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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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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할아버지의 신앙이야기" 이남진 장로 (2008년 6월호)
 글쓴이 : 관리자
 

“교회 역사로 치면 목사님들이 더 많이 잘 아시죠. 제가 뭘 알겠어요” 그리고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곳에서 나무 가꾸는 것은 내 평생 직업입니다.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평생을 통해 몸소 경험하신 내용임을 밝히신 장로님. 참평안지 초대석을 통해 “내가 뭐 한 것이 있나! 뭐 자랑할 만한 것도 하나 없는 데 뭐…” 교회의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 때문이었다고 강조한다.

 

능력 있는 예수의 이름을 알게 하시다.

 “교회는 물론이고 예수를 알지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나가기 전, 하루는 집사람이 하혈을 해 작은 병원에 입원했지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길래 큰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그런데 그 모습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말을 건넨 사람이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사모님을 보더니 “어디 아프신가 본데…”하고 묻더란다. 그래서 병원을 옮기기 위해 가는 길이라고 하했는데 그렇게 우연히 만난 한 사람으로부터 서울 중앙교회 목사님에게 안수 기도 받으실 것을 권유받게 됐다. 마침 그 교회는 집 앞과는 불과 100m 남짓 거리에 있는 곳. 그래서 약속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낮에 집사람이 잠깐 잠이 든 사이에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찬송소리를 듣고 나서 마음이 후련해지는걸 느낀다고 하니 이 일이 보통일이 아닌가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께 안수 받고 그 날 하혈하던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이후 사모님은 교회를 나가시게 되었고 무엇보다 새벽예배를 매일같이 참석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남진 장로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조그마한 공업사에서 일을 할 때 점심 식사로 나온 뼈 곰탕을 먹게 됐는데, 곰탕 속에 있던 뼈가 어금니에 마주 씹히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후, 이가 쑤시기 시작했지만 병명은 밝히지 못한 채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교회에 열심이던 사모님은 목사님 안수를 받자고 권유를 해 새벽 일찍 교회를 찾아갔고 이가 나을 때 까지 새벽 예배를 드리면서 결국 이가 아픈 병이 낫게 됐다.

 

평강제일교회 역사의 현장을 함께 하다.

이남진 장로의 신앙은 결국 치유로부터 시작됐다. 아내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과 이남진 장로의 치통이 치유되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교회는 1972년도 천막교회부터 역사가 시작된다. 홍은동에 주택을 지으려고 닦아 놓은 집터가 바로 교회의 터가 돼 그곳에서 하얀 천막을 쳐놓고 예배를 드리게 됐다. 그 곳이 바로 일석교회였는데 물론 그 당시 이남진 장로는 이미 서울 중앙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응암동에 살고 있을 때다. 하루는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장옥심 전도사님 집을 찾아왔다. “주일 아침 예배드리러 가야 하는데 그날 아침에 찾아오신거죠. 그 때 일석교회에 대해 알지도 못했는데 그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이니 꼭 거기 가야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죠. 마음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면 여기가 천국이고 여기가 교회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듣다보니 그 날 교회에 가야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집에서 150m 떨어져 있는 교회를 가지 못하고 12시를 넘겨버렸다. 그래서 내친김에 점심을 먹고 난후 전도사님과 함께 천막교회로 향하였다. 백년사 절간 옆 오솔길 옆에 나 있는 지름길을 따라 걷다가 고개를 넘어서니 하얀 천막이 나타났다. 대약 한 70명 정도가 모여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전도사님의 도움으로 원로목사님과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됐는데 그 때 하시는 말씀이 “같이 일해 봅시다”였단다. 그러면서 김남진 장로에게 직접 악수를 청하셨다. “그 날 집회 때, 십자가를 증거하셨습니다. 그냥 눈물이 땀과 범벅이 돼 십자가를 증거하시는데 아~ 참 저분은 보통 분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설교를 너무 감명 깊게 듣게 된거죠. 마음이 울리는 설교 말입니다.하지만 김남진 장로는 바로 교회에 등록하지 않았다. 일석교회는 그 후 천막 교회를 접고 신림동에 교회 건축 부지를 구입하게 됐는데 시흥에서 국화꽃 농사를 짓고 있던 장로는 시흥에서부터 신림동까지 교회 성전 건축 봉사를 위해 참석했다. 그렇게 땀과 정성을 신림동 교회에 쏟은 후 다시 노량진 교회가 건축될 때도 늘 봉사로 일관한 김남진 장로는 노량진 교회 옆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에서 머물게 됐다. 그러던 중 김남진 장로의 나이 50세 일 때 교회에서는 원지동에 위치한 수양관을 구입한다. 지금이야 교통편이 발달했지만 1979년 당시 수양관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노선은 단 두 개. 아이들 학교 생활은 물론이고 생활도 여의치 않았을 이 곳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들어가 관리하게 된다.

 

천국 정원을 가꾸다.

장미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은 이남진 장로. 철마다 나무와 꽃은 자신의 모양과 색깔을 드러내면서 창조 목적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 “일반 성도들은 나무를 쳐다보면서 그냥 아~ 좋다, 아름답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나무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소나무를 솎아 줄 때도 마찬가지죠. 처음 자를 때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훵하고 엉성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가 뭉실뭉실해집니다. 솎아 줄 때 제대로 솎아줘야 소나무도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게 됩니다.이남진 장로는 나무 하나 풀 한포기를 가꿀 때도 교회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이남진 장로의 나이는 70세 남짓. 그럼에도 성전 내의 많은 나무를 직접 올라타기도 하면서 손수 가꾼다. “나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작업을 계속 할 겁니다. 많은 성도님들도 나무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고 강조했다. 평생 가까이, 그리고 옆에서 나무를 지켜보며 우리의 신앙 역시 소나무와 같이 푸르름을 유지하길 바라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_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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