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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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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히하우젠 증후군 (2010년 5월호)
 글쓴이 : 관리자
 

뮌히하우젠 증후군

은사님을 뵈었다. 은사님은 퇴직하시고 강원도로 거처를 옮기셨는데 가끔 협회 일이나 강연이 있으실 때 서울에 올라오셨다. 고희를 넘기신 은사님은 내가 기억하는 갈색 양복과 푸른 격자무늬 카디건을 입으셨고 변함없이 진한 초콜릿색 베레모를 쓰셨다. 흰머리가 좀 더 느셨고 볼이 더 야위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눈빛만큼은 더 맑고 투명하고 고요했다. 물 잔을 들어 올리시는 은사님의 주름진 손가락이 사르르 떨렸다. 은사님의 떨리는 손가락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떨렸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얼마나 치명적인 약점인가, 새삼스러운 아픔과 애처로움이 후끈 솟아올라 나도 은사님을 따라 물을 마셨다.

“자네, 뮌히하우젠 증후군이라고 들어 보았나?”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은사님이 물으셨다. 은사님은 가끔 이렇게 툭툭 질문을 던지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하거나 “들어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은사님은 흔해 빠진 걸 물으신 적이 없다. 이번에도 나는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건 말일세, 타인의 관심을 끌거나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행위를 말하는 건데 문제는 그게 병적이란 말이지. 그럴 듯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지어내고 마침내 자기 자신도 그 이야기에 도취되어 거짓말을 현실로 믿어버리게 되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는 아니지만 그런 거짓말이 항상 술술 나오는 거지. 그러면서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깨끗이 망각해 버리네. 참 이상하지. 이 시대에 더욱 늘어날 인간형이야…”
은사님의 눈빛을 응시하며 잔잔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은사님의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은사님은 이야기 솜씨가 뛰어나신 분이라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나는 금세 빨려 들어가곤 했다.
“아, 그런 게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제 주변에도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실제로 경험했던 두어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떠올린 얼굴들의 공통점은 사치를 좋아하고 잘 믿겨지지 않는 인맥을 자랑하고 금방 들통이 날 것인데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척 태도를 꾸민다는 것이었다.
은사님은 또 다른 현대인의 인간형과 그 풍경을 참 재미나고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시고 그것을 고발하는 여러 가지 책을 소개시켜 주시면서 꼭 읽어 보라고 당부하셨다. 또 내가 기독교인인것을 생각하셔서 관련 서적도 추천해 주셨다. 은사님과 헤어질 때 은사님의 닳고닳은 구두 굽이 눈에 들어 왔다. 은사님의 검소한 모든 것이 끝까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은사님께 여름에 강원도로 한번 찾아 뵙겠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은사님은 “자네는 좀더 깊어져야 하네, 좀더 치열하게 삶을 밀고 올라가게”라고 말씀하시고 등을 돌리셨다.
귀가하는 길에 자주 드나드는 서점에 들러 은사님이 말씀하신 책을 읽어 보고 그중 몇 권을 구입했다. 집에 돌아와 쉬면서 은사님이 들려 주신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아뿔싸, 한순간 나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그럴 듯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지어내고… 거짓말이 항상 술술 나오고…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깨끗이 망각해버리는 인간형’은사님이 이야기하실 때 나는 한 직장에서 일을 했거나 알음알음 지내던 사람들 가운데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었던 사람들을 떠올려서는 안 되었다. 그 순간 내가 별안간 떠올렸어야 하는 인물은 바로 내 자신이었어야 했다.
기도에 더 힘쓰겠어요. 구속사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읽겠어요. 어제보다 더 감사하겠어요.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겠어요…거짓말이다. 마음을 넓게 갖겠어요. 말을 더욱 조심하겠어요. 자랑하지 않겠어요. 남의 험담을 하지 않고 험담에 동조하거나 가담하지 않겠어요…거짓말이다.
아이들을 존경하고 개성을 높여 주는 교사가 되겠어요. 다정하고 친절한 선생님이 되겠어요.
애국심을 심어 주겠어요. 은밀하게나마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겠어요. 어떤 문제도 공유해주는 편안하고 따듯한 동료가 되어 줄래요…거짓말이다…거짓말이다. 어디 그것뿐일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런 거짓말 외에, 이미 끄집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깊이 수장되어 버린 거짓말들. 나야말로 뮌히하우젠 증후군 중증 환자였다. 은사님과 헤어질 때 여름방학 기간에 강원도로 찾아뵙겠다는 말씀을 못 드린 것은 내 의식 중에 만에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게 될까 봐서 차마 입 밖에 내놓지 못한 게 아닐까. 설교시간에 원로목사님이 소개해 주셨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마라, 거짓말이 나라를 망친다”는 말씀이 불현듯 생각나는 것도 연관된 양심의 가책이 아니겠는가.
주희의 <근사록>이란 책에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구속사 시리즈를 얼마만큼 읽어야 할까 고민할 때 해답을 준 말이다. 개인적으로‘읽기 전과 읽은 후의 인간 홍미례’의 변화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여기에 위에 나열해 놓은 온갖 종류의 거짓말이 참말이 될 때까지 라는 세부항목 하나를 더 추가해야겠다. 구속사 시리즈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저자 서문에서 답을 찾았다. 몸의 솜털을 헤아리듯이. 인격이나 생활의 변화, 종국에는 영생으로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완성된 후에는 이 땅의 모든 것이 사실은 작은 연습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 잘 섬기기 위한, 완전한 섬김을 위한 연습이었을 뿐이라는.
글을 써 놓고 나는 또 망설인다. 작고한 박경리 선생은 생명에 대한 연민 없이, 나르시시즘을 극복하지 않고서 글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한 줄의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초라하고 아프고 두렵다. 생명에 대한 연민이나 나르시시즘에 대한 극복에 대한 것 말고도 이 글이 하나님 앞에서, 은사님과 내 자신 앞에서 내가 뮌히하우젠 증후군 중증 환자라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물이 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홍미례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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