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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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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글쓴이 : 관리자
 




말씀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삼천리 강산에 봄이 가득했습니다.

천지는 살았습니다. 생명은 살았습니다. 살아 있음을 보기 때문에 봄입니다. 내게 그럴 때는 누구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자연은 공변된 것이요,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이 세상의 기쁨은 이 순간의 나의 영원한 생명의 부활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가 참 이 아닙니까? 근심도 없고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1980413일 주일 이른 아침입니다. 아닙니다. 영원한 찰나입니다. 내 잔은 넘쳐 흐릅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여러분께 이 글을 쓸 때는 어떤 마음으로 쓰는지 아십니까? 나는 여유 있는 마음이 못 됩니다. 지극히 가난한 미천입니다. 붓을 들고 앉으면 마치 사르밧 과부가 (열왕기상 17:8-16) 아침마다 그 밀가루 항아리를 긁은 모양으로 언제나 내 마음의 바닥이 소리가 나도록 긁지 않고는 못 합니다. 부름 받은 사명 때문에 몸을 쓰고 있는 이상 여러 믿음의 성도에게 평안을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의 평안을 잃으면 혼의 평화를 지켜가기 어렵고, 혼의 평화가 깨지면 거룩하신 영의 모습과 음성을 보고 들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닥쳐오는 주님의 예언 (누가복음 21:25-33), (요한계시록 6, 8, 9, 16, 17, 18)이 믿어지면 우리들은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도다.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1-1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누가복음 21:34-36) 하신 말씀을 지켜 정신차리고 살아갑시다. 기상을 가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능력의 예언자 엘리야! 포악무도한 아합으로 하여금 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열왕기상 18:17-18) 하고 겁을 집어먹게 하던 사람, 거짓 바알 종교850인을 파리 목을 자르듯 한 칼로 죽여 버리던, 하늘 소리만을 듣고 살아가던 엘리야도 일개 계집 이세벨의 몸종을 통해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은 없다. 죽여 버린다.” 하는 소리를 듣고는 정신을 잃고 광야로 도망하여 기진맥진하여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나를 죽여줍소서하고 추태를 부렸습니다.

이제 이 나 하나 남았는데 그 나를 없애버리려는 구나하는 생각에 그랬습니다 (열왕기상 19:1-14). 그러다가 하나님이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시는 소리를 듣고야 정신이 번쩍 들어 엎디어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생각 중에서 폭풍이 지나가고, 지진이 지나가고, 불길이 지나간 다음에야 가늘고 고요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 속에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과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합이 양순한 백성의 재산을 마구 빼앗았다는 소문을 듣고 그것을 책망하러 어엿이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대적아, 네가 나를 찾았느냐?” 하는 뻔뻔한 아합에게, 늙은 아버지가 망나니 자식을 훈계하듯이 그렇다, 내가 찾았다.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쓸어버리려 한다.” 했습니다 (열왕기상 20, 21) 믿음의 성도 여러분, 자아를 가진 사람은 강합니다.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은 바람소리에도 놀라고 헛개비에도 넋을 잃습니다.

그러나 누가 자아를 가진 사람이요, 누가 자아를 잃은 사람입니까? 이때에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를 가지려는 자는 잃고 잃은 자는 얻는다” (요한복음 12:24-25)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이제 하나 남은 나를 죽이려 한다고 자기에게 달라붙을 때는 자아를 잃어버리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는, 소리 아닌 소리를 깊은 데서 들었을 때, 자아에 퍼뜩 돌아왔고, 그 자아가 밤바다처럼 고요한 가슴을 벌렸을 때 참의 얼굴은 거기 달처럼 환해집니다. 생각이 깊어가야 밝은 샛별이 머리 위에 떠오릅니다.

()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옳은 것을 위해서입니다. 목숨을 받아 가지고 나온 이상 옳은 것만을 위하여 살게 마련입니다. 까닭을 알거나 모르거나 절대의 명령이 거기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마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이라고 합니다.

()의 뿌리를 내가 다할 수 없고, ()의 씨를 내가 능히 다 없애 버릴 수는 없으나, 선을 선으로 알고, 악을 악으로 아는 것은 설명할 필요 없이 스스로 환한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 숨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일입니다 (베드로전서 2:24). ()와 공의(公義)가 주의 보좌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89:14). 우리는 (시편 1:1-3, 마태복음 5:6, 빌립보서 1:11, 디모데전서 3:16, 디모데후서 4:8) 말씀위에 서 있습니다.

그럼, 옳은 것이란 무엇입니까? 어려운 말할 것 없습니다. 환합니다. 진리는 언제나 바닥에 있습니다. 소위 큰 일 한답시고 사람의 개, 닭처럼 휘몰고 잡아먹는 것들이 돌아보지도 않는, 그 바닥의 말씀만을 생각하고 아끼는 것이 의()입니다 (누가복음 16:1-8). 그가 섬긴 주인은 하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생명나무의 열매(말씀의 씨)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요, 하늘의 아들인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학대와 무시를 당하고 있는 영혼을 위해서 복음의 밭이 되어 건질 수 있는 데까지 건져 보자는 것입니다 (로마서 10:8-17, 이사야 52:7-10).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며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7). 우리는 선한 싸움에서 의()의 편에 서서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생활을 하여야만 됩니다.

우리의 힘줄의 최후의 한 가닥, 피의 최후의 한 방울까지 자기의 평안과 재미를 위하여 쓰는 것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한 그 대의(大義)를 위해 끝까지 순교정신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여기 이르러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로부터 모든 사람이 그를 존경하고 위하여 눈물을 아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의 탄식을 듣고 빨리 이 강산, 이 민족을 위해 일합시다 (예레미야 5:1-31, 9:1-26). 어서 일어서서 나갑시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자리에 돌아갑시다. 본래의 자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시니라” (창세기 2:15-17). 이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아서, 우리의 자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선악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일이며 생활입니다. 어서 돌아갑시다.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맛비같은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라!

다시 묻노니,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9804월호 권두언, 박윤식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