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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든 세상에 횃불을 밝히다 (2008년 7월호)
 글쓴이 : 관리자
 

촛불을 든 세상에 횃불을 밝히다

신앙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믿음, 소망, 사랑...그 중에 제일인 사랑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자 생각을 이야기 하면 ‘만남’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으로 나는 태어났다. 전도자였던 고3때 단짝 친구와의 ‘만남’으로 교회와 만났다. 교회와의 만남은 목사님과의 만남으로, 다시 예배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전도사님과의 만남으로 성경공부와 만났고, 성경과의 만남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와 만나게 된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과 만나게 된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잊어버렸던 나 자신과 만나게 된다.

이상의 만남은 나의 개인적인 신앙생활 18년간의 만남이다. 서술해 놓고 보니 정말 복된 만남의 연결고리다. 하지만 어찌 좋은 만남만이 신앙 노정 중에 있겠는가? 교회에서의 잘못된 사람과의 만남으로 낙담하고 시험에 들기도 한다. 비진리의 말씀과의 만남으로 영적 교만과 만나고, 잘못된 영과의 만남은 구원의 길이 아닌 다른 길과 만나게 된다.

‘잊어버렸던 만남’의 독후감을 쓴다는 것이 혹여 주제넘어 보일까 심히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만남’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서술했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중심한 복된 만남과 자신의 욕심에 기인한 잘못된 만남이 점철된 신앙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과 흡사하다. 비록 선과 악이 반복되는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삶이었지만, ‘잊어버린 만남’을 통해 ‘나’ 한사람을 향해 달려온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과 열심과 사랑의 물줄기는 온 몸을 휘감는다. 얼음냉수와 같이 우리에게 쏟아져 육신의 일에 분주한 영과 혼과 육을 일깨우고 있다.

첫 페이지에서 타락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의 시작과 만나게 된다. 언약을 성취시키고자 어둠속에서 횃불을 밝히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만나게 된다. 출애굽의 대역사 속에서 횃불언약을 잊지 않고 요셉의 관을 꺼내는 모세와 만나게 된다. 광야 40년 42번 진을 치는 치열한 생활 중에도, 1차 계수된 603,548명의 동족이 광야에서 죽는 가운데서도, 2차 계수된 광야 2세대들이 여호수아 갈렙의 뒤를 좇아 노도와 같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전쟁 중에도 요셉은 해골이 되어서도 4대만에 약속대로 돌아왔다.

페이지는 어느새 몇 장을 남겨 놓지 않은 후반부에 접어들었고, 이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나안땅의 중심 세겜에 요셉의 관이 묻히는 장면을 보고 있다. 실로 숙연하고 장엄한 광경이다. 수많은 환난과 전쟁과 아픔을 이겨내고 믿음의 4대를 통해 횃불언약을 성취시키고 천국의 상징인 가나안으로 요셉은 돌아온다.

만남과 언약은 두사람 이상이어야 한다. 잊어버렸던 만남의 두 주인공은 하나님과 ‘나’ 자신이다. 횃불 언약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첫 페이지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지만 타락한 사람의 자리에 내가 들어가보자.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렇게 소망이 없던 나 까지 구원시키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 앞에 감사와 감격만이 차고 넘친다.

전세계적으로 어두움이 짙어가는 이때에 못살겠다는 촛불, 종교적으로 섭섭하다는 촛불, 불신과 대립의 촛불이 거리를 뒤덮고 있다. 감정과 정의와 논리의 촛불로는 세상을 밝힐 수가 없다. 사람의 노력으로 소망으로 찾으려고 촛불을 든 세상이, ‘잊어버렸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의 횃불로 뜨겁게 타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 책을 건네어 본다.

글_지근욱 기자(청년3부 요셉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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