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ㅣ SITEMAPㅣCONTACT US
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HOME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라
 글쓴이 : 관리자
 

1982년 10월호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스가랴 14:6-7)

추수를 앞둔 하늘과 땅, 그 사이에서 생령의 씨알 여러분, 지금 깨어 있는 혼(魂)입니까?
깊은 밤을 꽉 메운 개구리 울음소리 속에서 전혀 정신이 흩어지는 일 없이, 하나님의 한 중심의 뜻으
로 불 밝혀진 가슴입니까?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리는 그런 날이기 때문입니다(아모스 5:19-20).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아모스 5:18)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의 사모하는 자에게 왜 저주가 임한다는 말입니까? 여호와의 날이 왜 어두움 의 날, 재앙의 날입니까? 때는 때대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公義)이기 때문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에 귀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만국의 예언자가 뒤를 이어 외치던 선민의 나라 이스라엘, 그러나 이제 그 소리 들려오지 않은 지가 4백여 년, 땅 위엔 정통과 교권의 독무대요, 어디서고 공의와 사랑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언자의 위대한 혼(魂)은, 눈뜬 소경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굳어진 마음과 좀스런 손에서 산산조각이 나서, 내동댕이쳐지고 지금은 그야말로 죽음의 나라입니다. 그 때 홀연히 광야에서 외치는 한 소리가 요단 골짜기를 울리고 유대 광야를 진동시켰습니다. 그것은 시대의 먹구름을 찢고, 화석화된 가슴을 향해 내려 꽂힌 번갯빛이었습니다. 모든 상대적인 것들로 찌든 가슴 을향해, ‘ 절대’를선포하는권위자의음성이었습니다.
여기 또 슬픔의 피눈물이 스며드는 한 가련한 민족의 참상이 있습니다. 온백성이 바벨론 땅으로 끌려와, 그발 강가 포로민 수용소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망국의 한(恨)으로 가슴이 찢어지고, 영육 간에 소망이 없고, 가산은 다 탕진되고, 인권 유린과 인간 노예화가 자행(恣行)되고 있습니다. 창자가 끊어지고, 숨막혀서 말을 못하고 울고 또 우는 때, 완전히 엎드러져 하늘 아래 이 백성을 다시 일으킬 자 없는 때입니다. 다 막고 가두고 가두고 가두는 상황, 우상숭배의 도성입니다. 그러나, 하늘 문이 바로 여기서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그 백성을 찾아 오셨습니다.
불우한 민족, 이 참상 앞에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 살아가던 한 사람, 그는 비애와 고독과 수난 속에 살아야 했던 애국애족의 예언자, 에스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30세 되던 해, 포로민 수용소였던 바벨론 땅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묵시를 받고 민족적 참상에 뛰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데리고 해골 골짜기 사망의 지대를 행진시켰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그 민족의 비전을 본 것은, 이처럼 천지사방이 암흑하고 혼돈하여 목마르게 민족 부활의 비전이 요청되는 때였습니다. 에스겔에게 하늘 문이 열린 곳은 그발 강가였습니다. 온 민족이 포로되어 잡혀와 가슴치는 그발 강가, 여기 에스겔 선지자는 7일을 민답(悶沓)히 앉아 있었습니다(에스겔3:15).

어째서 에스겔 선지자는 그발 강가에 그토록 오래 앉아 있었습니까? 그발 강은 절망의 강이요, 상실의 강이요, 죄악의 강, 실망의 강이었습니다. 절망이 가득할 땐 절망이 흐르고, 고향을 그리워 할 땐 향수가 흐르고, 죄악이 통절함을 느낄 땐 죄악이 흐르고, 실망이 극할 때는 실망이 굽이쳐 흐르는 그발 강이 아니었겠습니까? 에스겔은 공허와 절망에 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그발 강가에 하나님은 찾아오셨고, 에스겔은 말씀의 고향으로 돌아가 거룩한 성터를 수축하고, 성전을 재건하는 꿈에 취하여 강가를 오르락내리락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눈을 좀 떠야겠습니다. 죽음의 흙을 먹는 자가 되지 말고 머리를 들어 밝아오는 동녘 하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꼭 믿어야만 되겠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 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이사야 60:1-3).
생령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 선지자같이 내일을 똑똑히 자각하고 눈을 떠서 확실히 보는 성도가 됩시다. 왜 웅크리고 있습니까! 미몽(迷夢)에서 깨어나 가슴을 펴고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말씀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능력 충만을 받읍시다. 말씀의 시대는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큰 꿈을 가슴에 안고 간절한 기도의 무릎을 맞춥시다. 우리는 지금 해골 속을 행진하는 무리입니다. 내가 선 자리는 세례 요한이 서 있던 유대 광야, 에스겔이 서 있던 그발 강가, 마른 뼈가 쌓인 해골의 골짜기입니다.그러나, 그 죽음의 나라를 상징하는 유대 광야가 그를 몰아 하늘의 탐사자가 되게 하였고, 그발 강가의 참경, 해골 골짜기의 마른 뼈가 그를 몰아, 위대한 예언자들의 정신이 외로운 젊은이의 가슴을 불타게 했습니다.



생령의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받은 말씀의 종을 드높이 울립시다. 지난 일에 대해서는 역사의 장엄한 해석자, 현재에 있어서는 공의의 용감한 선포자, 미래를 향해서는 메시야 시대가 밝아 오는 사실을 알리는 예언자가 됩시다. 온 세계가 깰 수 있도록 말씀의 나팔을 힘껏 불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혼(魂)을 구하고 계십니다. 공의와 사람이 말라 빠지고 창조주에 잇대인 영적 생명의 샘 줄기가 막혀버린 한계 속의 동물적인 혈통이 무슨 역사가 될 것입니까? 하나님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불길한 그믐달이 온 땅을 짓밟고 나면 온 하늘은 내려앉고 세계는 무서운 신음 소리를 내며 꿈틀거릴 때, 인간의 본능이 쏟아 놓는 혼돈과 흑암, 그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어떻게 무사히 통과하시렵니까?
부디 잠에서 깨시기를 바랍니다. 뜻을 부둥켜안고, 받으신 말씀을 하나하나 찾아서 믿고 현실로서 이뤄 나가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70년 바벨론 포로생활도 끝이 나고, 에스겔의 외침 때문에 유대 역사에 새아침은 왔습니다. 4백년의 흑암도, 세례 요한의 외치는 소리에 끝이 나고, 메시아 오시는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검은 구름을 타고 밀려드는 악의 세력이 천만 년을 누릴 듯해도, 반드시 그 끝 날은 옵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선포되는 공의의 소리가 반드시 이깁니다. 하늘 문이 열린 자, 먹구름을 헤치고, 독수리 날개 타고 하늘로 솟구친 자, 그에겐 이미 밝은 태양 빛이 온 누리에 찬란합니다. 비전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죄악의 독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어도 민족 부활의 비전을 가지고 ‘주여, 저를 어찌 여기 세우시나이까? 그 뜻이 어디에 있나이까?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이제 더욱 큽니다.’이렇게 기도하는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박윤식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