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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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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날, 또 그날 (1979년 성탄절 설교)
 글쓴이 : 관리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누가복음 2:10)


<서론>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죄인 된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사색. 연구하며, 회의 또는 부정하기도 한다. 사람이 신을 필요로 하며 신을 찾을 수 있다는 주관적인 입장에서 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나머지 인간 자신이 자기의 생각에 따라 신을 마음대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 결과로 찾았다는 신은 참 하나님이 아니요, 자기의 감정의 산물이요, 직관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요, 사실은 신이 아니라 자기가 신이 되는 수가 많다. 인간의 부패한 이성과 감정과 타락한 지식을 가지고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칼 발트(Karl Barth)는 “종교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초점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절대타자(絶對他者)요 질적상이(質的相異)이다. 즉 “하나님은 인간과는 단절되어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갈수도 없고 하나님께서도 사람과 대화할 수 없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위태로운 과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가?” 라고 물으면 그는 대답하기를 “없다”라고 한다. 그러면 무엇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가?그는 역시 “그럴 수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어떻게 무엇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그는 대답하기를 “그 방법은 오직 인간이 자기를 부정할 때 그리스도께서 예 하고 찾아오신다. 그런고로 인간의 아니요 와 그리스도의 예 가 만나는 찰나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흥미를 끄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 실존주의 적인 해석이요 철학적인 사색에 근거한 철저한 인본주의이다. 인간의 부패성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정하고 인간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의 능력을 인정하는 실존적인 사상 그대로를 나타낸 해석이다. 물론 그가 자유주의와 합리주의를 배격했다는 점에서는 공이 크다고 평할 수 있으나 실은 그도 결국 자유주의자와 대동소이한 사람이요 합리주의자와 다름없다. 그것은 그가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이요. 나가서는 결국 그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고 인간과 합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고 이루어진 십자가의 구속의 오묘한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은 사실상 모두 자유주의자들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요 최대의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얻을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으며 인류의 구원을 생각할 수도 없다. 인간의 구원을 생각할 수 없으며 인간의 희망과 기쁨과 평화도 역시 찾을 수 없다. 과연 이 날은 우주창조 이래 가장 놀라운 날이며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오묘한 날이다. 그러나 현대는 참된 크리스마스를 상실한 시대이다. 물론 이날을 만인이 경축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한 날만 지키고 기분에 도취되어 먹고 마심으로써 사실은 크리스마스를 상실하고 또한 자기도 상실하고 만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귀한 정신도 상실하고 관적인 기분과 흥분에 날뛰는 것으로 그친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수년전 크리스마스 새벽에 대연각 화재의 화염 속에서 타죽은 무리 중에 크리스마스를 향락적으로 지새던 남녀 청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크리스마스가 결국 이같은 날은 아니다. 이 날은 죄인이 하나님을 엄숙하게 만나는 날이요 죄인은 심판을 받고 믿는 자는 구원받는 놀라운 날이다.(눅2:34) 암흑세계가 광명한 세계로 변하고 지옥의 자식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옮겨지는 인류구원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혁명의 날’ 이다. 그러면 제목대로 오늘 그날 또 그날 이란 내용으로 생각해 보자.

<본론>

1.오늘: 오늘은 12월 25일이다. 오늘도 나의 생명과는 끊을 수 없고 뗄 수 없는 1년 1개월의 하루 24시간이요. 나의 존재 나의 생명 전체의 연속의 날이다. 이 날은 온 세계가 함께 지키는 경축일이다. 오늘 12월 25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모두 알고 있다. 어린이들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서 썰매 타고 착한 아이 선물 주려고 오는 날로 알고 있다. 그리고 삼척동자라도 고요한밤 거룩한 밤 주님이 탄생한 날로 알고 있다. 그러나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일이란 증거가 성경에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이날을 성탄으로 지키게 되었느냐? 유래는 4세기 서방교회에서 이날을 처음으로 예수의 탄생일로 지키기로 정하고 난 때부터이다.

그러면 하필이면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게 되었는가? 주후 27년에 로마 황제 아우레리안이 태양 빛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동지날을 계기로 하여 12월 25일을 태양신의 탄생일로 정하고 이 날에 태양신을 섬기는 축제일로 크게 지키게 되었다. 그래서 주후 336년 로마교회에서는, 이 태양을 신으로 섬기는 이교(異敎)의 축제일을 의(義)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말4:2)의 탄생일로 고쳐 지킴으로써 일부러라도 이교일 즉 죄악의 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정복하려 했다. 그러나 동방교회(희랍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일로 정했던 일이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오늘 지키는 크리스마스는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람이 정한 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오늘의 크리스마스는 24시간에 국한된다. 24시간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시간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약화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이 날은 잘 지키기만 오늘이 주인공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늘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늘이라는 날만 지키는 성탄은 참 성탄이 아니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을 맞이하므로 ‘그 날’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다.

2.그날: 그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 날이다. 구약에 나타난 모든 성도들의 ‘그 날’이며 오늘을 사모하며, 기다렸던 ‘그 날’이다. 아브라함이 ‘그 날’의 주인 예수님을 보지는 못했다. 이뿐 아니라 천사들도 그날을 살피면서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 하니라”(벧전1:11)고 했다. 실로‘그 날’ 은 우리와 온 인류가 떨어질 수 없는 날이다. 하나님의 천지만물 창조도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창조되었다. ‘오늘’ 우리는 죄를 속하시려고 오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 오늘 12월 25일 이 라는 24시간은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맞이할 수 있고 믿음 없이도 맞이할 수 있지만, ‘그 날’(탄생일)에는 지금의 우리들은 땅 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 날’을 맞이하여 ‘그 날’오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산 신앙 즉 시공간을 초월하여 보여주시며 들려주시며 알려주시는 성령으로만 ‘그날’에 오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 오늘의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육신의 생명으로는 맞이할 수 있으나 ‘그 날’인 그리스도의 탄생은 산 신앙으로만 영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신앙이 죽고 성령을 받지 못해도 ‘오늘’의 크리스마스는 맞이할 수 있으나 ‘그 날’에 오신 그 주님은 맞이하지 못한다. 곧 중생한 자만이 성령으로 탄생하신 주님을 믿을 수 있고 중생한 자만이 부활하신 주님을 모실 수 있으며 나가서는 ‘또 그날’ 다시 오실 주님을 살아서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살아서도(육신의 생명)만나고 살았으니 (중생)만나고 다시 살아나서(부활)만나니 우리의 생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삶과 죽음과 내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육신의 생명을 가지시고 역사 세계에 들어오셨고 우리의 영의 생명을 위해 성령으로 우리의 심령 속에 오시고 이제 영원한 생명을 위해 재림하신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죽어도 사는 신앙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그 날”은 주님이 이 땅위에 직접 오신 날이니 크리스마스이다. 그러면 크리스마스는 무슨 뜻이며 어떤 날인가? 크리스마스란 글자가 상징하듯 X는 그리스도(Christ) M은 나타난다(manifest)는 뜻이요 A는 사랑(agape)를 뜻하고 S는 구원(salvation)함 뜻하므로 종합해서 생각할 때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사랑으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날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이 세상에 오시되 하나님의 계시(말씀)를 알려주시기 위한 선지자로 오셨고 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오셨고 왕으로서 오셨다. 왕으로 오시되 ①‘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이사야 9장 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하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라고 말씀했다. ②‘의(義)의 왕’으로 오셨다. 예수는 조금도 불의함이 없으시다. 그는 의의 왕으로 의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셨다. (슥9:9) ③‘겸손한 왕’으로 오셨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9:9)고 주님을 겸손의 왕으로 말씀했다. 그는 왕일뿐 아니라 사랑의 주님으로 오셨다. 사랑은 무엇이냐? ‘사랑은 주는 것이다.’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그의 백성에게 주셨다. 그리고 사랑은 무엇이냐? ‘사랑은 승리이다.’ 곧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는 구원자로서 세상에 오셨다. 구원은 원어로 ‘파사’인데 ‘상당한 고가를 지불하여 내 것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들의 죄를 속량하시고 마귀의 종 되었던 우리들을 주님의 것으로 삼으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숨은 비밀을 공개하셨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3.또 그날:‘그 날’에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모두 이루시고 지금은 부활 승천 하셔서 영광의 보좌에 계신다. 그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을 ‘또 그날’이라고 하자. 곧 재림의 날이다. 주님의 재림은 주님의 초림과 연결된다. ‘그 날’이 없이는 ‘또 그날’이 없고 ‘또 그날’이 없이는 ‘그 날’의 의의도 없다. 우리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할 때마다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성탄의 그 날에는 아기 예수가 구주로 오셨으나 ‘또 그날’에는 심판의 주로 오신다.(욜2:11)의 “여호와의 날은 크고 심히 두렵도다”에서 여기 여호와의 날은 ‘또 그날’ 즉 심판의 날이다. (벧후3:10)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라고 말씀했다. 그날은 천사도 인자도 모르며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신다. 그러면 우리들은 ‘또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①“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히3:13에 말씀하신 대로 죄의 유혹을 받아 넘어져서는 안된다. ‘오늘’에 사는 우리들은 ‘그 날’에 오실 구주 예수께 나가 죄 사함 받고, ‘또 그날’에 오시는 심판의 주님 앞에 설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세속화 되지 말고 죄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②“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했으니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내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항상 주안에서 살면 ‘또 그날’에 오시는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내 주와 맺은 그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는” 주님과 함께 사는 자 되어 승리하자.

<결론>

오늘은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날이요 죄인이 하나님과 엄숙히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암흑세계가 변하여 광명한 세계로 전개되는 날이며 멸망의 자식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날이다. 성탄에 즈음해서 우리들은 이 날만 맞이해서는 안 된다. ‘그날’에 오셨던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되신 주님을 나의 마음에 모셔야한다. 구원은 날에 있지 않고 예수님에게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상실한 심령 그대로 성탄을 지키는 자는 ‘또 그날’에 오시는 재림의 주님 앞에서 심판받는다. 우리는 ‘그날’에 오신 주님이 ‘또 그날’에 재림하실 때 그 주님을 맞이하여 “할렐루야” 찬송하자. ‘오늘’ 12월 25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날을 우리가 믿는 예수님과 ‘그날’ 초림하신 예수님, 그리고 ‘또 그날’ 재림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날이 되게 하자.

1979년 12월 25일 성탄절 박윤식 원로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