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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험 (2008년 8월호)
 글쓴이 : 관리자
 

마지막 시험
25:1-9

본문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여정의 끝자락인 싯딤에 머물렀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을 한번만 더 치면 가나안에 입성하는데, 마지막 순간 큰 죄를 지은 것을 볼 때 너무 안타깝고, “조금만 더 인내했으면, 이런 수치를 남기지 않고 가나안에 들어갔을텐데…”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광야 길의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경륜 성취를 위해 일어났다는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지은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만 싯딤의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싯딤에서 일어난 수치스런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습니다. 영적인 광야 생활을 통해 신령한 가나안 당인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시험이 있습니다. 싯딤 사건을 통해 지혜를 얻어 어떤 시험이 와도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말고사에서 불합격한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싯딤의 사건이 바로 기말고사 같은 시험이었습니다. 40년의 광야생활 동안 배운 것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생활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죄악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에 만족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니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새로운 생활로 바꿔 주셨습니다 ─ 먹는 음식, 입은 옷, 하루 하루의 일과 등 모든 삶의 방식과 목적이 전과는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기말고사의 내용은 바로 거룩입니다. 진정 거룩하게 구별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섞어보신 것입니다. 선과 악은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구별됩니다. 빛과 어둠이 섞일 수 없듯, 낮과 밤이 공존할 수 없듯, 물과 기름이 용해되지 않듯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은 죄악 된 백성과 섞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해 진정 거룩한 백성이 되었더라면 어떤 시험이 다가왔어도 섞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도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을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타락에서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과 악을 분별하고 우리 생활에서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입니다( 32:51). 본문에서 죽임 받은 이스라엘의 두령과 백성들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고 죄악 된 세상과 하나 됐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25:1-9)

 

시험의 본질은 먹는 것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온 시험은 보는 것먹는 것’,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선악과의 시험과 같은 시험입니다. 특히 광야의 시험은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먹는 것은 내 것으로 만들어 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육의 음식을 먹고, 지식을 먹고, 사랑을 먹고 삽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육의 사람은 육의 양식에 욕심을 부리고, 영의 사람은 영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6:63).

사단은 처음부터 먹는 것으로 유혹했습니다. 아담도 먹는 것으로 유혹 받았고 예수님도 40주야를 금식하신 수에 먹는 것으로 유혹 받았습니다( 4:3-4). 아담은 육을 위해 먹음으로써 유혹에 굴복하여 타락했으나 예수님은 영의 약식인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관계에서도 에서는 육의 양식을 위하여 하늘의 장자권을 팔아버려 축복까지 잃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먹느냐라는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린 채 육을 위해 먹었습니다. 먹는 음식의 출처를 불문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먹은 것입니다. 40년 동안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에 바친 음식을 먹어온 것입니다. 보이는 음식만 먹은 것이 아닙니다. 죄악 된 이방의 사상과 신앙, 풍습까지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과 육을 합하고 믿음까지도 굴복한 것입니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싯딤 사건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의 믿음의 상태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회개하고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식을 돌아보고 죄악을 제거하지 않고는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살아남을 수 없고 가나안 족속의 유혹과 죄악에 물들 수밖에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시련을 통해 가나안 입성을 준비시켜주셨던 것입니다. 물론 시험을 이겨냈으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부족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시고 뜻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8:28).

 영적 가나안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각자의 삶에도 싯딤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수치스런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실망을 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미 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죄악 속성을 다시 끄집어내기 위한 역사인 것을 깨닫고, 다윗과 같이 회개하고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창조함을 받아 가나안 일곱 족속을 다 물리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허락받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먹기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서 먹는가?” 이제는 나를 위해 먹을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그리고 나를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먹는다면 이제는 선악과를 먹지 않고 생명과를 먹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

글_김사무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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