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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로 보는 발전된 대한민국
 글쓴이 : 관리자
 
지난 5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약 34분간 영어 연설을 했다. 기립박수 6차례를 포함해서 모두 40차례의 박수를 받았던 명연설이었다. 연설문 내용에는 6·25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발전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는데, 그 스토리를 따라가 본다.

1953년, 6·25전쟁의 총성이 멈추었을 당시 1인당 국민소득 67불의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이제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무역규모 세계 8위의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세계인들은 이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성취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한국인들은 독일의 광산에서, 월남의 정글에서, 열사의 중동 사막에서 많은 땀을 흘려야 했고,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저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존경스럽고, 그 국민들의 대통령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문 전문 중, 2013년 5월 8일

1. 6·25전쟁의 총성이 멈추었을 당시
1950년 6·25전쟁은 건국 후 2년이 안 된 대한민국의 국토, 산업과 국민의 생활을 철저히 파괴하였다. 군인, 민간인 등 수백만이 사망한 것 외에도 걸인, 고아, 과부, 상이군인들이 무수히 생겼다.
전쟁에 의한 피해는 사실상 계산이 불가능했으나, 당시 정부는 남한의 공장 건물의 44%, 발전 설비의 80%, 주택의 약 40%가 파괴된 것으로 집계했다.



2. 1인당 국민 소득
1960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로 절대빈곤의 상태였다. 1인당 국민소득 79달러는 현재 가치로 환산할 경우 533달러 정도다. 하루를 1.5달러(1,700원)로 생활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3. 무역 규모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경공업과 섬유산업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했다. 1966년 금성사가 국내 최초 흑백 TV를 생산했다. 1970년대는 새마을 운동, 경부고속도로 개통, 포항제철, 조선소가 세워지면서 중공업 중심의 고속 성장 시기였다. 1976년 현대자동차는 국산 고유모델 포니 생산에 성공한다. 1980년대는 1인당 국민 소득이 5,000달러를 넘어섰다. 1997년 IMF를 겪었으나 잘 극복했으며, 2000년대에는 IT강국, 반도체와 조선 세계 1위, 자동차와 철강 생산 세계 5위, 무역규모 세계 8위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4. 독일의 광산에서
1963년 12월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독일의 탄광에 광부로 파견됐다. 1977년 10월까지 7,844명의 노동자가 독일 땅을 밟았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데 4만 6천명이 몰렸다. 한국의 여성들도 독일 땅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1974년까지 1만 명이 넘는 인력이 간호사로 파견됐다.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당시 우리 경제수준에서는 엄청난 액수였다. 1965년부터 고국에 송금한 외화는 총 1억 153만 달러로, 당시 총 수출액 대비 1.9%에 달했다. 광부들은 지하 1,000m이하 막장으로 내려가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다. 어린 간호사들은 손에 알콜솜을 들고 차디찬 시체를 닦아야 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들의 눈물과 피땀으로 벌어들인 돈이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했던 종자돈이 된 것이다.



5. 월남의 정글에서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것은 국가경제 부흥에 큰 역할을 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해 젊은이의 목숨을 대가로 돈을 벌어온다는 비난을 들었지만, 베트남 전쟁으로 국군의 현대화와 한국 경제의 도약이 가능했던 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월남에서만 직접 획득한 외화는 8억 7,250만 달러였다. 이중에서 장병 송금액은 1억 7,830만 달러로 전체의 20.4%에 불과했다. 나머지 80%는 베트남으로의 수출, 군납, 파월 기술자 송금, 파월 건설 및 용역에 의한 수입이었다. 국가 신인도가 상승했다. 외국 원조와 차관이 물밀듯 들어왔고, 상품 및 용역 수출의 물꼬가 터졌다.



6. 열사의 중동 사막에서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중동건설 수주액은 불과 2,400만 달러였다. 1974년부터 정부는 적극적으로 중동건설 수주에 뛰어들었다. 선진국 근로자들은 가지 않는 땅이었다. 고온과 모래 바람이 부는 열악한 땅이고, 금녀(禁女)와 금주(禁酒)의 땅이라는 이유다. 우리나라 건설사들과 근로자들이 열사의 중동 건설 현장으로 달려갔다. 중동건설 수주액은 1974년 8,900만달러, 1978년에는 79억 8,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7. 한강의 기적! 한류(韓流)가 되어 흐른다
‘한류’라는 단어는 200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등장한 단어다.
한류의 원조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서 현재까지 해외 74개 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5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나라로서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은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해외 169개 국에기독교 선교사를 파견하며 복음화의 꽃도 피우고 있다. 구속사 시리즈가 발간과 함께 미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국 등 지구촌 곳곳에 신령한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나님이 보우하시는 대한민국 기적 스토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글_ 지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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