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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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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보다 3년 일찍 부름 받았죠" 이광우 장로 (2008년 8월호)
 글쓴이 : 관리자
 



“일주일 남겨 놓고 아내로부터 출전 권유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젊은 사람들이 출전하는 거라 생각하고 나이 많은 나까지 나갈 필요가 뭐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며 출전 선수가 부족하다는 소리에 빈자리를 채우는 것으로도 하나님 아버지 일에 동참하는 일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황금종 출전 전에 한번 읽은 「잊어버렸던 만남」을 강제성을 띠고 다시금 두 번을 더 읽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황금종을 의식하여 요약, 정리를 하였고 세 번째는 대학 입시마냥 공부하였습니다. 물론 지식적인 암기였지만 이를 통해 다시 읽게 되는 「잊어버렸던 만남」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2008년 하계 대성회 기간 ‘황금종을 울려라’에 출전하게 된 이광우 장로는 모든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또 감사를 잊지 않으신다.

신앙을 성장하게 한 부흥회를 만나다
“모태신앙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시면서 신앙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10살쯤인 걸로 기억이 됩니다. 그 때는 신앙 생활이다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저 교회 가는 것이 좋았을 때였습니다.” 이광우 장로는 중, 고등학생을 지나면서 신앙생활이 자랐다. 특히,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집회는 신앙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아버님 회사 이전 관계로 경상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때, 교회와 집의 거리가 몇 십리나 떨어지게 되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교회 부흥집회가 한번 열리면 일주일은 꼬박 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신앙심에 불타 먼 거리를 마다않고 하루도 거르지 않은 채 참석했다고 한다. “중,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주일학교 반사(교사)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속 시원케 하는 말씀을 만나다.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하게 되었고, 시험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한 동안 신앙생활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신앙생활은 아니었나 봅니다. 집과 부모님을 떠나 지내게 되니 신앙생활은 점점 나태하고 게을러졌습니다. 마침 그 때 속독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 학원에서 어느 집사님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평소 성경에 대한 의문점이 많았던 이광우 장로에게 그 집사님은 의문점을 풀어줄 또 다른 집사님 한 분을 소개해 주셨다. ‘왜 수 많은 종교들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달려가는데 굳이 기독교 를 믿을 필요성은 무엇인가?’ ‘역사학적으로 볼 때 아담 시대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였는데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등등 의문점 투성인 성경에 대해 그 집사님은 너무나 명쾌하고 논리적인 답변을 해 주었다. 대학교 재학 시절 방학만 되면 성경공부를 위해 집사님과 함께 심방을 다녔다. “집사님의 가방을 들고 심방을 따라다녔습니다. 물론 한 말씀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만큼 열심을 내어 성경 공부한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심방 가서 말씀 받고 이동 중일 때는 차 안에서 궁금한 것을 해결 받았습니다.” 1980년 8월 노량진 교회에서 미스바(찬양성가대) 활동을 시작으로 평강제일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현숙한 아내와 의와 공도로 자란 자녀를 만나다.
“힘들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죠..” 그 한마디였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인 이광우 장로.. 사람마다 힘들었던 순간은 다 있으리라 만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눈물이 맺힌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정보는 국력이다.’ 직장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충성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이광우 장로는 국가정보원에 입사하였다. 그리고 열심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공직에 몸 담은지 25년, 지난 12월에 퇴직을 하게 되었다. 25년동안 무사히 공직 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음도 정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 일이었다. “우리 조직이 원래 비밀이 많은 조직이지 않습니까!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이 있습니다. 한 창 나이 때 진급을 앞두고 한번은 안 좋은 일로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의 신앙을 지금에서 돌아보면 한 마디로 바닥을 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잠깐의 회상.. “사회생활 정말 어렵습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있으면 자연스레 더 많이 가지려는 생각, 더 높이 올라가려는 생각들로 믿음을 잃기가 쉬워집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좌절을 맛본다는 것은 정말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새 이광우 장로의 신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세상의 힘과 권력 앞에 무기력해져 있었다. 그 순간 그를 일으켜 준 것은 바로 아내와 두 아들,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족이었다. “전도서4:10 말씀처럼 넘어질 때 나를 일으켜줄 누군가가 없는 사람은 오히려 화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순간에 처해있던 나에게는 다행히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를 일으켜 준 것은 바로 아내의 금식 기도와 두 아들의 눈물뿌린 기도소리였다. 현숙한 믿음의 아내를 만난다는 것, 또한 자녀를 의와 공도로 교육함에 다시금 그들로부터 신앙을 되찾을 수 있는 새 힘의 원천이었음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고백한다.

55살의 정탐꾼 여호수아를 만나다.
“신학교 1학년 2학기 째입니다.” 신학교 말에 금새 얼굴에 웃음꽃이 번지는 이광우 장로. 지난 25년간의 충성된 공직 생활 중에서도 늘 마음 한 구석 하나님 일에 대한 열심의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로 목사님께 신학 하는 것에 대해 상의 드렸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아니다’라는 말씀 뿐이셨습니다. 그래서 ‘나의 인간 됨됨이가 성직자로서는 모자라는 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공직에 충성하여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신학함의 마음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공직생활 25년 정년의 마감에서 원로목사님의 ‘이제 교회 일 해야지, 신학교에 입학하라’는 명령에 그 동안 아쉬움의 마음 한켠을 펼 칠 수 있기에 기쁘게 지난 12월 11일 신학교에 등록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세상에 욕심내지 말자, 세상에 눈 돌리지 말자, 세상에 귀 기울이지 말자’의 3가지 철칙을 교훈삼아 신학 공부에 여념이 없다. 1955년생, 그의 나이 올해 53살.. 물론 세상 일 다 마치고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신학 공부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늦은 나이죠. 그러나 55살에 정탐꾼으로 부름 받은 여호수아를 생각하면 젊은 나이 아닙니까? 한국 속담에 귀머거리, 벙어리, 봉사 3년이 되어야 시어머니로부터 곳간 열쇠를 넘겨받을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제게는 그 시기입니다.” 비록 세상 일 다 마치고 시작하는 신학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고 일을 맡기실 그 때를 기대하며 철저한 준비를 이루는 지금의 순간이 가장 귀한 시간이다. 또한 나이를 떠나서 말세 지말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으나 추수할 일군이 부족함을 깨닫고 반드시 이수해야 할 교육이라면 신학 교육임을 강조한다. 진정 감사자는 어려움을 이겨낸 인내 속에서만 나올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귀머거리, 벙어리, 봉사3년의 인내의 시간을 이겨내 반드시 하늘 나라 곳간 열쇠를 거머쥐게 될 이광우 장로를 기대하며 기분좋은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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