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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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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 변화 나도 따르렵니다
 글쓴이 : 관리자
 

가정의 달 편지_ 어머니, 그 변화 나도 따르렵니다
백활영 집사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오랜만에 들른 고향 방문 때의 일이다. 대문에 들어서는데 방안에서 어머님의 찬송가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교회 다니신 지가 몇 년이 되니 이제 찬송가를 외워 부르실 수 있으시구나’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다. 헌데 놀라운 사실은 어머님은 찬송가 책을 펴놓고 가사를 읽으시며 찬송가를 부르시는 것이었다.

“어머니, 글 읽을 줄 아세요 ?”
나는 호기심에 인사말보다 먼저 다짜고짜 여쭈어 보았다.
“그럼, 알제.”
“누가 가르쳐줬어요?”
“하나님 아부지가 가르쳐주셨단다.”

도대체 믿기지 않는 어머니의 그 싱거운 대답에 조바심이 난 나는 당장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찬송가 책을 여기저기 뒤적이며 어머님의 읽기 능력을 시험해 본 것이다. 그런데 느리기는 하지만 또박또박 어머니는 글자들을 완벽하게 읽어내셨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초,중학교 시절 나는 가끔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리려고 애를 썼던적이 있었다 . 그러나 그때마다 번번이 내 노력은 헛수고로 끝났던 터라, 어머니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며 포기해 버린 지 수십 년이 흐른 셈이다. 그런데 그사이 어머니에게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니.
생각해 보면 변화는 또 있었다. 그중 두드러진 하나가 4대 독자인 나의 위상이 두 단계나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매사에 욕심이 남 다르신 어머님은 특히 자식 욕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 가문에 4대 독자 신세를 면하게 해보시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딸자식 하나도 더 얻지 못하신 어머니는 그 후 세상의 중심에 나를 두고, 무슨 일에든 나를 우선시 하셨다. 그런데도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은 걸핏하면 병치레요 무얼 먹여도 튼실치가 못하니 어머니 눈엔 내가 바람 앞의 등불 같았으리라

급기야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대실 위안처는 무당과 점쟁이 집이 되었다. 그래서 집안 여기저기엔 선영단지며 조왕단지가 보물처럼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집에선 한 달이 멀다하고 무당이 빔 손을 하거나 굿판이 벌어졌다. 제사는 1년에 열 세 번이나 모셔야 했다. 그러다보니 단 세 식구 살림인데도 어머니 손엔 물이 마를 날이 없고, 이 생각 저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으셨다.
그러다가 50대 중반에 들어설 즈음 어느 날, 무슨 은혜였던지 하나님의 손길이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알 수 없는 통증으로 한없이 시달리시던 어머님이 우연한 기회로 목사님의 안수를 받고 씻은 듯이 나았던 것이다.
그 크신 예수님의 권능을 깨달고 그날 이후 어머니 마음은 오직 한곳을 향하셨다. 예수, 오직 예수님뿐이셨다. 혹시라도 근심거리가 생기면 ‘암, 우리 대장 예수님이 다 해결해 주시겠지, 아멘!’ 하시며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버리셨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잡신들에게 절절 매며 끌려 다니시다가 예수 한 분만 의지하게 되니 얼마나 편한 삶이었겠는가.
그때 이후 모든 일의 우선순위도 바뀌었던 것이다. 언제나 1번이던 내 서열은 하나님과 목사님 다음으로 강등되었다. 도시에서 과일을 사오시거나, 바다에서 낙지라도 사오시면 전에는 일단 모두 내 차지이던 것이 이제하나님 몫, 목사님 몫이 정해진 뒤 내 차례가 되었단 말이다. 나는 처음엔 그런 점이 불만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기도와 열심이 얼마나 좋은 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달게 됐다.
우선 어머니는 성경과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지혜와 지식을 얻어 더 유식해지셨다. 그리고 남에게도 전보다 더 친절히 대하며 베푸는 삶을 즐기셨다. 하루하루의 일상도 즐거움이 넘치고 주일을 중심으로 규칙적인 삶이 되었다. 집안도 더 청결해졌으며 옷맵시도 더 단정해지셨다. 무엇보다 예수 믿는 기쁨을 남에게 자랑스럽게 전하셨다. 처음엔 아버지를, 다음엔 이웃들을 전도하시고 급기야 이 못난 자식에게도 믿음의 의미를 알게 하셨으니 말이다.
아카시아 향 스미는 5월이 왔다. 그 싱그러운 계절 5월 어느 하루, 어머니는 소복단장한 믿음의 자녀들의 인도로, 하얀 상여 타고 아버지 품에 안기셨다. 그 평화롭고 아름답기마저 했던 장례행렬을 떠올려 보니 어느덧 열여섯 해가 다 되었다. 헌데 만삭동이인 나는 아직도 젖먹이 신앙에서 허덕대고 있으니 한심스러울 뿐이다. 허나 어머님의 간절한 소원이 내가 세상보다 주의 전(殿)을 점점 사모하게 해주시리라 믿으니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어머니!
‘예수 믿어라, 예수 믿어!’ 그리도 열심히 권면하셨던 그 기도에 소자 못 다한 감사 거듭 드립니다. 부디 그곳에서 평강 누리시고 나도 어머니의 아름다운 변화를 따르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내가 구속사(救贖史)의 오묘한 섭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두 손 모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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