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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신약 성지 답사 ②: 바울의 발자취 따라 그리스·로마를 가다
 글쓴이 : 관리자
 

특별기획 신약 성지 답사 ②: 바울의 발자취 따라 그리스·로마를 가다

홍봉준 목사


사모스 섬을 출발하여 네 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시간에 도착한 밧모섬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그리고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과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하얀색 집들이 그림 같은 밧모섬의 첫인상이었다.


예상보다 늦어진 시간으로 인해 저녁 식사를 뒤로 미루고 곧바로 사도 요한의 계시동굴로 향했다. 계시 동굴 내부에는 사도 요한이 기도할 때마다 손을 짚어 움푹 패인 곳과 사도 요한이 기도할 때마다 이마를 바위에 대고 기도하여 굳은 살이 박혀있었기에, 이마가 툭 튀어나온 사도 요한의 그림 등이 있었다. 그리고 계시를 받을 당시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이 울려퍼질 때 세 갈래로 갈라졌다고 하는 바위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늦어져 사도 요한 기념교회는 관람하지 못하였지만, 계시동굴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기도에 전념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도 바울의 경건한 삶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은혜가 되었다.



밧모섬 스칼라(Scalla) 항에 도착할 때만 해도 산 중턱에 걸려있던 붉은 해도 이제 바다 속 자기 집으로 들어간 늦은 시간 식당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밤 12시 아테네로 출발하는 배를 타기까지 밧모섬 해안과 시내를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밤 11시쯤 항구로 가서 티켓을 발권하고 기다리니 커다란 페리선이 항구로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익숙치 않는 배편이 이곳에서는 버스나 기차처럼 일상적인 교통편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먼저 캐리어를 끌고 탑승하고, 승용차와 커다란 컨테이너 트럭들이 쉴새 없이 배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괴물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먹잇감 같다.


이렇게 9월 4일, 주일 하루는 오전 예배를 시작으로 세 번의 배를 갈아타며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쯤 아테네에 도착하였다. 흔히 그리스와 로마를 ‘신들의 땅’이라 한다. 그만큼 이곳은 그리스·로마신화의 내용과 유적들이 일상화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2천 년 전 사도 바울은 이처럼 신화와 우상이 넘쳐나는 곳에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여 기독교의 세계적 전파라는 위대한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9월 5일, 월요일 그리스 본토 첫 일정은 고린도 지역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현재는 1893년 프랑스에 의해 건설된 고린도 운하로 배들이 왕래하지만, 사도 바울 당시에는 ‘디올코스’(Diolkos)라는 자갈길을 만들어 지렛대 등을 이용하여 동서항구에 정박한 배와 화물을 맞은편 항구로 옮겨 교역시간을 단축하였다. 서쪽의 레케움(Lechaeum) 항구와 동쪽의 겐그레아(Cenchreae) 항구를 지닌 교통의 중심지인 고린도는 네로 황제 당시부터 유대인 노예들을 동원 운하를 건설하고자 시도했을 정도로 얇은 허리모양의 지리적 조건을 지녔다. 특히 이곳 겐그레아에서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 머리를 깎았다는 기록(행 18:18)이 있는 것을 볼 때, 바울의 여정에서 뭔가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세운 지역인 것 같다.


오전 10시경임에도 눈부신 햇살을 안고 고린도 운하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고린도 박물관과 유적지로 이동하였다. 고린도는 사도 바울이 1년 반이나 머물며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만나 복음을 전하였으며, 베뢰아에서 헤어졌던 실라와 디모데가 이곳에서 합류, 사도 바울의 사역에 큰 힘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은 유대 회당이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가르쳤는데, 회당 옆집에 살던 디도 유스도를 만나 그의 집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회당장 그리스보의 온 집안 사람들이 주를 믿고 세례를 받게하였다(행 18:7-8).


고린도 박물관과 유적지 관람을 마치고 그리스식 점심 식사를 한 후 아테네로 이동하였다. 사도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이동하였지만(행18:1), 우리 일행은 일정상 먼저 고린도를 들른 후 아테네로 향하였다. 아테네에는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과 주요 유적들이 있는 곳이다. 특히 사도 바울의 사역과 관련해서는 이곳의 ‘아레오바고’ 언덕과 ‘아덴(아테네)’에서 우상숭배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그리스도와 부활을 증거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리스인들의 자부심이자 세계문화유산 1호로 지정된 파르테논 신전은 그 명성에 걸맞게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사도 바울이 말한 ‘손으로 지은 전’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다’(행 17:24)며 당당히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것이다. 또한 파르테논 신전 아래에 있는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아덴 사람들을 향해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라고 시작하는 유명한 설교를 하였다(행 17:22-27).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신전과 극장, 수많은 조각상들을 보며 과연 사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사람들을 말씀으로 설득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반문해 보며 새로운 도전과 열정을 안고 아테네 언덕을 내려왔다.


다음 날(9월 6일, 화) 우리 일행은 그리스 신탁의 중심 도시라 할 수 있는 ‘델피’를 향해 출발하였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가 세상의 중심을 확인하기 위해 두 마리 독수리를 양쪽 방향으로 보냈는데 이들이 마주친 곳이 델피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로 옴파로스를 세웠다는 곳이다. 사도 바울의 여정이나 성경과 관련된 사건은 나오지 않지만, 사도 바울이 활동했던 아테네나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이다.



델피 신전을 둘러본 후 점심 식사를 하고 그리스의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에 영화 300의 무대였던 테르메폴리스를 둘러보고 희랍 정교회 수도원 운동의 중심지인 메테오라(Meteora)에 당도하니 저녁 7시가 다 되었다. 관람시간이 지나 수도원 내부는 볼 수 없었지만, 해발 평균 300~550m의 바위 끝에 세워진 수도원의 겉모습만 봐도 믿음의 선진들의 경건한 신앙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공중에 매달린’, ‘매달린 바위’라는 뜻의 그리스어 ‘메테오라’는 이름 그대로 한 번 들어가면 내려오지 않고 평생 바위 위에 세운 수도원에서 청빈과 신앙 수련에 매진했던 수도사들의 정신이 느껴지는 곳이다. 현재 메테오라에는 여섯 개의 수도원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버스로 수도원을 들러본 후 저녁 8:30쯤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고단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다음 날 더 고된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9월 7일(수), 메테오라에서 출발할 때부터 비가 내렸다. 두 시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처음 당도한 곳은 ‘베뢰아’이다. 이곳은 아테네 다음으로 큰 그리스의 2대 도시 중 하나인 데살로니가 서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도시로서, 사도바울이 2차 선교여행 당시 로마까지 연결되는 에그나티아 가도를 이용, 이곳 베뢰아로 피신하였다(행 17:10). 바울 일행은 베뢰아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다”(행 17:11-12)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와서 소동케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곳 베뢰아에는 사도 바울의 설교 기념터와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양손에 성경을 들고 서 있는 사도 바울의 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던 선교의 열정을 조금이나마가슴에 담고자 하였다.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리스 분위기를 느낀 후 다시 버스에 탑승, 두 번째 들른 도시가 데살로니가이다. 11시 30분경 도착한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의 사후 네 왕 중에 하나였던 카산더 왕이 건립한 도시로서 당시 에게해의 진주라 불렸다고 한다. 항구도시답게 해안가 기념공원에는 말을 타고 마치 금방이라도 질주할 것 같은 멋진 위용의 알렉산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다시 데살로니가를 떠나 로마로 가는 간선도로에 위치한 도시, 아볼로니아에 들렀다. 이곳 아볼로니아에는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라는 사도행전 17:1 말씀이 새겨진 비마(강단의 일종)만 남아 바울의 행적을 증거해 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암비볼리 지역은 일찍이 알렉산더 대왕의 용별 집결지이기도 하고, 지금은 사자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1시 50분이 다 되어 식당에 도착, 늦은 점심을 먹고 그리스의 마지막 여정지인 빌립보를 향해 출발했다. 빌립보는 다토스 평원 팡게오(Pangeo)산에 건설된 도시로서,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빌립2세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이다. 이곳은 시저와 브루투스, 카시오스 장군이 들르기도 했던 것으로,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집권한 이후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수도로 삼고, 이곳 빌립보는 면세특별혜택지역으로 삼은 곳이다. 또한 이곳은 로마를 본 떠 만들었으므로 ‘소로마’로 불리기도 하였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하였을 때, 이곳은 회당이 없었기에 안식일이 되어 성 밖 강가로 나가 정결의식을 행하고 기도를 하였다. 이때 성 밖 강가에서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두아디라에서 자주색 옷감을 가져다 빌립보에 판매를 하는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게 된 것이다(행16:13-16). 루디아는 바울 일행을 집으로 초청하여 그녀와 그 집 사람들이 다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후 바울 일행은 기도하러 가다가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오게 한 일로 인해(행 16:18)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히게 되었다 기도하며 찬송하는 가운데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벗어지게 되는 이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간수까지 믿게 되고 바울과 실라를 집에 초대하여 치료해 주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행 16:32-34).


지금은 폐허처럼 무너지고 팔각교회와 알파, 베타 교회터,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투옥된 것으로 추정되는 감옥 등이 남아 있지만 이곳 빌립보 도시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 일행에게 큰 힘이되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 시 두 번이나 방문하였고, 그곳의 성도들도 바울에게 각별한 감사와 애정의 표시로 물질적 도움을 주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다른 지역의 선교활동 중에도 빌립보 교회와 계속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어떤 교회보다 이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였다(살전 2:2, 고전 7:5-7, 빌 4:15-16).



고대 빌립보 유적을 둘러본 후 버스로 30분 정도 더 달려가서 사도 바울이 도착하였던 ‘네압볼리’(현, 까발라) 항구를 멀리 언덕에서 바라보고 방향을 돌려 그리스의 서쪽 항구도시 이구메니차로 이동하였다. 이곳 빌립보에서 이구메니차까지는 고속도로로 달려 5-6시간 걸리는 장거리 이동이다. 중간에 우리나라처럼 고속도로 휴게소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거의 저녁10시가 다 되어 이구메니차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식사를 겨우 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장거리 버스 일정을 마무리 하고, 이곳에서 이제 마지막 행선지 이탈리아로 출발하는 것이다. 이구메니차 항에서 이탈리아 바리 항으로 가는 페리 선을 타고 밤 12:30에 출발하여 이튿날 오전 10시 30분쯤 드디어 이탈리아 땅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곳 이탈리아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제법 내리는 빗줄기였다. 도착하자마자 다시 버스에 탑승하여 세 시간 반 정도 달려서 당도한 곳이 폼페이 유적지다. 오는 도중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 세차게 내리치던 빗줄기도 유적지를 둘러볼 때는 신기하게도 멈춰 주었다.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소멸되었던 도시를 후에 발굴하여 복원한 유적지로 당시 로마시대의 문화와 생활상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대략 2시간 정도 걸쳐 폼페이를 둘러본 후 또다시 버스를 타고 로마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9월 9일, 금요일 로마 투어를 앞둔 마지막 일정만 남았다. 일찍 호텔을 출발하여 가장 먼저 압비아 가도를 들렀다. 이곳은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될 때 지나갔던 도로로 옛날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로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형제들이 이곳 압비아(압비오)까지 맞으러 나온 기록이 있다(행 28:15). 사도 바울은 이 도로를 따라 로마로 와서 2년 동안 복음 전파에 매진하였다. 이후 무죄 방면 후 다시 마케도냐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로마 지역에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그 책임을 기독교인에게 씌우고 수장인 바울과 베드로가 참수를 당하게 되었다.



로마에서의 두 번째 행선지는 바울의 참수터와 무덤이 있는 기념교회를 관람한 후 9시 30분경 출발하여 카타콤베를 방문하였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신앙의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생활했던 로마 시대 지하 무덤이다. 터키에서도 괴뢰메 수도원 지역과 지하 도시인 ‘데린구유’의 답사를 통해 당시 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목숨을 걸고 살아왔는지를 이곳 로마에서도 다시 한번 체험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 50분경 일행은 4대의 밴으로 나눠 타고 로마 시내 투어에 나섰다.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고 관광지인 로마를 하루만에 둘러보기 위해 초스피드로 이동하였다. 계단 성당과 개선문, 콜로세움과 고대 로마 시가 중심지에서 판테온과 트레비 분수, 스페인 계단 및 광장 등을 둘러본 후 점심 식사를 하였다. 마지막 일정은 성 베드로 대성당. 약 2시간 정도 내부의 수많은 그림과 조각 등을 살펴보며, 로마의 국교가 된 기독교의 문화적 유산들을 실제로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진 후 공항으로 이동 8시 15분 비행기에 겨우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약 10시간 30분 정도의 비행을 거쳐 다음 날 9월 10일 오후 2시 반경에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다. 11박 12일, 매일매일 빡빡한 일정이지만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그 열정과 헌신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며 우리의 눈과 발로 사도행전을 읽게된 뜻깊은 성지 답사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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