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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 인류의 잊어버렸던 만남을 꿈꾸며 (2008년 8월호)
 글쓴이 : 관리자
 

70억 인류의 잊어버렸던 만남을 꿈꾸며

‘잊어버렸다’는 ‘잊다’와 ‘버렸다’의 합성어이다. ‘잊다’는 타동사로서 무엇인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약속 따위를 기억하지 못하다’ , 또는 ‘해야할 일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지나 버리다’ , ‘지난 일을 단념하고 생각하지 않다’ , ‘은혜나 본분을 마음에 새겨 두지 않고 저버리다’ , 때로는 ‘물건을 어떤 곳에 두고 생각을 못하다’ 등의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잃다’는 말이 사물에 대한 표현이라면 ‘잊다’는 것은 기억이나 생각에 대한 표현이다. 타인이나 자신의 잘못에 의해 돈이나 생명, 친구나 길 등을 ‘잃어버린 것’ 이 되지만, ‘잊다’ 는 본인 자신의 기억이나 생각 속에서 잊은 것이기에 그 책임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게다가 ‘버리다’ 는 보통동사로 다른 동사의 어미 ‘-아/-어/-여’ 뒤에 쓰여 ‘그 동작을 완전히 끝내어 치움을 나타내는 말’ 이다. ‘버렸다’는 ‘버리다’의 과거 완료형 시제라고 한다면 ‘잊어버렸다’는 것은 ‘이미 모든 기억이 깨끗이 지워져버린 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것이다. ‘잊어버렸던 만남’ 이란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되찾은 만남, 회복된 만남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아브라함의 ‘잊어버렸던 만남’ 15년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에서 84세에 횃불언약을 맺은 다음, 무려 15년 동안 하나님과의 만남이 단절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창세기 17장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기 전까지 횃불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잊어버렸던 만남’ 이었다. 언약하시기 전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고 하신 말씀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셨는데 그 믿음이 퇴색했던 것일까, 아니면 잊어 버렸던 것일까? 아니면 사래에 대한 언급이 없으셨기 때문에 사래의 말처럼 다른 여자를 통해서라도 자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튼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15년이란 세월동안 횃불언약을 통한 아브라함과의 만남은 ‘잊어버렸던 만남’ 이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까? 그러나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기 17장에서 ‘전능한 하나님’ 으로 아브라함 앞에 다시 나타나셨다. 이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잊어버리고 있던 횃불 언약을 되찾아 주신 것이다. 못할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잊어버리고 하갈을 취하고 이스마엘을 낳고 가정에는 불화가 시작되고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15년은 아마 아브라함으로서도 무척이나 힘겹고 답답한 암흑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인류가 되찾아야 할 ‘잊어버렸던 만남’

우리도 믿는다고 하면서 횃불처럼 선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났던 그 감격의 순간을 잊어버린 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막막한 광야 길을 맴도는 인생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마치 처음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처럼 돼 있지는 않은지, 말씀과의 뜨거웠던 만남을 더듬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눈시울을 적실 수 있는 감사와 감격이 우리 가슴속에 되살아나야 한다. 지난 3박 4일간의 하계 특별 대성회는 우리를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잊어버렸던 말씀의 고향을 찾아가는 신실한 인생 나그네로 새롭게 하시기에 충분한 은혜의 시간이었다.

성경은 실낙원(失樂園)이 복락원(復樂園)이 되고, 집나간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고, 잃어버렸던 한 마리 양을 주인이 되찾아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역사이다. 70억 인류가 한 자리에 모인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바라보면서 인류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잊어버렸던 만남’ 이 속히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그리고 70억 인류에게 횃불언약의 뜨거움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부담으로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가까이에서 이 책을 전하는 것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마저도 잊어버린 인류에게 소망의 횃불이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세계로 가는 기차타고 힘찬 기적소리 울리자

‘세계를 애인 삼아’ 라는 표어가 생각난다. 1980년대 말 세계선교를 꿈꾸던 젊은이 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세계를 애인삼아 생명의 메신저, 축복의 수레가 되는 것을 삶의 바람이요, 인생의 비전으로 꿈꾸던 사람들의 모토였다. 그들이 다시 일어나 지혜와 힘을 모으고 꿈꾸었던 말씀운동의 기수가 되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마른 뼈에 생기가 돌아 군대를 이루듯 전 세계, 70억 인류를 향해 잊어버렸던 만남을 되찾아오는 구원의 철로가 되어야 한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말씀과 함께 달려가는 순간임을 깨달아 믿음의 기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몸에 채워가는 성숙한 여수룬(사44:2)으로 일어날 때인 것이다. 달리고 또 딸리기를 원하는 구원열차의 기관차는 굵은 연기를 내뿜으며 힘찬 기적소리를 울리고 있다. 70억 인류를 애인삼아 ‘잊어버렸던 만남’ 을 위해 하나님의 기쁨으로 다시 일어서라. 영영한 언약을 성취하는 행복자, 여수룬이여! 다시 주 앞에 서라.

글_배종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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