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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자 여호아하스의 비극 (2010년 9월호)
 글쓴이 : 관리자
 

젊은 사자 여호아하스의 비극

주전 609b년 여호아하스가 남(南)유다 17대 왕으로 즉위한다. 국민들은 종교 개혁을 일으켜 유다의 제 2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아버지 요시야의 신앙을 계승하여 여호아하스가 나라를 부강하게 세워 가리라고 크게 기대한다. 하지만 여호아하스는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애굽왕 바로느고에 의해 애굽으로 끌려간 후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에서 죽는다. 젊은 사자와 같은 힘과 능력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비극적인 마지막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여호아하스의 삶을 조명해 본다.



1. 남유다 말기의 세계 정세
① 므깃도 전투(요시야왕의 죽음) - 주전 609년
남유다 요시야왕때의 세계정세는 앗수르는 점차 쇠퇴하고, 바벨론이 신흥세력으로 등장한다. 애굽왕 바로느고는 앗수르와 연합하여 바벨론을 견제하고자 대군을 이끌고 북상하게 된다. 오랫동안 유다를 괴롭혀온 앗수르의 세력이 약해지자, 친 바벨론 정책을 내세웠던 요시야왕은 므깃도에서 앗수르를 도우고자 북상하는 애굽 군대와 싸우게 된다(역대하 35:21). 애굽왕 바로느고는 자신이 앗수르를 도우러 가는 것은 하나님의 명이니 막지 말라고 했지만, 요시야왕은 이를 듣지 않고 변장까지 하며 전투를 벌이지만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② ‘여호아하스’남유다 17대 왕이 되다 - 주전 609b년
므깃도 전투에서 요시야왕이 죽자,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오른다. 애굽왕 바로느고는 므깃도 전투에서 남유다에게 승리한 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여호아하스를 왕이 된 지 3개월 만에 립나에 가두고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한다(열왕기하 23:33).
③ ‘여호야김’남유다 18대 왕이 되다 - 주전 608년
여호야김의 원래 이름은‘엘리아김’인데, 애굽왕 바로느고가‘여호야김’으로 바꾸고 여호아하스를 대신해 남유다 왕이 되게 한다. 바로느고는 왕의 이름을 바꿈으로써 남유다왕이 애굽에 예속됨을 나타내었다.
④ 갈그미스 전투 - 주전 605년(여호야김 4년)
주전 605년 바벨론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격파하고 당대 최고의 강대국이 된다. 예레미야 46장 2절에서는 갈그미스 전투가 일어난 해를 여호야김 제 4년으로 증거하고 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패권을 장악한 다음 남유다를 공격했는데, 이것이 바벨론의 제 1차 유다 침공이다.
⑤ 바벨론의 제 1차 포로 - 주전 605년(여호야김 3년)
바베론왕 느부갓네살은 남유다를 공격하여, 다니엘을 비롯한 왕족과 귀족을 끌고 간다. 이때는 여호야김 제 3년째임을 다니엘 1장 1절은 증거하는데, 같은 해에 그보다 앞서 일어난 갈그미스 전투를 여호야김 제 4년으로 증거하는 예레미야 46장 2절과는 1년 차이가 난다.

2. 주전 605년은 여호야김 3년째인가? 4년째인가?
여호야김은 주전 608년에 즉위했다. 당시 남유다는 즉위년 방식을 따랐으므로 주전 605년은 여호야김 3년이 맞다. 그러면 이제 주전 605년을 여호야김 제 4년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사정을 알아 보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여호야김에 앞서 주전 609b년에 왕위에 오른 여호아하스를 만나 보아야 한다.

3. 왕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여호아하스의 3개월 통치 기간
열왕기하 23장 32절에서는 3개월이라는 짧은 통치 기간임에도‘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하 23장 34절에서는 “바로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으로 그 아비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저가 거기서 죽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요시야(640-609b) - 여호아하스(609b-608) - 여호야김(608-597) 순서로 왕이 되었지만, 열왕기 기자는 요시야(640-609b) - 여호야김(609b-597)으로 왕이 이어진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왕이 되어 3개월간 악행만 일삼았던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구속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열왕의 족보
위와 같은 열왕기 기자의 관점에 따라 요시야왕이 죽은 주전 609b년이 여호야김의 즉위년이 되는 것이고, 갈그미스 전투와 제 1차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주전 605년은 여호야김 제 4년이 되는 것이다(예레미야 25:1,46:2). 예레미야서도 왕의 통치연대 표기에 있어서 이러한 구속사의 관점을 따르고 있다.



5. 먼저 되었다가 나중 된 여호아하스
유다 왕국이 몰락하는 비운의 시기에 활동한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아하스를 ‘사람을 삼키는 젊은 사자’에 비유했다(에스겔 19:3). 이는 그가 권력을 잡자마자 짧은 3개월 동안 동족을 살해하고 학대, 약탈한 것을 가리킨다. 여호아하스는 젊은 사자처럼 뛰어난 힘과 능력으로 왕위에 올랐고, 또한 그 이면에는 왕으로 세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그럴수록 더더욱 겸손했어야 했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만 믿고 포악을 행했던 것이다. 형제들 가운데 제일 먼저 왕이 되는 기회를 얻으며 구속사의 족보에도 그 이름을 올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왕이 되었던 3명의 형제들 가운데 가장 짧은 3개월로 통치 기간을 마감했고, 그마저도 인정받지 못했다. 역대기 족보에는 제일 나중에 기록되었으며, 예수님의 족보를 나타낸 마태복음 족보에서는 그의 이름이 아예 생략되고 만다(요시야-여고냐).


6. 젊은 사자 여호아하스의 실패 원인
하나님이 없는 젊은 사자의 힘과 능력은 교만의 극치를 이루었고, 결국 그는 애굽으로 잡혀간 후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서 죽음을 맞이한다(역대하 36:4). 성경은 애굽왕 바로느고가 여호아하스를 끌고 간 것에 대해‘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땅으로 간지라(에스겔
19:4)’고 증거하고 있다. 들짐승을 끌고 가는데 쓰이던 갈고리에 꿰어서 비참하게 끌려갔던 것이다. 여호아하스(여호와께서 붙잡으셨다)의 다른 이름은 ‘살룸’인데, 이는 ‘평화롭다’, ‘안전하다’라는 뜻의 ‘샬람’에서 유래되었다.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붙잡힌 삶을 살았다면,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안전을 누렸을 것이다. 젊은 사자 여호아하스의 실패 원인을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면서 지은 시편 34편 10절에서 찾아 본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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