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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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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권두언_ 성화산의 밤비
 글쓴이 : 관리자
 


성화산(聖火山)의 밤비_ 1980년 8월호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세아 10:12)
“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민수기 11:9)


* 성화산: 서울 강남구 원지동에 있던 평강제일교회의 옛 수양관 소재지

말씀의 씨알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늘의 맑음, 땅의 번듯함 속에 안녕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과 불의 날뜀, 바람의 외침 속에 씩씩하십니까?
어둠 속에 빛이 비치기 시작한 내 나라 내 민족에게, 주전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가 예언한 말씀이 이 나라, 이 민족에 임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이사야 40:1-8)
말로 할 수 있는 때는 타이르기도 하고 풀어 가르치기도 하고 책망까지 하고 말로는 아니 될 때는 여러 가지 기적까지 행했지만 그것으로도 아니 되는 정도로 넘어갔을 때는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누가복음 3:7-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마태복음 12:39-42) 해서 아주 십자가의 길을 분명히 택하고 나섰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악령의 이빨과 발톱에서 뽑아내는 데는 그것밖에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는 예수님을 죽이던 시대, 예언자 요나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게 하던 세대와 다른 것이 있습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요한복음 1:29, 36) 꼭 보시기 바랍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한 가닥은 빛을 믿는 믿음의 때입니다. 나 자신이 사람이기 위하여 믿어야 합니다. 사람 속의 빛을 믿지 않는 것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나를 믿지 않음은 하나님을 믿지 않음입니다.



마음은 마음으로라야 되고, 영은 영이 아니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은 단순히 욕심이나 판단의 잘못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죄악의 악령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고 말씀의 철장으로 쳐부수기를 바랍니다.
사회부정을 마음대로 지어내고 있는 사람은 명동 골목의 썩어진 물고기 떼보다도 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역사적 피해자입니다.
말씀의 씨알 성도는 이 세상 어떤 것을 빼앗기고 빼앗겨도 하늘의 빛이 마음속에 충만한 가운데 기뻐하고 소망 가운데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어둠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영혼은, 영혼을 잃고 악령의 종이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참혹한 피해자입니다.
1980년 8월 22일 *성화산에서 이 글을 씁니다. 파랗게 붉게 익은 사과, 누렇게 익어가는 들의 나락을 바라보며 말씀의 성도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참과 거짓의 판가름이 나서 불볕의 시련 속에 떨던 연한 양심들이 뺨을 스치는 산들바람에 감격과 찬송의 눈물을 흘리는 때입니다. 일의 결과가 나타나서 이끈 사람, 따르던 사람이 네 공, 내 공을 주장하기를 잊고 다 같이 감사와 새 창작의 영감에 즐거워하는 때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의 시해사건 이후 얼마나 무서운 먹구름 속에 격동, 소용돌이의 연속이었습니까?
이 나라, 이 백성이 붉은 대홍수 속에 휘말려 떠내려갈 때 애국애족, 구국일념으로 일사각오의 희생으로 나라와 민족을 건져주신 젊은 장병!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의 눈물뿐입니다. 양손을 높이 쳐들고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 따름입니다.
악착스럽게 갉아먹던 버러지도 서리 한 칼에 그 흉악이 끝이나고 썩어지는 그 시체를 그 뿌리에 거름으로 바쳐 지은 죄를 속하는 동시에 새로운 선(善)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때 입니다.
넓은 천지에 번듯이 내놓은 평화주의를 ‘옳다구나!’ 악한 기회로 이용하여 얼굴 두껍게도 남의 수고의 결과를 이유 붙여가며 도둑, 강탈, 공갈해먹던 권력주의자들에게도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려고 흐리터분한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유난히 밝아 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제 그림자가 스며들게 말을 하는 때입니까? 아닙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을 때입니다(마태복음 9:17).
말씀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숙인 고개를 번쩍 들어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고 목에 선뜻 와 닿는 낫 날을 순교자들같이 “이거 참 좋다!” 하며 받으십시오. 죽음이 영원한 생명이 되고, 애착이 영겁의 벌이 되는 때입니다.
무르익은 사과는 뉴턴에게 영원불변의 진리를 가르쳤고, 3년을 못 떨어지고 가지에 매달려 있는 밤송이는 오고가는 시대에 경계거리가 되었습니다.
말씀의 씨알 성도 여러분! ‘알’이 들었습니까? 익었습니까? 기름을 준비했습니까? “기름!” 하는 한 마디에 세계를 발끈 뒤집어 놓는 이른바 유류파동의 뜻 아십니까?
역사의 혼인식에서 텅 빈 등잔만 드는 어리석은 처녀 되지 마십시오(마태복음 25:1-13).
밤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차디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성화산의 밤에 나는 이 글을 씁니다.
신랑은 도둑같이 옵니다. 신랑은 말하기를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 때는 언제나 있다.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준비하라.”(요한복음 7:6) 했습니다.
여러분의 골을 짜서 그 기름으로 여러분의 텅 빈 마음을 채우십시오(마태복음 25:4, 로마서 13:11-14). 신앙의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살 때입니다.



오늘을 보십시오.
오늘날은 책망을 한즉 감정이 털끝에 오르고 벌을 한즉 나라생각보다 보복주의가, 묻기 전에 그 처사가 환히 들여다보입니다. 그것은 큰 것이 못됩니다. 나라는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는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두고두고 의붓자식 대접만 받아온 이 말씀의 씨알들에게 새 시대는 왔다는데 채는 더 굵어만 가고 줄은 더 조여들기만 하는 세상은 아니 되도록, 각자가 새 마음 새 정신으로 새 시대에 동참해서 희생으로 맡은바 일에 충성합시다(고린도전서 4:2).
우리는 푸른 나무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심정을 알고 아이들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어른 정치가가 아닌 아이 정치가를, 천하를 좀 뒤흔들 줄 아는 정치가를 좀 보내 주시구려!
우리는 고요한 나라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 중에서도 아이들입니다. 집이 너무 가난합니다. 씻어놓은 조약돌같이 반들반들한 도시의 어른 축소판 아이들이 아닙니다. 방금 캐놓은 고구마같이 흙냄새 나는, 흙냄새 나기 때문에 하늘 냄새 나는 아이들입니다(마태복음 18:1-7).
아이들의 병은 숨통이 좁아지고 신경이 과민하다 못해 마비된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웃어도 입 곁으로 헤헤하고, 울어도 눈꼬리로 찔끔질끔하고 노하면 잇새바람으로 색색하고 싸운대도 손톱 발톱으로 할퀴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똥구멍 파는데 때가 너무 껴서 옅은 상처를 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본성을 잃었습니다. 작고 옅고 좁아졌습니다. 이것을 그치려면 온몸에 진동을 주어 세포의 갈피갈피 속에 숨은 찌꺼기를 몰아내고 모든 마비되고 굳어진 신경을 풀어 연하게 해야겠는데, 그렇게 하려면 저 생명의 밑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한 번 힘껏 웃어보는 것이 제일입니다.
말씀의 씨알 성도 여러분! 새는 하늘에 놔줘야 새 노릇을 하고 고기는 바다에 놔줘야 고기 노릇을 하듯이 사람은 전체 삶 속에 놔줘야 사람다워집니다.
인정의 바다 속에 어린이가 내 마음의 동무가 되는 것은, 그들은 선도 악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의 동무가 될 수 있는 것은 나는 권력과 돈과 꾀와 거짓에 싫증이 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빛에, 삶의 바다에 서로를 잊고 놉시다.
밤이 깊었습니다. 창밖에는 비가 그냥 옵니다. 묵은 상처를 건드리듯 빗소리가 요란합니다. 밤비 소리에 귀를 기울일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래 이렇게 거칠고 사납고 매정하고 더러운 사회가 되겠습니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오직 돈과 권력의 자료로만 보는 정치바람이 아니었던들 그래 그렇게까지 마음의 여유를 잃었겠습니까?(사회악 정화 운동을 보고…)
“단호! 단호! 엄벌! 엄벌!”을 부르짖는 정치인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밤비 소리입니다. 오늘같이 노래와 춤이 거리에 넘친 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인심이 이렇게 사나운 때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라디오, 텔레비전에의 확성기가 떠들어대는 것은 인심이 평안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인심이 평안하면 시냇물 소리,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유행잡가로 떠들어 대지 않습니다.
인심의 법칙을 모르고 정치를 하는 것은 물살을 모르고 배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의 자식이 우격다짐으로 사람이 안 된다면, 나의 백성은 더욱 그렇습니다.
국민이 밤비 소리를 듣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정치가 저절로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필시 그들은 “공산침략도 밤비만 오면 물러가느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언어도단입니다. 대답이 없습니다. 잠잠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지시가 있을 뿐입니다.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신명기 28:7, 출애굽기 14:13-15:27, 23:22, 27, 레위기 26:7-9, 사무엘하 22:38-41, 시편 18:17-40)
말씀의 씨알 여러분! 내가 여러분께 정치 강의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인생과 역사를 건질 것은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정치가의 일이지 목자의 할 일이 아닙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살아도 내 나라, 죽어도 내 나라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아무리 잘못 돼도 나라의 그루터기는 뽑아먹지 못합니다. 불에 타도 남은 것은 나라의 그루터기입니다.
거기 물을 주어 소생시키기 위해 여러분께 밤비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강력 정치에도, 그 정치에 희생되어 강력범이 된 자에게도 마음의 동무가 되어 주십시오. 그것이 죽은 그루터기를 소생케 하는 물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의 희생제물 시키시면서까지 사랑하여 주신 그 사랑으로 서로 마음, 마음이 하나 되어 이 나라를 내 몸같이 사랑합시다. 원수 맺지 말고 서로 알아주고 서로 위로해 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 그럼 삽니다.

박윤식 원로목사



박윤식 원로목사는 이 글로 1981년 7월 미국 플로리다 주립 기독교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교수들은 ‘성경 문학의 결정판’ 이라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