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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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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재림 때에 사랑이 충만한 자만이
 글쓴이 : 관리자
 

 이제 하나님 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보좌가 따로 있고 24장로들의 보좌가 따로 있습니다. 성가대의 헌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무척 귀여움과 사랑을 받고, 현재 우리 교회에 4천 성가대가 있다고 하지만 그나라에 가서 천군천사 무리에 함께 서서 성가를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땅에서 아무리 고대광실 높은 집, 전부 다 금으로 입혔다 해도 인생은 70-80년입니다. 세상 물질은 날이 갈수록 낡아지고 삭아지고 녹슬고 맥이 없는 새끼줄이 끊어지듯이 다 끊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를 위해서 그 나라를 예비하러 가셨습니다.

“예비한 다음에 내가 다시 와서 너희들을 데리고 가겠다.”

영원한 언약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더 이상은 없습니다(요 3:16). 헬라 원어로는 ‘아가페’로 아가페 사랑은 본인이 몽땅 망합니다. 본전도 없어질 정도로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이요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분에게 우리의 죄를 다 뒤집어씌우고 십자가에 달리게 해 우리의 죄를 다 처분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면서 “너 죄 없다. 너 이제부터 하나님의 아들딸이다.”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또한 아가페 사랑은 모자람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연대는 다함이 없고 늘 여전합니다(시 102, 히 1:12). 아가페사랑은 이와 같이 임시변통이 아니라 아주 완전한 사랑, 모자람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부모도 친 자식을 위해 논밭을 팔고 사업체를 팔아 뒷받침해 주지만 1년, 2년, 10년 하다가 집안이 거덜 나면 부모라도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덜이 날 때까지 그저 웃으면서 사랑으로 껴안아 주고 뽀뽀해 주고 안아 주십니다. 그러면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것들, 영원한 생명을 갖지 못하고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는 잠깐 사는 생명을 회수하시고 영원한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완전한 구원을 하시기까지 사랑해 주십니다. 그 사랑이 바로 ‘아가페 사랑’입니다.

 일류 부자의 아들딸만 돼도 얼마나 부럽습니까. 어린애한테도 250억을 상속해 줍니다. 그러나 그 250억은 썩고 없어지고 낡아지는 이 땅의 것입니다. 땅이 심판을 받으면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속 기업은 영원한 기업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썩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아프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계 21장).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세상 부모도 굶고 허리를 졸라가면서 아들딸들을 먹이는 헌신적인 사랑을 한다면 하나님은 그 이상입니다(엡 5:2).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요일 4:7-8, 16).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신 말씀과 같이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속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똑같습니다. 오죽해서야 깨닫지 못하는 야곱 가족들에게 “야곱아 네 허물이 많이 있지만 내가 그것을 기억도 안 해. 못 본 척 할께. 이스라엘아 너희들이 나한테 패역한 일을 얼마나 했니. 나 기억 안할게.” 참 그 성경 구절을 읽을 때 가슴이 뭉클해집니다(민 23:21).

 기독교의 가장 큰 덕목이 있다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3:13).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로마서 5:8 말씀을 봐도 아들을 죽이기까지의 희생적 사랑입니다. 그 성경 구절을 읽을 때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렇게 사랑하시는 줄을 모르고 순간적으로 죄짓고, 허튼 소리하고, 맡은 바 교회 사명에 충성하지도 않고,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을 합니다. 봉사도 스스로 해야지 누가 하래서 합니까? 그건 어린애들, 신앙으로 장성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시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남한테 빚진 것을 갚지 못하면 절대 구원받지 못합니다. 목사, 장로 아니라 교회를 100개 지었어도 이웃에게 억울하게 하고 손해를 끼치면 안 됩니다. 솜털 같은 거라도 있거든 다 갚아야 됩니다. 없지만 ‘내가 갚아야 되겠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열심히 살아서 한 푼 두 푼 모으면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물질을 허락해 주셔서 갚아 주십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마귀 새끼요 악령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요일 4:7-8).

 그리고 오만가지 법이 많지만 그것을 전부 다 간추려서 대표로 주신 법이 십계명입니다. 그러나 사람 치고 십계명을 지킬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십계명 열 개 가운데 아홉은 지키고 하나만 못 지켰다 해도 하나님은 십계명을 다 범했다고 하십니다(약 2:10). 그러나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다(롬 13:8).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의 완성자인 것입니다 (롬 13:10).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이 여러분들 마음에 믿음으로 채워져 있다면 남한테,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습니다.

 사랑은 이웃을 섬깁니다(갈 5:13). 또한 사랑은 거짓이 없이 진실해야 됩니다(롬 12:9). 이 모든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신 6:6, 마 22:37). 갈라디아서 5:6 말씀을 볼 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를 강권하신다고 했습니다(고후 5:14). 예수님의 사랑이 폭풍이나 조수처럼 너무 급하고 강해서 자기가 떠밀려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폭포수같이 쏟아집니다(히 11:6). 어딜 가도 감사, 어딜 가도 은혜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빌립보서 4:5 말씀을 볼 때, “너희 관용을 모든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말씀하십니다. ‘관용’은 ‘너그러울 관(寬)’, ‘얼굴 용(容)’입니다. 기독교에서 관용은 자신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입은 것을 깨닫고 타인을 용서해 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마 18:35).

 헬라어로 사랑을 뜻하는 단어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편의 사랑인 아가페, 둘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사람 편의 사랑인 스토르게와 필리아, 에로스입니다. ‘스토르게’는 부모와 자식간의 가족적인 사랑이요, 필리아는 친구간의 우정이나 우애, 에로스는 남녀 간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가장 단명(短命)하는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하다가도 직장이 떨어지고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돌아섭니다. 죽어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죽으면 새로 장가들고 시집을 가는 것이 단명적인 남녀 간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사랑인 에로스, 필리아, 스토르게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① 자아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이기적이고 욕심(욕구)적인 사랑으로 내가 손해 보면 외면합니다. : “저 사람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내가 밥을 몇 번 샀는데 한 번도 안 사.”

② 감정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본능적이라 툭 하면 감정적으로 말합니다. : “내가 너 얼마나 도와준 줄 알아? 너 말 한마디 나한테 고맙게 한 적 있어?”

③ 인간을 보편적으로 평등하게 다루지 못하고 차별합니다. 일류 대학을 나왔거나 부자면 친구가 되고 싶어 하고 사업을 잘하면 거기 붙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업을 잘 못하면 돌아보지도 않고 상대도 안 해줍니다. 세상의 사랑은 다 그 런 것입니다.

④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이나 방편으로 다룹니다(욕구 충족).

⑤ 참된 자유가 없고 집착으로 상대를 구속합니다. 마음 가운데 은근히 포로로 만듭니다. : “쟤, 뭐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그 가족은 굶어 죽었을 거야.”

⑥ 때때로 진리와 정의를 거스르며 맹목적입니다. 자기가 좀 배우고 지식이 있다고 해서 갖지 못하고 없는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을 큰 소리로 누릅니다.

⑦ 순간적이어서 오래 가지 못하고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서 돌변합니다. 둘이 친한데 누가 오게 되면 둘이 친하냐고 할까 봐 친구지만 오래간만에 만난것 같이 따돌리고 새로 온 말을 좋아하는 사람 편에 들어서 얘기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에게는 이러한 인간적인 사랑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 끝이 없고 연대가 다함이 없는 사랑이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자기가 죽더라도 껴안고 버리지 않지만 상황이 급해지면 그렇지 않습니다. 6·25 때 후퇴하면서 대나무 잎으로 만든 고리짝 안에 아기를 놓고 간 엄마가 한둘이 아닙니다. 부모는 낳은 자식이라도 외면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후회가 없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사 49:15). 우리가 하나님을 욕하고 믿지 않고 오만 가지 죄를 지은 것을 다 아시지만 하나님은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 긍휼이 무궁하다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 재림하실 때 사랑이 충만한 자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목사나 신학교 교수의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진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맛보았는지, 내가 그 사랑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롬 13:8). 얼마나 복된 말씀입니까. 또한 남을 사랑하되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벧전 1:22).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아 허리끈을 단단히 맨 것같이 아주 편합니다 (골 3:14).

 예수님은 십자가가 하루도 안 남은 상태에서 십자가를 몇 시간 앞두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마지막 유언을 하셨습니다(요 13:34). 히브리서 12:14을 봐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말씀하십니다. 사랑이 마음 가운데 없는데 무슨 화평입니까. 또 사랑이 바탕에 없는데 어떻게 거룩합니까. 마음에 심통이 가득하고 악이 가득 차 있는데 불평, 불만과 원망하는데 거기 무슨 사랑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면 백날 믿어봤자 불쌍합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사랑이 없는 자는 다 자기 스스로가 못 갑니다. 애들이 죄를 지으면 부모 앞에 나타나기를 꺼려하고 숨기를 좋아하며 부모 떠나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한테 못된 짓을 많이 한 것을 알지만 욕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을 내보내 허물을 가려주고 도리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축원해 줄 때 그것이 자기의 영광입니다(잠 19:11). 그런 자가 주를 만나기 때문입니다(벧전 4:8).

 오늘 본문 말씀을 볼 때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요 14장). 3년 동안 하늘의 기사와 이적, 비밀, 말씀과 지식을 다 대 주었습니다. 당신은 먹지 못해도 제자들한테 다 주어 먹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 갈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인간을 위해서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이 만세 전에

 예정하신 대로 죄를 몽땅 걸머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서 희생의 제물로 죽이기 까지 해가면서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해 주고 없이 해 주셨습니다.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나가서 “선생 예수를 넘겨줄 테니 얼마나 주겠냐”고 합니다. 예수님이 눈물이 납니다. 점점 죽음이 가까이 오고 죽는 광경을 보니까 너무 끔찍합니다. “내 마음이 민망하여 죽게 되었다.”할정도입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분명히 다시 온다. 내가 가서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고 난 다음에 내가 다시 와서 너희들을 데리고 가겠다.” 그 이상 확실한 언약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에 40일 동안 자그마치 열한 번 나타나 다 보이셨습니다(행 1:9-11). 마지막 감람산에서 올라가실 때는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둥둥 떠서 올라 가셨습니다. 승천하시면서 “내가 다시 오겠다.” 이렇게 다시 약속을 해주시는 것을 볼 때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살전 4:14-18). 하늘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 24:30, 막 13장, 눅 17장).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 땅에 살아남은 사람은 영혼육이 죽지 않고 변화됩니다(고전 15:51-53). 살아서 주님을 만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과 육이 반짝 하는 순간에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가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 땅의 옷은 새끼 줄이 썩듯이 삭아서 벗겨지고 영광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영화로운 몸, 영광의 몸이 되어 그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 말씀을 볼 때,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가 확실한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집에 거할 처소가 많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처소는 좁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천국은 모자람이 없고 한이 없는 세계입니다. 세상은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불편하고 비좁고 냄새가 나지만 천국은 향기가 진동하고 천천만만을 수용하고도 남는 끝이 없는 세계, 만족하는 세계입니다(요 14:2-3).

 “절대 아비 없는, 부모 없는 고아같이 두지 않겠다. 내가 다시 데리러 오겠다.” 하도 믿지 못해서 또 말씀했습니다(요 14:18, 막 13:26). 사랑의 마지막 극치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사람끼리 다시 만나는 것, 울고 헤어져 있다가도, 내쫓았다가도 그리워서 다시 만나는 것이 사랑의 극치[극치 (極致): 그 이상 더 나갈 수 없는 최고의 경지의 극도의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사랑 자체 아닙니까. “너 빨리 와. 나와 만나자.” 예수님께서 껴안고 춤을 추고 천사를 대동시켜서 천국까지 안내할 때 그 광경이 대단합니다. 성경을 볼 때 천사가 다 부러워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다시 만나는 것은 오직 사랑 때문입니다. 완전한 사랑의 극치 속에서 만납니다. 겨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나한테 미쳤고, 나도 예수님께 미친 사랑의 극치입니다. 미워하던 사람도 싫어하던 사람도 사랑하면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다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이별입니다. 사랑의 극치는 나누어짐이 없습니다. 미움도 없고 오직 사랑뿐입니다. 바로 그 사랑이 계속되는 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우리의 몸이 아픔도 없고 고통도 없는 몸으로 변화됩니다. 성경 말씀을 볼 때, 영육이 변화될 수 있는 말씀을 하늘에 간직해 두셨습니다. 마지막 주님 재림 직전에 사신을 보내듯이 말씀을 보내셔서 우리의 영육이 순식간에 영광의 몸, 영화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빌 3:20-21). 우리가 올라갈 때 천사들이 반기고 예수님이 반가워하십니다. 이 땅에서 믿던 가족들과 부모님, 같이 교회 생활했던 성도들을 다 만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이 없으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예레미야는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고 했습니다(렘 31:3). ‘무궁한 사랑’은 히브리말로 ‘아하바트 올람’인데 선민의 조건이나 형편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믿지 못하고 우습게 보는 것을 다 알지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다 통과시키셔서 무궁한 사랑의 관을 씌워 주시고 사랑을 덩어리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자(仁慈)’는 히브리말로 ‘헤세드’입니다. 무궁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로 왕관을 씌워 주듯이 관을 씌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살기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앉아서 “아이고 두야, 내 팔자야. 내가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십일조도 바치고 열심히 했는데 왜 일이 안 되냐. 남편은 남편대로 속 썩이고 자식은 자식대로 속 썩이는데 내가 무슨 팔자길래 원수가 많냐.”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을 깨달으면 안개가 개듯이 먹구름이 사라지듯이 다 없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07년 9월 30일 주일예배 박윤식 원로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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