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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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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을의 주일 풍경
 글쓴이 : 관리자
 



그 가을의 주일 풍경_ 권오연

초등학교 근처를 지나는 길이었다.
문구점 앞. 동전을 넣으면 동그란 플라스틱 공 같은 게 빠져 나오는 자판기 옆에 몸이 불편해 보이는 육중한 체구의 할머니께서 신문지 한 장을 옮겨가며 깔고 비질을 하고 계셨다. 보도블록 틈새까지 산산이 조각난 그 플라스틱 부스러기들을 사람들의 부지런한 왕래 속에도 아랑곳없이 말이다.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그때까지 그 일을 하고 계셨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신문지 조각은 이미 할머니의 체온을 보호해 주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인생의 연륜이 웬만큼 쌓이면 타인들의 이목에 이 정도쯤 자유로워질수 있을까. 지나치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10년 전 일이 오버랩 되면서 내가 평강인으로 첫발을 디뎠을 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날은 주일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멀미에 토하고 징징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안성에서부터 왔는데 나를 데리고 온 전도자가 성경공부 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헐레벌떡 시간 맞춰 뛰어갔는데도 자리가 없었다. 자리는 고사하고 밖에 있는 분들까지 강의내용을 들을 수 있게 앞뒤 출입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요는 밖에 있는 분들의 수강 모습이었다. 창가에 서서 들으시는 분들이 계신가 하면, 계단식으로 된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무언가 열심히 필기하시는 분들은 70대쯤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들이셨다. 새벽부터 나서느
라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내게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찬바람의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초 가을이었다.

우두커니 신기하게 바라보는 나 같은 이방인들의 눈길은 안중에도 없는 것같이 타는 듯한 정열로 정말 좋아하여 그것에 매몰하는 즐거운 긴장감과 충만함이 눈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만나의 말씀이기에 이렇게 집중할 수 있을까.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이분들을 움직이는 내가 알지 못하는 원동력이. 이제부터 찬찬히 알아봐야겠다고 마음에 갈피를 꽂아두기로 했다.

우리교회 오기 전 허한 마음, 어디 정착할 곳이 없었다.
‘인생’이라는 산맥을 등반할 때도 길잡이가 필요한데 그런 허한 마음을 다잡아주는 목자가 없었다. ‘나’란 사람이 없는 채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 내가 나를 모르고 살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왔다. 온 정신이 다 닳아빠진 형광등처럼 깜빡거려도 혼란만 가중된 채 스스로 표류하게 만들었다. 교회에 가면 항상 말씀하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정말 있을까, 그런 말씀하시는 목사님은 그 생수의 맛을 아시고 맛보시고 우리에게 먹어 보라고 권하시는 걸까. 나는 왜 주일마다 와서 말씀을 먹는데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물음표가 많았던 애굽 시절이었던 것 같다.



세월이 더 많이 포개진 지금, 주일 아침 남편과 작은아이와 함께 새벽 5시 40분에 집을 나선다. 교회식당에서 밥을 먹고 중등부 교사 경건회를 시작으로 3부 예배와 다시 중등부 공과공부와 구속사 사관학교 6권 강의를 듣고 집에 오면 저녁 8시 조금 넘는 시간.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다음날 출근준비를 위해 취침. 남편과 두 아들이 주일 2부 예배 성가대에 서고 온 가족이 동일한 말씀을 받으니 잠자리에 눕기 전 나눌 말들이 많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남편의 퇴근시간 9시 반쯤 매일 가정예배를 드린다. 각 기관지 주보에 실린 말씀들을 돌아가면서 상고하다 보면 두서없이 필기했었던 노트에 첨삭도 하고 정리도 되고 좋은 시간인 것 같다.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열심과 꺾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고집 속에 내가 첫발을 디뎠던 그 가을이 10번을 지나는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중요한 건 어느새 우리도 바깥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강의를 듣는 멤버가 되어 있었다. (현재는 성전증축공사로 이런 풍경이 줄어 들었지만)
그때는 그런 것들이 신기하다 못해 기이한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이런 평강제일교회로 불러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흘러내린 그렇게 궁금해 했던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맛을 보고, 무릎을 적시고 이제 헤엄칠 정도까지 될 정도의 단계는 아니지만 맡기며 살 수 있는 평안한 마음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동안 2,084주 안식일을 지키는 동안 하나님께서 근심거리라고 하셨다는데 나는 몇 주를 지켰는지 셈해 보고, 그중에서도 찬송, 기도, 말씀에 집중했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안식일은 며칠이나 될까 또 생각해 본다. 입에서는 달짝지근하다고 덥석덥석 먹었던 만나가 배에서는 쓰다고 불평하던 날들도 하나님 아버지는 정확하게 저울에 달고 계실 거라고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어느 기관 플래카드에 써있는 ‘이제부터는 부흥입니다’라는 구호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열매 맺는 앞으로의 시간들이 될 수 있게 간구하며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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