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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성도는 어떻게 볼 것인가
 글쓴이 : 관리자
 




2010년 4월호 등불토론

토론_ 배종연 목사, 이봉원 장로, 이반석 성도(청년2부 편집팀장)
사회_ 호준석 (참평안 편집팀장)


아이티와 칠레 대지진, 지구 종말을 다룬 영화들, 9·11 테러와 쓰나미를 예측했지만 2012년 12월 이후에 대해서는 전망을 중단했다는 미국의 증시예측 프로그램 웹봇, 2012년 12월까지만 기록돼 있는 고대 마야문명의 달력… 그 어느 때보다 종말에 대한 담론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육체주의와 쾌락주의가 극으로 치닫는 시대, 성도는 종말 담론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토론회는 사상 최악의 황사가 엄습해 한반도가 누런 먼지로 뒤덮였던 지난 3월 20일 열렸다.

호준석_ 종말에 대해서 토론하기에 적당한 날씨인 것 같습니다. 종말론이 곳곳에 성행하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 것 같습니까.

이봉원_ 세계적으로 대지진과 이상기후가 잇따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말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것 같습니다. 무신론자들까지도요. 그러나 종말론은 미신과 혼란을 유발하는 부작용도 있지요. 종말이 임박했다는 불안감 때문에 일상생활을 포기하거나, 예고됐던 종말이 지연되는 데 따른 혼란으로 사회적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종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가 커질 것입니다. 그 책임은 성도들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이반석_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게는 당장 어떻게 먹고 사느냐의 문제가 더 큰 것 같아요. 세상살이에 몰두하다 보니 종말에 대해서는 아직 관심이 적다는 느낌입니다.

배종연_ 성경에는 반드시 종말이 온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시한부 종말론들이 바른 종말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놓은 부분이 있지요. 아이티, 칠레, 터키에서 잇따라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처처에 기근과 재난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마태복음 24:7-8)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진은 늘 있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강도나 횟수가 20세기 이후 급증했다고 하지요. 예전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강한 종말적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 내·외부의 상황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강렬하게 받습니다. 이미 종말은 시작됐다고 믿습니다.

호준석_ 종말을 다룬 ‘2012’, ‘ 노잉(knowing)’ ,‘ 지구가 멈추는 날’ 등의 영화를 봤습니다. 대단한 통찰력 (insight)이 담겨 있다고 느꼈어요. 흥행만을 위한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012’를 본 며칠 뒤 칠레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영화 속의 장면이 데자뷰처럼 TV 뉴스에서 그대로 재현되더라구요. 사람한테는 하나님이 주신 예지(叡智)가 있으니까 종말이 가까워지면 직감하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지진이나 쓰나미가 임박하면 동물들은 먼저 피한다고 하잖아요. 종말에 대한 영화를 본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 보면 기독교인이건 비 기독교인이건 “곧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얘기들이에요.

배종연_ 성경에도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이 무너진다고 예언돼 있죠(요한계시록 16:19). 지각이 움직이고 지층 내부의 온도가 높아지는 등 요즘 종말을 다룬 영화들이 표현하는 상상력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존층 파괴로 지구가 뜨거워지는 온난화도 진행되고 있구요. 정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호준석_ 칠레 대지진 때 지구의 자전축이 약간 이동하고 하루의 길이도 짧아졌다고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했습니다. 2004년 동남아 쓰나미 때도 그랬습니다. 그 당시 구한말 ‘정역(正易)’이라는 예언서에 있다는 ‘종말에는 23도 기울어져 있는 지구의 자전축이 똑바로 선다.’는 예언이 많이 회자됐었죠.
종말의 징후가 확연하다고 느껴도 성도들이 종말에 대해 세상에서 얘기하기를 꺼리는 면이 있습니다. 두 가지 요인이 있어요. 첫째는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종말이 온다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둘째는 시한부 종말론 영향 때문에 잘못하면 사이비로 취급될 위험도 있죠. 그러나 정말 종말 의식을 느낀다면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적극적으로 얘기해야죠. 노아가 멀쩡한 세상에서 홍수가 온다고 사람들에게 경고할 때 얼마나 답답한 심정이었겠습니까.

이봉원_ 종말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느낌을 갖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종말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어요. 저는 종말 대신 주님의 재림(再臨)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종말은 죽음, 공포, 심판, 재앙이라는 의미가 강하잖아요.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소망 속의 새로운 출발이죠. 원로목사님께서 설교 때 자주 비유하시듯이 10평 아파트에 살다가 50평,100평 아파트로 이사 가는 설렘이 있는 거에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뤄지는 것에 대한 소망과 기대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호준석_ 성경은 물론이고 종말에 대한 동·서양의 예언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멸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새 하늘 새 땅’, ‘후천 개벽’ 등 표현은 제각각이지만요. 종말 얘기를 하면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우리 다 죽는 거야?’라는 것인데, 사람의 죄 때문에 망가졌던 우주만물의 질서가 회복되고 완전해지는 아름다운 새 출발이라는 점을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고 봐요.

이반석_ 성도는 종말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에녹처럼 종말을 기다리고 바라봐야 될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그가 죽으면 세상에 종말이 온다)’라고 지은 뒤 늘 종말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잖아요. 종말이 온다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애쓰는 계기가 되고, 변화에 이르는 확실한 목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오늘날 성도도 에녹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봉원_ 재림에 대해 실감하고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입으로는 종말이 있다고 하고 재림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배운 예수’에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내 지갑 속 현금의 존재를 확실히 믿듯이 의심 없이 믿어야 하는데 그런 믿음이 없으니까 재림을 무서워하고 거리감을 느끼는 거에요. 정확하게 믿어서 신앙으로 정립된다면 재림에 대해서 두려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설레임으로 받아들여야죠.

배종연_ 사람들이 종말을 두려워하는 건 종말과 세상의 즐거움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에녹은 결혼하고 아들도 낳고 세상 속에서 살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어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의 삶과 신앙생활을 이분법으로 가를 이유가 없습니다. 삶을 다스리고 누리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재림을 바라볼 수 있는 거죠. 저는 구속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런 이분법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한국 교회사 연구의 일인자인 민경배 박사는 구속사 시리즈를 읽고 나서 “환희 속에 주의 재림을 기다리게 만드는 책이다”라고 평했잖아요. 종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통치가 내 안에 이뤄지는 세계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미 개인적인 종말이 임했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요. 참 믿음 안에 있으면 이미 종말은 우리 마음에 있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 자체가 종말을 준비하고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에요.

이봉원_ 원로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재림이 가까울수록 하나님의 구속(救贖) 역사를 붙잡고 분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신 적이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얘기가 아니라 현실과 미래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구속사를 잘 배우고 익히면 그 안에 담겨 있는 종말에 대한 지혜와 비전이 체득될 것입니다. 구속사를 잘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구속사 시리즈는 종말을 맞고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아닌가 합니다.

호준석_ 군대에 있을 때 매일 매일이 너무 힘들다보니 28개월 후면 제대를 한다는 사실이 머리로는 분명한데도 마음으로는 남의 일처럼만 느껴졌어요. 제대 한 달 전까지도 실감이 안 나더라구요. 종말도 이런 면이 있는 게 아닐까요. 전에 다른 교회 목사님하고 종말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우리 세대에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딱 부러진 근거는 없어요. 저는 이런 것이 우리 속에 알게 모르게 자리잡은 현세주의라고 생각해요. 노아 때, 롯 때도 그랬죠.
제 속에도 종말에 대한 양면적 감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빨리 하나님 나라가 왔으면 하는 것이고 하나는 좀 천천히 왔으면 하는 거에요. ‘천천히 왔으면’하는 감정은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이기도 하고 종말 때 올 대환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해요.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개인적 숙제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요한일서4:18) 하셨잖아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살지만 외면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눈물과 한숨과 통곡들, 아프고, 사고 나고, 결국 죽고야 마는 비극을 내 것으로 체휼(體恤)하고 가슴 아파하는 마음, 세상이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안타깝게 여기는 사랑, 예수님 같은 그런 마음이 종말을 맞이하는 자세가 아닐까 해요.

이봉원_ 대환란을 감(減)해 주시는 은혜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환난의 날을 감해 주시지 않으면 누구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마태복음 24:21-22) 하셨잖아요. 여주 연수원에서 봉사할 때의 경험입니다. 수십 킬로그램짜리 한산 벽돌을 들고 계단을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이 무게를 십자가의 무게로 체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갑니다.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극한 지점에 다가올수록 각오의 농도는 옅어지죠. 8부 능선쯤 이르면 숨이 턱에 닿으면서 머리 속이 백지가 됩니다. 내려놓고 싶은 생각뿐이에요. 바로 그때 주위 집사님들이 오셔서 수고했다고 하면서 뒤에서 받쳐 주거나 대신 져서 올려주시죠. 내가 올라가야 할 꼭대기는 아직 남았는데 말이죠. 결국 신실한 성도는 이렇게 감해 주시는 은혜 속에 감사와 감탄 속에 그 순간을 맞지 않을까 합니다.

배종연_ 롯도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 속에 살면서 마음이 상했다고 했지요. 이 세상의 죄악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라야 환난 때 감해 주시는 은혜를 허락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지기 전에 신앙의 정절을 지켰기에 불 속에서도 지켜 주셨던 것과 같지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 얻은 것 같다.”(고린도전서 3:15)고 하셨죠. 만물이 인간의 죄악 때문에 괴로워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성(靈性)이 회복되면 만물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인데 말입니다. 친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매장하는 등 짐승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입니다. 성도가 이런 세상을 그냥 스쳐 지나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성도는 제사장입니다. 만물을 맡기셨으니 방관자의 자세를 취해선 안 됩니다. 죄악에 물든 세상을 괴로워하고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반석_ 마지막 때 환난이 공산군이 쳐들어와서 총구를 들이대고 “너 예수 믿을래? 안 믿을래?”하고 위협하는 형태의 것일 수도 있지만 매일 매일의 삶에서 내 속의 죄와 싸우는 환난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마지막 심판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좌편, 즉 지옥으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늘 종말이라고 생각하고 내 믿음이 지금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를 점검하고 매일 달라지는 삶의 태도와 내 고질적 문제들을 하나님의 힘에 의지해 해결해 나가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겁니다.

호준석_ 김길태 사건 같은 일이 터졌을 때 타자화(他者化)시켜 버리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죄는 엄중하게 물어야겠지만 한 발 더 나아가 내 안에도 악마적 근성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욕하고 돌만 던지면 근원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죠.

이봉원_ 사회적 병리 현상 속에서 성도는 무엇을 했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20%가 기독교인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소금처럼 녹아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바꾸고 예방하는 역할을 해야 되는 거지요. 미워하고 저주하기 전에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배종연_ 서울 어느 동네에서 가족들이 굶어 죽었다는 뉴스를 들으시고 원로목사님께서 “그 동네에는 교회가 없었는가”하고 말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연재해, 윤리적 부패, 그리고 세계 인구의 1/3이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 이런 총체적인 문제들을 보면서 종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다만 2012년이다, 몇 년이다 하는 숫자에 얽매여서는 안 되겠지요. 성경이 정확한 숫자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숫자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호준석_ 종말에 대한 세상의 또 하나의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술을 부리셔서 멀쩡한 세상을 멸망시킨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종말은 죄악이 불러온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현대판 노아 방주를 다룬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라는 코미디 영화가 있어요. 거기서의 노아 홍수는 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비리 때문에 부실공사로 지어진 댐이 붕괴되면서 일어납니다. 절묘한 상징이죠. 인류 공멸의 위기를 불러온 지구 온난화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핵 무기도 마찬가지입니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때 인류가 핵 전쟁으로 멸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었다고 하지요. 인간의 탐욕이 구축해 놓은 세계경제 시스템 때문에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나라 경제가 삐끗해도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가 도미노 현상으로 위기에 빠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식량난, 물 부족… 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에요. 미국 과학자들이 만든 지구 종말의 시계가 지금 자정 6분 전인데, 인류는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고 사는 거죠. 종말은 회복 불능으로 망가진 우주만물의 질서를 창조 본연의 세계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이반석_ 성도는 종말에 대한 개념을 반드시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야 문명의 예언이나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등 많은 말들이 떠돌지만 그런 종말 예언들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되겠지요.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적그리스도와 가짜도 많이 출현할 것입니다. 성경적인 종말관을 가지고 확고하게 서 있어야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호준석_ 사람에게는 종말에 대한 본능과 예지가 있기 때문에 예언이나 영화들이 어느 정도는 공통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종말이 정말 있겠구나’하는 인식을 갖게 해 주는 면도 있습니다. 중심을 가지고 받아들이면 되겠지요.

배종연_ 성경적인 종말은 복음이 땅 끝까지 퍼져 편만(遍滿)해지고 이방인에게서도 구원의 수가 채워지고 이스라엘이 회심할 때 찾아온다고 기록돼 있어요. 그리고 이런 종말은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부패한 이 세상을 더 이상 놓아둘 수 없기 때문에 최선책으로 그 방법을 선택하신 것이구요. 그러므로 종말을 가장 잘 예비하는 길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면 인간도, 만물도, 고통받는 시간이 더 연장될 것입니다. 그 책임은 성도에게 있습니다. 저는 지금이 말씀운동의 세계화가 가장 절실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특히 평강제일교회 젊은이들의 사명과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의 중심에 서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자긍심을, 또 한편으로는 자신감을 느꼈어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세계를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봉원_ 에녹이 이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김길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피와 땀을 쏟는 회개가 있는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전략적’인 헌신과 충성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종말의 때에 성도가 지녀야 할 도구는 허리띠이고 불 밝힌 등불입니다. 누가복음 12장 35절에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하셨죠. 미리 등을 켜고 서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주인이 와서 문 두드릴 때 곧 열어 주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종말 성도의 명제이자 과제입니다. 허리띠와 등불은 종말로 인한 혼란의 소용돌이가 아무리 강해도 성도의 무게 중심을 한 치도 흐트러뜨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호준석_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있습니다. 종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맞게 생활방식도, 시간사용도 바꿔야 합니다. 과거에 세상살이와 교회 생활에 6:4 정도로 시간 배분을 했다면 종말이 가까울수록 그 비율도 바뀌어야지요. 시간뿐 아니라 주어진 모든 가용 자원의 투자 비율을 바꿔야 하는 때입니다. 삶의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것이지요. 노아가 방주 짓고 전도할 때 자투리 시간 내서 했겠습니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건강하고 경건하게 살아감으로써 종말인식이 현실도피가 아니라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합니다.

배종연_ 예배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끝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의 본을 받지 말라고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달 우리 교회를 방문하신 목사님이 수요예배에 이렇게 많이 모이는 교회가 있느냐며 놀라셨지요. 우리 교회는 늘 예배와 말씀에 대한 집중을 강조하지요. 군인의 기본자세가 ‘차렷’이듯 성도의 기본자세는 예배입니다. 말씀 전파에서도 소극성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명기 28:1)는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말씀을 전했듯이 이제는 우리 젊은이들이 비전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일 때문에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양자를 다 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서 성도의 영향력을 높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노년까지 누리고, 베풀고, 파워풀한 삶을 살아갔듯이 성도도 그래야 합니다. 그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종말은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황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종말이 우리 세대에 온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호준석_ 최근 대한민국의 약진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로 놀랍고 빠른 속도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배우자고 말하고 있고, 한국의 젊은이들, 기업들, 문화 콘텐츠들이 세계의 중심에 서 가고 있지요. 구속 역사의 관점에서 주목할만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이반석_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영향력을 가진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 됐을 때 복음 전파도 더 빨리 이뤄질 것입니다. 관건은 ‘세상에서의 성공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냐’이겠지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린도전서 10:31)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하든지 진심으로 복음 전파를 위해서 한다면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이봉원_ 평강 성도들은 성경을 밝히 깨닫게 하는 구속사 시리즈를 통해 구속의 역사를 배워 빛의 갑옷(로마서 13:12)을 입고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발걸음의 무게를 알아 가고, 예수님의 호흡 속에 배어 있는 아픔의 깊이를 세밀하게 깨달으면서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용사의 호흡으로 살아가야겠지요.

배종연_ 2010년이 석 달 지났지만 그 사이에도 큰 변화들이 일어났다고 느낍니다. 세계 각처에서 지진이 일어났지만 보이는 지각변동 속에 성도는 영적 지각변동을 느껴야 합니다. 올해는 영적 부흥의 전환점, 말씀운동의 전환점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가 타고 쉬지 못하시는데 성도들은 피리 불어도 춤추지 않는 아이들처럼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구속사 시리즈 4권 발간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동서남북에 편만해진다는 성경 말씀을 상고했었죠. 그 말씀을 우리가 이뤄가야 합니다.


인도의 한 과학자는 “지구는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먹을 것이 공급돼야만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지구상에 세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은 인구의 41%다. 9억 명의 사람은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

“종말의 역사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아, 질병, 인구 폭발, 자원 고갈, 환경 오염, 핵 공포, 빈부 격차…이 모든 문제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습니다.” (2010년 1월 3일 주일예배 설교 중)


정리_ 호준석 기자 기록_ 강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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