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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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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여 안심하라. 부름 받은 나 여기 있으니
 글쓴이 : 관리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예레미야 20: 7-9)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로마서 9:27)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자가 있느니라.”(로마서 11:5)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42-43)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히브리서 4:7, 3:7-13)

말씀의 성도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영육을 쓰고 있는 이상, 평안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육의 평안을 잃으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가 어렵고, 영혼의 평화를 지켜가기가 어렵고, 영혼의 평화가 깨지면 거룩하신 이의 모습과 음성을 보고 들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닥쳐오는 서풍 속에서 사도 바울 같은 기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사도행전 27:9-25).
자아를 가진 사람은 강합니다.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은 바람 소리에도 놀라고 허깨비에도 넋을 잃습니다.
그러나 누가 자아를 가진 사람이요, 누가 자아를 잃은 사람입니까? 이때에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한복음 12:24-25)
자아를 가지려는 사람은 잃고, 잃은 자는 얻는다고 했습니다.
참의 얼굴이 달처럼 환하시기를,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생각하고 앉아 있는 동안에 밝은 샛별이 머리 위에 올라 왔습니다.
‘이 가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혼 추수의 가을이 되어야 할 텐데.’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요한복음 4:35-38) 하고 바위 위에서 기도로 애를 써본 것입니다.
목숨이 있는 순간까지 부름 받은 사명을 다하다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다가 끝장을 보는 것입니다. 즉 남은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로마서 9:27, 11:5).
옳은 것을 위해서입니다.
목숨을 받아 가지고 나온 이상, 옳은 것과 그른 것, 즉 선과 악의 사이에 살게 마련입니다. 까닭을 알거나 모르거나 절대의 명령이 거기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마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良心)이라고 합니다. 선의 뿌리 노릇을 내가 다 할 수 없고, 악의 씨를 내가 능히 다 없애 버릴 수는 없으나, 선을 선으로 알고, 악을 악으로 아는 것은 설명할 필요 없이 스스로 환한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 숨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일입니다.
그럼 그 옳은 것이란 무엇입니까? 어려운 말할 것 없습니다. 환합니다. 진리는 언제나 바닥에 있습니다.
소위 큰일 한답시고 사람을 개 닭처럼 휘몰고 잡아먹는 것들이 돌아보지도 않는 그 바닥의 생명의 씨알을 생각하고 아끼는 것이 의(義)입니다. 그러한 분이 역사의 주인이요, 하늘의 아들인 것입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고 사랑하고 씨알 대접해 주는 하늘 마음을 가진 자만 있으면 생명의 씨알들은 일어설 것입니다. 그때 나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될 것입니다.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이사야 60:17-18).
여러 나라가 뭐라고 떠들어도 무섭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생명의 씨알들은 힘줄의 최후 한 가닥, 피의 최후의 한 방울까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끝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새 시대, 새 결의 속에서 애국 충정에 불타는 신앙으로 굳게 뭉쳐 슬기롭고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내 나라의 책임 있는 나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 국방을 남에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자기 힘으로 지키겠다는 결의와 능력을 갖지 못할 때에는 집단 안전 보장 체제도 아무런 소용도 없고 무의미한 것입니다. 우리의 국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존과 번영을 수호하는 안전 보장은 결코 지나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안보는 「설마?」하는 것이나 「혹시?」하는 따위의 요행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촌각의 유예나 방심으로 이 중대한 시기를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국난을 당하여 초개같이 헌신한 호국영령들의 유지를 저버리는 결과이며 지난 수 년 간 인내와 각고로 모처럼 이룩한 자주 국방 태세에 중대한 차질을 초래케 하여, 나와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마음놓고 자유롭게 인간다운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 터전을 다지는 국가 보위에 헌신하는 민족사적 소망을 저버리는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것임을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평강제일교회 학생들이야말로 국난 극복의 활력이며, 새 역사 창조를 위한 민족정기의 도약대임과 동시에 호국 정신에 투철한 역대 선지 선열과 화랑의 후예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입니다.
지금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날이 올 것입니다. 때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계절 속에 두셨습니다. 지나간 것을 보아 올 것을 알고, 물질을 보아 정신적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루에는 밤낮이 있고, 일 년에는 사철이 있고, 우주에는 성생괴공(成生壞空)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서 어둠 뒤에는 빛이 올 것을 알고, 일 년을 지나 보아서 죽음 뒤에는 삶이 올 것을 알고, 영원을 내다 보아서, 이 생명은 완성이 될 것을 믿습니다.
욕심 없는 것이 씨알입니다. 어떤 것이 때를 아는 것 입니까? 갈 때에 가고 올 때에 오며 살 때에 살고 죽을 때에 능히 죽는 것이 때를 아는 것입니다.
씨알은 붙을 줄도 알고 떨어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여름에는 붙어야 하지만 가을에는 떨어져야 합니다.
여름에 떨어지는 씨알은 악한 씨알입니다. 폭풍이 불어도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는 씨알, 그것이 정말 새날을 가질 수 있는 씨알입니다. 푸른 씨알은 하나님도 따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떨어질 줄 알아야 합니다. 떨어지자고 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랄 대로 자라서 갈 곳이 있기 때문에 저절로 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날에 붙어 있던 것이 자랑이었던 것 같이, 지금은 슬쩍 떨어지는 것이 자랑이요 기쁨입니다. 여름에 자랄 때에 나무줄기는 나의 어버이요 보호자였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새 생명에 대한 준비가 속에 다 된 때에 나를 오히려 지켜 두려는 나무는 나의 원수요 도둑입니다. 모든 제도는 나무통 아닌 것 없습니다. 뿌리도 영원하고 씨알도 영원하지만 나무통은 그 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백성은 욕심 없이 하늘의 참을 그대로 살려는 씨알의 선한 마음뿐입니다.
한국 문제 가지고 토론할 자가 어디 누구인가? 우리 운명을 거기에 건다면 어리석습니다. 서로 한국에 정성이 있기나 한 것처럼, 한국 사람이 어떻게 생겼으며, 한국의 마음까지를 들먹이면서 법석을 하는 소위 대국(大國)들이란, 마치 폭풍의 날에 어린 한 알의 열매를 둘러싸고 서로 떠들고 미쳐 돌아가는 가지와 잎 같은 것입니다.
어린 씨알은 그 속에서, 어디에도 미치지 말고 고요히 자기를 지켜, ‘알’들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생각이 깊어야 합니다. 생각이 불꽃 속에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우리의 혼은 높은 역사의 탑을 올라갑니다.
높이 올라가야 역사의 앞뒤가 밝히 뵙니다. 과거의 의미도 미래의 올 것도 분명해집니다. 「혹?」해서는 아니 됩니다. 역사가 이렇게 되어서는 평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행복이 손에 잡힐 수가 없습니다.
모두 잡혀지지 아니할 행복을 잡을 듯이 생각하는 것은 「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명이 무엇입니까? 여름에 얼음을 먹어보고 전쟁을 하면서도 즐거움을 제대로 누려보자는 것입니다. 크게, 어렵게, 거추장스럽게 설명하고 수식할 필요 없습니다.
욕심이 없어야 바로 보입니다. 역사의 방향은 정도(正道)로 갑니다.
성도 여러분, 어서 깨끗이 결심하고 내 할 의무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의무가 무엇입니까? 하나로 사는 역사의 방향에 충실하는 일입니다.
살을 생명으로 알고 사는 자, 살이 썩으면 그 냄새가 더욱 독합니다.
우리는 「로마서 7:1-6, 8:5-9」 말씀같이 살아도 죽어도 하늘의 냄새를 맡으면서, 변화 받으며 살아갑시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로마서 7: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로마서 8:5-9)
역사의 씨알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오늘」이 된 자는「남은 자」입니다.
부름 받은 나 여기 있으니, 조국이여 안심하라! 나, 희생의 제물이 되리라.

박윤식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