)적인 감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올린 감사가 바로 그의 부활의 기적을 의미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요 11:41).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과 잔을 들고 올린 감사도 그의 죽음 후의 승리를 내다본 감사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고전 11:24). 그것은 바로 ‘축복의 감사’요, ‘승리의 감사’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잡고 감사했습니다. 반면, 우리는 은금보화를 쌓아놓고도 감사가 없습니다. 좋은 집, 좋은 의복,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자식 다 같이 살면서 차고 넘치는 감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축복해 주신 모든 물질에 왜 그렇게 감사가 없습니까. 금덩어리, 진주덩어리를 손에 잡고 천하를 호령하던 권세의 홀을 잡고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빈 들에서, 해가 저무는데, 목마르고 주리던 수많은 군중 앞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잡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성도는 감사가 없으면 시체요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감사가 없기 때문에 불만을 토하고 모략질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시체 앞에서 감사했습니다. 자기 앞에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절망을 감사로 승화시킨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불안이나 초조나 좌절이나 어두움을 모르는 감사가 아니겠습니까. 전혀 원망이나 낙심이 자리잡을 겨를이 없는 감사가 아니겠습니까. 디모데전서 4장 3절-5절 말씀을 볼 때,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그 나라 갈 때까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흙탕물을 먹어도 감사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감사하신 떡과 고기를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거두어 바구니에 모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의 바구니를 채울 수 있다면 진정 그는 ‘행복의 왕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겠습니까. 감사합시다. 감사가 있는 가정,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부족함이 없고 만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지막 음성이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바로 감사 그 자체를 버리지 말라는 진리가 된다는 것을 오늘 깨닫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짜증내지 마십시오. 마음에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여유가 있습니다. 모든 사물을 볼 때마다 만족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교회에 보탬이 될꼬?’ 늘 교회 생각이 납니다. 은혜가 떨어지기 때문에, 악령, 사단의 종이 되기 때문에 누구를 내쫓아야 된다고, 대신 누구를 세워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초저녁부터 아예 버려야 됩니다. 풍성한 만족을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6장 11절 말씀을 볼 때, 저희의 ‘원대로’ 주었다고 했습니다. 배급이 아닙니다. 원대로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12절에는 저희가 배불렀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불만과 배고픔이 계속 되는 중에서도 풍성한 만족이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바구니가 시장 바닥에 가는 조그마한 바구니인 줄 압니까? 두 사람이 들 정도로 큰 바구니입니다. 마태복음 14장 20절에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둔 사실, 보리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둔 축복의 진리를 제자들에게 거듭 확인시켜 주시면서 저들의 깨달음을 촉구했습니다(마 15:37, 막 6:42-43, 8:19-20, 눅 9:17). 계속해서 강조되는 성경의 표현은 ‘먹고 남은 조각을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조각’은 ‘부스러기’를 의미합니다. ‘거둔다’는 뜻은 ‘모아 들인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의 기도가 있는 곳에 언제나 풍성한 삶을 삽니다. 행복하고 만족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예수의 감사의 잔이 넘치는 곳에는 언제나 배불리 먹고 남아 가득 차게 거두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감사가 없습니까. 왜 감사에 인색하고 왜 감사를 그렇게 아까워합니까. 때는 저물어 가던 빈 들입니다. 시간과 장소가 참으로 불리했습니다. 해 뜨는 아침이 아니라 해지는 저녁입니다. 때가 이미 저물었다고 했습니다. 산수 맑은 동산이 아니라 빈 들이요 광야였습니다. 목마르고 굶주린 무리는 많고 크다고 했습니다. 빛은 희망이고 어두움은 절망입니다.

 

아침은 소망이요 저녁은 어두움이요 노년입니다. 빈 들과 광야는 삶의 악조건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여기 지구촌은 빈 들입니다. 광야와 같습니다. 결코 화려하고 아름다운 낙원은 아닙니다. 역사는 그 연륜을 더하여 황혼기를 맞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종말 중의 종말을 맞고 있습니다. 제한된 장소와 자원을 가지고 오늘의 인류들은 생명을 던지는 투우사처럼 살려고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 빈 들에서 문학이니 음악이니 미술이니 철학이니 과학이니 교육이니 정치니 평화니 하는 것들로 인조화(人造花)를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히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은 굶어 죽어 가고 있는 것이 신앙의 눈으로 선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배가 고파서 허덕이고 있습니다(요 4:35-38).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한 아이가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누구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의 살과 피로 만들어진 ‘구속(救贖)의 떡’과 ‘구속(救贖)의 잔’을 들고 있는 참된 교회, 바로 성도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주께 드리면서 다시 축복의 기도를 받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먹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세상을 향한 오늘 우리 교회의 본래적 사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지난날을 정리해야만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날마다 베풀어주신 주님의 축복과 감사를 버리지 말고 바구니에 거두어 모읍시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 태어나서 허송세월로 보낸 모든 시간을 다 거두시기 바랍니다. 쓸데없는 데, 육신을 위해서 쓴 모든 물질을 다 거두시기 바랍니다. 역경 중에서도 주님의 축복과 감사 기도가 풍성하였음을 기억해야만 하겠습니다. 욥은 역경 중에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고도의 영적 열매로 그 인생의 바구니에 가득 채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적, 육신적 가정의 축복을 차고 넘치게 거두어 들였던 것입니다(욥 42장). 요셉은 역경 중에서 선민 구원을 위한 위대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자기 마음의 바구니에 가득히 채우는 은혜를 입었습니다(창 45:5). 그는 애굽에서 7년 풍년을 가득히 창고에 채워 텅텅 빈 7년 흉년을 차고 넘치는 만족으로 채우지 않았습니까(창 41장). 하나님은 ‘순경(順境)’과 ‘역경(逆境)’의 빈 들과 바람 끝에서 언제나 거두는 것이 차고 넘치게 우리에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존재와 소유를 ‘보리떡’ 개념으로 생각해야만 되겠습니다. 그래야 교만하지 않게 되고 또 주께 드리기에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보리떡 같은 나의 존재와 소유가 주님의 손으로 옮겨져야 하겠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주님의 축복 기도와 감사가 있습니다. 주님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 보리떡은 언제나 다섯 개밖에 안 됩니다. 더 늘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의 손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내가 나를 주장하고 사용하기보다는 주님이 나를 붙잡으시고 나를 사용하실 때, 나도 배불리 먹고 타인도 배불리 먹게 하고 남은 조각이 또 열두 바구니에 차고 넘칠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지금도 보리떡 같은 우리의 존재를 위해 기도와 감사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 8:34, 히 7: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 열매를 꼭 맺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들을 결코 버리지 말아야만 되겠습니다. 금년 열두 달 동안 열두 바구니에 가득가득 차게 만들어야만 되겠습니다. 작은 축복의 조각들을 모아 거두어 보면 분명히 열두 광주리에 차고 넘칠 것입니다. 남은 조각들이 마음의 눈에 보이는 자, 그는 실로 주님 자신의 능력이요, 감사의 진주들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든 날들을 지혜롭게 계수하는 승리의 삶이요, 성도의 기쁨과 행복이 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까지 받은 은혜, 오늘날까지 받은 모든 축복을 버린 것이 있습니까? 주님이 주신 이 거룩한 날 시간도, 빈 들 장소도, 큰 무리 군중도, 아이 개인도, 제자들도, 보리떡, 물고기, 바구니, 남은 조각 그 어느 하나 버릴 수가 없습니다. 쓰는 대로, 모이는 대로 가득 차는 축복의 조건입니다. 더욱이 주님의 축사 즉 축복 기도, 주님의 감사 기도는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조각들을 거두어 금년 한 해 동안에 열두 광주리에 가득히 채우도록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 앞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주 앞에서 모두 기쁨과 평안 속에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5년 3월 1일 수요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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