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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제암리 학살사건(민족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 (2008년 3월호)
 글쓴이 : 관리자
 


민족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잃을 줄 알았지만 더 가치 있는 생명을 위해 온 몸을 던졌던 믿음의 선진들···. 


3
월은 새 생명이 약동하는 시기이다. 모지 추위의 겨울에 죽은 듯이 서 있던 나무들에서 움트기 시작한 생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망을 얻게 한다. 마치 마른 가지에 열매 맺은 아론의 지팡이처럼 죽은 듯이 보였던 이 땅이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또한 3월의 첫 날은 이 민족이 살아 있음을 온 세상에 선언한 3 · 1절이다. 한반도에서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민족의 얼이 새싹을 틔우듯 그렇게 일제의 억압을 뚫고 한민족의 염원을 세상에 알린 날이다.


3 · 1운동을 기점으로 일제침략 초기에 일본에 협조했던 외국 선교사들이 더 이상 일본에게 협조하지 않고 한민족의 독립에 헌신하였다. 마삼락 교수는 잔인한 만행 앞에 중립은 없다라고 했으며 많은 선교사들이 태극기 제작에 도움을 주고 독립운동가들을 보호해 주었다. 당시 선교사들도 독립운동의 현장을 많이 찾았고, 스코필드 선교사의 경우에는 제암리 학살 현장의 사진을 찍어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제암리 학살사건은 1919 4 15일 오후 2시경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이끄는 일단의 무장 군인들이 제암교회를 에워싸면서 시작되었다. 교회 안에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21명의 기독교인이 불안해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잠시 후 아리타의 날카로운 외침 소리에 일본군은 짚단을 쌓고 교회문에 못질을 한 후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교회 안에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3 30일 발안 장날에 시작돼 4 13일까지 제암리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운동 주동자를 대라는 협박에 굴하지 않던 성도들이었다. 아우성에도 불은 계속 타올라 더 이상 주님을 부르지 못할 순간 몇몇은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본군의 총칼은 여지없이 몸을 꿰뚫었다. 밭일을 하다가 불길을 보고 달려온 아낙네, 숨어서 남편의 죽음을 지켜보다가 뛰어든 지어미의 목과 가슴에도 깊은 칼집을 냈다. 그 날 제암교회에서만 23인이 주님의 곁으로 갔다.


이처럼 당시 많은 이들이 만세를 외치며 죽어 갔다. 연령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자라 온 환경도 달랐지만 독립을 향한 간절한 소망은 모든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3 · 1운동은 철저하게 미래지향적인 운동이었다. 당시 3 · 1운동을 전개한 이들은 죽음을 목표한 이들 같았다. 생명을 잃을 줄 알았지만 더 가치 있는 생명의 위해 온 몸을 던졌던 믿음의 선진들이었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같이 죽음을 이룬 그 소망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3월의 한 날,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한다. 3 · 1운동이 민족의 부활을 알리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는 것이다. 민족의 광복을 위해서 죽음을 불사했던 우리의 선조들, 그리고 자신의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했던 그리스도의 사랑. 이 모든 것의 터전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감사뿐이 아닌가 한다.


_ 박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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