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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천하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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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과 어머니
 글쓴이 : 관리자
 

어머니와 아들

화창한 봄날입니다. 여유로운 저녁 햇살 속에 아들 녀석과 공원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엄마가 가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참평안지 편집장님의 호출. ‘강대성 군을 인터뷰하라’는 지령입니다. 헉, 빅뱅의 멤버 대성이라. 갠 유명한 애잖아요. 이런 기사는 참평안 기자 중에서도 실제 직업도 기자인 분들이 늘 맡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성 군은 지금 교회에 있고, 저만 당장 교회가 갈 수 있다는 조건, 그리고 호기심이란 이유 덕분에 교회로 향했습니다. ‘저런 아들은 엄마가 어떻게 키웠을까?’라는 호기심이지요. 그래서 엄마들만 생각할 수 있을 엄마표 질문들을 대성 군에게 물어 보았답니다. 많은 평강의 어머님들이 대리 만족하실 인터뷰가 되길 바랍니다.




반가워요 대성 군. 오늘은 가수 대성 군이 아닌 성도 강대성이 궁금해서 왔어요. 가정의 달이고 또 어머니의 신앙이 대단하다는 말씀도 들었고. 대성 군에게 엄마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어떤 분이셨나요?
늘 똑같은 분이세요. 어릴 때의 엄마는 항상 교회에 있었고 지금도 그러세요. 집도 교회에서 걸어서 2분이에요. 집의 이사조건 0순위가 ‘교회 근처’였어요. 저도 교회 유치원을 나왔고(평강제일선교원 2기 졸업생), 선교원 친구들이랑 학교에 같이 진학했고, 학교 친구가 교회 친구고, 학교 끝나면 교회에서 놀고. 엄마는 항상 교회에 오시니까 저도 친구들이랑 여기서 놀았지요. 어릴 때부터자연스럽게 교회라는 이미지는 백만 불짜리 놀이터? 모리아 성전 계단도 놀이터. 예전에는 교회에 사루비아 꽃도 많았고, 대운동장에 축구 골대도 있었거든요. 교회와 거리도,마음도 가까웠어요.

평강 동산에서 완전 방목돼서 살았군요. 엄마가 너무 교회에만 계셔서 서운하지 않았나요?
안 그러시던 분이 그랬으면 심하다 했을 텐데 어렸을 때부터 봐 와서 ‘당연한 거구나’ 생각했어요.
저도 그때는 말씀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친구 만나러 오는 거였지요. 오히려 지금 엄마의 모습이 더 대단해 보여요. 그때보다 몸도 마음도 힘들 텐데요.

엄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을까요? 대성 군도 신앙생활을 하잖아요. 대성 군의 신앙생활에서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요?
센 자석. 저는 아직도 나가서 활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이해지는데 그때 또 확 잡아 당겨 주는 사람.

엄마가 어떤 식으로 잡아 당겨 주셔요? 어떻게 신앙적인 접촉을 하시나요?
그냥 두세요. 그냥 엄마가 교회 안에서 저를 키워왔기 때문에 엄마가 교회에 있는 것 자체,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자체가 제게 압박이 돼요. 내가 교회 안 가면 내 손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그 중요성을 아니까 더 느껴요. 사실 저는 성격이 모나서 가족들이랑 연락을 잘 못해요. 오히려 무언의 건드림? 보이지 않는 영적 자석의 힘으로 당겨주세요. 저는 우리 성도들이 봐주시는 것만큼 그렇게 믿음이 아주 좋지 않아요. 부족하고. 매번 흔들리고 너무 약한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잡아주세요. 그래서 엄마의 존재가 더 커요.

대성 군은 엄마에게 어떤 아들인가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골칫거리인 아들 같아요. 예전에는 정말 말도 안 듣고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요.

엄마는 어린 대성이를 어떻게 혼냈나요?
맞았죠! 저는 되게 많이 맞았어요.
(굉장히 궁금했던 질문인데 회초리란 말에 미소 지었다. ‘너처럼 키우려면 매를 아끼면 안되겠구나.’)

그런데도 안 비뚤어진 이유는요?
비뚤어질 수가 없었어요. 너무 무섭게 혼나서 비뚤어지면 제 뼈가 비뚤어졌을걸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서로 웃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과거를 회상하며 또 한 사람은 미래를 계획하면서) 어릴 때는 오락실, PC방 등 친구들에 비해 안 되는 게 너무 많았어요. 음악을 한다는 것으로도 반대가 심했어요. 그때 많이 혼났죠. 거의 집안의 아들이 아니었어요.



성공한 아들인데 어머니한테는 왜 지금도 골칫거리죠?
엄마는 그런 면으로 안 보니까요. 저를 사회적으로 안 보고 신앙적으로 보시거든요.

그러면 앞으로는 어떤 아들이 되고 싶어요?
항상 엄마에게 믿음을 줄 수 있고, 엄마도 다른 사람에게 모든 면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싶어요.

효도해 본 적 있나요?
엄마에게 물어봐 주세요. 불효자는 울어야겠어요. 어렸을 때도 그렇고 항상 골칫거리여서. 누나가 항상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에게도 잘해서 효도는 누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도 아직 효도의 정의를 못 내려서 답을 못한 건데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부모님이 저로 인해 기쁨을 느끼는 게 효도의 기본인 것 같아요.

그동안 해외에 있었어요? 주일 3부예배 성가대에서 얼굴이 잘 안보였어요.
올해 계속 일본에 있었어요.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교회 나와요. 주일은 2부 예배(오전 11시)부터 3부 예배(오후 2시)까지 드리고 4부 예배(저녁 7시)까지 드릴 때도 있어요. 토요일은 청년 예배가 있고 주일은 주일 예배가 있으니까 기도하면서 힘을 얻어요. 주어진 달란트를 이용해서 열심히 해요.

올해가 빅뱅의 대성한테는 어떤 한 해인가요?
제 이름을 건 솔로 앨범이 처음 나온 해요. 일본 앨범이라 일본에서 활동해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콘서트도 하게 되고, 원래 4회 예정이었는데 21회가 더 추가되었어요. 내일 일본에 가면 두 달간 콘서트만 해요. 지금은 각자 개인 활동하는 시기이고 연말에 빅뱅 앨범으로 월드 투어를 1년 가까이 해요.

그럼 앞으로 점점 바빠지겠네요. 올해 대성 군의 신앙의 목표는 뭐였어요? 지금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항상 기초로 두는 것은 ‘내가 모범을 보인다면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찾아봐 준다.’는 직업의 장점을 잘 활용해서 전도를 하자는 것이에요. 올해만의 특별한 목표는 구속사 1권에서 6권까지 읽은 것은 다시 기억을 해내고 7권을 완독하는 것이에요.

지난 참평안 인터뷰 후에 1년 반이 흘렀어요. 그동안 강대성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더 많은 성도들과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고 그래서 사명감이 더 커졌어요. 제 안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저를 감싸는 힘이라고 할까요. 더 크게 느껴요. 2년 동안 해외에 있으면서 신앙에서 아무래도 멀어진 것이 사실이죠. 솔로 앨범과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정말 다 때려 치고 도망갈 계획까지 세울 만큼 힘들었는데 지금은 이제 잘 마무리됐어요. 감사하고 있고, 잘 보내고 있어요. 남들은 피곤해 보인다고 하는데 저는 아주 좋아요. 말씀 받는 것도, 일하는 것도 좋아요.

늘 생각하는 말씀이 있나요?
원로목사님이 자주 꾸중하시는 말씀 있잖아요. 기도를 해 놓고 왜 안 믿느냐고… 믿지 못하니까 안되는 거라는 말씀. 그 말이 항상 진짜 맞는 거예요. 내가 하고 있는 기도와 그 기도에 대한 내 믿음이 어떤 상태인지 되물어요.

오늘의 기도는 뭔가요?
남아 있는 스물 한 번의 일본 콘서트요. 그리고 오랜만에 요즘 교회를 오다 보니까 왠지 모르게 흐트러지는 기분이 있어요. 이런 이질감 없이 모든 일들을 즐기는 가운데 성장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려요. 부족한 저이지만 저에게 주신 달란트가 목소리이고, 지금은 제 활동에 열중하고 있지만 이런 시간들이 경험이 되어 언젠가는 음악으로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죠.

아들을 만나고 어머니가 궁금해지다
대성 군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참 잘 키운 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스물 다섯이란 나이에 맞게 유쾌하면서도 어른 앞에서 예의 바르고 겸손하다.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공연이 있으면 꼭 교회 어른들을 위해 VIP표를 준비한다고 한다. 공연장에서 노래하는 그는 할머니 권사님도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 정도로 신나게 만들고, 끝난 후에는 어른들에게 공연이 지루하지 않으셨는지 묻는 예의바른 청년이라고 한다. 연예인이 우리 교회를 다니는 줄 알았는데 이 젊은이는 교회에서 자라나서 연예인이 된 가장 평범한 평강의 아들이었다. 그는 스케줄이 비면 주일 3부 예배 엘리야 성가대에 선다. 또 지난 고난주간 집회 때도 참석했다. 주일에만 오는 성도가 아니라 교회에서 자라 교회를 섬기는 젊은이다. 그래서 한때는 “대성이도 왔더라.”는 말이 개인 사정으로 교회봉사 못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대성 군의 이름은 ‘클 大’, ‘소리 聲’이다. 대성이가 태어날 때 원로목사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다. 날 때부터 그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은 공동운명체가 아니었을까? 이런 청년을 키운 어머니가 궁금해졌다. 어머니와의 만남은 그 다음 주에 이루어졌다.




대성 군을 교회 식당에서 인터뷰하던 날 어머니가 잠시 아들에게 “엄마 간다.”는 짧은 인사를 하러 들렀다. 교회 부설 신학교의 야간 수업 들으러 가신다는 어머니에게 급히 질문을 던졌다. “대성이는 어떤 아들인가요?” 그녀가 말했다. “평강의 아들, 아버지의 작품이요.” 그녀는 그렇게 총총 사라졌다. 대성 군보다 더 바쁜 대성 군 엄마 .



어떤 엄마인가요?
주변에서 ‘너는 계모다’ 할 정도로 애들을 엄하게 키웠나 봐요. 동네 할머니는 ‘열 번 만나면 열 번 인사하는 애들이 너희 자식이다.’ 했지만, 나는 욥의 기도를 잘 생각했어요. 욥도 자식들이 혹시 모를 죄를 지을까봐 자식들을 위해 속죄 제사를 지냈잖아요. 애들이 내 눈 밖에서 어떤 일을 할까 그것이 염려되었어요.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안다고 저는 애들 어릴 때 잘못을 하면 30분 정도 손들고 벽을 보며 자신이 혼나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했어요. 혼내고 나면 안아 주고 너를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해 주고요.

대성 군이 어릴 때 무섭게 혼나서 비뚤어질 수가 없었다고 하던데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도 자랄 때 부모의 베개를 어찌 밟았어요?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자식도 그렇게 가르쳤어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부모님께 인사해라. 안방은 들어가지 마라. 나올 때는 신발을 정리하고 나와라. 잔소리처럼 많이 했어요. 그렇게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가고 나니까 매가 필요 없어졌어요. 하루는 누나랑 셋이 앉아 이야기 하면서 “이게 필요할까? 그동안은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매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필요 없는 것 같아.” 했어요. 그 후로 매는 보이는 곳에 항상 두기만 했죠.

어릴 때 대성 군은 어떤 아들이었나요?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들이었어요. ‘안 해요.’ ‘못해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었어요. 여자를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아들이었어요. 특히 시장 같은데 가면 봉투는 내가 남자라며 꼭 들어주고, 여자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어요.
학교생활이요? 대성이 누나는 성격이 완벽해서 하나틀리면 울고불고 그랬는데 대성이는 집에서는 공부 안했어요. “엄마,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면 되지 집에서 왜 공부해요?” 했어요. 그래도 시험을 보면 생각보다는 성적이 괜찮았어요.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대성이에게 코미디언 되라고 했대요. 엄마 눈에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학교에서는 친구들도 많고 눈썹 올리기하고 묘기 대행진하고 했대요. 토요일이면 다음날 같이 교회 가려고 친척 동생까지 애들만 5명이 우리 집에 모였어요. 밤마다 대성이 형이 웃긴다고 웃고 난리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내 틀에 넣어 억눌렀나 봐요. 그래도 우리는 대화도 많이 한 편이었어요.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 있어도 문 열고 대화를 나누었으니까요.

대성 군이 연예인이 되었어요. 기대하셨어요?
정말 우리 아들은 아버지의 작품이에요. 임신 전에 원로목사님께 이름을 받았어요. 새벽마다 아버지께 쓰임 받는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나는 내 자식이라고는 생각 안 해봤어요. “아버지, 나 애들 다 아버지에게 맡기니 책임져 주세요. 마음껏 사용해 주세요.” 그 기도를 은밀히 새벽에 했어요. 대성이가 중3, 고1 때 음악을 시작했는데 문자가 와요. ‘학교 장기자랑에서 1등 했어요.’ ‘엄마, YG에서 언제 오디션이 있어요. 기도해 주세요.’ 하고요.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거면 기도해 줄게. 해라.’ 하고 답했지요. 대성이의 장점은 한번 목표를 두면 끝까지 하는 끈기가 있고 쉽게 포기하지 않아요. “근데 YG가 뭐하는 데래?” 딸하고 통화하다 물었더니 완전 유명한 회사래요. 실력으로 뽑는 거래요. 대성이가 전문적으로 어딜 다녀서 배운 게 있나요. 원로목사님에게 찾아가서 아들이 가수 된다고 했더니 세계 최고가 되라고 하셨어요. 대성이 누나가 군대 갈 때도(주: 대성 군 누나는 여군 장교로 복무 중) 영등포역에서 자식을 떠나보내 우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내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그 때문에 감사해서 울었어요.

물질이나 헌금에 대해서는 어떻게 가르치세요?
내가 기도를 한 뒤, 자식들에게 교회 일들을 얘기해요. 자식들이 동의하고 헌금을 드리겠다고 하면 신앙으로 하나가 되는 것에 전율을 느껴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고요. 자식이지만 하나님과는 일대일이거든요. 내가 모르게 헌금한 것도 많을 거예요.
경제권은 제가 관여 안 해요. 대성이가 워낙 절약 정신이 있고 너무 한다 할 정도로 씀씀이가 없어요. 애들 어렸을 때는 많이 가난했어요. 고난이 축복이었죠. 신발 한 켤레가 다 떨어지면 한 켤레 사줬어요. 저는 지금도 백화점에서 옷을 못 사 입어요. 우린 서로 노터치예요. 빅뱅 월드 투어를 하면 엄마들도 함께 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저는 아들의 요청에도 못 간다고 해요. 엄마는 교회의 중직(重職:무거운 직분)을 맡고 있고 또 주일을 끼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하죠. 내가 매일 외국에 싸돌아다녀 보세요. 나는 간이 작아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교회에서 어떤 중직을 맡고 계시죠? (둘 다 웃음이 터졌다) 어머니 스케줄이 어떻게 되세요?
마르다 식당에서 봉사하는 일이 중직이지요. 저 그렇게 교회 일 많이 안 해요.
월요일 구역장 공과, 저녁은 신학교 야간 수업, 수, 목요일은 예배, 그리고 목요일 음식재료 썰어놓기, 토요일은 교회에서 열리는 결혼식 피로연을 위한 식당일, 주일은 마르다 식당 배식. 매일 교회에 있어요. 우리 집은 잠자는 곳이에요.
그래도 집은 깔끔하게 치우고 나와요. 교회일 한다고 집안 더러우면 안 되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 대성이 집에 가서 빨래하고 반찬해주고. 대성이 집에 들어갔을 때 대성이가 침대에서 구속사 책 읽고 있으면 내 입에 미소가 번지지요.

장성한 아들을 보시는 심정은 어떠세요?
신앙으로 잘 자라준 것이 대견하고 자식이지만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 주어서고마워요. 늘 미안하기만 하고요. 바라는 것은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신앙의 대물림을 하는 거죠. 내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너희 결혼문제까지는 기도한다. 엄마의 기도의 터 위에 결혼해라. 믿음으로 결혼 안하면 족보에서 빼버린다.” 소리를 많이 해요. 하하.

어머니를 만나니 아들이 이해가 된다. 대성 군 엄마의 첫 인상은 화사함이었다. 늘 교회에서 조용히 봉사하신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예상하던 모습보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인터뷰의 말미에 나는 시선을 그녀의 손에 두게 되었다. 그녀는 대화 내내 ‘식당 일 내가 다 하는 거 아냐’. ‘나는 하는 일 없어.’ ‘그냥 돕는 거야.’라며 낮은 목소리로 손사래를 쳤다. 그녀의 왼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발이 아파서 요즘 식당 일을 잘 못한다는 말도 주변 사람의 말을 전해 들었다. 늘 고무장화를 신은 그 발 안은 발가락 사이마다 헐어서 천을 끼워 넣고 한 손은 부기가 심해서 비닐로 손목을 둘둘 감고 일한다고 했다. 대성 군의 어머니는 참 대단한 신앙을 가진 분이구나. 누가 화려한 빅뱅의 멤버 대성 군의 엄마라고 생각했을까. 그런 엄마의 신앙이 녹아 있는 아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둘은 닮았다.

글_ 강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