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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자가 받을 복은?
 글쓴이 : 관리자
 


감사하는 자가 받을 복은?

빌 4:15-21

1982년 11월 추수감사절 박윤식 목사 설교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두 번 나의 쓸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 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히 6:14-15)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들에 대해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감사하는 자가 받을 복에 대해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감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카리스티아’인데 ‘유’라는 말과 ‘카리스’란 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유’라는 말은 ‘좋다’라는 말이고 ‘칼리오’에서 온 ‘카리스’란 말은 ‘은혜’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란 ‘좋은 은혜’라는 뜻과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신령한 은혜를 부어 주시고 또 육체의 건강을 주시고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 기적적인 해결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은혜를 주신 일들을 생각해 볼 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와 찬송을 우리 하나님께 드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옛날 다윗왕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면서 늘 ‘어떻게 하면 하나님 은혜를 감사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시 116:12). 사도 바울도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主)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골 2:6-7).


은혜 받은 성도는 감사를 넘치게 드려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원망, 불평, 죽는 소리는 싹 빼어버리고 우리의 입에서는 감사와 찬송이 넘쳐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첫째,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복에 복을 받게 되는가?

1. 주님과 교제하는 축복, 번성의 축복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주고받는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빌 4:15).


이 세상에는 주고받는 관계가 이루어짐으로 교제도 함께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서로 주고받는 일에 참여한 단 하나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피땀 흘려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도하였고 정성을 다해 말씀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윤택하고도 풍성하게 살찌웠습니다.


이렇게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사도 바울의 생활비와 전도비를 공급해 주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급자족하는 일에 더욱 감사하며 도리어 많은 사람들을 자기 셋방에서 대접해 가며 복음 전하는 것을 더욱 감사해 했습니다(행 28:30-31).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어집니다.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출처는 바로 감사인 것입니다.


2. ‘내가 반드시’라는 하나님의 필연성이 나타납니다.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6:14을 다시 읽어봅시다. 이것은 ‘반드시 주리라’는 하나님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약속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필연성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에서 이러한 복과 번성이 유래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자기 선언은 자신의 맹세와 약속으로 그의 신실을 확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자기 선언에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히 6:18).


하나님은 반드시 ‘복과 복’을, ‘번성과 번성’을 주겠다는 사실을 맹세하고 약속했다고 했습니다. 이 맹세와 약속에 대해서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축복과 번성이야말로 대단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그것은 밝은 소망입니다.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해가는 우리에게 큰 안위입니다. 그것은 마치 영혼의 닻과 같다고 했습니다(히 6:18-19). 닻은 항해하는 배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 뜻이 일정하사 변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받는 모든 축복과 번성은 하나님 자신의 필연성에 기초하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3. ‘너를’ 하시며 ‘신(神)적인 축복의 대상을 밝히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 6:14).


이는 신(神)적 축복을 받을 대상을 밝히는 말입니다. ‘너’가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모든 자의 표상입니다(갈 3:9, 히 6:17). 그렇다면 신적 축복의 대상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란 구원받기로 작정된 하나님이 택한 자들입니다.


그의 신앙을 계승하고 그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는 자들, 바로 우리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고 지명하여 불리운 자들입니다(사 43:1). 그 아브라함의 자손은 잃어 버려진 자들이며 인자(人子)되신 예수께서 오신 것은 저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 19:10).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던 자입니다.

그곳은 불신앙과 우상의 세계입니다. 어둠의 아들들의 세계였습니다. 본토와 아비 집과 친척이 있던 곳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라’ 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의심 없이 그곳을 떠났던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말씀)를 좇아 거룩한 순종의 걸음을 걸었던 자입니다.

그의 걸음은 우리 믿는 자의 걸음의 예표였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본래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사 43: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과 번성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빌 4:17에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했으니 즉 감사하는 자는 감사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감사는 선물이 아니라 과실 즉 열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종자를 심는 것’입니다. 씨앗은 심기만 하면 다시 열매를 맺습니다.


태고의 종자가 아직도 살아 있고 아담 시대의 열매가 오늘날도 그대로 있는 것은 바로 이 종자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바로 종자를 심는 일입니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는 말입니다(고후 9:6).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손길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을 따라서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잠 11:24, 25, 잠 22:9, 갈 6:7-9).


성도 여러분! 디도서 3:14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고 했습니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0-12).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의 축복은 무엇인가?

빌립보서 4:18에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했습니다. 즉 감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했습니다(시 50:23).


그러면 ‘복’과 ‘번성’이란 무엇입니까?


구약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은 ‘바라크’입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다’는 뜻입니다. 다음에 ‘아쉐르’입니다.


‘바르게 가다’, ‘바르게 걷다’, ‘똑바르다’, ‘바로 세우다’란 뜻입니다. 그 다음에는 ‘야타브’라고 하는데 곧 ‘즐겁다’, ‘기쁘다’, ‘선하다’란 뜻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이란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 ‘그 앞에 무릎을 꿇고(예배)’, ‘그를 쳐다보고 걸어가며(방향)’, ‘그를 기쁘게 하는 것(목적)’을 의미합니다.


번성이란 물질과 자녀와 경영의 형통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 자들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요, 하나님을 향하여 걸어가는 자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입니다.


창세기 12:2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그러면 ‘복과 복’, ‘번성과 번성’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 그것은 큰 복을 의미한 것입니다(창 22:17). ‘메시야’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이 복을 얻으리니’라고 하였는데 여기 ‘씨’는 다윗의 가문에서 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구원사역을 의미합니다(창 22:18).


말하자면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큰 복입니다. 첫째가는 복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복입니다. 영생의 복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골로세서 2:6-7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도에 항상 힘쓰고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2. 영적 후손의 번성을 의미합니다.

자자손손 대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했습니다(창 22:17).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했으며(창 12:2),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했고(창 15:5)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는 말씀으로 표현했습니다(창 17:6). 자식 중에 망종없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자를 낳지 않는 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말세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족과 이웃 교회에까지 이 복이 확장되어 신령한 신자들의 수효가 많아지는 축복입니다.


3. 명예와 물질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한 말씀 그대로 되고 말았습니다(창 12:2). 복의 근원이라 함은 ‘아버지’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모든 세계는 예외 없이 그들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한 명예와 물질 축복의 머리가 된다는 약속입니다.


4. 승리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2:17에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였으니 이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계승하는 신령한 아브라함의 자손들, 즉 교회 운동의 승리를 뜻하고 있습니다.


강하고 많은 군대(하늘의 별, 바닷가의 모래)는 항상 어디에서든지 승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열국들과 많은 백성 중에 거합니다. 저들은 마치 수풀 짐승 중에 사자 같고 양떼들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삶의 기백을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미 5:8-9). 이것은 승리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계 5:5)’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외 없이 승자들의 삶을 이어갑니다. 승자들의 행진입니다. 말하자면 삶의 개선장군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큰 복, 좋은 복, 아름다운 복, 빛난 복, 영원한 복의 아버지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만을 쳐다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소망 앞에 절망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러했습니다. 그는 인내함으로써 마침내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인내는 소망 중에 날마다 감사 생활하면서 참는 인내였습니다.


‘복의 복’을 ‘번성의 비결’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인내였습니다.


그는 75세 때 받은 약속의 결과를 25년이 지나서야 받았습니다(창 12:4, 창 21:5). 그의 손자들이 나기까지 85년이 걸렸습니다(창 25:26-27). 그 어간에 그는 악하여 실수하고 넘어졌습니다(창 16).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는 아브라함의 실수와 연약보다 강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에게 복에 복을 번성에 번성을 가져다 주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축복!

신령한 자손의 번성!

선한 명예와 물질!

모든 싸움(전쟁)에서의 모든 승리!


바로 이것들이 복에 복, 번성에 번성입니다.

말하자면 ‘큰 복’입니다. 큰 축복만이 생의 큰 힘입니다.

큰 축복만이 온갖 정복의 힘입니다.

큰 축복만이 온갖 승리의 힘이고 온갖 소망의 활천입니다.

큰 축복만이 모든 감사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시 10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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