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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왜 하나님의 적인가 (2010년 6월호)
 글쓴이 : 관리자
 

평강제일교회처럼 국가와 민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교회도 없을 듯 싶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예배는 구국 은사집회로,  ‘애국가’와 ‘통일의 노래’로 시작합니다. 매년 6·25 즈음에는 나라사랑 웅변대회도 개최하지요. 이런 모습에 처음 교회에 오시는 분들은 어색해 하기도 합니다. 이번의 등불토론, ‘공산주의, 왜 하나님의 적인가’는 그래서 기획됐습니다.



이웅희 장로(육군본부 정책위원)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고 현재 육군본부 정책위원과 공주대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고재분 전도사
22년간 중등교사로 교단에 섰고 1996년부터 성직으로 봉사하고 있다

정석미 성도(청년2부 그루터기선교회)
1996년과 2006년 두 차례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에 깊숙히 관여, 90년대와 2000년대 학생운동에 정통하다

사회_ 이지운(서울신문 정치부 기자)

사회자: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먼저 성경적으로 풀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재분: 그건 분명합니다. 우선 공산주의 사상의 근본인 유물론(唯物論), 무신론(無神論) 때문입니다. 그 근본이 “신이 없다”고 하고 물질을 만능시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시편 14편 1절에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했지요. 하나님이 없다 하니, 하나님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겠습니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에서를 봅시다. 하늘의 언약을 세상 물질과 맞교환하는 사건입니다. 에서는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지요. 에돔은 ‘붉다’는 뜻입니다. 공산주의의 상징이 붉은 색 아닙니까.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과거에 공산 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학살했습니다. 캄보디아의‘킬링필드’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지요. 북한 공산 치하와 6·25때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에 맞서는 반신론(反神論)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다 처형 대상이지요. 출발부터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서구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 ‘선한 것’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자본주의도 하나님을 외면할 때 패권주의가 되고 타락하게 됩니다. 유럽 사회가 타락하고 퇴폐주의, 탐미주의, 악마주의가 횡행할 때 생겨난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다만, 자본주의는 적어도 ‘믿을 수 있는’자유는 주기 때문에 공산주의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궁극적으로는 끝 날에‘적그리스도와의 대결’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자: ‘민족’과‘국가’는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웅희: 나라가 없으면 개인도, 부모도, 자식도 존재할 수 없고 신앙생활도 불가능합니다.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 것입니다. 일제 시대나 6·25를 통해 이미 충분히 경험도 했습니다. 그러나 쉽게들 잊고 살지요. 주권이 없으면 노예생활이나 다름없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애굽 체류 시기가 그랬습니다.

고재분: 성경을 보면 민족과 나라는 하나님께도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정점이자 핵심인 예수님은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려는데 그것이 반드시 ‘역사’속에서 전개되고 성취되려면 민족과 나라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선택한 한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그 후손을 통해 민족과 나라를 이루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애굽에 보내셔서 민족을 번성시켰지요. 모세를 통해 십계명 중심의 윤리와 법도를 주셨는데 이것이 주권이 됐습니다. 가나안 땅은 국토가 됐지요. 이렇게 아담 이후 2000년간 아브라함 하나를 건져 한 민족을 형성하고 다윗 왕을 세워 다시 언약을 하시고 이후 메시야인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4000년이 걸린 것입니다. 의인 하나를 보내는 역사가 이렇게 길었습니다.

물질을 주인으로 보는 공산주의

사회자:
하나님과 대척점에 선 공산주의의 의미를 살펴봤고, 민족과 국가, 역사의 중요성을 짚어 봤습니다. 이제‘우리’문제로 들어가 보죠

이웅희: 우리는 현실적으로 북한 괴뢰라는 공산주의와 맞서 있습니다. 전쟁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의 지난 역사는 그것을 잊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일제 시대도 임진왜란 때도, 6·25 전쟁 때도 엄청난 수난을 당했습니다. ‘일일용병 천일양병’(一日用兵千日養兵)이라 했습니다. 만약에 닥칠 그 하루를 위해 군대를 1000일을 육성해서 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통곡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습니다. ‘북한은 경제력도 없고 군인들의 덩치도 작은 반면, 우리는 경제가 발전됐고 첨단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들을 합니다. 그러나 군사 측면에서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에는 핵무기, 스커드 미사일, 다연장 로켓포와 각종 미사일 등 위협적인 포병화력, 보유량 세계 3위의 생화학무기, 18만 명의 특수전 부대, 신속 기동 가능한 기계화 부대가 있습니다. 미국 랜드 연구소의 한 북한 전문가는 북의 특수전 요원 18만 명의 일부가 휴대용 생화학 무기를 들고 서울 등 대도시에 침투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한 적이 있습니다. 1990년대 잠수정 침투 사건에서 보듯 간첩 몇 명 잡는 데 몇 개월씩 걸리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사회적으로 그런 주장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사회자: 우리 사회에는‘전쟁’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이웅희:
제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북괴’라는 표현을 쓰니 일부 학생들이 ‘듣기 거북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얘기합니다. “내가 비판하려는 것은 북한 주민이 아니다. 오로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주민을 억압하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이를 둘러싼 북한 특수층을 언급한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김일성 괴뢰집단은 당과 수령을 위해서는 아버지, 어머니를 죽여도 좋다고 하는 집단입니다. 6·25때 확인한 것 아닙니까. 이런 북괴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 주지 않고 교육시키지 않으니 엉뚱하게 남남 갈등이 격화되고 올바른 소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용어’를 제대로 써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용어 혼란전술을 씁니다. 이런 전술이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흘러들어와 민족관, 국가관을 무너뜨리고 가치관과 의식을 왜곡시켰습니다.

정석미: 사학(史學)을 전공했는데, 운동권에 있으면서 역사의 문제들을 많이 부딪쳐 봤습니다. 운동권 교육을 받으면서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야!’라는 말이 마음에 확 다가왔습니다. 빈곤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외세에 의해 들어온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부자들만 잘 살고 못 사는 사람들은 더 못 사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회적 현안이나 사건, 이슈마다 더해지는 운동권 내부의 여러‘사상 교육’은 참 그럴싸했습니다.

고재분: 기성세대가 역사 전체를 똑바로 가르쳤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빈익빈 부익부는 어느 나라나 거쳐온 과정인데 우리나라만 그런 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야말로 75년간 인류가 검증하고 역사가 증거해 쓰레기통에 들어간 공산주의 사상에 왜 우리 젊은 이들이 그렇게 얽매이는지…. 숲도 보고 나무도 봐야지요.

이웅희:
북의 위장 평화전술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공산당 강령은 변하지 않고 있지요. 전쟁 준비는 계속돼 왔습니다. 사실 북은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미군만 철수하면 작전대로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망명한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 씨가 5년 전 군에 와서 “당신들 정신 차려라. 북한 김정일은 전쟁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한탄한 것이 귀에 쟁쟁합니다. 천안함 사건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의 주체사상 이론을 직접 수립하고 속속들이 알고 있는 황장엽 씨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6·25때는 부산까지 점령하려 했지요. 지금은 ‘서울만 점령하면 끝’이라는 식으로 북의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2년 뒤면 김일성 생후 100년이고 이른바 북의 ‘강성대국’건설 원년입니다. 한국도 미국도 대통령 선거가 있고 중국과 러시아도 정권교체가 이뤄집니다. 그런 와중에 북한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3대(代) 세습체제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시기이지요.

정석미: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 실험을 했을 때 ‘우리들’은 대단히 기뻐했지요. ‘힘든 가운데서도 북한은 자주국방을 하고 있다. 정말 우리는 뭐냐. 북한이 겨냥한 것은 우리가 아니고 미국이다.’이렇게들 생각했죠. 사실 운동권은 북한 원조에 부정적이에요.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통해 이겨내고 있기 때문에 절대 불쌍한 집단이 아니다.’라는 논리에서지요. ‘우리는 지금 휴전상태인데 휴전의 주체는 북한과 미국이고, 우리가 무슨 이 나라의 주인이냐. 우리는 자주국방 못한다.’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나라

사회자: 운동권에서 90년대와 2000년대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정석미: 2006년도에 다시 캠퍼스 생활을 시작하면서 분명하게 느낀 것은 북한에 대한 설명이 쉬워졌다는 것입니다. 90년대에는 ‘대외 선전전’에 나가면 거부감이 아주심해 막막함을 많이 느끼곤 했었거든요. 제 생각으로는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북한과의 접촉이 많아졌거든요. 아리랑 행사 초청받아 학생대표들이 북한에 갔다 오고 북한 학생들과 토론도 하고 말이죠. 북에 직접 다녀와 그걸 홍보하니 효과가 좋은 거에요. 90년대에는 북에서 내려온 문서 갖고 공부를 했지요. ‘북에서 보는 정세는 이러하다. 남에선 이렇게 해야 한다.’이런 것들을 배웠지요. 사실 그 안에서도 ‘실질’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냥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이 많았지요. 상대적으로 2000년대 학번들은 정치에 관심이 적었습니다. 대출받아 학교를 다녀야 하고 청년실업도 너무 심하고, 학생회 활동이 안 될 정도였지요. 그러다 보니 사회에 대한 불만도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88만원 세대라 해서 자괴감도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치적 이슈로 불을 붙이기는 훨씬 쉬웠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게 정치가 부패해서 그렇다.”고 하면 충동적으로 금방 휩쓸리게 되는 것이지요. 기성세대에 대한 냉소와 불신도 훨씬 심한 듯 합니다.

이웅희: 젊은이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20% 이상이 북침설을 믿고 있다.’고 하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것은 절대 사실이 아닐 겁니다. 과거에는 남침이냐, 북침이냐 주장이 대립했지만, 90년대 이후 관련국의 정보들이 공개되면서 북침설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침 유도설이라면 몰라도요. 혹 지금 우리 사회에 ‘북침설’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북이 (남한을) 침공했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침이냐, 남침이냐의 논란은 대표적인 용어 혼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보다 북이 원하는 것입니다. 북에 ‘3대 혁명역량 강화’란 게 있지요. 북한에서, 남한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혁명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북은 남한 내부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데, 남한으로 하여금 ‘아, 우리 사회에 이렇게 좌파들이 많구나.’하고 무기력을 느끼게 하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북이 남을 적화통일하는 과정의 하나로 들어 있는 대남 심리전의 결과입니다.

정석미: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말씀의 깊이가 없었던 것 같아요. 예컨대 요한계시록은 피상적일 뿐이었지요. 나에게 임할 일, 내가 준비해야 될 이야기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붉은 용, 적그리스도’얘기를 들어도 이런 사상을 경계하지 못했지요.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에서는 늘 충돌하곤 했습니다. 철학을 배우며 유물론에 갈등이 많았어요. 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선배들에게 가서 고민을 많이 상담했습니다. 그때 교회를 다니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데모를 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중에는 ‘남과 북이 함께 예배드리는’모습에 신앙적 중심을 잃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당시 운동권에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라는 목표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없어도 ‘민족끼리’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재분: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역사 속의 인물들은 모두 역사를 꿰고 있었습니다. 에스라서 1장에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16대 조상들 이름을 다 열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에스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우리가 왜 이런 일을 겪고 있느냐.”고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기록한 역대상·하서도 족보로 시작하지요. 아담서부터 바벨론 포로 때까지, 지금 일어나는 일이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정확한 역사의식으로 써내려 간 것이 역대상·하입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 집사도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의 역사를 쫙 꿰었습니다. 사사 입다는 가나안 정복 후 암흑시대 300년을 관통하는 역사의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조각난 지식과 시각에서 벗어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통시적으로 알고, 공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웅희:
평강제일교회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직업 군인이 되고자 많이 입대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취업난 때문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올바른 국가관과 신앙관을 가지고 군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신앙 전력(戰力)’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살리는 데 믿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멀리, 깊이 내다보고 진행되는 일이지요.

사회자: 운동권을 떠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정석미:
저는 운동권 집회에 나갈 때도 기도를 하고 나갔어요. 남들이 다 경찰에 잡혀가도 저는 살아 남았지요. 그럴때마다 ‘아,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구나’하는 걸 느꼈습니다. 후배들이‘언니랑 붙으면 산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고재분 전도사가 “역시 어머니의 기도가…”라고 한다.) 주위 친구들을 위해 함께 기도를 하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이런 일로 인해 교회로 돌아간 운동권 친구들이 많아요. 결정적인 일이 있다면, 교회 친구들이 교회에서 땀 흘리며 봉사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말씀 안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음을 본 것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청년의 때를 자부심 있게, 의미 있게 보냈다고 생각해 왔는데, 참으로 부질없는 10년의 세월을 힘들게 보냈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2007년 구속사 시리즈 1권이 나올 무렵이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너무 크게 다가와서 금식하고 회개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흘리는 땀을 보고 10년의 시간을 뉘우쳤다.”는 정석미 성도의 말에 토론장은 숙연해졌습니다. 정석미 성도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는 것이 영생’이라는 진리가 새삼 다가왔습니다. 내용을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2시간여 이어진 토론의 핵심은 ‘하나님을 알고 역사를 알자’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_ 이지운 기자, 기록_ 강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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