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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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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 속의 백합화는 말이 없어라
 글쓴이 : 관리자
 


1982년 5월호
 
생령의 씨알 여러분, 주 안에서 안녕하십니까? 참평안은 정신이 흐리멍덩해서 뒹굴며 먹고 마시며 목적 없이 사는 생활 속에는 절대 없습니다. 한 나라의 씨알들이 나라가 어떤 길을 달리고 있는지, 이 백성의 인심이 어떤 물결 위를 밀려 내려가고 있는지 아랑곳없이 그저 밤낮으로 자고 깨고 먹고 노는일에만 정신 팔려 있는 곳에 참평안이 있겠습니까?
내 할 의무가 무엇인지 거기에 대해 다급한 마음을 갖고, 살아 계신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며 날마다 희생 제물이 될 각오를 한 자가, 산 생령의 씨알이요, 살아 있어 역사를 지어갈 수 있는 생령들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날에야 이 달의 원고를 써야하니 가엾습니다. 5월이 다 갔는데 5월호 원고를 아직도 못 쓰고 있는 사람은 결코 월간신문을 잘 낼 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끄럽습니다.
물론 이 신문이 생령의 씨알끼리 대화를 하잔 것이 목적이니 장사꾼이 하는 것같이 오는 달 것을 월초에 내지 못했다 해서 그것을 그리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허공에 사는 것이 아니고 현실 속에 삽니다. 우리는 구름장 위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생령의 씨알들에게 내 잘못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나는 게을렀습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사랑의 경고를 세 번씩이나 받으면서도 피곤을 못 이겨 꾸벅꾸벅 졸기만 하다가, 갑자기 이미 “대적이 왔다.”는 바람에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아들던 베드로 모양으로 어리석은 용기라도 부릴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나 자신인가를 알아 때를 놓치지 않는 깬 마음이 없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뭉개고 있는 동안에 한 달이 다 가고 말지는 않았을 겁니다.
게으름엔 또 왜 빠집니까? 속에 기운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영의 숨입니다. 그 숨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기운이 줄고, 기운이 없어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잠이 옵니다.
무르익은 봄, 물기 어린 바람 속에 어김없이 핀 백합화를 보십시오. 연하기 그지없는 것이라도, 그 순백색 입술의 나풀거리는 것을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숨, 계절의 말씀은 그런 것입니다.
백합화! 싱그러운 봄바람을 마시고 벌리는 백합화의 하양 입술을 막아낼 힘이 이 세상에 없다고 했습니다만, 그것은 결코 그 바람을 봄에만 마신 것이 아닙니다. 지난 해 여름 이래 또 겨우내 마셔 온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길러 온 생명의 힘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백합화가 자는 잠, 그것은 여름잠이라 합니다. 이 여름잠 자는 것을 배웁시다. 추운 겨울에 버러지들이 잠자는 상태로 지내는 것은 누구나 잘 압니다. 그래서 이른 봄에 그 일어나 나오는 것을, 경칩 혹은 계칩이라 합니다.
백합화의 여름잠, 가장 알기 쉬운 것은 우리가 많이 먹는 마늘, 달래 같은 것입니다. 이것들이 이른 봄에 나와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는, 그 줄기와 잎은 사라지고 그 알뿌리(球根)가 여름 동안 땅속에 가만히 묻혀 있다가 가을 혹은 다음해 이른 봄이 되면 새싹을 냅니다.
여름에 잠을 자는 것은 제 생리에 잘 맞지 않는 기후를 견디어 보내는 하나의 독특한 방법입니다. 이름은 잠이라 하지만 결코 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눈을 감고도 깨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남들은 여름날 사나운 볕(曝陽)의 찌고 내리지짐을, 넝쿨식의 복종이나 응달에 피는 꽃식의 아첨으로 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사막의 드문 오아시스의 종려·야자식으로 간단히 지하수의 샘에 뿌리를 박고 버티어 봄으로 지내는데….
이 연한 백합화는 종려식의 영웅주의를 나타낼 맘도 없지만, 또 넝쿨식의 아첨도 차마 할 수 없어, 겸손의 길을 취해 신선답게 굴복도 대항도 아니하고 땅속에 서늘하게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을 하여, 오는 악(惡)을 제 속에서 장차 올 날을 위한 신비로운 선(善)의 양식으로 전환을 시킵니다.
이른 봄에 벌써 제 할 일을 다하고는 여름의 사나움이나 썩어짐에 졌다는 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제 먼저 잎은 다 걷어치우고, 지독한 태양의 열을 부즉불이(不卽不離) 떨어짐도 아니고 붙음도 아니게 변화시켜 속으로 살을 찌도록 합니다. 이야말로 신령한 도(道)가 아닙니까?
백합화, 그가 여름에 가만히 있은 것은 게을러서, 못나서가 아니라, 생명의 기운의 본질이 아니고 그 따라오는 여열(餘烈)을 사랑과 침묵으로 변화시켜 때가 올 때에 누구보다도 먼저 그 추위를 노래로 녹여줄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그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것이 사실 생령의 씨알의 길입니다.
백합화는 높은 지대가 아니라, 낮고 누습한 늪지대에 잘 됩니다. 높은 지대일랑 살고 싶다는 강자에게 주십시오. 뺏는 대로 뺏기십시오. 그리고 한여름을 땅 속에서가 아니고는 살아 지낼 수 없는 사회의 누습을, 하늘만 주는 땅으로 알고 여름잠을 자십시오. 봄이 올 때, 조그만 한들바람만 불어도 억억만민이 일시에 춤을 추어 부르는 황금노래는 생령의 씨알이 아니고는 못할 것입니다.
생령의 씨알 여러분, 역사가 또 한 번 여울목 소리를 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주님 말씀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 했고, 이사야 선지자도 「너희가 돌이켜 안정하고 잠잠하여야 살리라.」(이사야 30:15) 했습니다.
생령의 씨알들이여! 우리는 마음과 육비(肉碑)에 신령한 말씀의 글을 씁시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心碑)에 한 것이라.」(고린도후서 3:2-6)
사람들아! 제발 우리보고 “왜 대답이 없나!”하고 너무 조급히 묻지 마시라.

가시밭 속에 백합화는 말이 없어라!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 아닙니까!(고린도후서 4:6-10)

생령의 씨알들에게는 그저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 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박윤식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