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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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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救贖史)의 현장, 이 세상과 오는 세상
 글쓴이 : 관리자
 

요한복음 13:31~14:1-4, 마태복음 12:32

인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통해 인간들을 구속(救贖: 값을 주고 구원함)하시려는 계획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시고 있습니다(창세기 3:15). 우주 창조에서부터, 예수님이 죄를 멸하고 인류를 구원하셔서 새 종을 울릴 때까지의 모든 연월일(年月日)이 이미 다 결정돼 있습니다. 이런 구속사의 중심이 예수님입니다.
역사는 예수님에게서 시작되고 예수님에서 마칩니다. 마지막 날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일이 종결될 것입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이라는 시간의 영역이 ‘저편’과 ‘이편’(출애굽기 14:19-20)이라는 공간의 영역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여기’와 ‘장차 올 것’(히브리서 13:14)로 기록되기도 합니다(빌립보서 1:23-24). 사도 바울은 금세를 ‘이제’로, 내세를 ‘그때’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고린도전서 13:12).
이 세상의 것은 모두 썩습니다. 쉬어서 냄새가 나고, 닳아서 없어집니다. 우리 육신도 썩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날이 갈수록 강건해집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받는 환난은 가볍지만, ‘오는 세상’에서의 영광은 지극히 크고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서는 고통을 당하지만 ‘장차’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안개 같고,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베틀의 북 같습니다(야고보서 4:14). 우리 몸은 무너지고 말 땅의 장막에 불과합니다(고린도후서 5:1).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나라에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장막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오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일시적 시간이요, 임시적 공간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해 가는 구속사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세상에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이, 인류를 구원할 구속사의 역사(役事)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은 현존하는 죄악의 세대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오는 세상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신 뒤에 이뤄집니다(요한계시록 20:12-15, 히브리서 9:27). 인간의 죄는 스스로에게서 시작됐습니다. 자기 양심을 속이면서 죄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우리는 죄에서 떠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 은혜가 늘 머물러 있게 해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시편 119:11). 죄악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온통 죄입니다. 그러니 죄에 빠지지 않도록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하루 종일 우리 위에 머물게 해주실 것을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세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천당 가든 말든 상관없어.”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말이 그대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성령을 훼방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까지 죄 사함 받지 못합니다(마태복음 12:31-32). 죄가 자손만대까지 내려갑니다.

이 세상(今世)이 존재하는 이유, 내가 이 세상에 사는 이유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고 죄악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마태복음 1:21).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던 여리고의 세무서장 삭개오, 그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여리고까지 찾아가셨습니다(누가복음 19:1-10).
며칠을 굶고 피곤하셨지만 그 한 생명 때문에 먼 길을 가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18:14, 누가복음 5:32, 15:7, 요한복음 10:28, 17:12, 마태복음 9:13, 요한복음 3:17, 로마서 4:25, 누가복음 13:3-5, 15:10, 24:47).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나보다 못 살고, 학벌도 못하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찾아가기를 미룹니다.
하나님은 그 죄를 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은 우리만 구원받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응답자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통해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간절한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계에서 가장 귀한 존재들입니다(요한복음 6:39).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를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찾아서 붙잡아 주십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변화의 축복을 주십니다.
옛말에 돈 5전을 벌기 위해 몇 십리를 간다고 했습니다. 상인들에게도 그런 욕망이 있다면 예수님 믿는 우리들에게는 죄악 가득한 이 세상에서 죄인들을 찾아오려는 더 강렬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깨알같이 많은 날 중 오늘만 날이냐. 며칠 있다 하자.’ 하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당장’입니다. 차일피일 미루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당하고 모욕당합니다. 하나님이 참다못해 ‘너희가 팔짱끼고 있으니 내 이름을 아끼기 위해 내가 나서야 되겠다.’ 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지도 못하고, 일회용 컵 찾듯 급할 때만 하나님의 이름을 찾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팽개쳐 버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어느 집안의 어머니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마라. 집안의 식모보다도 못하게 여기면서 왜 어머니라고 부르느냐?”고 한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예수 믿는다 하면서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말씀에 순종하지도 못하고,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지도 못하는 자를 향해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아끼겠다.’ 하시고 진멸하십니다(에스겔 36:21).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변함없는 것,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은 이 땅에 대접받고 영광 받고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숨을 버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마태복음 20:28, 마가복음 10:45). 인류의 죄를 위해 단번에 제사를 드리셨습니다(로마서 6:10,히브리서 7:27, 9:26-28).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산더미 같았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일터에 나온 사람들입니다(마태복음 20:1). 아침부터 일했건 저녁부터 일했건 임금은 똑같습니다. 완전한 구원입니다. 죽으려 해야 죽을 수 없습니다. 썩어질 것이 순간 다 변화합니다(고린도전서 15:51).
예수님은 오는 세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하셨습니다. 종은 주인의 집에 영원히 거하지 못하지만 아들은 영원히 거한다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8:35-36). 예수님은 “죄 있는 사람은 내가 가는 곳에 올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새 계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무슨 말씀인지 깨닫지 못하고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죽을지언정 나는 주님과 함께 가겠습니다.”하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예언하셨습니다(요한복음 13:38). 그 말씀이 그대로 이뤄졌습니다(마태복음 26:56, 69-75, 마가복음 14:27, 30-31, 66-72, 누가복음 22:58-62). 세 번째 부인했을 때는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포승줄에 묶여 있던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베드로가 너무나 참담해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보시니’는 저주의 눈길이 아닌 사랑의 눈길로 보신 것입니다.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했지만 나는 너를 배신하지 않겠다. 너를 구원하겠다.’하는 눈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것을 깨달은 것 입니다. 예수님은 사나 죽으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마태복음 1:21, 누가복음 19:9-10)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13:1)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없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 이 땅과 천국에서까지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끝까지’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니 과거에 지은 죄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개하면 됩니다. 바울은 그런 무한한 사랑을 깨달은 뒤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


고생해도 하나님의 사랑, 매 맞아도, 밥을 굶어도, 헐벗고 추워도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던 사도 바울의 신앙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오는 세상(來世)’
주님이 가시는 곳, 그리고 우리가 가는 곳이 아버지 집입니다(요한복음 13:36, 14:2). 거기가 바로 우리가 난 곳입니다. 우리가 자란 곳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집입니다. 정든 집입니다. 본 고향입니다. 아버지 집은 우리의 본적지입니다. 하늘은 주님이 본래 영존(永存)하시던 곳입니다. 주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습니다(요한복음 6:38, 3:13). ‘우리의 집’, 영어로는 맨션(mansion)입니다. 이 땅의 집은 3-4년 살면 새로 도배하고 수리해야 하지만 하늘의 맨션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어(헬라어)로는 ‘토포스’, 즉 많은 맨션, 개개인이 확보한 독립 저택, 완전한 집, 이상적인 스위트 홈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예비하신 곳입니다(요한복음 14:1-3). 옷도 필요 없고 화장실도 필요 없습니다. 날마다 향기가 진동하고 천사가 찬송하는 곳입니다(요한계시록 4,5장).

예수님이 약속하신 곳, 오는 세상에 가려면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한복음 14:4)


그 길,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5-6)

그러므로 우리는 다 잊어도 모든 것의 근원이요 진행이요 마침인 예수님만은 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돈으로 모든 것이 다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는 세상’을 향해 ‘가는 성도’들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곧 다가올 영광의 세계를 봐야 합니다. 반드시 이뤄집니다.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을 때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기도하던 시므온과 안나, 두 선지자는 알아봤습니다.
우리도 막연하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예수님이 오신대도 그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예비하고 있어야 합니다(마태복음 24:42-44, 25:1-13). 아침에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오늘도 죄지을까 걱정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 가운데 내 마음에 머물게 해주십시오.”(시편 119:11)하고 기도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은 반시(半時)동안 고요한 때입니다. 구속(救贖)받은 무리, 구속사를 깨달은 무리를 하나님이 찾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해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건강해야 합니다. 살아야 합니다. 늙지 않게 해달라고, 말씀을 깨닫고 믿는 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바다나 산이나 공중이나 다 예수님의 통치 영역입니다. 어디 가도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실체, 실존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천국이 마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본향에 직접 갈 수 있습니다(디모데후서 4:18). 우리 평강제일교회 성도들은 세계를 운항하는 방주 ‘평강호’의 선원들입니다. 새는 곳이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달라붙어서 틈을 막아야 합니다. 이러쿵 저러쿵 말만 하지 말고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말씀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충성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하나님께 맡깁니다. 자신이 주인이 돼서 좌지우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틈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도피주의자, 기회주의자가 돼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멀찍이’ 따라가던 제자들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마태복음 26:56, 마가복음 14:54, 누가복음 22:54).
세상이 다 못살겠다고 아우성 쳐도 ‘평강호’에 천국의 십자가 깃발을 붙이고 모진 바람 속에 항해합시다. 방주 안에서 감사하고 찬송 부르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다 보면 어느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아직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구속사 시리즈를 읽지 못한 이들이 전 세계에서 달려올 때 여러분이 평강호의 승무원이 돼서 그들을 귀한 손님으로 모시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줄로 믿습니다.



2013년 4월 21일 주일 2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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