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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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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구원의 복음은 영원한 복음
 글쓴이 : 관리자
 
 



나의 구원의 복음은 영원한 복음

로마서 1:1-5, 요한계시록 14:6

2013년 새해를 맞았을 때 그렇게 멀리만 보이던 한 해가 벌써 끝자락입니다. 1년이 참으로 짧습니다. 사람은 한번 났다가 죽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정해진 인생 동안 마땅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맘에 드는 사람만 좋아하고, 맘에 안 들면 싫어하는 게 사람입니다. 동향, 친척, 동창은 반가와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속으로는 싫어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습니다. 이중인격입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가난한 자도, 못 배운 자도, 죄인도, 천한 사람도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시면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주만물을 찬송하신 하나님께 찬송 부르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이사야 43:21). 이제 새로운 해가 또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해도 이런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 해가 그 해일 뿐입니다. 2014년이 온다고 해가 거꾸로 뜨지는 않습니다. 똑같은 나날이 계속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죄악 된 세상에는 새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습(舊習)을 좇는 우리의 옛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돼야만 새 사람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4:22-24).

기쁨의 소식 ‘복음’

복음은 ‘만백성들에게 기쁨을 주는 좋은 소식’입니다. ‘죄인의 용서’, ‘값없는 구원’, ‘참 평화’, ‘영원한 생명’, ‘연속되는 기쁨’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기독교는 복음의 종교입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복음을 위해서 택정(擇定) 받았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1-2). 평생 하나님 믿는다면서도 ‘영육간 복음으로 택정 받았다.’ 고 깨닫고 믿는 성도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런 믿음이 없다면 오늘도 그날, 내일도 그날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히 오늘과 내일이 다릅니다. 기차가 서울역을 출발해 용산,노량진,영등포를 지나가듯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멈춤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좋은 이야기’ ‘좋은 소식’ ‘좋은 메시지’입니다. 아들이 없던 집에 아들이 태어났다면 육신적으로 ‘복음’입니다. 조국이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고 영토를 되찾았다면 나라에 ‘복음’입니다. 복음은 소망을 줍니다. 위로를 줍니다. 기쁨을 주고 은혜를 깨닫게 해줍니다. 감사를 줘서 만족하게 하고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7:14). 미가 선지자는 메시야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실 것이라고 장소까지 예언했습니다 (미가 5:1-15). 태초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다는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장소까지 알려주시며 선포하신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이사야 52:7)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때 이스라엘에 제사장, 학자, 장로, 유사, 종교 지도자들이 2만 4천 명이었습니다. 누구도 메시야를 대망(待望)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처녀가 남자 없이 성령으로 아들을 낳는다는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은 ‘좋은 소식’, ‘복음’이라고 축하하면서도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모두 외면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자가 다시 오실 때도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하던 롯의 때와 같고 홍수로 멸망했던 노아 때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고 깨닫고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복음은 기독교의 메시지의 핵심이기에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로마서 1:1). 위대한 왕이나 학자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마가복음 1:14, 데살로니가전서 2:2.8.9). 복음은 하나님에게서 유래됐기 때문에 ‘인간적(人間的)’인 것이 아니라 ‘천적(天的)’ 이요 ‘신적(神的)’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말씀이 육신 되셔서 이름도 없는 변두리 동네에 오신 것입니다. 당시 나사렛은 이혼 당한 사람, 소실, 멸시 받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는 니고데모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사람이 나겠느냐” 라고까지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목수 요셉의 가정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남편을 일찍 잃은 과부 마리아의 아들로 천대 받으며 자라셨습니다. “너희들은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다”고 하시니 동네 사람들이 ‘위에서 났으면 땅을 밟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며 예수님의 발만 쳐다봤습니다. ‘네가 어릴 때부터 우리가 봤는데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네가 어째서 위에서 났느냐. 네 아버지가 요셉이고 어머니가 마리아인데 정신 나간 것 아니냐’며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마태복음 13:54-58). 예수님의 친동생들조차 허튼 소리 하지 말라며 형을 비난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이 명절에 동생들을 피해 뒤늦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지경이었습니다 (요한복음 7:5-10). 눈 뜬 소경 같던 열 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드리지 못했습니다. 베다니의 과부들이나 겨우 예수님을 대접했을 뿐입니다. 너무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고 가셨으나 열매를 얻지 못하시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인류 전체의 생존권을 거둬갈 능력이 있는 분이 이렇게 불쌍한 삶을 사신 것입니다. 통행료 두 세겔이 없어서 잡힌 채 땡볕에 기다리셔야 했고 종교 지도자들의 협박에 겁 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냉수 한 잔도 대접받지 못하셨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호의호식하시면서 말씀을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오시지 못하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억조창생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걸어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은총에 감사하면서 진심으로 성경을 믿고 교회 생활을 했습니까. 친구 만나면 뽐내면서 몇 만 원 짜리 밥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아낌없이 헌금하신 적이 있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복음은 죄인에게 보내신 구원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사도행전 20:24)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러 갈 때도, 시험을 치러 갈 때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땅을 밟고 갈 때도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내 발로 내가 간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발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복음의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마태복음 1:1),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 (고린도후서 4:4), ‘그리스도의 복음’ (고린도후서 9:13, 10:14) 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본질로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져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듣고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거저입니다. 이렇게 큰 축복을 받고도 모르고 있습니다. 주머니 안에 있는 돈은 믿지만 이처럼 큰 축복은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나의 복음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즉 천국 복음입니다 (마태복음 24;14, 마가복음 1:15, 마태복음 9:35).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파했지만 세상 나라에 속한 악한 자들은 깨닫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자기 즐거움에 빠져 삽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이 세계는 유한한 나라입니다. 무너질 장막입니다 (고린도후서 5:1). 우리에게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장막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보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만족했습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면 신앙이 아닙니다. 글로 배운 예수여서는 안 됩니다. 내 손 안에 든 만 원짜리, 천 원짜리는 확실히 믿는 것처럼 ‘나의 복음’이 돼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3, 데살로니가전서 1:5, 데살로니가후서 2:14, 디모데후서 2:8). ‘나의 복음’이 되면 남에게 양보할 수 없게 됩니다. ‘나의 부모’, ‘나의 남편’, ‘나의 아내’, ‘나의 자식’을 남에게 빼앗기고 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의 복음’은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나의 복음’이 하늘나라 갈 때까지 내 영혼과 육신을 책임져 줍니다. 어디 가든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실상 하나님이 함께 가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9).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니 얼마나 든든하고 좋습니까.

나는 복음에 빚진 자

나는 복음에 대해서 빚진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4). 빚을 갚으려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빈부귀천을 가리지 말고 말씀을 전해서 그 분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영생 복락의 구원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 역사가 우리에게 허락돼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죄인입니다. 앉으면 기도하고 서면 전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로마서 1:16).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믿으면 악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는 평강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사야 48:22, 57:21). 악인에게는 은혜도 없습니다. 그러니 감사가 없고 만족과 기쁨도 없습니다. 내 것은 내 것대로 챙기고 남의 것을 또 탐냅니다. 이런 악인들에게도 우리가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우리는 빚을 갚는 것이고 악인들은 악한 마음이 없어져 평강을 찾게 됩니다. 오늘까지 사업이 잘 안 되고, 주위에서 인정도 못 받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가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일마다, 발로 걷는 곳마다 축복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복음을 통해 사망에서 생명으로

하나님의 복음은 평안의 복음입니다 (에베소서 6:15). 평화의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화복해지고, 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고 모든 일의 시작과 마침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를 부탁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 때 보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권력과 부를 누린다 해도 60-70년입니다. 40세만 넘으면 벌써 주름살이 생기고 30세만 넘으면 눈매가 처지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인류를 위해서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1:2). 복음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人性), 즉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지만 (로마서 1:3), 신성(神性), 즉 영적으로는 성결의 영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영으로 다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외칩니다 (고린도전서 15:50- ). 사망이 우리를 데려가려 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 있기 때문에 사망이 겁이 나서 도망가고 맙니다.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고, 주님의 영생이 나의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친 아들딸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떠난 순간, 곧바로 천국에 입성하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 남이 알면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럽고 추잡한 죄까지도 다 거둬다가 십자가에서 처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죄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고 주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믿기 전에는 사망과 영원한 지옥에 속했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땅에 살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맡은 바 일에 충성하며 진실하게 사십시오. 자손만대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복음이 책임지고 위로해 주고 인도해 주고 놀라운 말씀의 권세와 능력을 주셔서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라는 것을 깨닫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먼저 사랑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10, 요한이서 4:19). 사람들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랑하고, 내가 사랑을 받기 때문에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깨달았다면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밤낮 자기만 챙기고, 자기 육신만 챙기며 살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나라에 대해 감사하고, 교회에 대해 감사하며 살 때 자손만대에 어둠이 닥치지 않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모든 일에 만사형통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늘 축복으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로마서 8:34, 마가복음 1:16-19, 히브리서 7:24-25). 우리가 아직 덜 됐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죄짓고 욕심 부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깨달을 때에는 쓸데없는 세상 생각을 하고 죄를 지으려다가도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죄가 없습니다. 회개하면 죄가 없어집니다. 아무리 추악한 죄를 지었어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남을 미워하면 살인죄입니다 (요한일서 3:12). 그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고 남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천사와 함께 재림하실 때 우리는 공중에서 주를 만나 순간으로 변화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육간 완전히 변화됩니다. 사망을 향해서 호령하고 심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시며 영생의 왕, 영광의 왕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사(救贖史)입니다. 구속사 시리즈를 꼭 읽고 자손만대에 소망 얻으시기 바랍니다.

평강교회 성도들은 마지막 주님 재림하실 때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외치며 반갑게 영육간 기쁜 마음으로,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가슴을 펴고 하나님 앞에 손들고 예수님을 맞이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영원한 복음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보좌에 앉으심과 심판과 영원한 통치의 약속이 복음이요, 복음의 본질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복음의 전부입니다. 우리가 세상 것을 다 잊어버려도 예수님만큼은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 속에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정마다 어두움의 역사가 틈타지 못하도록 성령의 불담으로 지켜주시고 우리 아버지,어머니,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신 말씀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서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3년 12월 3일 주일 2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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