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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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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귀 있는 자 들으라
 글쓴이 : 관리자
 

1980년 3월호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태복음 11:15)

 
말씀의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봄이 옵니다.
하늘의 소리는 신앙이 깊어질수록 우리에게 가깝습니다. 하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시고 「노아」 같은 축복의 사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의 지껄임 속에 헤매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네가 사람의 소리는 들어도 땅의 소리는 듣지 못하고 땅의 소리는 들어도 하늘의 소리는 듣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2700여 년 전에 그랬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랬지만 우주시대라고 하는 오늘 시대는 더합니다.
우주시대나 기계시대나 정치시대나 결국 싸움이기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아, 얼마나 시끄러운 시대입니까? 말씀은 소리를 내서는 안 됩니다. 소리 내지 말자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소리는 온 땅에 통하고 있습니다(시편 19:1-4). 소리 내지 않는 것이 참소리입니다. 소리 내지 않으려면 하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늘 소리는 땅의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소리 아닌 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되려면(주의 말씀 받으려면) ‘귀 아닌 귀’를 가져야 합니다.
‘귀 아닌 귀’가 무엇입니까? 말귀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입니다. 예수님께서 “듣는 귀를 가진 이는 들으라.”(마태복음 11:15) 한 그것입니다.
‘듣는 귀’란 ‘하늘 말씀’, 역사의 ‘부르짖음’을 듣고자 하는 그 마음을 가리킨 것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귀가 열려 소리 없는 가운데 빛이 되는 말씀을 알아듣고, 마음이 없으면 세상 시끄러움에 귀가 막혀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하늘이 주지 않아 없는 것 아닙니다. 제가 쓰지 않음으로 못 쓰게 된 것입니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린다.”(마태복음 25:24-30)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목이 곧고 마음이 모진 백성에게는 보여 주지도 들려 주지도 말라.”는 명령을 하나님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큰일입니다.
또 「아모스」 선지자가 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 한 기갈과 주리고 목마름”(아모스 8:11-14)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입니까?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지만 밥보다 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는 젖을 먹어야 하지만 조금 자라면 그땐 젖은 버리고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듯이, 본능 정도에 있을 때는 물질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이제 본능의 정도를 훨씬 지나 정신적인 단계(영의 단계)에 오른 때에는 정신의 양식인 하늘 말씀을 반드시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것 없이는 있는 물질도 옳게 써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할 수 없고 또 나만 아니라 남까지도 살 수 없이 만들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감히 위대한 성인 예언자들의 심경을 깊이 알았노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빈 사막 같은 이 세상에서 말씀의 소리 하나를 붙들고 발발 떠는 것은 닥쳐오는 말씀의 기근을 두려워하는 심정에서입니다.
가뭄에 물을 찾아 헤매는 어린 것들이, 눈이 어둡고 목구멍이 타서 마른 갯바닥 위에 쓰러지듯이… 그런데 하늘은 그것을 보면서도 못 본 척 구름 한 장도 아니 일으켜 주듯이, 이제 이 나라 젊은이들이 바른 말씀 한 마디를 얻어 들으려고 헤매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하늘의 말씀을 듣지 못해 마음이 갈라져 쓰러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늘이 노하여 정신의 하
늘 문을 굳게 닫고 사상의 구름 한 장 일으켜 주지 않는 끔찍한 날이 오지 않을까?
내가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감히 주제넘게 ‘바늘 구멍만한 구멍이라도 뚫어보자’ (주의 십자가의 복음이 전 국민 마음속에 깃들어 하늘의 소망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실수와 부족을 잘 압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족해도 또 그 부족 때문에 도리어 민족의 가슴에 한 바늘귀는 되지 않을까? 그 바늘귀에라도 하늘 소리가 들려온다면 이 나라는 세계에 으뜸가는 나라가 되며, 세세무궁토록 살 수 있을 것입니다(신명기 28:1-4).
다시 기억하십시오.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리십니다. 모순이요, 이치에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만 어길 수 없는 법칙입니다. 이 하늘 법칙에 따라 「사마리아」 갈보 계집은 메시아를 만났고 유대 민족은 수천 년 동안 하늘의 약속을 가지면서도 땅 끝에 헤맸습니다(마태복음 25:13-30, 8:11-12).
성도 여러분 참(진리)을 증거하기를 두려워한다면 마침내는 우리에게 이성의 샘, 도덕의 샘, 정신의 샘이 아주 말라버려 사람들에게 밟힘이 될 것입니다.
하늘은 오래 참지만 결코 끝내 무시를 당하리만큼 멍청이는 아닙니다. 하늘은 복수하는 하늘입니다. 그러나, 경고 없이 하는 잔인한 하늘은 아닙니다(아모스 3:7-8).
우리는 시대의 얼굴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시대의 징조(마태복음 16:1-5)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인류가 빠져든 위기는, ‘선천적인 지혜’를 무지라! 미신이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얼굴을 숨겨버린데서 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민족이, 시대의 얼굴이 조금 뵈는 것도 있고, 그 얼굴 속에 하늘의 경고의 말씀이 조금 들리는 것이 있기를 지금까지 기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시대의 소리를 들읍시다. 역사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자 하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늘은 매양 그 뜻을 지극히 낮고 깨진 토기 속에 담기를 꺼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건지는 것이 지극히 겸손한 마음이 아니고는 안 되기 때문에 그러한 겸손한 영을 얻고자하는 거룩한 지혜에서 나오는 일일 것입니다.

박윤식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