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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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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 365일
 글쓴이 : 관리자
 

그와의 인터뷰 약속은 조심스러웠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사건을 겪은 후 넉 달. 그는 지금도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그에게 말했다. “참평안 인터뷰는 사람의 뜻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나님 아버지가 허락하신다면 하게 될 것이고 때가 아니라면 안 될 것이다. 욕심 내지 말자.” 며칠이 지난 뒤 그가 말했다. “하겠다.”
2011년 10월 2일. 2부예배가 끝난 뒤 강대성 성도를 만났다.

지난번 인터뷰 했던 것이 지난해였던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거의 교회에서 지낸다. 평일에도 교회 작업이 있거나 헵시바(청년1부) 임원 일이 있을 때는 교회에 온다.

교회에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오랜만이겠다. 어떤 느낌인가.
사고를 겪은 뒤 정말 힘들었다. ‘나한테 만약 믿음이 없었다면 정말 나쁜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장 힘들었던 3-4일을 지낸 후 교회의 어른인 원로목사님을 찾아뵈었다. 찾아뵈어도 되느냐고 전도사님께 여쭤봤더니 오라고 하시더라. 나를 보시더니 안심시켜 주시고 위로해 주셨다. 그러고 나서 마음이 정말 편해졌다. 그 뒤로는 교회뿐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은 교회밖에 없었다.

‘믿음이 없었다면 나쁜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건 무슨 뜻인가.
연예인들이 자살 많이 하지 않나.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이래서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그러겠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믿음이 없다면 그 길을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면서 감사 기도를 드렸다. 믿음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때는 댓글 하나하나가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살인마’라는 말이었다. 한동안은 교회 정문 밖으로만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살인마’로 보는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는 괜찮던가.
솔직히 그랬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편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교회 안에서는 마음이 안정됐다. 숙소에서는 너무 불안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그래서 교회에만 있었다. 작업 있을 때마다 나와서 일하고,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도 덜 났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교회가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다. 왜 그렇게 편안했을까.
우리교회 성도들이라면 왜 그런지 다 이해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어찌 보면 집보다도 교회가 더 편하다. 내가 교회에 와서 살다시피 한다는 기사를 읽고 요즘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내가 신앙으로 위로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좋게 보시고 좋은 말도 해주신다.

처음 3-4일은 어떤 마음이었나.
아예 방 밖으로 나오지를 못했다. 미안했고, 그 당시 상황이 자꾸 생각났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하루가 금방 갔다.

무슨 생각을 했나.
어쨌든 나의 잘못이 있는 거니까 우선 그분에게 너무 죄송해서 기도를 많이 했다. 그런데 기도하다가 그 순간이 생각나면 기도도 잘 안됐다. 기도가 기도가 아니었다. 그냥 기도 시작한 뒤에 ‘죄송합니다.’ 하고 그 뒤로는 말이 안 나왔다. 20분 동안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다가 또 울고….



무엇이 죄송했나.
우선 그분에게 죄송하고, 회사와 멤버들에게도 죄송하고, 나로 인해 우리 교회도 어떤 식으로건 언급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회를 좋은 방향으로 알리기는 커녕 나 때문에 안 좋은 소리를 듣게 만드는 건가 싶었다. 다 죄송했다.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그분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사고 직후 그분 빈소에 가지 않았나. 쉽지 않은 일이겠다 싶었다.
발걸음이 정말 무거웠다. 그러나 안 갈 수는 없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어찌 됐던 내가 연관돼 있고 내가 슬픔을 안겨드렸기 때문에 당연히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갔다. 그런데 정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가족 분들 얼굴도 그때는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가족 분들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셨다.

뭐라고 하시던가.
그 당시에는 화도 내시고 그러셨다. 그러나 그 뒤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하고 잘 돼서 좋은 일로 다시 보자고 말씀해 주시더라. 그분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이모님이 얘기를 해주셨는데 기독교인이었다. 내 차 뒷자리에 성경책이 있었던 것을 보시고, 기도하고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시더라.

사람은 그런 일을 겪으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게 된다.
당시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서 문득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 기간 동안에 모리아 성전을 보수하고 내가 소속된 헵시바 선교회의 여호수아 성전도 보수하면서 나의 신앙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나한테 이런 시간을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성전 보수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교회에서 이렇게 작업을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성전 보수를 하면서 성전에 정말 애착이 생겼다. 완공된 뒤에는 이렇게 좋은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됐다. 사실은 성전 보수 공사를 한다고 광고가 나갈 때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다 나오셔서 일을 할 줄은 몰랐다.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이 오셔서 하시겠지 했다. 그런데 목사님, 권사님, 어르신들이 다 나와 땀을 흘리시니까 젊은 우리가 쉴 수가 없더라. 한 달 반 정도의 그 기간이 나에게는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작업하면서는 사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른 데서 일하며 땀 흘리는 것과 성전 보수하면서 땀 흘리는 것은 보람도 생각도 확실히 달랐다. ‘이렇게 땀을 흘리면 기쁘게 봐주시겠지. 모든 일을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겠지.’ 하는 생각에 그 하루하루가 위로의 시간이었다.

안 하던 일인데 힘들지는 않았나.
사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한 건 아니다. 치우고 도와드리고 그런 거니까. 밥도 맛있게 먹었고 헵시바 친구들과 다같이 웃으면서 일하니까 재미있었다. 하루는 먼지 많이 먹었다고 교회 식당에서 삽겹살을 구워 주셨는데 그게 제일 맛있었다.

화려하게 주목을 받다가 지금은 사람들의 눈길이 끊긴 채 몇 달이 지났다. 답답하진 않나.
물론 노래는 하고는 싶지만 아직은 전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활동을 하고, 그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자신은 없다. 답답하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교회가 제일 좋다. 집-교회, 또 교회-집의 연속이지만 그게 좋다.

요즘 어떤 마음인가.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마음이 점점 안정을 찾는다. 나에게 맡기신 달란트가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이제는 서서히 준비를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전과는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나.
내 믿음을 다시 돌아보고 꿈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나에게 목소리로 찬양하고 노래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셨으니 그것을 통해 큰 영광을 돌리고 싶다. 그리고 직업의 특성상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전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

어려운 시간을 겪으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달라 보이지 않던가.
성도님들이 나를 쳐다보시는 느낌이 달라진 것 같다. 전에는 환한 웃음과 반가움이었다면 지금은 그 환한 웃음 속에 뭔가 애틋한 느낌…. 나를 이해해 주고 보듬어 주는 느낌이다. 기도 많이 했다고 말씀해 주시고. 나 혼자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눈빛이 더 따뜻해졌다.

정말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셨을 것이다. 눈에 안 보이는 무형 에너지여서 그 힘을 간과하기 쉽지만 기도는 엄청난 에너지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도 있는데 그 기도가 어디 가겠나. 그 기도가 쌓여서 대성에게 큰 힘이 됐을 거다.
성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내가 이렇게 교회를 편하게 느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아무리 교회를 편하다고 생각해도 성도들의 기도가 없었다면 내가 교회를 이처럼 편하게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다른 쉴 곳을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는 분들마다 나를 위해 뜨겁게 기도해 주시는 눈빛을 느끼다 보니 교회에 있으면 어디든 편했다. 기도의 힘이 아닌가 한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실제로 계신 것이 아니라 그냥 혼자 하나님을 찾으며 마음에 위안을 받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하나님이 정말 계셔서 도우시고 응답 주신다는 걸 느꼈나.
정말 많이 느꼈다. 눈에 보이는 검찰의 결정으로만 봐도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다는 걸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적으로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 시민위원회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는, ‘어떻게 결론을 내리든 그것이 사람들의 지금 생각이겠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분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후 원로목사님을 만나 위로와 권면을 들었다고 했는데 그 후로도 뵈었나.
자주 뵙는다.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여쭤보고 상의 드리게 됐다. 사고 이후로 제일 큰 변화 중의 하나가 모든 계획과 일정을 하나님께 여쭤보고 결정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그 사고가 있었던 다음날이 멤버들과 해외여행 가기로 한 날이었다. 빅뱅 활동을 시작한 뒤 처음 갖는 휴가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는 기도도 상의도 한 적이 없었다. 아니, 그 여행뿐 아니라 모든 일에 그랬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이 나의 잘못이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3년 전부터 전도사님이 나만 보면 성경공부를 하자고 하셨다. 물론 바쁘기도 했지만 시간은 만들려면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피했다. 모태신앙이고 교회를 계속 다녔는데 성경공부를 다시 하자고 하니 머리가 너무 아팠다. 이번에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성경공부를 다시 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수박 겉핥기로 성경을 알고 있었는지, 믿음이 얕았는지를 절감했다.

성경을 배우고 나니 무엇이 달라졌나.
정말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창세기 아담과 하와부터. 그걸 배우고 나니 자연스럽게 구속사 시리즈에 눈이 갔다. 지난번 참평안 인터뷰 때 구속사 시리즈를 얼마나 읽었느냐는 질문에 서론이 어려워서 몇 페이지 못 읽었다고 대답했던 게 생각났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구속사 시리즈를 읽으니 성경이 재미있었다.
친근하게 느껴지고. 설교에도 더 집중하게 됐다. 설교해 주시는 말씀이 이것과 연결되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고 이제 머리 속에 작게나마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어렵다. 그러나 전에는 ‘노아가 방주 지은 기간이 120년이 아니다.’, ‘아담과 라멕이 56년 같이 살았다.’ 하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외웠는데 이제는 왜 그런지, 의미가 뭔지 맛을 보고 있다. 이제 공부하고 더 깊이 알아야 할 단계가 아닌가 한다. 이제 시작이다.

구속사 시리즈는 어디까지 읽었나.
6권 읽고 있다. 권당 한 번씩밖에 읽지 못해서 어디 가서 읽었다는 말을 안 한다.

대박이다. 요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나.
감사하다. 만약 그 일을 겪지 않고 계속 활동했으면 세상에서는 몇 걸음 더 나아갔겠지만 이렇게 말씀을 제대로 알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요즘은 지나온 모든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왜 이런 일을 주셨는지에 대한 모든 궁금증과 실마리들이 풀려나가는 느낌이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아서 빨리 깨달으라고 나에게 이런 경각심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번 인터뷰 때와 비교하면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힘들었을 때 특별히 머리에 떠오르는 찬양이나 성구가 있었나.
요즘 찬송가 386장을 예배 때 자주 부르지 않나. ‘힘차게 일어나’로 시작하는 그 찬송을 부를 때마다 ‘힘차게 일어나야겠다.’ 생각한다. 부를 때마다 가사를 생각하게 된다.

힘들 때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
걱정하지 말라고, 성경공부부터 하라고 해주셨다. 처음 3, 4일 숙소에서 방문 잠그고 혼자 있을 때 어머니가 숙소에 오셨는데 내가 아무도 보기 싫다고 화를 내고 언성을 높였다. 그걸 다 받아주시고 그 후로도 묵묵히 힘이 돼 주셨다. 늘 죄송하고 감사한데 내가 표현을 잘못해서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만 대한다.

얼마 전 빅뱅 동료 지용 군을 인도했다. 어떻게 된 건가.
내 힘으로 한 건 아니다. 내가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니까 지용 형이 어느 날 매니저 형을 통해 우리교회에 오고 싶다는 말을 전해 왔다. 형이 원래는 다른 교회에 다녔는데 한참 안나가던 와중이었다. 언제든 오라고, 환영이라고 했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조심스럽더라. 어떻게 하면 와서 편하고 자연스럽게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지용 형을 인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진 못했었지만 와서 교회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원래 두 사람이 각별히 친한가.
멤버들끼리 두루 친한데 지용 형이 팀의 리더이다 보니 나를 더 많이 이해해 주는 사이다.

요즘은 지나온 모든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왜 이런
일을 주셨는지에 대한
모든 궁금증과 실마리들이
풀려나가는 느낌이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아서
빨리 깨달으라고 나에게
이런 경각심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왜 하필 대성이 다니는 교회에 가고 싶다고 했을까.
글쎄. 물어보진 않았다. 내가 숙소에는 없고 매일 교회에 가 있으니 어떤 교회인지 궁금했을 수도 있고. 우리 회사 소속 작곡가 형도 우리 교회에 다닌다. 그 영향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형이 처음 오던 날 모리아 성전이 보수공사 중이어서 철근 비계가 성전 내부에 설치돼 있었다.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계속 공사중이라고 설명을 했는데 ‘괜찮다’고 하더니 들어가자마자 피식 웃더라.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그때 찬양이 ‘난 예수가 좋다오’ 였는데 찬양이 좋다며 예배를 잘 드리고 갔다. 다음 예배 때는 원로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다. 내가 열심히 노트 필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야, 잘 안 들려.” 그러더라. 그래서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며 통역하듯 해줬다. 그랬더니 말씀을 듣고 좋아했다. 그 다음 주에는 원로목사님을 뵙고 인사도 드렸다. 집으로 같이 가는 길에 어땠느냐고 물어봤더니 목사님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마치 자기를 잘 아시는 듯,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고, 느낌이 참 좋았다고 하더라.

요즘 기도는 많이 하나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나갈 때, 차에 탈 때, 그리고 교회 다녀왔을 때, 자기 전에, 이렇게는 꼭 하고 그 외에도 짧게 짧게 자주 한다.

기도 제목은 뭔가.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으로 대박의 축복을 받았으니 보이는 대박의 축복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크게 쓰임 받기에 부족함 없게 해달라고 기도드리고 있다. 지금의 이 마음, 이 믿음 이제 더이상 잃어버리지 않고, 이렇게 아픈 가르침을 받지 않고 믿음도, 일도 힘차게 전진할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한다.

올해 석 달 남았는데 어떤 계획 있나.
일단 올해까지는 활동은 하지 않고 휴식할 계획이다. 물론 직업인 음악은 게을리 하지 않겠지만…. 올해는 교회 일에 전념하고 싶다. 때마침 헵시바 임원과 또래장을 맡았다. 교회에서 다양하게 쓰임을 받고 있어서 너무 좋고, 맡겨주신 일 잘 감당해서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가 됐으면 좋겠다. 요즘 성전에 올라갈 때면 내가 왜 2-3년 전에는 여기를 마스크 쓰고 다녔을까 싶고 그때 심정이 생각나서 혼자 웃기도 한다. 이제는 헵시바 친구들이 나를 연예인이라고 생각 안한다. 오빠, 동생, 친구로 생각한다.

지난 주일 3부예배 봉헌찬양이 참 은혜스러웠다더라.
혼자 봉헌찬양 드린 건 처음이었다. 너무나 떨렸다. 지금껏 모든 무대를 통틀어서 무대에서 다리가 떨려 보긴 처음이었다. 전혀 다른 종류의 떨림이라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찬양할 때가 제일 떨린다. 무대에 임하는 마음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날은 ‘오직 주만이’ 라는 곡이었는데 가사가 내 얘기 같았다. “내가 요동치 아니하라.”라는 가사가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없나.
인터뷰 하자는 얘기를 듣고 작년 인터뷰를 많이 생각했다. 어떤 한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는 혼자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그랬었구나 싶었다. 이런 시간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런 생각으로 교회 다니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일 큰 변화이다. 감사할 뿐이다.



그와 인터뷰한 날은 2011년 10월 2일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지난번 인터뷰가 작년 언제쯤이었던가 궁금해졌다. 참평안닷컴에서 지난 기사를 찾아봤다. 놀랐다.
“2010년 10월 3일 주일. TV에서 보던 것보다 어른스럽고 듬직해 보이는 청년이 인터뷰 장소인 전도국 앞뜰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올라온다….”
그도 나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와 두 번째 인터뷰를 한 날은 첫 인터뷰 이후 정확히 365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365일 동안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출입을 지키셨다. 앞으로의 365일, 그는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 것인가.

글_호준석 참평안 편집팀장 (YTN 앵커)
기록_문윤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