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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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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은 만물의 탄식소리를 듣는가
 글쓴이 : 관리자
 

다시 읽는 권두언_ 1982년 7월호.           

이름도 모르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분!
하늘의 맑음, 땅의 소용돌이치는 속에서 안녕하십니까? 무더운 여름이 외치는 속에 영육 씩씩하십니까? 영원한 말씀의 성도 여러분, 깨끗하십니까? 깨끗하여야 참 평안입니다. 평안을 가지셔야 즐거울 수 있고, 즐거워야 선(善)을 행해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아들 여러분!
지금은 울 때요, 부르짖을 때입니다. 죽어가는 양심, 캄캄함에 떨어지려는 영혼을 위해서 말입니다. 어린 양 하나가 기력이 약하면 사자에게 먹히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꾼을 구하는 주인의 심정으로 살아 왔습니까?(마태복음 20:1-16) 복음을 위해 희생을 하셨습니까? 죽어가는 양을 위해 힘써 왔습니까?(디모데후서 4:2).
하늘의 아들들이 이 일을 게을리 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동안, 힘없는 양한테 달려드는 사자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자연 속에는 그런 비겁은 절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으면서 비명을 올립니다.
누구를 향(向)해서입니까?
생명의 왕을 향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명은 생명의 자기 주장이요, 항쟁이요, 호소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우주는 비명을 가지는 우주입니다.
비명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위로가 있고, 원통에 대한 신원(伸寃)이 있고, 재판이 있고, 생명에 대한 재선포가 있습니다. 만일 사자에게 먹히우는 어린 양의 비명이 없었더라면, 포수의 총알에 떨어지는 작은 새의 파득거림이 없었더라면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실로 억울하게 죽은 피는 땅 속에서 부르짖습니다.

생명의 아들 여러분!
우리는 평화의 씨알들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위해 신령한 군대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평화란 우리가 할 의무를 다한 것에 대한 열매로 혹은 선물로 오는 것이지, 한 것이 없이 그저 오는 것도, 마구 강제로 취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한 마디로 ‘참’밖에는 없습니다. ‘참’을 하려면 하늘의 법을 따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참’을 합시다.
‘참’을 하면 평화는 자동적으로 옵니다. 자동적이란 다시 말하면 내가, 혹은 누가 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 그 자체가 한다는 말입니다. 평화는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다만 ‘참’뿐 입니다.
‘참’이 무엇입니까? 만물, 만사를 하나로 깨달아 하나에 사는 일입니다.
십자가 구속의 사랑으로 하늘 나라 생명의 씨가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씨는 항상 우주의 끝에까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디서 하나님의 평화가 깨지고 비명이 들려오지 않나 하고 말입니다.
사실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2-3) 하신 이 말씀대로 마음이 비는 것뿐입니다. 내 마음을 비게 함이 ‘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 땅 끝에서 오는 비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즉 만물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로마서 8:19-25).

삼천리 금수강산에 죄악의 소리 들리지 않습니까
생명의 씨이면서 이것을 못 들었단 말입니까


생명의 씨알 여러분!
이 삼천리 금수강산에 죄악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죽어가는 어떤 비명소리도 못 들었다면 그 양심이 얼마나 파선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까?
온 나라가 다 무사한 듯 먹고 마시고 놀고 춤춘다면, 온 나라가 다 저와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다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17) 하지 않았습니까? 일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자를 불한당이라 하지 않습니까? 만물의 탄식소리를 들읍시다! 귀를 기울이면 반드시 두 가지 비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강도를 당하는 나라의 비명이요, 또 하나는 강도질하는 그 자신의 속에서 강도를 당한 그 영혼의 비명입니다. 그의 영혼은 곧 나의 영혼입니다(에스겔 18:31-32, 2:4-5).

이름도 모르는 생명의 씨알 성도 여러분!
생명의 씨이면서 이것을 다 못 들었단 말입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강도당한 내 스스로의 영혼과 이 나라의 혼을 위해 슬피 울어야 합니다. 나는 역대 선지자들의 외침 속에서, 지금 살아 있는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주는 것을 듣습니다.
하늘의 말 듣지 않는 자! 하늘 아래서 망합니다. 어서 마음이 가난하고, 비고, 잠잠하게 하면 창조 이래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생명들을 보십시오
그 비명을 무시하면 자기도 죽고 그 사람도 죽이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아들 여러분!
생명은 하나입니다. 모두의 아픔이 나의 아픔입니다.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생명들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비명을 무시하고 달려들었을 때 그 자는 두 가지 살생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제 속의 생명을 죽인 것이고, 하나는 보이는 자의 즉 겉의 생명을 죽인 것입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하지 않았습니까?(시편 49:20)
내가 객관세계를 어찌 알 수 있습니까? 내 형제 곧 나의 또 다른 자아(自我)인 당신을 향해, 생각하는 인간인 당신을 향해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좀 무식하여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는 속일 수 없는 양심을 갖기 위해 속일 수 없는 사람으로서 당신들과 내가 아는 짐승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한가하다면 객관 세계를 토론하십시오. 나는 내가 보는 우주와 하늘을 말할 것입니다.
‘나’는 ‘나’라고 하는 자연(自然)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 짐승 같은 자가 참사람을 잡아 먹을 수는 없습니다. 즉 그 비명까지 막을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왕이 직접 관할하시는 속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짐승들은 산으로 가고 참사람은 도시로 오셔야 합니다.
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평안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야 미움도 싸움도 시기도 질투도 모략도 그리고 권모술수도 없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그 나라의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이 그 근본 덕입니다. 그 겸손으로 참을 지켜 이 땅 위에 새 차원의 세계 곧 하늘나라가 임하도록 해 보자는 것이 그 사명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들읍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그러기 때문에 옛날의 선지자도 거짓 평안을 극히 미워했습니다(예레미야 6:14-15).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고 통회자복하고 회개하는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심령이라야 만물의 탄식소리를 듣습니다.

귀국 도중 기내에서(歸國 途中 機內에서)
박윤식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