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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블레셋, 끝나지 않은 전쟁 (2009년 2월호)
 글쓴이 : 관리자
 

이스라엘과 블레셋, 끝나지 않은 전쟁

■ 2008년 12월
2008년 12월 27일,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삼삼오오 집에 가는 길에 갑작스런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150명의 사망자와 3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연말 연초, 전 세계의 이목은 세계의 화약고인 이 곳 팔레스타인 지역에 집중되었다. 올 1월 18일,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군을 가자지구에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철수시키기를 희망한다고 피력함으로써 일시적인 휴전상태에 접어들었지만, 22여 일에 걸친 전쟁에 가자지구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어 회복불능의 상흔을 떠안아야 했다.

■ B.C. 1000년 경
기원전 약 1000년 경, 이 곳 가자지구에 천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신전의 붕괴로 인해 제사에 참여했던 수많은 인파들이 희생당했기 때문이다. 재앙의 원인은 놀랍게도 ‘삼손’이라는 이스라엘 사사가 신전을 떠받치는 기둥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무너뜨려 버렸기 때문이다.
삼손과 블레셋간의 원한은 한 여인으로 인해 시작된다. 딤나에 간 삼손이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결혼하였으나 장인이 삼손의 친구에게 아내를 주자(삿14:20) 여우 삼백을 이용해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을 불살라 버렸다. 이에 블레셋은 그 여인과 아비를 불사르는 것으로 보복했다(삿 15:6). 이에 격분한 삼손은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죽이는 대 보복을 감행하였고, 힘으로 밀린 블레셋은 삼손의 아내 드릴라를 유혹하여 그를 체포하는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두 눈이 뽑히고 결박당한 삼손은 시간이 흘러 머리카락이 자라자 예전의 기운을 회복하였다. 자신의 결박을 보고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는 ‘가사’의 블레셋 방백들과 함께 삼손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성경은 이 때 삼손이 생전에 죽인 자보다 더 많은수의 사람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삿 16:30). 삼손이 사랑했던 블레셋 여인 들릴라가 ‘가사’사람이었고, 그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결박하여 끌려간 곳 또한 ‘가사’였으니,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격전지 가자지구의 도시 ‘가자시티’가 바로 성경의‘가사’이며, ‘ 팔레스타인’은 ‘블레셋’의 영어식 이름이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블레셋)의 분쟁의 역사는 참으로 오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야만한다.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사람들도 블레셋 사람들이었고(창 21:25),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들을 이삭 때 메우는 훼방꾼도 ‘블레셋’사람이었다(창26:14-15). 또한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가나안 족속 가운데 하나도 ‘블레셋’족속이었다. 때문에 ‘블레셋’은 구약 성경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이스라엘과 경쟁하며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족속 중에 하나였다.

■ 팔레스타인 문제
1948년 5월 14일,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이 선포되면서 성경 시대 이후로 잠잠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또다시 총성이 울려 퍼졌다.이스라엘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 아랍국들의 정규군이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면서 3차에 걸친 중 동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두면서 오히려 이스라엘의 영토는 더 확장되었다(1967년). 원래 시리아가 치리하던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골란고원, 이집트령인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까지 이스라엘이 점령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의 귀환정책을 적극 추진하여, 3차 중동전쟁 이후 점령한 지역을 자국 영토로 만들기 위해 유대인들을 대규모로 이 지역에 이주시켰다.
이스라엘이 강제로 정착촌을 건설하자, 졸지에 난민 상태로 전락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라파트의 지도 아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결성하고 자치정부수립을 목표로 이스라엘과 무력투쟁을 벌였다. 그러다 1995년 제 2차 오슬로 협정을 통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자치지구로 보장받았다.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던 상황에서, 2000년 9월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동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하자 이에 분노한 팔레스타인들이 일으킨 작은 봉기를 이스라엘 군대가 진압하면서 오슬로 평화협정은 깨졌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다시 점령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자살 폭탄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이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최근의 격전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 블레셋의 기원
성경은 ‘블레셋’사람들의 뿌리를 ‘함의 후손’으로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 10장 6-14절에 언급한 함의 후손 중 ‘미스라임’‘( 애굽’의 히브리식 이름)의 자손이 ‘가슬루힘’인데 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다고 하였으며, 이들 블레셋의 본거지가 ‘갑돌섬’(렘 47:4)이다. 따라서 블레셋은 원래 해양민족으로, 갑돌 섬에서 팔레스타인 서남쪽인 현재의 ‘가자지구’에 정착한것으로 보인다. 이후 블레셋 사람들은 ‘블레셋 평야’의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소산물, 그리고 해양민족 특유의 공격적 기질과 발달된 무기로 인해 이스라엘의 최대 난적으로 갈등을 일으켜 왔다.

■ 블레셋과 이스라엘, 갈등의 시작과 끝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거민들의 ‘진멸’을 지시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완전히 멸하지 못하고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함으로써 그들이 “올무와 덫이 되며 옆구리에 채찍과 눈에 가시”가 되고 말았다(수 23:10-11). 이 말씀에 근거한다면,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서 찾을 수 있다. 블레셋 족속을 포함,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않을 경우 그들이 ‘가시와 올무’가 될 것(삿 2:3)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는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현실화되고 있지 않은가! 가나안 정복의 교두보였던 ‘여리고’성은 오늘날‘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중심지로서,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본부를 설립한 곳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던 ‘블레셋’을 방치한 결과 그곳은 오늘날 무장 저항단체인 ‘하마스’의 본거지가 되고 말았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에 대해 상당히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더 넓게는 중동문제의 해결은 곧 성경시대의 예언의 성취로 종말의 때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성경시대부터 시작된 두 당사자 간의 공방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곧 나에게 올무가 되고 가시가 된다”는 교훈을 성도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중요한 본보기라는 점이다.

글 _ 홍봉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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