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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으로 보는 암흑기 역사와 그 의미
 글쓴이 : 관리자
 

주전320~37- 암흑기의 역사

주전 323년 헬라 왕 알렉산더가 갑작스레 사망함으로 그가 남긴 이 넓은 영토는 그의 부하들에 의해 분할통치 되다가 각각의 왕국으로 세워졌다. 카산더는 마게도니아와 헬라, 리시마쿠스는 그리스 동북부의 트리키아, 프톨레미는 애굽(이집트), 그리고 셀류쿠스는 시리아를 차지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 지역은 주전 320년경부터 플톨레미 왕조 아래에서 지배되기 시작했다(이후 주전198년부터는 셀류쿠스의 지배를 받음). 이것이 30대 대제사장인 오니아스 1세가 40년간 대제사장으로 활동했던 주전 320년부터 280년까지의 시대적 배경이며 이 역사는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기록되어있다. 유대고대사는 제사장 집안 출신으로 주후37년에서 100년에 살았던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해 기록된 바사 지배 시대 이후의 유대 역사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 되고 중요한 사료이다. 이 외에도 구속사 시리즈 6맹세 언약의 영원한 대제사장에서 다뤄지는 총 77대 대제사장 족보(주전 1445~주후70년까지) 중 시대별로 구분된 30대부터 48대까지(주전320~37)의 대제사장에 대한 기록은 요세푸스의 다른 저서 유대전쟁사」「아피온반박문및 구약성서 이후 마지막 역사서로서 외경으로 분류된 마카비서를 참고하고 있다. 이 책들은 성경이 아닌 역사서와 외경이기는 하나 구약의 말라기서 이후 예수님의 탄생까지의 암흑기라 일컬어지는 역사를 알기에 유용하다.

요세푸스 생애와 그의 역사서

우선 요세푸스를 통해 그의 역사서 배경을 알 수 있는데, 제사장 마티아스의 아들인 요세푸스(Joseph ben Mattias)는 어머니 쪽으로 왕족의 혈통을 지녔다.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에서 소환당하고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구금에서 풀려나 유대 왕국의 새 황제로 임명받은 후인 주후 37-38년에 태어난 그는 조숙하여 일찍 교육을 받아 14세 때 많은 학식 있는 율법학자들이 조언을 듣기 위해 그에게로 몰려들었고, 16세 때에는 대학 과정에 입문해서 세 분파의 교리를 학습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3년 동안 광야에서 고행의 길을 걷기도 했던 그는 19세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바리새파와 평생을 함께 하였는데, 청년 시절인 26-27세 무렵 로마에 간 것은 로마 대화재와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라는 큰 사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그의 로마 도착보다 먼저 일어났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가 기독교로 개종했는지에 대해서는 그가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유추할 수는 없다. 다만 요세푸스의 이 로마행의 내면적인 중요한 동기는 로마로 호송된 유대 제사장들의 석방이라는 표면적인 목적을 넘어선 것이며, 이 로마 방문은 그로 하여금 로마가 천하무적임을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유대로 돌아온 그는 동족이 로마에 반기를 들고자 모의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무리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에 수리아 총독 케스티우스 갈루스는 곧바로 유대로 진격하여 66년 가을에 예루살렘을 거의 정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유도 없이 철수하다가, 벧호론의 좁은 골짜기에서 갈루스가 거느린 로마 군대는 어이 없이 참패하고는 전쟁준비에 돌입했다. 이때 요세푸스는 29세의 젊은 제사장으로서 비록 자격 미달 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의 실질적인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2명과 함께 갈릴리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요세푸스의 역사서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갈릴리 반란의 배경설명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입장에 따라 서로 공정치 못하고 치우쳐 있는 까닭에 그의 견해를 완전히 따를 수는 없으나, 그의 저서유대전쟁사에서 그가 로마의 비호 아래 이 책을 저술하고 있다는 간략한 진술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는, 요세푸스가 처음부터 갈릴리의 사령관으로 임명받았으며 그의 임무가 주전론자들에게 무기를 버리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로마 때문에 조국을 배반하려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는 의심을 받았던 그는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 전쟁을 피하기를 원했으나 사건이 빨리 진행되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는 쪽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안이 안디옥에서 진격해 오자 결국 요타파타의 요새에서 로마군의 공격을 버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로마군의 47일간의 포위공격으로 도시는 로마의 수중으로 떨어졌고(677) 요세푸스는 은신처에서 그의 친구들에 의해 살해될 뻔했던 상황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후에 로마군에 생포되었다. 또한 그는 베스파시안이 제국의 황제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유대전쟁사 3권에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다. 통역자와 중재인으로 지속적 교량역할을 하는 임무로 인해 유대인과 로마군 양쪽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요세푸스는 유대인들로부터는 미움을 계속해서 받았으나 로마로부터는 베스파시안의 총애는 물론 도미티안의 황제가 될 때까지 계속 총애를 받았다.

요세푸스의 또 다른 저서유대고대사는 유대민족의 역사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되는 구약시대사(1-11), 세상 문화의 근간이 된 헬라 시대를 주로 다룬 중간시대사(12-14),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그에 대한 증언이 담긴 신약시대사(15-20)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요세푸스는 이 책의 마무리에서 "이상으로 나의 유대고대사를 끝맺으려 한다. 본서의 속편은 유대전쟁사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주후 78년경에 저술한 유대전쟁사와 주후 92년경에 저술한 유대고대사에 이어 주후 100년 직후에 저술한 아피온 반박문은 유대주의를 옹호하는 변증서로 유대종교의 탁월성을 보여주며 헬레니즘 사상을 평가하고 그 약점을 기록한 책이다. 이는 유대고대사의 중간시대사와 그 내면적인 초점을 같이 하여 비록 동족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눈총을 받으며 로마의 총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요세푸스가 실은 세상의 주류인 헬라 문화의 중심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신만의 사명을 다하고 있었다는 외로운 뚝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외경의 연유와 내용

바벨론-바사-헬라-로마에 이르는 세계 변화 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늘어나고 알렉산더 이후 세계는 헬라(그리스)문화로 지배되었다. 영토의 지배는 로마에게 넘어갔어도 이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에 성경은 당시 공용어인 헬라어로 번역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각 지파에서 뽑힌 72명의 유대 대표들은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히브리어로 기록 되어있던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이를 '70인역'이라 하는데 이들은 구약 39권 이외에 그 때까지 전해내려 오던 책들 중에서 읽으면 도움이 되겠다고 여겨지는 책들을 뒷부분의 여백에 덧붙였으며 이 책들을 외경이라 부른다. 이것이 성경의 편집 선정 과정에서 제외된 문서들이라 정의되는 외경의 유래로서 그 용어는 그리스어 형용사 아포크리포스(apokryphos:감추어진)에 근거한다.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주전 2세기부터 주후 1세기 사이에 쓰여진 14권 혹은 15권의 특별한 책들을 통칭하기도 하며 이에 속하는 책은 다음과 같다 :1에스드라서」「2에스드라서」「토비트」「유딧」 「에스델」「지혜서」「집회서」「바룩서」「예레미야의 편지」「아자리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수산나」「벨과 뱀」「므낫세의 기도」「마카비 1」「마카비 2. 영어로 편집된 대부분의 외경은 예레미야의 편지를 바룩서의 마지막 장으로 취급하여 두 권을 하나로 묶고 있는데, 이 경우 외경은 총 14권이 된다. 이들은 그 쓰여진 시대적 배경이 바벨론-바사-헬라-로마에 이르는 제국들의 지배하에 유대인들이 어떻게 신앙의 끈을 붙잡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공통된 흐름과 주제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토비트이 책은 토비트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토비 1:1)고 책 첫머리에 밝혀져 있는 대로, 아시리아 왕에게 포로로 사로잡혀간 납달리 지파 사람 토비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내용으로 그 이름은 하느님은 나의 선하심이라는 뜻이다. 부유할 때나 시련에 처했을 때나 하느님을 믿는 신앙으로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선한 행동을 하는 토비트의 이야기를 통해 늘 한결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자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돌보아 주심을 일깨운다.

또한 총 6장으로 구성된 바룩서는 바벨론 유배 중에 있는 유대인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묵상형식으로 회개를 통해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다. 산문, , 편지 등의 여러 문학 유형으로 구성되었으나 그 초점은 우리가 경배할 분은 하나님 뿐”(6:5) 라는 마지막 장의 구절처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에 현혹되지 말고 하나님께만 의지해야 유배의 고난이 끝날 것이라는 데에 있다.

마카비서의 역사적 사실과 그 의의

이러한 외서들 중에서도 마카비 상?? 하는 역사문학으로 분류되며 주전 180-134년 역사를 기록한 가장 주된 자료로 여겨진다. 우선, 마카비는 반유대주의정책을 실시하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주전175 ~163) 치하에서 독립전쟁을 일으켜 3대에 걸쳐 독립을 하였던 고대 이스라엘의 마지막 독립 왕조의 이름으로 마카비서는 이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마카비서는 많은 유대인들이 일신의 안위를 위하여 민족을 배신하거나 죽음의 위협을 느껴 우상과 이방 관습을 받아들이는 풍토에서 신앙과 민족을 지키려 목숨을 던져 순교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만이 이스라엘이 살 길임을 일깨우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바벨론도 바사도 헬라도 로마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역사 속의 제국이 되었다. 그럼에도 영원하지 않을 세상의 권력 이동에 눈치보고 타협하느라 그 모든 세상의 지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당시의 유대인들과 오늘날의 우리에게 마카비서는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마카비서는 외경으로 분류된 1서와 2, 위경으로 분류된 3서와 4서로 구성되어 있다. 마카비 1서의 구조는 다섯 부분-이스라엘의 위기, 마따디아의 저항, 유다의 투쟁, 요나단의 투쟁, 시몬의 활약-으로 이뤄지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헬라 시대에도 계속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다음으로 마카비 2서의 구조는 크게 네 부분-이집트의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두 개의 권고 편지, 저자의 서문,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재봉헌, 저자의 맺는 말-으로 이뤄지며 예루살렘 성전이 아직 하나님의 관심 아래 있음을 보여주고 독자로 하여금 성전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하려는 의도에서 쓰여 졌다. 마지막으로 마카비 3서와 4서에서는 본래 이름의 범위를 넓혀서 신앙으로 종교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을 바카비라고 부르며 앞으로 대두할 모든 종교 박해자들을 경고하고 고난 속에서의 인간의 인내를 기록하고 있다.

마카비서를 포함한 외경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책을 의미하여 금기시되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주시해야 될 것은 암흑기의 역사 속에서도 대속적인 고난의 운명을 지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으며, 동트기 전 새벽의 짙은 어둠과 그런 시대 그런 역사에도 깊이 개입하시며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역사의 어느 부분에서건 증명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이 캄캄했던 역사의 기록 속에서 지극히 세속적인 권력 싸움과 종교적 박해, 그 속에서 세상과 타협해가는 유대인들의 영적 암흑과 이로 인해 예수님이 오실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필연성에 대해 깊이 통찰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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