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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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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글쓴이 : 관리자
 

1982년 1월호
 
말씀의 씨알 여러분, 1981년에서 1982년으로 건너뛰었습니까? 고맙습니다.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새해를 맞았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고 씩씩한 영으로 그 무섭고 답답하고 캄캄한 깊음, 그 숨막히는 단절을 건너뛰었으니, 이것이 곧 감사요 기도요 찬송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 날의 수고는 그날에 족합니다. 참 말씀은 오직 하나,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가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 세 가지 사람이 있다면「넘어지지 않는 자」,「넘어져도 일어나는 자」,「넘어지면 일어서지 못하는 자」가 있을 겁니다. 말씀의 씨알은 넘어지지 않고, 굳세게 서서 나아가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악하고 인간은 약한 까닭에 넘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일어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잠언에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잠언 24:16)고 말씀했으니, 즉 의인이라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기독신자」(로마서 3:28)의 별칭입니다. 의인이 쉽게 넘어진다거나 넘어져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과연 의인은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하여 처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의인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아닙니다. 사람인 이상, 또 세상에서 사는 한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왕도 실수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도 실수하여 넘어진 일이 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함 받은 자라도 넘어지게 하려고, 어둠의 세력은 비상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의인이 넘어질 경우, 악인의 경우보다 충격이 훨씬 더 큽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다가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넘어지는 것은 자타가 치명적인 수치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충격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고 보증하고 있습니다.
1982년, 우리가 지나가 본 적이 없는 미지수의 새해입니다. 실로 염려스럽고 불안합니다. 그러나 안심합시다. 하늘로부터 오는 약속의 음성을 들읍시다. 듣는 자, 「축복의 표적」이 되어 이 한 해를 꿰뚫을 것입니다.
의인은 항상 악한 자의 포위망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잠언 24:15)하신 음성이 의인을 절대한 힘으로 붙들어 줍니다.
다윗, 그는 일국의 왕(사울 왕)의 집요한 추격, 포위망 속에 엔게디 굴 속, 십 황무지, 산골짜기로 쫓겨 다녔지만, 하나님이 그를 지켜 그 혹독한 난국, 위기를 면케 하였습니다.
「저희가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가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범과를 인함이 아니요 나의 죄를 인함도 아니로소이다」(시편 59:3-4). 말씀의 씨알은, 이러한 상황 속에 살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고린도후서 4:8-10, 6:4-10). 그리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도 알아야합니다. 비밀한 힘, 독수리의 날개를 펴고 높이 높이 비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사야 40:28-31).
의인은 결코 넘어져 엎드러지는 게 아니고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고 한, 그 깊은 뜻은 의인은 넘어져도 재기불능하리만큼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까닭입니다(시편 37:24).
설령 넘어져서 치명상을 입었다하더라도 넉넉히 그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욥기 5:19). 의인에게는 궁극적인 구원이 있기 때문에,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잠언 14:32). 의인은 세상에서 여러 번 넘어지나, 결코 실패로 연결하지 않고 다시 벌떡 일어납니다. 회개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시편 51편, 마태복음 26:75).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17).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욥기 19:26).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 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예레미야 8:4)고 외쳤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음성이 곧 의인을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 계속적인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혹 사람 보기에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 같으나 결국은 승리합니다.
의인의 일어나는 것은, 그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넘어질 때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때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언 24:17)고 했습니다. 물론 악인의 멸망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영적 기쁨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기뻐해선 안 됩니다. 원수의 멸망을 보고 오히려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같이 저희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굽히고 슬퍼하기를 모친을 곡함같이 하였도다」(시편 35:13-14) 했던 다윗의 심정,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것은 결코 어떤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 의인입니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언 24:20)고 했습니다.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욥기 20:5) 했습니다. 의인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그가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 우상숭배, 무신론의 무저갱 속에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일어납니다. 어떤 악인의 포위망 속에서도 일어나 뚫고 나갑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의인이 일어나는 법이 없다면, 하나님은 하나님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역사는 존재의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의인들이여, 이 한 해 어둠의 권세와 싸워 승리합시다. 그리고 일어납시다. 이 한 가지가 소망입니다. 기어코 마지막의 한 날, 의인이 무덤에서 부활하는 한 날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저 옛날 요셉이 끝없는 환란 속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시작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서, 사자굴 속에서 다시 일어남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권능이 바벨론 천지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일어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었습니다(로마서 8:31-3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린도후서 4:8-9)했습니다.
의인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으로써,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넘어져도 일어나고, 죽어서도 다시 사는 것이 의인입니다.
밝아온 역사의 새아침,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복된 약속을 단단히 붙잡고, 건너뛰는 한 걸음으로 1982년을 꿰뚫기를 바랍니다.

박윤식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