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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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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세상에서 장차 우리가 갈 저 세상
 글쓴이 : 관리자
 

요한계시록 21:1-7, 에베소서 2:12-22

사람은 혈기왕성해 젊을 때는 세상 떠난 뒤 갈 곳을 알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과 지혜, 권력과 재산을 믿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머리가 아파오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음식도 마음대로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장차 갈 저 세상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작은 집에 살다가 큰 저택으로 이사 가게 됐다면 새 집의 주소가 어디인지,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죽으면 천국 간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림의 떡이 아닌, 실존하는 실제(實際)에 대한 증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브리서 11:1)이라고 했습니다. 갈 곳을 확실하게 알아야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운명할 때 평안한 마음, 믿는 마음으로 가는지를 봐야 그 사람의 일생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작정하신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救贖 : 값을 치르고 구원함) 섭리와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어? 난 안 믿어!’ 하고 떠들어대도 하나님은 당신의 할 일을 착착 진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중심은 구속사(救贖史)입니다. 구속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요한복음 1:1). 모든 역사가 예수님에서 시작됐고 예수님으로 진행되고 예수님으로 종결됩니다. 그 분이 산꼭대기, 최고 봉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인류가 꿈꾸는 영광스러운 황금시대가 못 됩니다. 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고통, 눈물, 괴로움, 거짓, 우수사려(憂愁思慮) 뿐입니다. 우리가 가는 그 세상에는 근심도 걱정도 죽음도 아픔도 없습니다(요한계시록 21:3-4). 영광스러운 세계입니다. 슬픔이 폐지된 세계입니다(이사야 60:20, 요한계시록 21:4).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이사야 35:10)
이 세상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요, 오는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1:1) 새 하늘과 새 땅은 복락원(復樂園)입니다. 먹지 않습니다. 하루만 금식해 보십시오. 집안이 깨끗합니다. 할 일이 없습니다. 먹지 않으니 화장실도 없습니다.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해와 달은 음식을 상하게 하고 썩게 합니다. 그러나 오는 세상에서는 해와 달과 별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요한계시록 21:23). 밝기가 태양빛의 7배입니다. 그 빛만 받아도 어떤 병이든 치료되니 병이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7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이사야 30:26). 빛이 너무 밝아서 죄인은 그 나라로 들어가지도, 그 앞에 서지도 못합니다. 죄 없는 자, 회개하는 자만 가는 세계입니다(이사야 35:1-10, 이사야 60:19-20).
이 세상에서는 누가 보고 싶으면 부르든지 찾아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바나나가 먹고 싶다면 사와서 껍질을 벗겨서 먹어야 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누가 보고 싶으면 이미 앞에 와 있습니다. 바나나가 먹고 싶으면 벌써 바나나가 내 입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이사야 65:24).
늙고 주름지는 일도 없습니다. 썩고 부패하지 않으니 양치하고 세수할 필요도 없습니다.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늘 향기가 진동합니다. 요즘 세상을 뒤덮는 아카시아향이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의 향수 몇 백만 원 어치를 뿌려도 그런 향기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천국은 그런 세계입니다. 우리의 온 몸이 빛을 발하는 발광체(發光體)가 되는 영광의 세계입니다. 이 땅의 꽃이 아름답다 해도 1분만 들여다보면 싫증이 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순간순간으로 변합니다.
천국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도 없는 세계입니다(마태복음 22:30). 이 세상에서는 일곱 살만 되면 육신이 이성(異性)에 대해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는 이성에 대해 생각하며 죄짓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이성(異性)을 좋아하던 사람도 나이 들고 나면 그 사실이 후회스럽고 창피해집니다. 그러나 천국은 늘 사랑 속에 사는 세계입니다. 이 세상의 남녀관계는 가시가 찌르듯 찌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인간의 육체관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좋은 세계입니다. 그러니 죄를 지으려 해야 지을 수 없습니다.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요한계시록 21:2). 결혼식 날 신부가 얼마나 우아합니까. 천국이 바로 그런 세계입니다. 죄를 가진 자는 천국 문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담이 죄를 지으니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먹고 영생할까봐 하나님이 불칼과 그룹을 둬서 생명나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심으로 이를 폐지시키고 우리가 다시 생명나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기는 자, 자기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는 자가 생명나무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요한계시록 2:7.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라.”(요한계시록 22:14).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시편 118:20).
저는 그 세계를 확신합니다. 그래서 오늘밤에 세상을 떠난다 해도 감사합니다. 근심하지 않습니다.
두 번 암 판정을 받았지만 감사했습니다. 사람은 ‘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80-90%는 마음으로 벌써 죽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밤낮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오래 산 아담의 7대손 므두셀라도 1,000년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영원한 세계인데 왜 겁을 냅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면 됩니다.



인류의 죗값으로 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됐습니다. 땅이 화가 나서 인간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내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나는 것은 아무리 영양 있는 것이라 해도 먹다 보면 결국 죽게 됩니다. 인생은 어디 가든지 가시와 엉겅퀴, 즉 원수를 만나게 돼 있습니다. 사방에서 찔리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창세기 3:17-19). 이 모든 문제를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갈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생명수의 강이 흘러 만국을 소생시킵니다. 실과와 잎사귀들이 약재료입니다. 창세기의 타락한 세상은 저주를 받은 세상, 유한 세계입니다. 유한세계는 저주와 죽음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다시 오는 세상은 저주가 없습니다. 사망이 없고 세세토록 살아있고 예수님과 같이 왕 노릇합니다(요한계시록 22:5). 이런 세계가 있다는데 왜 못믿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그래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잘 믿어야 합니다. 부모도, 자식도, 부부도 모두 한번 왔다가 떠납니다. 그 후에는 자기 행한대로 믿음대로 심판이 있습니다(히브리서 9:27). 살아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끊어지면 망합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숨쉴 수 있게 공기 주신 것에 감사하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세상 만물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우리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놓치면 죽습니다. 부모도 말씀 안에서 부모입니다. 말씀 없이 부모를 모시면 부모도 이별하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부모를 모시면 세세무궁토록 갑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도 말씀 안에서 해야지, 말씀을 내동댕이치고 육신의 세계에서 하면 피곤합니다. 떠나고 나면 허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 하십니다. 참으로 귀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 믿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보호해 주십니다. 죽지 않는 세계, 새 하늘 새 땅을 맛보게 됩니다.

오는 세상은 새로운 세상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헬라어로는 ‘네오스(시간상의 새로움)’가 아니라 ‘카이노스(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움)’로 기록돼 있습니다. 천지가 바뀌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베드로후서 3:12-13). “하늘은 종이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요한계시록 6:14) 세상이 새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태복음 19:28).
‘카이노스’는 만유(萬有)가 회복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사도행전 3:21). 이 세상은 다 진동이 있는 세계입니다. 지진이 나고, 전쟁이 나고,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동치 못하는 나라를 받았습니다.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永存)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브리서 12:27-28)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더 좋은 소망, 더 좋은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히브리서 7:19, 7:22, 8:6, 9:23). 우리에게는 더 나은 본향(本鄕), 영구한 도성(都城)이 있습니다(히브리서 11:16, 13;14).
마지막 때에 썩지 않고 쉬지 않고 망하지 않는 더 좋은 부활(히브리서 11:35)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아벨과 같이 더 나은 제사입니다(히브리서 11:4).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브리서 11:40).
예수님의 피가 우리 인간의 죄를 사해 주시고 지금도 우리를 붙잡고 빛 속에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의 피난처입니다. 산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이 머무르면 하나님이 머무릅니다. 그 말씀을 인간인 내가 믿음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돈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일만 가지 악의 뿌리입니다(디모데전서 6:10). 하나님의 위대한 아가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의 사랑은 환경이 바뀌고 조건이 달라지면 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거나 시들거나 늙거나 변질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주고 언제 줬다고 기록하지 않는 것처럼 아낌없이, 계산 없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온갖 추악한 죄악을 다 아시면서도 그 죄를 다 걸머지고 당신의 의를 주시면서 “너는 죄 없다” 선언하셨습니다.그래서 우리가 의인이 돼서 하나님 나라에 가고 내 이름이 하나님 족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린도전서 13:11). 지금은 말씀을 통해서 그 세계를 듣기 때문에 희미하게 보이지만 장차 말씀이 주인이 되시면 확실하게 보입니다. 한바탕 꿈같은 세계에서 꿈이 깨지는 것입니다. 오는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가야 할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제’라는 세상 속에서 성화(聖化)의 과정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제’는 마귀와 싸우는 교회입니다. 미완성의 불완전한 지상(地上)교회입니다. ‘그때’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입니다. 영광의 세계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린도전서 15:50-52)
‘그때’가 되면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오지 못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린도전서 15:55) 죽음이 찾아오지 못하니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없어지기 전에, 인류가 망하기 전에 그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 오신다 하다가 결국 초림 예수님이 오셨듯이 재림 예수님도 성경에 기록된대로 반드시 오실 때가 있다는 것을 믿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오실지 내일 오실지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 구속사가 있는 곳에 다시는 저주가, 슬픔이, 근심이 없습니다(요한계시록 21:3-4).
믿는 자에게는 점과 흠이 없어야 합니다. 완전히 말씀으로 보존돼야 합니다(데살로니가 전서 5:23).
그런 자에게는 오늘의 아픔이 내일의 기쁨이 됩니다. 오늘의 절망이 내일의 소망이 되고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이 됩니다. 오늘의 가난이 내일의 부요, 오늘의 탄식이 내일의 환희가 됩니다. 아니, 말씀을 받으면 내일이 아니라 벌써 ‘오늘’입니다. 오늘의 싸움은 처절한 고통이지만 주의 말씀을 통해서 믿는 괴로움과 고난, 싸움도 기쁨과 즐거움, 승리가 됩니다. 유한한 이 땅의 장막에서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천국, 무한한 세계에 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기쁩니까. 그래서 위대한 신학자 존 낙스(John Knox)는 “그리스도 안에 살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유언하고 이 세상을 떠났고 저술가 존 번연(John Bunyan)은 “하나님이 나를 영접하시는데 왜 우느냐. 새 노래를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찬송가 226장은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의 정서를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세상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의 친 아들딸입니다. 말할 수 없이 엄청난 부자입니다. 천국의 기업(基業)의 백성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오직 예수 잘 믿는 것만 부러워하십시오. 성경 많이 읽는 사람을 부러워하십시오. 기도 많이 하고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고 받드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공이 큽니다. 이 땅에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자신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내 가족과 아직 믿지 않는 친척,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일사각오 순교 정신의 사람, 복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5월 26일 주일 2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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