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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 장녀 손동희 권사 '참평안' 인터뷰 (2010년 9월호)
 글쓴이 : 관리자
 

아버지가 남긴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합니다

손양원 목사 장녀 손동희 권사
 
선친 손양원 목사님께서 두 아들을 죽인 원수지만 용서하고 양자 삼으신 안재선 씨의 아들 안경선 목사가 애양원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떠셨나요.

반가웠지요. 두세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사진도 찍고 대화도 나눴지요.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신학공부를 하라는 유언에 따라 목사가 돼서 아버지가 못다 한 일을 대신 이루었잖아요. 그의 아버지 안재선씨는 48세에 세상을 떴어요.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하신 나이도 48세였습니다.

안재선 씨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 마음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항상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오빠 죽인 원수를 용서하지 못했어요. “네 이 놈 왜 죽였어. 왜 내 두 오빠 죽였어. 살려내 아니면 네놈이 자살해라” 두 오빠 죽고 나서 정신이 홀딱 나갔지요. “저런 놈 지옥가야 내 속이 시원할 텐데” 악담을 하면서 다니고, 그렇게 용서 못하고 이를 갈고 있었던 걸 안재선 씨는 다 알고 있었어요. 그 오빠는….
그런데 죽기 15일전에 저를 찾아왔어요. 그때 동생 집에 볼일이 있어서 서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였죠. 죽어가면서요. 힘없는 몸을 간신히 이끌고 와서 나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쏟아냈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마지막으로 죽어가면서 나타나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걸 보니 불쌍한 마음뿐이었어요. 그렇게 미워했는데 나도 못 잊고 그 사람도 못 잊을 거예요. 지난날들이 영화 필름처럼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희야, 나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곧 하늘나라로 간다. 내 죽어서 천당에 가면 네 두 오빠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하더군요. 그리고 15일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안재선 씨를 양아들 삼겠다고 하셨을 때, 당시 심정을 기억하시나요.

나중에서야 하나님이 믿음의 표본을 만드시고자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는 믿음의 가정에 태어난 걸 한탄했어요.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는지 몰라요. “왜 이렇게 뒤흔들어 놨을까. 왜 하필 나야 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게 아니었어요. 씨는 반드시 죽어야만 천배 만배의 열매를 맺잖아요. 많은 순교자들이 죽은 것 같지만 죽은 게 아니에요. 그들 안에는 하나의 씨가 있었고, 싹이 나고 움터서 많은 영혼들을 깨우치는 믿음의 표본을 만드신 겁니다. 그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용서와 사랑, 말은 쉽지만 너무나 힘겨운 일입니다. 양아들 안재선 씨를 대하는 손양원 목사님의 모습은 어떠셨나요.

눈곱만치도 ‘아들 죽인 자’라는 개념은 없고, 친아들처럼 부흥집회 가는 곳마다 신앙을 키워주기 위해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런데 부흥 집회가 끝나면 사람들이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하듯 안재선 씨 주위로 몰려와서 힐끔거렸죠. 나중엔 더 이상 마음 아파서 데리고 다닐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혹시 아버지가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이신 적은 없나요.

강했어요. 물론 갑작스럽게 닥친 두 아들의 죽음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한날 한 시에 시체로 변해서 왔으니 가슴이 찢어지죠. 땅을 치면서 하나님께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눈에 선해요.그러나 그건 잠시뿐이었고, 정신을 차리신 후부터는 도리어 원수를 양아들 삼으려고 하신 거죠. 그 이후부터는 고뇌하는 그런 모습은 뵌 적 없습니다.

어머니는 두 아들과 남편의 죽음을 모두 지켜보셨습니다.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니의 신앙도 대단했어요. 아버지가 신사참배 거부로 옥중에 계실 때,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가셨죠. 그때마다 꼭 성경 한 구절씩을 외워가서아버지께 읽어 드리곤 하셨대요. 아버지가 좌절하실까봐. “ 만일당신이 신사참배 하면 내 남편 아닙니다.”라면서요.

두 오빠가 순교할 당시 좌우 대립 상황은 현 시대와 흡사합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여수반란사건 때 두 오빠가 순교했잖습니까. 당시 좌익과 우익(기독학생회), 서로 간의 알력이 극에 달했어요. 같은 반 친구들끼리 칼을 품고 으르렁거렸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던 가운데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터지자 좌익 학생들은 때를 만난 거죠. 마음 놓고 죽일 수 있는 시대가 온 거예요. 제 1 타겟이 바로 눈에 가시였던 기독학생회의 우두머리인 우리 오빠들이었겠죠. 여수순천 반란사건은 1948년 10월 19일에 시작돼 딱 일주일간 여수, 순천 두 도시에서만 일어났어요. 그런데 사망자가 무려 3500명, 당시 참상을 짐작할 수 있죠. 그때 두 오빠가 총살당한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 사회전반에 사상 대립이 극심하죠. 하지만 좌익이다 우익이다 그런 사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님이 남기신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버님이 사랑하고 용서하신 것은 성경 말씀에 있기 때문이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남긴 손양원 목사의 정신이며, 핵심입니다.



만약 손 목사님이 살아 계셨다면, 지금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죽도록 기도하셨겠죠. 기도 밖에는 해답이 없으니까요.

현재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과거 신앙인들의 가슴 절절한 기도, 뼛속까지 스미는 눈물의 기도를 지금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고난의 시대에 흐르는 기도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되죠. 그럴 수 밖에 없을 만큼 시대가 힘들었지만, 현 시대도 기도의 힘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권면의 메시지가 있다면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누구나 역경에 부딪힙니다. 역경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 역경 속에 빠져 들어가지 말고 역경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야만 하겠습니다. 그걸 부탁드리고 싶어요.

글_ 참평안 특별취재팀

손양원 목사의 숨결을 따라서 (참평안 201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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