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퇴원하여 순조롭게 일상으로 복귀하였습니다. 너무도 빠른 회복에 친구들은 “쟤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위암 수술받은 사람이 이렇게 나다녀도 되냐?” “내가 누구냐?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장로 아니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누는 인사말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고 약간 자만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퇴원하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의 일을 하며 살리라 마음먹었었지만 우선 몸부터 챙겼습니다.
수술로 축난 체중과 체력을 보강하고자 기름진 음식을 탐식하고, 오랫동안 주도했던 산우회 친구들과 더불어 산행에 먼저 어울렸습니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요. 위암 수술 받은 사람이 퇴원 10일 만에 등산을 하다니요! 구역 식구 중에 병환으로 인해 구역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나이 많은 집사님이 있습니다.
등산에 앞서 먼저 이분을 심방해서 기도하고 병 낫기를 간구했어야 옳을 일이었습니다. 교구 내 여타 구역에도 원치 않는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식구가 여러 분 계십니다. 먼저 이런 분들을 찾아 심방하고 기도했어야 옳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건강을 자랑하고 세상을 자랑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는 등한시했습니다.
이렇게 수술 전과 다름없이 생활하는가 싶더니 소화가 전혀 되지 않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다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원인은 위 점막 절제한 부분이 위축되어 음식물을 창자로 내려 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에 스텐트를 삽입해서 절제된 부분이 완전히 재생될 때까지 두었다가 제거해야 하는 시술을 받고 퇴원했습니다. 퇴원시 체중이 정확하게 10kg 빠졌더군요. 며칠이 지나 입맛이 돌아와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되자 완전히 치료된 줄 알고 쾌재를 부르며 하루하루 살찌우기에 골몰하다가, 드디어 스텐트 제거를 위해 지정된 날짜 7월 4일 다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삽입한 스텐트가 살 속에 묻혀 도저히 제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복해서 위 2/3를 잘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입니까!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이런 때 쓰나 봅니다. 순간 자만과 오만이 사라지고 모든 것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볼지어다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욥기 5장 17, 18절이 생각나 하나님께 굳게 의지했습니다.
급기야 7월 10일 수술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들은 한 번도 받기 어려운 수술을 두 번씩이나 받게 하시면서까지 미련한 것 깨우쳐 회개하게 하시고 사람 만들어 주시려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감사 감읍(感謝感泣) 눈물만이 흐를 뿐입니다. 수술 후 이틀간은 심한 통증으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때마다 진통제에 의지해서 어느 정도 진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아픈 와중에도 간호사가 돌보러 오면 웃으면서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요?” 간호사, 정색을 하며 “모르겠는데요! 누구시지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란 말이야! 그러니 아프지 않게 잘 해줘요.”하며 통증을 달래기도 하였습니다. 몸은 극도로 쇠약해지고 극한의 고통은 수시로 업습하는 가운데,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도 떨쳐내기 어려운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욥기 23장 10절 말씀에 의지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통증에 시달리다가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시골에서 선친께 종아리 맞은 일이 생각나 펑펑 울었습니다. 사연인즉 방학 때 내려가 이웃 동네 후배 두세 명과 어울려 읍내에 들어가 호기롭게 술을 마시고 객기를 좀 부렸던 것을 선친께서 아시고 불문곡직 “회초리 꺾어와 목침 위에 서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분부대로 종아리 세 대를 맞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 꿇어 아버지 손을 붙잡고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하며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아파서 운 것도 아니요, 억울해서 눈물 흘린 것도 아니요 한순간 오만에 빠져 ‘장한 아들’에 대한 기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절망감을 안겨드린 회한과 “이놈아, 언제나 철이 들겠느냐!”고 호통하신 그 말씀에 담긴 자식 사랑에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여리게 그리운 아버지이시지만, 내가 모시지 못해 시골 계셔서 전도하지 못한 불효를 씻을 길 없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입니다. 눈물은 하염없이 흐릅니다. 다시 비몽사몽간입니다. 하늘이 울렸습니다.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래도 못 버리겠느냐! 네가 언제까지 자고(自高)하겠느냐! 매를 더 맞아야 하겠느냐! 이제는 네 행실을 고칠 수 있겠느냐!”는 음성이 따갑게 귓전을 울려 정신을 차려 보니울고 있는 나를 옆에서 돌보던 아내가 나를 깨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다 버리겠습니다. 세상것 다 버리고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언행심사를 바로하고 하나님 아들답게, 장로답게 멋지게 살겠습니다. 살려 주시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