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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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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 교수와 크리스천 학생의 대화
 글쓴이 : 관리자
 

위 이야기는 믿음에 대한 미국의 유명한 예화를 약간 각색한 것이다.

혹자는 만유보다 크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간의 오감으로 지각조차 못할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인간의 오감은 정확하게 보이지만, 조금만 실험해 보면 엄청난 오류투성이임을 금새 알 수 있다. 나뭇잎만 떨어져도 그것이 거대한 벌레인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 인간의 시각이다. 감기만 걸려도 후각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며, 후각이 제 기능을 발휘 못하면 미각도 덩달아 상실된다. 누구나 한 번쯤 호주머니에서 진동을 느끼고 핸드폰을 꺼냈다가 그것이 착각임을 인지하듯, 촉각 역시 부정확하다. 인간의 청각은 극히 비좁은 20Hz~20,000Hz 사이의 주파수만 들을 수 있으며, 다른 주파수에 존재하는 목소리 흉내와 실제 목소리를 제대로 분간하지도 못한다. 이처럼 부정확하고 한계가 명확한 인간의 오감으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을 인간 오감의 한계에 가두려는 역설일 뿐이다. 혹자는 오감에 ‘직감’이라는 요소를 더해서 ‘육감’이라고 말하지만, 직감이 오류투성이라는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심을 증명하는 여러 가지 논증들이 있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서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심이나, 양심의 존재,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없는 피조만물의 일정한 질서체계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나를 세상에 낳게 해주신 부모, 그리고 그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 식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궁극적으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셔야 한다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귀결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합리적인 논증들은 성경적 논증을 보조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논증하지 않고, 단지 ‘선포’할 뿐이다. 도리어 하나님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형상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엄중히 명령하신다(출애굽기 20:4, 신명기 5:8).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고 말씀하신 자리조차도 성전 안 언약궤 위의 두 그룹의 날개 장식 사이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출애굽기 25:22, 민수기 7:89). 인간의 어떤 재능과 능력을 발휘 한다고 할지라도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감, 혹은 육감의 대상이 아니라 제 영(0)감, 믿음으로만 지각할 수 있다. 제한되고 오류투성이인 인간의 감각과 달리, 믿음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세계를 생생하게 증거하기 때문이다(히브리서 11:1-3).

제 영(0)감, 믿음은 불완전한 오감을 완전하게 한다(이사야 32:1-5, 참고-이사야 44:18, 마가복음 8:17-18). 믿음의 눈으로 지금 바로 여기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믿음의 귀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의 음성을 듣자. 믿음의 입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 양식을 먹고 맛보며, 그 말씀의 향내를 맡고 듬뿍 취해 보자(고린도후서 2:15). 그리고 당신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져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양손을 활짝 벌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품에 푹 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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