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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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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역사의 기약대로 살았느냐?
 글쓴이 : 관리자
 

1984년 12월호



하늘 아래, 땅 위에 널려있는 그 나라의 씨알 여러분!
이 새 언덕에서 서로 만났으니 씩씩한 영으로, 기쁜 마음으로 살아난 몸으로 새해를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천하의 모든 그 나라의 생령의 씨알들은, 똑똑히 깬 분들은, 안녕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소리를 내고 소리를 듣는, 즉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증거를 지키는 사람들은 성도 중의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리인 줄 믿습니다.
안녕하신가 하는 것은 똑똑히 깨어 있는가 묻는 말입니다. 깨어 있으면 물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평안합니다. 그러나 깨어 있지 못하면 감미롭고 화려한 음악 속에 누워 있어도 죽은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목적은 전체 성도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로 깨어 소리를 지르는 일입니다. 전체가 생명의 소리를 지를 때,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마치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듯이.(여호수아 6:1-21, 시편 19:1-4)
“하나님의 뜻에 도전하는 어두움의 자식들, 거룩한 성을 짓밟고, 흩어버리고, 평안을 빼앗아가는 어두움의 권세, 사단아 물러가라!”
“이 나라 이 민족이 살 길은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밖에 없다!”고 믿음의 소리로 헌신할자 누구입니까? 믿는 성도가 아닙니까.
외치는 자가 많고 많은데 생령의 소리가 아닌지 왜 우리의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지 않습니까? 생령의소리를 한번 내 보세요. 마치 거라사인의 지방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말씀 한 마디로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 떼에 들어가 산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살한 것과 같이.(마가복음 5:1-21)
갈 곳을 몰라 미치는 흉흉한 민심의 바다더러 “잔잔하라.” 하면 갑자기 잠드는 아기 숨소리같이 가라앉아 배가 어느새 가려던 언덕에 닿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누가복음 8:22-25) 또 시간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깬 생령의 씨알들은 가만있어서는 안 됩니다. 가만있지 못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깬다는 것은 역사의 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사람은 나의 소리도 들어야 하고 하늘의 소리도 들어야 하지만, 또 역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피리의 이 끝이요 하늘이 피리의 저 끝이라면 역사는 그 피리 이 끝과 저 끝 사이에 있는 전체의 통입니다. 그것 없이는 하늘도 그 숨을 불어 넣을 곳이 없고 나도 그 숨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소리를 들으려 해야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하늘의 소리를 들으려 해야 내 소리를 들을 수 있기도 하지만, 또 역사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는 내 소리나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소리를 그저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들어야 산 역사의 소리가 가슴에서 그림으로 펼쳐집니다. 가슴에서 펼쳐진 그림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역사는 보통 떠들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듣기는 들으면서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기 쉽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되어야 정말 들은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의미가 통해야 한단 말입니다.
이 ‘통한다’는 것은 곧 ‘뚫린다’는 말인데, 뚫린다는 것은 이 끝에서 저 끝이 내다뵈게 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둘이 하나가 됩니다. 둘이 하나가 되면 셋이 하나, 곧 삼위일체가 됩니다. 나와 하늘과 역사입니다. 그 하나로 만드는 힘이 뜻입니다. 뜻이기 때문에 의미라고 합니다. 뜻은 말씀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로마서 13:11-12)
성도 여러분! 역사의 길이야말로 꼬불꼬불한 길입니다. 그것을 뚫어 의미가 통하는 말씀을 알아듣게 하는 것이 뜻, 곧 의지(意志)입니다. 똑똑히 깬다는 것이 역사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깊은 뜻(意味)을 찾는 굳센 뜻(意志)이 있으면 똑똑히 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역사의 하는 소리를 들어 보세요. 역사의 소리를 들으려 하는 깨어있는 믿음의 성도 여러분은 평안하셔야 합니다. 참 평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옵니다.(요한복음 14:27) 이 참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꼬불꼬불한 속에서도 고요히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참 평안한 마음으로 들어 보세요. 우리 뒤에는 소리 없는 무한 생령의 씨알이 소리 없이 섰습니다. 저 옛날 엘리야 선지자는 어두움의 권세 앞에서나 우상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자기 혼자 있는 줄 알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7천명을 남겨둔 사실을 기억합시다.(로마서 11:1-6)
소리가 없는 것은, 소리를 들으려고 숨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죽인 숨은 폭발하고야마는 법입니다.
하늘에서, 땅에서 진동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앞 물결 뒷 물결이 서로 밀고 서로 높여 주듯이, 이 옥돌과 저 옥돌이 서로 빛을 내주듯이, 사람은 사람과의 부대낌으로만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옛말에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이 있습니다. 물(物) 중에서도 물(物)은 사람입니다. 지(知)가 물(物)을 격(格)함으로 된다면, 인(仁)은 인(人)을 격(格)함으로라야 됩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요 격인치인(格人致仁)입니다. 격인(格人)해서 인격(人格)이 됩니다.
생명도 하나요, 인격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입니다.
몸의 한 부분이 제 노릇을 못하면 불인(不人)이라 합니다. 불인(不人)은 곧 불인(不仁)입니다. 어느 한 부분이 제 노릇을 못하면, 앓는 것은 그 부분만이 아니고 전체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느 부분이 아프면 온 전신이 아파하고 만져 주고 돌봐 줍니다.



나라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불행은 전체의 불행입니다. 어리석다 모질다 하는 것일수록 사랑하고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원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묻는 것은 정신이 말짱히 깨어 있나 물음인데 정신이 깨려면 옆에 사람과 손을 잡고 이야기를 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혼은 졸음을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역사의 엘리트 여러분, 이 한 많은 1984년이 갑니다. 이 가는 해를 잘 보내고자 우리는 하나님이 정해준 기약대로 살아왔습니까? 역사의 성전에 들어가서 “1984년이여 잘 가라.” 하십시오. 그 얼굴이 온통 피요 그 옷이 함빡 진창에 더러웠지만 그 속에는 성숙해 가는 신부의 살갗이 있습니다. 그는 그상처와 더러움을 역사의 깊은 소리에서 진주를 얻어 오느라고 입었습니다.
지금은 숨을 내쉬는 때요 기운을 마시는 때입니다. 생명의 님의 말씀이 하늘땅에 사무쳤습니다. “죽은 자는 저 죽은 자들로 장사케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 새 언덕에서 첫째로 나가는 말씀이 이것뿐입니다. 이것이 곧 인사요 감사요 기도요 찬송입니다.
생령의 씨알들은 하나님의 모습대로의 본성을 믿고 살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천성을 잃고 사람에 대해 적대하는 자에게서는 그 속에 무력(無力)밖에 없습니다. 무력(無力)을 느끼기 때문에 무력(武力)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하게 자기의 말로 자기를 무장하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거짓말이 굳어져 사실인 양 되어버렸기 때문에 구제불능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제멋대로 종교를 연구하느니, 교회를 연구하느니 하는 자들, 그러한 자의 소굴은 수군수군과 모든 불의, 합당치 못한 일,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며 입으로만 아첨하는 자요 교만하고 모략과 중상을 서슴지 않고 자기는 의로우며 남은 정죄하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심판하는 자요 자랑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는 어두움의 자식들이 모이는 곳이니, 그 어두운 굴 속에서 어서 나와서 역사의 소리를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저 먼 길을 단번에 다 정복하기를 기도합시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승리로 내디딜 수 있게 해줍소서.” 하는 기도로 이 한 해를 꿰뚫기를 약속합시다.
1984년이 다 갑니다. 개인으로나 전체로나 단 한 번 뒤를 돌이켜 반성해 보고 앞을 내다보아 새 계획을세워야 하는 때입니다.
사랑만이 너, 나를 하나로 살리는 생명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을 바랍니다.
샘물이 적다, 맑지 못하다 할수록 한 방울의 비 같은 마음을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박윤식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